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소식

성경 24인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6-07-01 12:31
조회
1052
구약성경 12대인물(舊約聖經 12代人物)

아담(영어: Adam, 히브리어: אָדָם, 아랍어: آدم)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헤브라이어 「אדם (아담)」의 이름의 유래는 「אדמה (흙)」이지만, 오른쪽에서 읽는 헤브라이어로서의 말미에는 어근의 「דם (피)가 위치한다. 아담(Adam)은 ‘사람, 붉다’의 뜻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사람이요. 천하 인류의 조상이다(눅3:38).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만드셨다(창2:9).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창1:26). 성경은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증거한다(롬5:12).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친교의 대상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하셨다. 유태교, 이슬람교, 만다야교, 바하이교에서는 예언자로 되어 있다. 모세오경과 구약 성서에 포함되는 「창세기」에서는, 제2장과 3장으로 아담에 대한 이야기가 말해져 4장과 5장에서도 일부 접할 수 있다.

낙원에서 추방되고 처음으로, 아담은 스스로의 식량을 얻기 위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이를 벌었지만, 「창세기」에는 그 안 3명의 이름만이 기록되고 있다. 카인, 아벨과 세트이다. 「요벨서」에서는 게다가 세트의 아내가 된 아즈라, 카인의 아내가 된 아원이라는 딸 2명의 이름도 기록되고 있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바하이교에서는 아담은, 역사상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신의 현현이라고 되고 있다. 바하이 교도는 6,000년마다 아담이 다시 태어나, 무함마드의 때에 최고조를 맞이했다고 믿고 있다. 또 바하이의 신앙에서는, 성서에 그려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압둘 바하에 의해 설명이 더해져 우화화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아담과 하와 (Hawwa)를 유혹한 것은 이브리스로 여겨진다. 이는 낙원에서 추방된 이브리스로부터 인류에의 최초의 복수였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 최초의 예언자이기 때문에, 최초의 이슬람교라고도 되어 있다.

아담이라는 말은 헤브라이어로 「지면」을 의미하는 adamah라는 말의 남성형이다. 이 말은 동시에 「인간」이라는 의미도 가져, 이전에는 개인의 이름은 아니고 전체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명사로써 사용되고 있었다. 창세기라도 제1장에서는 이 말은 보통명사로서 사용되고 있지만, 제2장, 제3장에서는 보통명사와 고유 명사의 어느 쪽의 의미에서도 사용되고 있지만, 제4장 25절, 제5장 3절 이전으로의 사용 예에서는 정말로 개인명으로서 사용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창세기 중에서 「인류」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로써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담이 전 인류의 조상이라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노아(Noah)는 ‘위로’의 뜻이다. 아담의 8세손이다. 레멕이 182세에 낳고 노아라 이름 하니 뜻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우리가 수고 하는 것을 이 아들이 위로한다 하는 뜻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오실 표적이다(창 5:28). 시대가 악하여(눅 17:27) 홍수로 진멸하시고자 하실 때 오직 노아만이 의로운 고로 방주를 만들고 피하라고 미리 지시하셨다. 노아는 홍수 뒤에 350년을 더 살아있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950 세에 세상을 떠났다. 홍수 때에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 부부, 아들 셋, 며느리 셋 도합 8명이었다(창 9:).

노아(Noah)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성경 구약성서의 창세기의 홍수이야기(창세기 6:5-17)에 나오는 인물이다. 구약 창세기 4장과 5장에 따르면, 노아는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인 카인의 후손이 아니라 셋째 아들인 셋의 후손이다. 성경의 창세기 5장에 따르면, 노아의 아들은 셈· 함· 야벳의 3명이다. 기원전 2800년 경 무렵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변 지역에 일어났던 대 홍수기에 살던 한 실존인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앗시리아, 그리스 지역에도 홍수가 범람하여 소수의 생존자가 있었다는 신화들도 존재한다.

선사시대 한반도는 단양수양개 구석기유적을 70만년전, 연천전곡리 아슈리안형 주먹도끼로 30만년전, 청원두루동굴 흥수아이 4만년전, 장성구석기, 신석기 유물 동시출토로 2만년전, 청원소로리 볍씨를 1만5천년전, 양양빗살무늬토기 7천년전, 반구대암각화, 고인돌 5천년전,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브라함(Abraham)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부친은 데라, 아우는 나홀과 하란이다.(창11:26). 구명 아브람을 여호와가 아브라함이라 고쳐 주었다(창17:5). 노아의 12대 손으로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하였다. 얼마 후 메소보다미아 하란에 이거하는 중에 부친상을 당하고 여호와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크게 창대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 말씀을 순종하여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갔다(창12:). 가나안에 다시 돌아왔을 때 노복과 우양이 많으므로 롯이 거주하는 지방에 전쟁이 일어나 롯이 포로 되었다 하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쫓아가 롯과 재물을 찾아 가지고 오는 중에 살렘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그에게 소득의 10분의 1을 바치니 이것이 십일조의 규례가 되었다(창14:9-20).

