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소식

CBS 방송 초청 대담자료(원 주 봉산교회 함창석 장로)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6-07-19 07:50
조회
1311
예상 질문

사전 소개 내용: 평신도 사역자. 언제인가부터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단어입니다. 평신도이지만, 주님의 사람으로서, 주의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우리들이 평신도 사역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진정한 평신도 사역자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죠. 그래서 오늘은 모셨습니다. 평신도 사역자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그저 그 삶의 자리에서 주의 일을 하며 살아오니 그 결과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분, 원주 봉산감리교회 함창석 장로님. 모십니다.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본인소개

- 우리 가정은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고 초등학교 시절 천주교 안흥 공소 아래 살았습니다. 1학년 때 안흥성결교회 목사님 아들인 같은 반 광호와 예배당에 들린 적은 있었는데 광호 친구가 예배당에서 크레용을 주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전도용품이었나 모르겠어요. 그리고 신앙촌인가? 박태선 전도관 전도집회 시 동네 아이들과 선물을 준다기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감람나무’ 노래가 기억나지요.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제가 태어난 고향인 안흥 가천에 6.25전쟁 직전 기독교인전도대가 다녀갔다고 합니다. 아마 원주지역 제일교회 순회 전도단이 찾아 온 것으로 보입니다. (1분정도)

- 장로님의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나요?(신앙생활의 처음,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야기)

저는 1973년도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로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시 둔내국민학교에 임시교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젊은이로서 절망감과 회의가 강한 때였지요. 그러나 주님은 이 소자를 긍휼하게 여기시고 인도하셨지요. 1973년 12월 1일 토요일 원주 기독교서점에서 성경과 찬송가를 구입하였지요. 12월 5일 둔내교회 삼일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작정한 것이지요. 별로 만족하지 못하였지요. 그래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읽었습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외우고 읽었지요. 그 해 12월 31일 현재 다니고 있는 봉산교회에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게 되어 봉산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봉산교회 담임목사님은 원주 청년관 관장을 지내신 박용구 원로 목사님이셨지요. 지금 청년관 건물 내에 CBS 방송이 있내요.ㅎㅎㅎ 훗날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셨고 민족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대학시절 제가 흥사단 아카데미 회원이었는데 도산 안창호 전기를 통하여 제 머리 속에 각인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2~3분)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교사로서 평생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교사로서의 삶 잠시 언급/ ~년도 OO 학교를 마지막으로 퇴임 등)

- 1973년도 강원 둔내초등학교 교직을 시작하여 2014년도 경기 광주초등학교 정년퇴직하였습니다. 41년 간 교육공무원으로서 교사, 교감, 교장 직을 수행하며 1급 공무원에게 수여한다는 황조훈장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수여 받았지요.

장로님께 가르침을 받은 제자 분들 중에는 특히나 목회의 길을 걷는 분들이 많으시다구요. 어떤 마음으로 가르치셨기에, 이렇게 학생들이 주의 종으로 헌신하신건가요?(제자와의 에피소드 1~2개: 4분 정도 분량)

- 제자들이라면 학교 담임 교사한 제자들, 클럽 전도활동 제자들, 교회학교 중고청(MYF) 제자들이 되겠네요. 직접 담임한 교사 중에는 목사님 자녀도 있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자녀도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ㅎㅎㅎ

현재 여주 평화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게 된 동기가 함창석 장로님이라고 하지요.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잘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당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지요. 가끔 초청을 받아 간증설교도 하고 찬양도 합니다.

학교 근무시절에 크게 잘못을 한 제자가 훗날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유학을 다녀와 목회하는 제자도 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시절 ‘스승의 날’ 회개의 편지를 보내와 선생님으로서 매우 기뻤지요. 앞으로도 목회를 잘 할 것입니다.

누이동생 아들인 조카가 감리교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예배를 함께 드렸기에... 외삼촌인 장로님의 영성을 따라 목회하고 싶다고...하지요. 교회를 개척해 주어야 하는데... 중보기도하게 되지요. 성령의 역사라고 믿어요.

