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동제일 교회와 하나님 나라/이계준목사(감리교 원로목사 연세대 명예교수)

작성자
유삼봉
작성일
2023-07-02 16:57
조회
570
https://www.youtube.com/live/fO-ITo4Ai6c?feature=share

성경본문: 마태 6:9-13
2023. 7. 2.

1. 천영태 목사님으로부터 설교 부탁을 받고 묵상하는 중에 “정동제일교회와 하나님 나라”라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선교인데 예수님의 선교와 이 교회는 어떤 관계가 있고 오늘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살아낸다는 뜻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대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선교 주제가 “하나님 나라”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을 직접 쓰신 것이 자그마치 89회나 되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관해서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에 밝히 나타나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 곧 Hei Basileia tou Theou란 그리스어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인간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의 황제나 이스라엘의 분봉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릴 때 다가오는 새로운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교가 가르침, 치유, 밥상 공동체 등 세 가지로 실현되었다고 합니다. 요약하면 먼저 그의 가르침에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6:24),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 9:62)는 경구와 함께 밭에 숨겨진 보화(마 13:44) )와 겨자씨에 관한 비유(마 13:31-32)가 있는데 이것은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것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나병 환자(마 8:1-4)와 중풍병자( 마 9:1-8)를 치유하신 것은 질병에 따른 육체적 고통, 사회적 소외 및 질병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란 종교적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마 14:13-21) 같은 이적은 당시 기아선상에 있는 실직자, 거지, 극빈자들을 위해 차린 밥상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의 잔치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실현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치하에서 노예나 종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므로 그의 거룩한 뜻을 이 땅에 이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세 가지 입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세례 요한의 하나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묵시 종말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로마 정권에 무력으로 투쟁하는 열심당으로 사람만이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그 뜻을 행할 때 새로운 이스라엘이 탄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비폭력적 저항운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주구인 유대교 지도자들이나 권력자들은 예수의 운동을 유대교와 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항거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유대인의 처형 방법인 돌에 마저 죽지 아니하고 로마의 반역자 사형 틀인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2. 우리는 정동제일교회가 한국감리교회의 모태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고 예수께서 실현하신 하나님 나라와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이 땅에 처음 세워진 감리교회라는 연대기적 의미만이 아닙니다. 예수의 선교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 모델이 18세기 감리교 창시자 J. 웨슬리의 복음 선포와 신학 사상 및 사회개혁을 거쳐서 이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는 뜻에서 정동교회가 한국감리교의 모태라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이 교회를 창건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한 선각자들의 발자취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이 교회를 개척한 아펜젤러 목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수억만 리 은둔의 나라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정동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배재학당의 교육을 통해 서구문화를 전달하므로 눈먼 자들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재필 박사를 통해 독립협회를 지원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 곧 자유와 인권의 밥상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아펜젤러 목사는 예수의 삼위일체적 하나님 나라 운동을 철두철미 실현한 선구자이었습니다.
1903년 아펜절라 목사의 뒤를 이은 최병헌 목사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예수님의 2대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신학적 편견 없이 순수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동양종교에 조예가 깊은 학자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동양종교에 대한 이해와 대화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보고 그의 저서 <비교종교학>을 통해 기독교 신학이 독단에서 벗어나게 한 한국 최초의 신학자이었습니다. 나아가서 최 목사는 조선조 말기에 사회의 부조리와 봉건적 잔재를 불식하기 위해 사회개혁을 부르짖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교회와 민족, 종교와 정치가 불가 분리적인 것으로 보고 기독교를 통한 민족의 구원을 말과 글로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자 이 교회 장로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아펜젤라 목사와 최병헌 목사의 하나님 나라 중심 목회를 우리 사회에 그대로 구현한 평신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서대문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도미하여 유학을 마친 다음 하와이에서 감리교회를 개척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사업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박사가 제창한 국가관 곧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교육입국, 남녀평등 및 기독교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 곧 정의와 자유, 사랑과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직 미완성 교향악이지만 오늘날 온 세계가 부러워하고 우리가 향유하는 삶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정동교회의 정체성은 위에서 말씀드린 세 분 선각자에 의하여 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저만의 편견이 아니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바탕으로 하는 아펜젤라 목사의 총체적 선교활동과 최병헌 목사의 복음적 목회와 토착화 신학 및 사회적 관심 그리고 이승만 장로의 국가 철학 및 건국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말입니다. 이 정체성이 정동교회가 한국감리교의 모태라는 의미의 핵심이고 역사적 유산이라고 인정하신다면 여러분은 이를 신앙생활의 축(軸)으로 삼고 실현하는 일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입니다.