아브라함(히브리어: אברהם, 아랍어: إبراهيم) BC2166?~BC1991?은 유대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스라엘인과 아랍인은 모두 그를 선조로 주장한다. 아랍과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노아의 후손인데,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 손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데라의 아들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위에 두 형이 성경에 전하고, 그 두 형은 나홀과 하란이다. 하란은 일찍 죽었으나, 롯과 밀가, 이스가의 아비가 되었다. 구약의 창세기 11장 26절에서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그의 큰형 하란은 일찍 결혼하여 밀가와 이스가 자매와 롯을 두었지만 그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 뒤에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라(Sarah)이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었다.

아버지 데라가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손자 롯과 며느리, 딸이자 며느리인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하다가 하란(지역 이름)에 거류하였다. 창세기 12장 1절에 의하면, 아브람은 야훼의 부름을 받고 조카 롯과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갔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였다(창세기 25장 7절). 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일정 몫의 재산을 떼어주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다 한다. 이사악은 어린 아이였지만, 이스마엘은 이미 성인 관례를 치르고 결혼까지 하여,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곁을 떠날 무렵에는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 한다.

요셉(Joseph)은 ‘여호와가 더하시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야곱의 12아들 중 11째 아들. 어머니는 라헬로 동복형제는 아우 베냐민이 있다. 야곱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재질이 뛰어나며 하나님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여 형제 중에 가장 뛰어난 인품을 보이었다. 그 때문에 형들로 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노예 상具인에게 팔려갔으나 후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전국적인 기근에 정사를 잘하였으며 양식을 구하러온 형들을 만나 아버지와 같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창37:45).

요셉(히브리어: יוֹסֵף "그(하느님, 하나님)가 더한다.", 아랍어: يوسف, 영어:joseph)은 구약성서 창세기과 함께 꾸란의 요셉장에 나오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고, 라헬의 첫 아들이었다. 족장 야곱의 아들중 하나인 요셉(Joseph)이라는 히브리청년은 아버지의 편애로 형들의 미움을 받는다. 더구나 잠결에 별들이 자신에게 절을 한다는 허황된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하자 분노가 폭발한 형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상인들에게 은 20닙을 받고 노예로 팔아버린다. 파라오의 경호원인 보디발의 노예생활을 하던 그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보디발의 집안일을 맡아보지만, 어느 날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부하다가 강간 미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힌다.

이때 그는 파라오를 모시던 시종장들을 만나고 그들의 꿈을 풀어주었다. 시종장의 소개로 파라오 앞에 불려간 요셉은 앞으로 7년간 풍년이 있은 이후에 7년 이후에 극심한 흉년이 있을 것이라고 꿈 풀이를 했고, 그의 지혜에 감동받은 파라오는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다. 총리 요셉은 풍년 동안 모아둔 곡식으로 가뭄에서 이집트 사람뿐만이 아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구하였다. 또한 가나안에서 식량을 사기 위해 내려온 아버지와 가족들을 불러, 가축을 키우면서 살 곳으로 고센 땅을 정해주어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형들은 보복을 두려워하지만 이미 요셉은 형들을 용서한 뒤였다. 데이빗 롤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때를 아메넴핫 3세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셉의 역사적 기록은 구약성서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요셉이야기와 내용이 비슷한 ‘두 형제 이야기’(The Tale of the Two Brothers)설화와 기원전 17~19세기 무렵에 이스라엘 지역에서 기근을 피해 이주한 이민들의 지도자 이야기가 결합되어 구약성서에 요셉이야기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모세(Moses)는 ‘물에서 건져 냄’ 이라는 뜻이다. 사실은 "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노예 생활에서 부터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정치가이다. 모세는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낳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왕녀가 발견하고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로 들어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양육 받으며 애굽의 학술에 통달하였다(행 7:22). 광야생활 40년에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놀랄만한 위대한 영도력으로 민족을 일깨워 주었고 인도했다. 그 동안에 홍해의 이적도 일어나고 바위를 쳐서 물도 나게 하였으며 모든 병고를 여호와의 권능을 빌어 해결해 주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맺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때부터 이 율법이 원칙적으로 생활의 원칙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모세는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다가 죽어 거기에 매장하였다(신34:1-5,6).

