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8강 I. 사랑의 호소]Ⓒ 4:17-20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5-05 20:39
조회
113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바울은 한때 자기를 열렬하게 사랑했던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제는 그를 원수처럼 여기게 된 올바른 이유에 대해, 【17】[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율법주의자인 거짓 교사들이 “너희에게 열심히 영향을 끼치며”(AV), “너희를 진실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나 좋은 뜻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M. Henry)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히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는 것이다(롬 16:18. cf. 고후 11:2).

율법주의자들의 속셈을 간파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라고 경계하고 있다.

[너희를 이간 붙여]가 무엇 또는 누구로부터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 붙인다는 것인지 문제가 된다. 이 점에 대해 (1) 바울 및 그의 동역자들이라는 설,➊ (2) 교회라는 설(R. T. Stamm), (3) 바울이라는 설(M. Henry, E. Huxtable), (4) 그리스도라는 설(J. B. Lightfoot), (5) 그리스도의 자유라는 설(Erasmus),➋ (6) 다른 교사들이라는 설(Meyer, Vincent)➌ 등이 있다.

바울이 앞에서 이전의 갈라디아 교인들과의 아름다웠던 관계를 말한 점과 이간 붙이는 목적이 저들 곧 율법주의자들에게 열심을 내게 하려는 것이라는 점으로 보아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가르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은 바울 및 그의 동역자들로부터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하여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배척하게 만들고, 또한 자신들을 열심히 섬기며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열심히 추종케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바울은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라고 책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심이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열심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심의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함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헨리(M. Henry)는 “열심이란 좋은 일을 수행할 때만 훌륭한 것이므로 좋은 일에만 열심을 내도록 하라는 것이고, 좋은 일에 대한 열심은 계속적이고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렌스키(R. C. H. Lenski)도 “바울은 놀라운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면서,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좋은 일에 거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슷하게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는 이가 누구인지를 밝혀야만 한다. 이 점에 대해 (1) 갈라디아 교인들이라는 설(“Vincent”,➍ R. C. H. Lenski, E. D. Burton), (2) 갈라디아 교인들과 바울이라는 설(Zahn),➎ (3) 바울이라는 설(M. Luther, J. B. Lightfoot, 黑崎幸吉) 등이 있다.

앞 구절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유대주의자들의 열심을 말한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교인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의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받는 것과 같은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항상 좋다는 것이다. 또, 사모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좋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편협한 이기주의나 교파주의적 사고로 율법주의자들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복음(1:6, 7의 주석을 보라.)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갈라디아 교인들을 열심히 사모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본심을 다시금 밝혀 준다. 【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한 갈라디아 교인들을 냉대하는 대신에, 어머니와 같은 뜨거운 관심과 사랑으로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른다. 이 호칭은 테크니아 무(τεκνία μου)로서, 요한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데(요 18:33, 요일 2:1, 12, 28, 3;7, 18, 4:4, 5:21), 바울의 경우는 이곳에만 사용한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에 의해 개종한 자들을 가리켜, 영적인 의미에서 “낳았다”라고 말하고 있다(고전 4:15. cf. 딤전 1;2, 살전 2:11). 특히, 본 절은 바울 서신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사랑을 보인 것이다(E. D. Burton). 이러한 사랑의 어조는 노한 목소리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W. Barclay).

믿음의 자녀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염원은,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는 말속에 나타나 있다.

바울의 첫 번째 해산의 수고로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참 형상이 거짓 교사들이 소개한 미신 때문에 파괴되었으므로”(J. Calvin),➏ 바울은 다시금 그들을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산의 수고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형성하기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형성한다는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의어로 사용한다”(J. S. Stewart, H. A. A. Kennedy)➐는 점을 보아, 성령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내재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존재가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J. Calvin), 이것이 바로 중생(새사람)의 체험이며(요 3:3, 7) 영적 교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마음속에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뜻이다(엡 5:18. 참조: 엡 4:13). 이때에 중생한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마이어(Meyer)가 “중생의 경우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겨져 점점 크게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자아가 우리들 속에 거하여 주시는 분에 의해 상실되어 버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의 말대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 참조: 갈 2:20)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즉, 바울이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을 때,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이 “태어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같은 설교자나 설교를 통해서 그 일을 성취하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교역자나 설교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사랑을 편지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은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라고 말한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한 거룩한 사람으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나(cf. 벧후 1:21, 3:15,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의 제한을 의식하였다”(W. Hendriksen). 그래서 그는 [이제라도]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전에 엄하게 책망해 온 아버지 같은 음성을 바꾸어, 어머니다운 음성으로 그들을 위한 염려와 사랑을 직접 들려주고 싶어하였다. 다시 말하면, 엄한 질책과 경고조의 태도를 온유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다.➑

지도자란 바울처럼 원칙을 희생함이 없이,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꿀 줄 알아야만 한다(고전 9:20-22).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때까지도 풀리지 않는,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풀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4:12-20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떠나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의 관습을 따라 지냈던 것처럼, 그들도 현재의 율법의 속박에서 자유를 누리고 전과 같이 자신에게 호의로 대해 달라고 부탁한다.

전에 바울이 병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를 경멸하고 배척하는 대신에 천사나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면서 그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그들은 복음을 전해 준 바울을 위해서라면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로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의 그들은 그 복을 모두 상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한 바울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율법주의자들의 속셈을 일깨워 주고 있다. 즉,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히 아첨하면서, 바울과 바울의 동료들에게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 붙여, 그들과 그들의 잘못된 교리를 열심히 추종하게끔 하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이기주의나 교파주의적 사고로 율법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의 대상이 되든지 좋다는 입장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상실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 마음속에 다시금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한다.

끝으로, 바울은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제까지의 책망하던 엄한 아버지의 음성을 바꾸어 염려와 사랑으로 가득찬 어머니다운 음성을 들려주고 싶으며, 또한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풀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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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M. Luther, J. Calvin, J. A. Bengel, “Olshausen”(in 이상근), R. C. H. Lenski, W. Hendriksen, 黑崎幸吉.
2) in 이상근.
3) 상동.
4) 상동.
5) in 黑崎幸吉.
6) 참조: 黑崎幸吉은 “첫 번째 해산의 수고는 백지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이는 갈라디아 신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7) J. S. Stewart, op. cit., p. 156. H. A. A. Kennedy, op. cit., p. 123.
8) M. Luther, J. Calvin, J. B. Lightfoot, W. Hendriksen, R. C. H. Lenski, E. Huxtable,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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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96-202.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전체 1

  • 2023-05-05 20:41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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