3.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이나 우리의 선구자들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인간의 고난이나 현실의 불의를 백안시한 몽상이나 이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고난과 억압이 점철된 역사적 현실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도전을 보고 거룩한 뜻을 구현하기 위해 신중하고 과감하게 응답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A. 토인비가 말한 바와 같이 이분들은 불가항력적인 도전에 적극 대응하므로 하나님 나라 곧 새 역사를 창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동의 정체성 곧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무엇입니까? 어떤 미국 학자는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기독교가 융합된 아시아의 유일한 국가’라고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사회는 이 찬사와는 달리 천박한 자본주의와 도덕적 해이 및 기독교의 사회적 무관심으로 멍들고 좌우 이념의 망국적 정치집단들로 인해 존망의 나락에 처한 것이 오늘의 실상입니다.
이렇듯 종말론적 현실에서 여러분은 정동교회의 정체성 곧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따리서 우리는 먼저 그 나라 운동의 동력인 영성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교회생활 곧 예배와 교육과 친교를 통해 참된 믿음과 능력과 용기를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그것이 삶의 어떤 영역이든 간에 있는 곳에서 맡은 역할을 창의적이고 다각적으로 수행하므로 부정부패가 가시고 양식과 염치가 되살아나며 절망의 길이 소망의 길로 바뀌는데 누룩의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이루는 것보다는 사후에 가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라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들어간다’ (마 7:21)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하나님 나라 이루기와 사후 하늘나라 가는 길은 연결되었다는 뜻입니다. 오혜령 시인은 ”여기와 저기“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요약하면 ‘여기서 거기 살아내지 못하면, 여기 떠날 때 거기에 당도하지 못한다. ...여기서 살아내고 있는 일상 곧 성실과 사랑, 평화와 위로, 기도와 선행, 모두 거기로 잇대어주는 다리 된다.’
여러분은 해외여행 하시면서 서구 교회들이 쇠락한 것을 보고 탄식하셨을 것입니다. 좀 과장하면 유럽의 교회들은 교단 본부와 목사들만 남았고 예배당은 박물관이나 상가로 변했으니 말입니다. 교회가 쇠퇴한 원인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교회가 오랫동안 휴머니즘과 손잡고 복지국가를 위해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교회는 창궐하나 가난과 독재가 편만한 나라와 교회는 빈약하나 지상낙원인 복지국가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이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므로 선택은 분명합니다.
저는 일제강점기와 북한 김일성 치하에서 인권과 신앙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것을 보았고 군사정권 때는 기독교 대학의 진리와 자유를 지키려다가 5년간 해직되면서 M. 간디와 M. L. 킹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난 수년간 한 목사가 광화문에서 펼친 애국 운동이 문제는 많으나 잠정적이나마 나라 구원에 일조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난 대선의 승리는 7, 80대 노인층과 기독교인의 적극적인 참여의 결과로서 세계역사상 유일한 사건’이라고 적시한 어떤 외국 기자의 논평은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애국선열들과 애국 시민들이 이룩한 자유민주주의가 적화통일이란 불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위기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문제인 동시에 우리의 생존과 삶의 가치 및 신앙의 자유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시민이자 이 나라의 시민은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양날의 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거룩한 뜻에 역행하는 좌우의 모든 악에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holocaust에 대해 로마 교황청과 독일교회가 침묵할 때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했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D. 본회퍼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일상에서 예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동제일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정동교회의 정체성을 몸소 드러내는 것이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과 선구자들의 유산인 정동의 고유한 정체성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이를 위해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루다가 고난을 당하여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주님이 가신 골고다의 길이고 우리 자신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 주님께서 ‘착하고 신실한 종아,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고 말씀하시는 축복의 길이 될 것입니다. 아멘.



전체 2

  • 2023-07-02 18:24

    감사합니다.


  • 2023-07-02 19:13

    하나님 나라가 맞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기복만 남았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7696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5851
13451 홍일기 2023.07.18 610
13450 함창석 2023.07.17 349
13449 홍일기 2023.07.17 749
13448 홍일기 2023.07.17 650
13447 오재영 2023.07.17 389
13446 안신범 2023.07.16 409
13445 함창석 2023.07.16 379
13444 함창석 2023.07.16 334
13443 홍일기 2023.07.15 639
13442 홍일기 2023.07.14 600
13441
요한 (1)
함창석 2023.07.14 304
13440 최세창 2023.07.14 493
13439 박영규 2023.07.14 323
13438 조태희 2023.07.14 635
13437 홍일기 2023.07.13 624
13436 함창석 2023.07.13 330
13435 이현석 2023.07.13 553
13434 이충신 2023.07.12 455
13433 홍일기 2023.07.11 739
13432 최세창 2023.07.11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