모세는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부정되고 있다. 신명기 34장에 그의 죽음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등, 진짜 모세가 신명기의 저자인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신명기 1장 1절은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임을 밝혀 주는 암시가 있다. 문서설에 따르면 신명기의 원저자는 모세이나,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의 죽음에 대한 신명기의 기사를 모세의 후손들이 첨가했다고 본다.

사무엘(Samuel)은 ‘하나님에게 구하여 얻다.’는 뜻이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옮기는 과도기에 있던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와 제사장 직을 겸한 사람이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거주하는 엘가나의 처 한나가 하나님 에게 간구하여 낳은 아들(삼상1:1, 10:20). 밤에 잘 때에 여호와가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불러 그와 같이 하시겠다 하시매 그 말이 하나도 어김없이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을 여호와가 보낸 선지자 인줄 알게 되었다(삼상 3:). 엘리가 죽은 후에 사무엘이 제사장 겸 사사가 되었다(삼상4:18). 온 이스라엘 중 아스다롯과 바알 등의 우상을 없애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게 했다(삼상 7:4). 블레셋을 쳐서 이기고 전에 빼앗겼던 에그론에서 가드까지 다시 찾았다(삼상 7:5-14). 사무엘이 연로하여 두 아들에게 정권을 맡겼더니 그 두 아들이 불량하여 민원이 일어나 백성들이 왕 세워 주기를 원하여 여호와의 지시대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세웠다(삼상13:8-15).

사무엘(Samuel, 히브리어: שְׁמוּאֵל, 기원전 1103년경 ~ 기원전 1017년경))은 이스라엘 민족역사 중 한 장인 판관(사사)시대 최후의 판관(사사)이며, 판관(사사)이 활동한 시대의 말기에서 왕정 시대의 초기(BC 약 1050-1000)에 걸쳐 활약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와는 달리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자, 원로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님이 없이도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 때문이었고, 이를 아는 사무엘은 처음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백성들의 고집 때문에 마지못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다. 문제는 사울이 왕으로서의 수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사무엘이 점점 장성해 지자,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말한 것이 다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그래서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다(3:19,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벡에서 블레셋에게 대패하고 언약궤를 빼앗긴 20년 후에, 사무엘은 본격적으로 사사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을 소집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하였고, 미스바에서 블레셋에 크게 이겨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였다.