그 밖에도 여러 교단에서 10여 명이 목회를 하고 있지요. 얽힌 이야기가 많습니다.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학생들 개개인을 주의 종으로 키우신 것뿐만 아니라 횡성에서 근무하실 당시에는 가르치면서 예배도 함께 드리며 아예 교회를 개척하셨다면서요?
(횡성 병지방교회 개척 이야기: 4~5분정도 분량)

- 제가 1977년 세 번째로 근무한 학교로 당시는 명신국민학교에 총각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버스는 물론 전기도 안 들어오는 횡성군 오지지역이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수련관, 휴양시설이 갖추어진 마을이지만... 횡성 병지방은 일제강점기 금광이 2개 이었는데 폐광이 된 지역이기도 하지요. 제가 1976년 여름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가 큰 변화를 받았는데 근무하던 학교가 화전정리로 학생수가 감소되어 학급수가 줄어 벽지 중 벽지인 명신초등학교로 인사이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봅니다. 병지방은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낮에는 학교근무하고 밤에는 전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은 2십여리 내려와 대관대교회에 출석하며 금요일에는 병지방2리 대관대병지방 속 인도를 하였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교회가 없는 병지방1리 환자심방과 속회, 기도처를 만들고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처음 시작은 담임을 맡은 진국이를 위해서였습니다. 진국이는 하반신 불수로 출석부에는 있으나 학교출석을 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당시에는 학교급식용 건빵이 나왔습니다. 유령재적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모아 진국이에게 전해주며 기도해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질을 하는 동네 아이 복순이가 있어 기독교병원에서 약도 타다 주고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한 때는 예배와 기도하는 가정이 17가정까지 되었습니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학교 아이들에게는 칼라사진을 찍어 선물도 주고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이야 다 찍지만 그 당시에는 칼라 사진이 귀했습니다. 저도 1969년도 서울에서 고등학교시절 처음 찍은 칼라사진을 갖고 있지요. 평신도사역이라고 할까? 자취하며 1년 동안 근무하였는데 다시 학급수가 줄어 인사이동 되었습니다. 새로운 임지 현천초등학교에서 지금 아내 오영자 권사를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5년 만에 다시 병지방에 부부교사로 인사이동 되어 명신분교장에서 근무하며 1983년 교회이름으로 동네체육대회를 하였고 전도를 열심히 하였는데 아이들까지 20여명 성도들이 늘어 1984년 빈농가를 얻어 수리하고 병지방교회를 창립하게 되었지요. 창립 당시에는 이름이 성도교회였습니다. 1986년 지금 예배당을 건축하고 1988년 5년 만에 전출하였습니다. 86년은 아시안게임, 88년에는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태기왕의 전설이 어린 어답산 병지방 갑천 등 지명입니다. 교회설립 목적은 한 영혼이라도 더 세례를 주는 일, 50여호 밖에 안 되는 산촌 폐광지역 복음화, 개척이 어려운 교역자 훈련 목사안수 등이었습니다. 병지방교회를 통하여 30여년간 시무하던 10여명이 목사안수를 받았지요. 당시는 감리교 본부가 선교100주년을 앞두고 5,000교회 100만 성도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5-1984- ...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를 개척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학생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선생님. 그리고 예배를 함께 드리는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그런데 교회까지 개척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염려도 되었습니다. 뻔한 월급쟁이의 형편으로 재정은 어떻게 헌신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거든요. (무소유의 삶/ 부부 수입의 반을 선교비로 사용하는 이야기- 4분정도 분량)

- 저희 부모님이 8남매를 두셨고 어려운 가정 형편에 힘이 드셨겠지요? 저는 양자를 가기도 했고 서울 친척집에서 기거하고 얻어먹으며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원래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무소유지요.ㅎㅎㅎ 교사가 돼서도 월급을 타면 십일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모님께 생활비로 보냈지요. 결혼을 하니 교회개척, 예배당 건축 등 헌금할 일이 많아 모으지는 못하고 자식들과 먹고 살며 교회 일을 한 것이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병지방교회 예배당 건축 시 연립주택을 구입하려던 적금을 해약하여 봉헌했지요. 물론 아내이름 통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내는 불만입니다. 그 후 개척교회, 예배당 건축 시, 전원교회 악기 찬양단 조직지원, 제자교회 예배당건축지원 등 여러 차례 적금대부를 받아 하였기에 갚느라고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지금도 제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 없습니다. 아마 우리 가정의 수입 절반이 넘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가출성이지만...아내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평신도 사역자로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셨는데요, 요즘은 이 나라를 벗어나 몽골을 향한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계시다구요? (몽골에 사역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간단한 사역내용 정리, 이를 통해 장로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은혜 강조- 분량 3~4분)


