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9강 J. 육체의 자손과 약속의 자손Ⓐ[4:21-26]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5-12 21:13
조회
112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과 약속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 아브라함의 두 아내인 하갈과 사라, 그리고 두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주요한 견해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로운 언약에 관련된 바울의 구약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S. J. Mikolaski).

한 마디로 말해,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영적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다”(W. Hendriksen).

구약 성경에 대한 비유적 해석은, 당시의 랍비들이 즐겨 썼던 해석법의 하나로서,➊ “일반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M. Luther).

먼저 바울은 율법에 근거하여 율법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21】[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여기서 [내게 말하라]란 바울이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의 호소(4:12-20)를 듣고도 여전히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 즉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동시에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3:2의 주석을 보라.)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라고 말한다. 전자의 율법은 관사 없이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고, 여기의 율법은 관사를 붙여 성서 또는 모세 오경을 뜻한다(E. Huxtable, 黑崎幸吉).

[듣지 못하였느냐]에 대해 루터(M. Luther)는 “듣고 싶지 않느냐?”로 해석하고, 헨리(M. Henry)는 “듣고 있지 않느냐?”로 해석하는데,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실제로 유대인 회당이나(고후 3:14-15, 행 15:21),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서 모세 오경과 그 밖의 구약 성경을 읽는 관습이 있었다”(E. Huxtable).

결국 바울은 항상 율법을 들으면서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율법주의를 고수하는 자들을 율법에 근거하여 논박하는 것이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창세기 15장과 21장 (70인역 성서)의 이야기를 요약하여, 【22】[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계집종➋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창 16:15-16)과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 있었다(창 21:1-3). “출생으로만 따진다면, 이삭의 후예인 유대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예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이며 중대한 영적인 차이가 있다”(W. Hendriksen).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내에게서 두 가지 언약을 상징하며, 그리고 두 아들에게서 두 종류의 백성을 표상하고 있다(J. Calvin). 다시 말하면, 율법의 의를 추구하며 사는 자들과 믿음의 의를 따라 사는 자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23】[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대조하여 말하는 것이다.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란 이스마엘의 출생이 단순히 아브라함과 하갈의 육체관계에 의한 결과일 뿐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지 못한 사라의 경솔한 생각에 의한 결과임(창 16:2)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육체를 따라 났고]란 말을 자연적 출생으로만 보는 칼빈(J. Calvin), 헨리(M. Henry), 데이톤(W. T. Dayton), 버어톤(E. D. Burton), 스탐(R. T. Stamm), 훅스타블(E. Huxtable), 黑崎幸吉 등은 보다 더 중요한 사실, 즉 사라의 죄 된 생각에 의한 출생이란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란 이삭의 출생이 단순히 아브라함과 사라의 육체적 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그 부부는 신체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창 16:1, 17:17-18, 18: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므로, 그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에 의해 이삭을 낳은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2)라고 하였다.

바울은 23절에 대해,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비유니’](ἐστιν ἀλληγορούμενα)란 아브라함의 집에 관한 이야기는 비유된 것이라는 뜻이다. 쇼데(G. H. Schodde)에 의하면, 비유는 글자 자체가 의미하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을 말한다는 뜻인 ἄλλο ἀγορεύειν에서 파생된 것➌으로 풍유 또는 우화적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다.➍

바울이 아브라함의 두 아내와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풍유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스탐(R. T. Stamm)은 “창세기의 이야기가 비역사적 신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문자적 역사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헨리(M. Henry) 역시 “바울은 이 사실의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 이외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숨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다. 즉, 아브라함의 두 아내인 사라와 하갈을 신약과 구약 곧 복음과 율법에 비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라는 복음의 약속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반면에, 하갈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바울은 먼저 율법의 언약에 대해,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고 말한다. 우리를 감옥에 가두고(3:23), 또한 종노릇하게 만드는 율법(4:9)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가(하갈)는 주인에게 예속된 종이었고, 그녀가 낳은 이스마엘 역시 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자는 구원을 얻는 대신에 율법의 종노릇하는 자(4:9의 주석을 보라.) 곧 하가(하갈)라 할 수 있다.

하가에 대해 바울은, 【25】[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라고 한다.

이 구절에 하가란 명칭이 있는 사본들➎과 없는 사본들➏이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설이 대두되어 왔다. 즉, [이 하가(라는 말)는 아라비아(말)에 있는 시내산으로]라고 해석하는 설(H. Alford, E. D. Burton, W. Sanday)과 “이 시내산은 아라비아에 있으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라고 해석하는 설➐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자를 취하고 있지만, 오히려 전자를 취하는 것이 앞 구절(24절)과 무리 없이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이 하가······시내산으로]란 율법의 종노릇하는 자들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중심지로서 율법의 종노릇하는 자들을 대표한다는 것이다(참조: 마 23:37-38).

하갈에 대해 설명해 온 바울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사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가가 지금 있는 예루살렘인 것과 달리,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다(R. T. Stamm, 이상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란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 11:16, 12:22), 새 예루살렘(계 21:2), 하나님의 성(계 3:12)이라고도 하는데, “영적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이다”(M. Luther, S. J. Mikolaski).

마이어(H. A. W. Meyer)는 이 예루살렘을 가리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이전에는 그의 교회요, 이후에는 영광의 왕국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黑崎幸吉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실현되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영적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으로(히 12:22) 경계가 없으며(W. T. Dayton), 그리스도께서 통치하고 계신다(E. Huxtable). 따라서 이 예루살렘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하는 여인인 사라는 [곧 우리 어머니]인 것이다. 이 말은 천국 도성의 시민권을 가진 믿는 자들(빌 3:20)의 공동체인 교회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인인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자유인인 이삭을 낳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을 믿어 자유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라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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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S. J. Mikolaski, W. Barclay, 黑崎幸吉, 이상근.
2) 파이디스케스(παιδίσκης)는 고전 그리스어에서는 종이든 자유인이든 소녀를 뜻했고, 70인 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종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항상 하녀를 의미하였다(E. Huxtable).
3) G. H. Schodde, “Allegory” in ISBE, Vol. I, pp. 97-98.
4) E. D. Burton, W. Hendriksen, M. C. Tenney, R. T. Stamm, W. T. Dayton, J. Dow, 黑崎幸吉, 이상근.
5) “알렉산드리아 사본, 바티칸 사본, 바질 사본, 베자 사본, 모스코 사본, 레기우스 사본, 플피리안 사본”(in 이상근).
6) “시내산 사본, 에브라임 사본, 오전시스 사본, 보엘네리안 사본”(in 이상근).
7) “Howson, Bentley, Lachmann, Tregelles, De Weete, Tischendorf”(in E. Huxtable), “Zahn”(in 黑崎幸吉), J. B. Lightfoot. 黑崎幸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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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02-207.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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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2 21:14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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