사울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인들을 뒤에서 공격한 아말렉과 전쟁을 벌일 때 사로잡은 것은 왕족부터 가축까지 모두 멸망시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자 사무엘에게 들었다. 하지만 명예욕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아말렉왕인 아각을 포로로 사로잡고, 좋은 가축은 따로 남겨두었다. 이를 안 사무엘 예언자가 꾸짖자, 회개는 하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그랬다면서 변명을 하였다. 결국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사를 드린다는 명분으로 이새를 찾아가서는 여덟 아들들을 불러내서 살펴보다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었다. 별로 주목받지도 못한 막내아들을 왕으로 기름 부은 이유는 사무엘이 이새의 큰 아들의 잘생긴 외모의 유혹을 받자,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마음가짐을 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엘리야(Elijah)는 ‘여호와는 하나님’ 일는 뜻이다. 엘리야(Elijah)는 구약성서 열왕기상에 나오는 하나님의 예언자로 구약성서에서 모세, 사무엘 등과 함께 위대한 예언자로 꼽힌다. 이스라엘의 예언자 중 가장 무서웠던 예언자. 북왕국 아합왕(B.C. 876-854)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걸쳐 사역하였다. 디셉 사람(왕상17:1). 아합왕에게 예언하기를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 하고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을 때 여호와가 가마귀를 시켜 조석 식물을 날라다 주게 했다(왕상17:1-7) 사르밧과부집에 유숙하는 중에 한줌의 보리가루와 적은 기름으로 여러 날을 먹었어도 없어지지 않게 하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려 주었다(왕상17:8-24). 아합왕 때에 왕과 백성이 바알우상과 아세라우상을 숭배함으로 견책하고 아합왕에게 참신과 거짓 신을 가려내자 하여 바알선지 4백명과 아세라의 선지 4백5십명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 재물을 삼고 각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함을 보자하여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이 정오가 지나도록 외쳤으나 응답이 없고 엘리야가 여호와한테 부르짖을 때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즉시 백성들을 시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가 모두 죽였다(왕상18:19-40). 왕후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하므로 주의 천사가 어루만지고 식물을 주고 호렙 산굴에 있을 때는 여호와가 강한 바람과 지진과 작은 소리의 세 가지로 보이시고 명령하시기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왕이 되게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대신 선지자가 되게하라 하셨다(왕상19:1-6). 농부 엘리사가 경작하고 있을 때 자기 겉옷을 던져 따라오게 하였다(왕상19:19-21). 아합이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뺏었을 때 왕 앞에 나타나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으리라 하였다(왕상21:17-19). 이스라엘왕 아하시야가 사자 50명씩 두 번 보내어 오라 하는 것을 천화로 사루게 하고 세 번째에야 가서 왕이 죽을 것을 예언했다 (왕하1:9-16). 승천하게 되어 엘리사에게 세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였으나 떠나지 않으므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니 당신의 영감을 배나 원한다 하므로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성취하리라 하고 겉옷을 떨어 뜨리고 홀연히 불 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왕하2:1-11). 그의 심정과 재능이 세례 요한과 비슷하다 하였다(눅1:17). 예수님이 변화하실 때에 모세와 같이 나타나서 주님과 말씀하셨다(마17:3). 야고보는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신다고 엘리야을 비유로 권면하였다(약5:17). 엘리야는 험상한 모습과 탈속한 옷차림, 비호같이 빠른 걸음, 기근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건장한 모습, 굴에서도 살 수 있는 억센 습관이 그의 특색이었다. 여호와 신의 예배에 절대적인 선지자였고 국가 운명에 대하여 예민한 통찰과 염려를 한 애국적인 인물이며 구약 선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의 모습이 변했을 때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별세하게 될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엘리사(Elisha)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뜻이다. 아벨므홀라인 사밧의 아들로 소12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지나 가다가 겉옷을 벗어던지며 부르니 농구를 불살라 소한 겨리를 잡아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가 제자가 되었다(왕상19:16-21). 8년 후 엘리야가 승천하려 할 때에 세 번 이나 작별 인사를 하여도 듣지 않고 끝까지 따르매 "네 요구가 무엇이냐"고 물은즉 당신의 영감을 배나 달라고 구하여 받아 가지고 또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어가지고 돌아와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였다.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건너왔다(왕하2:13-14). 불결한 몸에 소금을 넣어 음료수를 만들었다(왕하2:20). 벧엘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할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었다(왕하2:23-24). 유대와 에돔이 동맹하여 모압왕과 싸울 때 물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다(왕하3:20).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게 하였다(왕하4:7). 사렙지방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하고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렸다(왕하4:17,35). 우물물의 독을 제거 하였다(왕하4:41). 바알살리사에서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고 남았다(왕하4:40-44). )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다(왕하5:24 눅4:27). 자기 종 게하시에게 문둥병을 주었다(왕하5:27).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다(왕하6:6). 자기 사환의 눈을 밝게 하여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호위한 것을 보여 주었다(왕하6:17).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하여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그 눈을 다시 밝게 하여 사마리아 성중에 있는 것을 보게 하였다(왕하6:18-20). 엘리사가 죽은 다음 해에 어떤 사람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놓았더니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왕하13:2-21). 아람군사가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물가가 폭동하여 배가 고파서 자식을 잡아먹는 자가 생겼다(왕하6:24-29). 그가 엘리야를 따른 것은 베드로와 비슷하고 이적을 많이 행한 것은 예수님의 비교할 수 있다.