-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 모두 감사하지요. 1987년 원주동지방 청장년 초대회장으로 선택되었습니다. 1993년 감리교 청장년 해외연수에 지명 되어 미국 내쉬빌에 있는 웨슬레신학교를 다녀왔지요. 1994년 감리교 청장년 해외연수에 지명 되어 영국 웨슬레 감리교본부를 다녀왔지요. 1995년 광복 50주년 남북한 백두산통일기도회에 다녀왔습니다. 백두산 천문봉에서 대표기도를 하였던 것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1995년 중국선교시 몽골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을 4년 동안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담임목사였던 김여일 선교사 자녀가 몽골 아르바르헤르지역에 교회전기공사중 사망 순교하면서 몽골선교회를 담당하고 일하시던 중 2,000년대 초 봉산교회에서 아르바르헤르지역 영원한 구원의 별 교회 예배당 건축을 지원하였습니다. 봉산교회는 지금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정년퇴직을 하면서 장로 은퇴 시 까지 직업으로 몽골선교지원을 기도하였습니다. 그 해 8월 아르바르헤르지역을 돌아보며 개척교회설립, 병원선교, 신학교장학사업 등을 의논하며 돌아왔지요. 현재 진행결과 장학금적립(성일장학회), 개척교회(날라익 산돌교회), 병원선교는 아직도 전문의인 아들과 협력이 안 되고 몽골 사정으로 결과가 없습니다. 개척교회는 처음에 아르바르헤르지역 남부 신흥시가지에 계획하였으나 울란바토르에서 50Km지역 신도시에 날라익 산돌교회를 창립하여 다음 달 8월 1일부터 5일까지 몽골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8월 4일 날라익 산돌교회 창립, 예배당봉헌, 교역자파송, 사례비지원협약이 있을 예정이며 축사를 맡기로 하였습니다.

464장 믿음의 새 빛을

평신도 사역자라는 의미를 장로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풀어주시고, 삶으로 예배하는 방법도 조언 부탁드릴께요.(1분 분량)

-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를 세우는 이, 교회를 섬기는 이, 교회를 지키는 이, 교회를 허무는 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허무는 이는 되지 말아야 하겠지요? 청소년시정 만주에서 돌보아 주신 감리회 정동교회 담임자이셨던 손정도 목사님을 생각해서라도 김일성처럼은...되지 말아야. 아브라함의 품에 임하는 날까지 교회를 세우고, 섬기며, 지키는 일이 평신도가 하는 ‘선교 지향적 삶’ 이라 봅니다.

- 단군시대에는 직업이 3천종이라 합니다. 후진국은 1만종이고 중진국은 2만종이며 선진국은 3만종이상이라 합니다. 직업적 재능은 하나님의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맡은 직업에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평신도 사역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양보와 배려를 하면서 작은 희생을 하더라도...하나님의 일(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시던 일)을 수행하면 좋겠습니다.

해오름

산돌 함창석 장로

오는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니

하늘 궁창서 호수를 비추며
반짝이는 물결을 이루어
어린 고기들이 솟구쳐 오르오.

비늘이 해 같이 빛나며
얼굴이 빛과 같이 희어지니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며
의로운 자 불의한 자에게
한 사랑을 골고루 내려주시오.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주가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니

청년의 때에 주를 기억하며
해와 빛이 어둡기 전에
주신 인생의 본분을 다하시오.

원수가 된 자를 사랑하고
핍박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아들로서
이 땅에 살다 돌아들 가시오.

풍류신학(風流神學)

‘하늘 나그네’

유동식 박사

‘고향을 그리며/ 바람 따라 흐르다가/ 아버지를 만났으니/ 여기가 고향이라/ 하늘 저편 가더라도/ 거기 또한 여기거늘/ 새 봄을 노래하며/ 사랑 안에 살리라.’

선정찬양 5곡

찬송가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464장 믿음의 새 빛을,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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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9 07:51

    7월 21일 오후 1-2시 목요초대석 함창석 장로 초청대담 방송예정임. 원주 CBS라디오 94.9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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