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소식

전쟁미망인(戰爭未亡人)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6-06-21 07:51
조회
951
미망(未亡)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로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오는 말이다. 未는 나무 끝의 가느다란 작은 가지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나중에 분명하지 않다→희미한 모양→아직…하지 않다 뜻이다. 亡은 兦(망)이 본자(本字)로 사람( 人)이 망하고 도망해 와서 숨는다는 뜻이 합(合)하여'망하다'를 뜻한다.

「초(楚)나라의 영윤(令尹) 자원(子元)이 문(文)부인(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궁실 옆에다 건물을 짓고 만(萬) 춤을 추게 하였다. 그 음악 소리를 듣고 부인은 울면서 말했다. “선왕께서는 이 춤을 군대를 훈련하는 데 사용하셨다. 지금 영윤은 원수들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고 미망인의 곁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아니한가.” 시종 하나가 이 사실을 자원에게 알리니 자원이 말했다. “부인은 원수를 잊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잊고 있었구나.” 가을에 자원은 600승의 전차를 동원하여 정(鄭)나라를 치고 길질(桔柣)의 문에 들어갔다.(楚令尹子元欲蠱文夫人, 爲館於其宮側, 而振萬焉. 夫人聞之, 泣曰, 先君以是舞也, 習戎備也. 今令尹不尋諸仇讎, 而於未亡人之側, 不亦異乎. 御人以告子元. 子元曰, 婦人不忘襲讎, 我反忘之. 秋, 子元以車六百乘伐鄭, 入於桔柣之門.)」

위 이야기는 《좌전(左傳) 〈노장공(魯莊公) 28년〉》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문헌상 ‘미망인’이란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길질의 문은 정나라 교외에 있는 성문이다. ‘미망인’은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름, 노(魯)나라의 백희가 송공에게 시집가는데 계문자(季文子)가 후행으로 송나라에 갔다가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성공(成公)이 위로의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계문자가 《시경》 〈한혁(韓奕)〉의 제5장을 인용하여 성공과 송공을 칭송한 후 출가한 백희의 앞날을 축복했다. 백희의 어머니 목강이 방에서 나와 재배하며 말했다. “대부께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신 선왕을 잊지 않고 뒤를 이은 현재의 왕에게까지 충성을 다하고, 미망인인 나에게까지 베푸셨습니다. 선왕의 바람이 있으니 대부의 수고에 감히 절합니다.” 그러고는 《시경》 〈녹의(綠衣)〉의 마지막 장을 노래하고 들어갔다.(夏, 季文子如宋致女, 復命, 公享之. 賦韓奕之五章. 穆姜出於房, 再拜, 曰, 大夫勤辱, 不忘先君, 以及嗣君, 施及未亡人, 先君猶有望也. 敢拜大夫之重勤. 又賦綠衣之卒章而入.)」(《좌전 〈노성공(魯成公) 9년〉》)

「위(衛)나라의 정공(定公)이 병이 들자 공성자· 영혜자를 시켜 (첩실인)경사의 아들 간(衎)을 태자로 삼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위정공이 죽었다. 부인 강씨가 곡을 마치고 쉬면서 보니 태자는 아무런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이를 보고 식음을 전폐하고 탄식했다. “저 못난 자식은 틀림없이 나라를 망치고 말 것인데, 먼저 이 미망인을 학대할 것이다. 아, 하늘은 위나라에 화를 내렸는가? 내가 전(鱄, 강부인의 아들)에게 사직을 맡게 하지 못하다니.”(衛侯有疾, 使孔成子寧惠子立敬塮之子衎以爲大子. 冬十月, 衛定公卒. 夫人姜氏旣哭而息, 見大子之不哀也, 不內酌飮, 歎曰, 是夫也, 將不唯衛國之敗, 其必始於未亡人. 烏呼. 天禍衛國也夫. 吾不獲鱄也使主社稷.)」(《좌전 〈노성공 14년〉》)

위 예에서 본 바와 같이 ‘미망인’은 원래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남을 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남편의 장례를 마친 후, ‘미망인’ 최 여사는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해 준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감사의 편지를 올렸다. 여자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남편이 죽은 후 ‘未亡人’이 되기도 하고 ‘寡婦’가 되기도 한다.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화했고, 참전한 외국의 병력에까지 극심한 해를 입었으며, 이때 사용된 폭탄의 수는 불분명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맞먹는다고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한국전쟁은 그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그리고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소련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11.1%에 해당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고 한다. 전쟁 후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적대적 감정이 팽배하게 되어 한반도 분단이 더욱 완고해지면서, 현재까지도 휴전선에 의한 분단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주 하나님 아버지! 3년간의 한국전쟁을 통하여 약 20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당사자들의 아픔이 오늘 날까지 지속됨을 살아남은 백성들이 알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전체 1

  • 2016-06-21 07:53

    내 친구는 전쟁 중 태어난 유복자이다.
    모친 김순기 집사님은 전쟁미망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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