이사야(Esaiah)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이다. 귀족 출신인 아모스의 아들이며 4대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자이다. 아내와 두 아들로 더불어 예루살렘에 거하는 일생동안 험한 베옷을 입고 B.C. 759년부터 60년간 곧 유대국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4대에 걸쳐 예언하 였다(사1:1). 그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이 없고 다만 전설에 의하면 므낫세 왕 때 톱으로 켜서 죽였다 한다(히11:37). 그는 이사야서 외에 웃시야왕과 히스기야왕과 히스기야왕의 전기를 썼다 하나 전하여지지 않았다. 이사야서는 그 문체의 아름다움과 복음주의로 예수에 대한 예언이 가장 많이 응함은 다른 선지서가 따르지 못할 것이다(마3:3). 이사야1:1-12: 은 유대에 대한 예언, 13:-23:은 열국에 대한 예언, 24:-39:은 히스기 야 왕의 일과 포로당한 일과 메시야에 대한 예언, 40:-66:은 포로 당함과 메시야의 구원의 법을 예언하였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멀다.’는 뜻이다. 베냐민 땅 아나돗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4대 선지중의 한 사람이다 유대왕 요 시아 13년부터 시드기야왕 11년까지 42년간(B.C. 628-586)의 선지자이다(렘1:1-3). 그 는 정렬적인 애국지사로서 백성들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국가와 민족을 좀먹는 행동을 일삼는 관민을 볼때에 통분하여 크게 책망하나 목이 굳은 민중은 듣지 않고 도리어 원망하고 가두고 심지어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렘36:19). 유대왕 여호와긴 4년에 여호가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 책에 이르신 말씀을 기록하라 하시므로 그대로 기록하여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고 또 왕 앞에서 낭독하매 여호와김이 낭독하는 데로 베어 화로에 던져 태웠다(렘36:1-23). 여호와가 에례미야에게 명하사 다른 두루마리에 이럼 말을 다시 그대로 기록 하고 여호 와김왕에 대하여는 바벨론왕이 이땅을 멀리하라 라고 예언하라 하시매 그대로 행하였다(렘36:27-32). 그 후에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라 권고하자 잡아 토굴에 가두었다(렘39:13-16) 그 후 다시 백성의 평안은 구하지 않고 군사와 백성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물 없는 진흙구덩이에 던져 넣은 것을 구스사람 에비멜렉이 왕에게 청하여 끌어내고 시드기야왕이 비밀히 와서 다시 물으매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면 살고 항복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대답하였다(렘38:7-13, 38:16-18).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2년 만에 함락시키고 왕 을 사로잡아 그 목전에서 그 아들들과 귀인들을 죽이고 왕의 눈을 빼고 바벨론으로 옮겼다(렘 39:1-9).

에스겔(Ezekiel)은 ‘하나님이 강하게 함’ 이라는 뜻이다. 부시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제사장이며 4대선지중의 한 사람으로 유대왕 여호야긴과 같이 포로가 되어 갈대아 땅 그발 하수가에 거주하는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다(겔1:1-3). 그 글에서 그의 비범한 인물 됨을 발견할 수 있고 기재를 나타냈으며 곧 목이 곧 고 마음이 강팍한 그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함을 담대히 공격한 기록에서 대 선지로서 적임자임을 보여 주었고 종신토록(20년간) 선지의 직무 에 진력한 것은 일대 특색이다. 예레미야선지는 정신적 종교가임에 반하여 에스겔은 의식적, 형식적 방면에 중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예언의 요지는 예루살렘의 망할 것과 장래의 구원으로 본국이 회복될 것으로 포 로된 동포를 위로 하였다. 그의 죽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바벨론에서 같은 지도자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이락의 수도 바그다드 근처의 한 건물을 가리켜 에스겔의 분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니엘(Daniel)은 ‘하나님이 나의 재판장이심’이라는 뜻이다. 다윗의 둘째 아들, 가멜 여자 아비가일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대상 3:1),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그 나이가 어리고 용모가 아름답고 머리가 영특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시동으로 선발되어 3년간 갈대아 인의 학문과 방언을 배웠으나 왕의 주는 포도주나 육식으로 신앙을 더럽히지 않았다(단 1:3-16). 느부갓네살왕의 잊은 꿈을 알려주고 해몽까지 하였고(단 2:) 두 번째 꿈을 해석하였다(단 4:). 그 후 벨사살 왕의 연회장 벽에 사람의 손이 나타나 글자 쓴 것을 읽어주고 그 뜻을 해석한 후 제3치리자가 됨(단 5:). 이것을 시기한120방백과 치리자 2인이 그를 모략하고자 다리오 왕외에 타인이나 타 신에게 경배하는 자는 모두 처벌한다는 명을 내렸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 유대의 젊은이들이 이 명을 어긴 죄로 사자굴과 풀무 불속에 던짐을 받았으나 주의 사자가 구원해 줌으로써 왕이 하나님 찬송을 드렸다. 포로 되었다가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이마다의 후손(스 8:2)이며 느헤미야의 권면을 받아 맹약 에 인친 자이다(느 10:6).

주 하나님 아버지! 구약성경의 12대인물의 활동사항을 살펴보게 하시고 저희를 통해 우리게 주어진 은사와 소명을 알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신약성경 12대인물(新約聖經 12代人物)

세례자 요하난(洗禮者 - , 히브리어: יוחנן המטביל, 그리스어: Ιωάννης ο Βαπτιστής, 영어: John the Baptist, 프랑스어: Jean-Baptiste, 독일어: Johannes der Täufer, 이탈리아어: San Giovanni Battista)은 기원전 1세기 말에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주로 묘사하는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자이자 예수가 세상에 올 것을 예고한 예언자이다. 신약성서의 복음서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역사서 유대 고대사는 요한에 대해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복음서는 예수가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을 예수가 세상에 올 것을 소개하기 위해 보냄 받은 예언자로 묘사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3주일에 마가복음서에 기록된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읽는다. 그의 설교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예수는 약속된 메시아이며, 그의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속죄양이다(요한 1:29). 메시아는 이제 곧 준엄한 심판을 인류에게 베풀 것이다.(눅 3:9)

만다야교도들은 세례자 요한을 최후의 예언자로 여긴다. 만다야교도들은 그가 예수를 세례 해 주었다는 데 동의하지만 예수를 선지자로 받아들이기는 거절한다. 그들에게는 세례자 요한이 유일한 메시아이다. 그래서 역사비평을 성서해석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성서학자들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를 초기교회가 만다야교 신자들과 누가 메시아이며, 예언자인가에 대한 논쟁을 한 역사적 배경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예수(히브리어: מָשִׁיהַ ,יהושוע/יושוע 예슈아/예호슈아, 마쉬아흐, 그리스어: Ίησους, Χριστός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라틴어: Jesus Christus 예수스 크리스투스, 음역어: 야소(耶蘇), 기원전 약 7~2년 ~ 기원후 약 26~36년) 또는 나사렛의 예수, 이에수스는 히브리어 여호수아(히브리어: יהושוע, Jehoshua) 혹은 예수아(히브리어: יושוע, Jes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말이다. 여호수아(Jehoshua)의 어원은 접두어 여(Je-) (히브리어: יהוה, JHVH/YHWH:Jahveh 야훼, 하나님)와 호세아(히브리어: הושע, hoshea, 구원, 구세를 의미)를 덧붙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몸인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에 따라 예수를 동정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강생한 하나님(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완전한 사람, 완전한 하나님이라 여긴다. 흔히 '메시아'를 옮긴 '그리스도'를 붙여 예수 그리스도라 부른다.

예수께서는 초기에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모이자,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산 위에서 이들에게 설교하였다. 이 산은 갈릴리아 호수 북쪽 타브가와 가파르나움(가버나움) 사이에 있는 한 야산이었다고 전해져 온다. 산상수훈, 팔복, 주기도문입니다. 이를 담은 내용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설교 내용은 마태복음 5:3-12, 즉 팔복 부분으로,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저자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으로 여겨지는데, 모두 유대 사람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도 복음서는 종종 예수에 관한 전승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예수는 에아사(Easa)라는 이름으로 힌두교 성전에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칼리 유가가 삼천 살이 되던 때에 후나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서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힌두교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에아사 마시하(Easa Maseeha:예수 메시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힌두교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은 다양하다. International Society for Krishna Consciousness (ISKCON)는 예수를 크리슈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서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여긴다. Contemporary Sant Mat movements는 예수를 Satguru로 여긴다. Ramakrishna는 예수를 신이 육화된 것으로 여긴다. Swami Vivekananda는 예수를 찬미하고, 그를 힘의 원천과 완벽함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히브리어: יעקב, 그리스어: Ιάκωβος, 라틴어: Iacobus, ? - 44년)는 기독교의 사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고, 사도 요한과 형제 관계이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예수의 동생 야고보)도 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히브리어: יעקב, 그리스어: Ιάκωβος, 라틴어: Iacobus, ? 62년)는 사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이다. 또 다른 사도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동명이인이다. '야고보서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혹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디아스포라(해외거주 유대인)에게 쓴 편지이다. 85년에서 90년 사이에 쓰여 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저자는 믿음을 강조한다.

마태와 마가에 나온 다대오 대신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사도로 기록한다. 이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서 각각 언급되고, 사도행전에서도 언급되는 인물이다.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 바돌로메,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배신자가 된 가룟 유다이다.

베드로(고대 그리스어: Πέτρος, 라틴어: Petrus 페트루스, 이탈리아어: Pietro 피에트로, ? ~ 64년)는 그리스도교의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신약성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베드로는 요나 또는 요한의 아들로서 갈릴리아 지방 베세대이다 마을 태생이다. 사도 안드레와는 형제지간이다. 원래 이름은 시몬(Simon) 이었으나, 예수가 그에게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 케파(כיפא, kefa)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이를 소리 나는 대로 고대 그리스어 Κηφας(kephas)로 적고, 낱말 뜻을 고대 그리스어 페트로스(돌, 석石)로 풀이한 것이다.

베드로의 행적은 신약성경에 있는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간, 초기교회 문헌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베드로는 예수의 부름을 받고 따라나선 첫 번째 제자이다. 그리고 예수와 같이 동행하였으며, 그로부터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새 이름도 받았다. 베드로는 예수에 의해 뽑힌 첫 번째 제자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와 세베대의 두 아들인 대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같이 어부로 살았었다.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의 죽음으로 낙심한 베드로가 다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어부 일을 하다가 부활한 예수의 지시에 따라 그물을 던져 물고기 153마리를 잡은 일화가 나온다.

4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열두 사도의 목록에서 베드로는 항상 맨 처음으로 언급된다. 또한, 베드로는 대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더불어 열두 사도 안에서도 특별히 예수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은 애제자로 언급된다. 한 예로, 예수의 변모 때 스승인 예수가 특별히 산으로 따로 데리고 간 제자는 베드로와 대야고보, 요한이었다. 베드로는 예수한테 공개적으로 그를 메시아로 생각한다는 자신의 강한 믿음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복음서에는 또한 베드로가 전체 사도들을 대표하는 대변인 내지는 사도들 가운데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는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다른 제자 한 사람을 대동하였다. 베드로는 무덤으로 먼저 들어가 과연 무덤 안에 있던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예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누가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가 부활하였다는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였지만, 베드로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들은 모두 믿지 않았다. 베드로는 홀로 무덤으로 달려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정말 예수의 시신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요한복음서의 마지막 장에 보면,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 앞에 나타나 그와 함께 아침식사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식사를 다 마친 후, 예수는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거듭 물었다. 베드로는 세 번 모두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들을 잘 돌보라고 당부하였다. 신학자들은 이 장면을 베드로가 예수로부터 교회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해석한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마태의 기쁜 소식을 쓴 저자로 인식되고 있다. 성공회에서 종교개혁이전의 신앙전통을 존중하여, 마태를 수호성인으로 기념한다. 상징물은 책· 창 도끼· 날개 달린 사람이며, 은행가· 회계원· 세금 징수원· 부기원· 금전출납원의 수호성인이다. 흔히 어린 천사를 옆에 두고 복음서를 저술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태는 갈릴리 태생으로, 마가복음서 2장 14절, 누가복음서 5장 27절의 두 군데서 그를 레위(Levi)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성명은 ‘레위 마태’일 것으로 추측된다. 레위 지파의 후손인 알패오의 아들로서, 처음에는 가버나움에서 로마 제국을 위해 같은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걷는 세리로 일하였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특별히 강했던 그는 선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창녀와 죄인과 같이 천대받는 부류였던 세리가 되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걷어 들여 모으기에 급급했던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어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는 유대를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동방으로 갔으며,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전승에 의하면 페르시아 지역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에티오피아로부터 페스툼으로, 다시 10세기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로 옮겨졌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교부들에 의해 세리 마태를 마태복음서의 저자로 믿어왔지만, 성경학자들은 마태복음서의 저자를 헬라어 사용이 가능하고, 율법에 대해 잘 아는 익명의 유대 기독교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빌립 사도는 1세기 중반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의 12제자의 한 사람으로 『요한복음』 1장 35~51절, 12장 21절에 의하면, 베드로나 안드레와 마찬가지로, 갈릴리 지방의 벳새다 출신의 유대인으로, 원래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고 생각된다. ‘말(馬)을 사랑하는 자’란 뜻이다. 나다나엘을 주님께로 인도했다(요 1:45-49).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보듯이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품을 가졌다(요 6:5).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하고(고전 15:5)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다(행 1:13). 말년에 소아시아의 브루기아에서 사역하다 히에라볼리스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Eusebius).

도마는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하나이다. '의심하는 토머스(doubting Thomas)'라는 표현은 제자 중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한 사도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요한복음 20장에 따르면 도마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상처를 보기 전까지는 예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부활한 예수가 형벌에서 생긴 몸의 상처를 보여주자 도마는 크게 놀라 소리쳤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이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 도마는 의심 많은 자라기보다는 예수가 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성서가 도마라는 사도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그가 디두모('쌍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졌다는 것뿐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멀리 인도에까지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아마 그는 마드라스 부근에서 순교했을 것이다. 인도의 아주 오래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마르 도마(Mar Thoma, '도마 님')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 명칭이 후대의 도마라는 복음 전도자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 믿을 만한 전설은 그가 파르티아(지금의 이란)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의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흔히 사도 요한으로 불린다.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사도 가운데 요한만이 예수를 끝까지 따랐다. 《요한의 복음서》과 3 서한(요한 I·II·III서),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알려졌다. 갈릴리아의 어부 세베대와 살로메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사도 야고보와는 형제로, 성격이 격하여서 '천둥의 아들'로도 불리었다. 당초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뒤에 예수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예수의 중요한 일에 입회할 것을 허락받았다.

바울은 예수와 거의 같은 무렵,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수도 다르소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율법에 열심인 바리사이파의 일원으로서 성장하고, 유대인이면서 율법을 소홀히 하는 그리스도 교도를 박해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심을 체험하고 그 이후 특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교의 전도자로서 활동했다. 율법문제를 둘러싸고 안디옥교회 내에서 다른 유대인과 충돌했기 때문에, 독립해서 주로 에게해 연안 일대에 복음을 전하고, 각지에 교회를 세웠다.

『신약성서』 중에 그가 썼다는 편지가 13개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확실히 그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및 『빌레몬서』의 합계 7이다. 『사도행전』의 후반은 바울을 중심으로 쓰여 있는데, 객관성을 지향한 서술은 아니며 『신약성서』 이외에는 충분한 자료가 없다. 신앙에 의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신앙이해는 후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편지가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도 적지 않다. 신도 중에 행하여진 그의 전도활동도 그리스도 교회에서 모범이 되었다. 한편, 그에 의해서 예수의 운동은 관념화되고, 변질했다는 비판도 있다.

마가는 4대 복음서 중 하나(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를 썼기 때문에 중요하다. 사도행전에서 그는 전도사인 바나바의 사촌으로 나온다. 마가는 바나바와 사도 바울을 따라 첫 전도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바울의 심기를 건드려 두 번째 전도 여행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바나바와 마가는 바울과 별개로 키프로스 섬에 가서 전도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바울이 로마에서 투옥되자 바울과 접촉해 다시 그의 신임을 얻었다(빌레몬서 24, 골로새서 4:10).

마가는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베드로와도 잘 알았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 마가'(베드로전서 5:13)라고 불렀다. '내 아들'이라는 말은 물론 애정의 표현이겠지만, 베드로가 마가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영적인 '아들'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가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이것이 전부다. 마가와 베드로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옛 전설에 따르면 마가는 베드로의 기억을 바탕으로 마가복음을 썼다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였고 중대한 사건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마가는 베드로가 기억하는 예수를 충실하게 기록했을 것이다.

누가는 4대 복음서의 하나를 썼는데, 사도행전의 저자라는 추측도 있다. 누가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사도 바울과 함께 여행했고 바울이 그를 '사랑받는 의사 누가'(골로새서 4:14)라고 말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개종자였다고 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유대 사원에 관한 관심이 큰 것으로 미루어보면, 누가는 아마 신을 경외하는 자, 즉 유대교의 관습을 따르는 개종자였을 것이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과 비슷하지만, 다른 문헌에는 없는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 이름은 '신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므로 그것이 실존하는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누가가 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위해 책을 쓴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로마인들의 미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세 복음서와 달리) 예수가 로마 병사들이 예수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워주며 심한 조롱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디모데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란 뜻이다. 사도 바울이 아덴 선교지로 출발할 때 그는 실라와 더불어 마게도냐에서 따로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으며(행 17:1-15), 다시 바울의 지시에 따라 데살로니가에서 독립적으로 사역하였다(살전 3:1-2). 그 후 바울과 고린도에서 합류하여 계속 바울에게 수종들었다(행 18:5; 살후 1:1). 아무튼 전승에는 디모데가 바울 순교 이후(A.D. 67년경),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때 64세의 나이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90년경, Eusebius, Nicephorus).

주 하나님 아버지! 신약성경 12대인물들을 본 받아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구원, 가정구원, 민족구원, 인류구원을 위하여 예수 십자가와 부활 복음 선교를 행하며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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