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6강 D. 사랑의 종노릇을 위한 자유[5:13-15]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7-11 16:15
조회
96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율법의 멍에에 붙들어 매어 놓으려고 하는 거짓 교사들과 대조적으로,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강조하여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갈라디아인들을 구원의 자리로 부르신 것은 전적으로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5:1의 주석을 보라). 그러나 그 자유 자체가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자유를 선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자유를 어떻게 누리느냐 하는 과제가 남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탐(R. T. Stamm)은 “그리스도교의 자유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인간의 과제”라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물인 자유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을 가리켜,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라고 한다.

[육체](사룩스, σάρξ)는 2:16의 주석을 보라.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는 “자유를 인간이 해야만 할 일을 행하도록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의욕으로 간주하는 대신에, 죄를 지을 권한으로 해석하거나 인간의 악한 마음이 행하고 싶어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는 특권으로 해석하여”(W. Hendriksen) 범죄할 기회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이어서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누리는 길에 대해, [오직 ‘사랑’(아가페스, ἀγάπης: 5:6의 주석을 보라.)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한다. 칼빈(J. Calvin)은 “방종과 무분별한 남용에서 자유를 지키는 것은 사랑에 의해 통제됨으로써만 가능하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호간에 사랑으로 종노릇을 함으로써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종노릇이란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셔서(빌 2:7), 모든 인간을 섬기시고 또한 그 목숨을 모든 인간의 대속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마 20:28, 막 10:45)께 대한 모방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에서, 인간의 위대성의 척도는 부나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빌리면,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마 23:11), 첫째가 되려고 하는 자는 뭇사람의 끝이 되고,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막 9:35).

이와 같이 사랑의 종노릇을 감당해 나갈 때, 우리는 온 율법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고 하는 것이다. 헬라어 본문에는 “왜냐하면 모든 율법은(ὁ γὰρ πάς νόμος)······이루었나니”로 기록되어 있다.

[온 율법]에 대해 렌스키(R. C. H. Lenski)는 “의식적인 성격의 요구 같은 것을 배제한 율법”이라고 하고, 훅스타블(E. Huxtable)은 “의식 체계 그리고 도덕적 행동을 규정하는 문자적 율법인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보다 높은 영적인 율법”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율법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라는 말씀에서도 나타난다.

바울이 [온 율법]을 성취하는 방도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배제하고, “인륜 부분만 다룬 것”(M. Henry, E. Huxtable, 이상근)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전제한 것이다(요일 4:20, 21).❶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이것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8, 10)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이웃 사랑보다 우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에 대해, 유대인들은 자기의 동족에 국한시켰고, 그 이외의 원수나 이방인들은 미워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원수까지도 포함시키셨다(마 5:43-48, 눅 10:25-37). 믿음으로 자유를 얻은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해야 할 이웃은, 계급과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라는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곧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인 것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구체적으로 가까운 곳에서부터 행해져야 한다. 즉, 우리의 손길이 닿는 곳이야말로 이웃 사랑이 행해져야 할 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선물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네 몸 같이 하라]고 권하였다. 스탐(R. T. Stamm) “이웃을 자신보다 덜 사랑하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면 이웃으로 하여금 자신을 이웃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할 때는, 자만도 거짓도 겸손도 아니라, 올바르게 자신을 평가하여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바울은 자연인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유를 얻은 새 생명 곧 그리스도의 영이 내주하신 그리스도인을 의미한 것이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웃 사랑이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자연인으로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은 바 된, 믿는 자로서만 가능하다는 사실(롬 5:5)을 보아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구원의 사랑을 받은 믿는 자들의 사랑이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자기 의의 방도나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이다(5:6의 주석을 보라).

바울은 자신이 13, 14절에서 사랑을 강조한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갈라디아 교회에 실제로 있었던 반목과 분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❷과 실제로 그러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조짐을 보고 미리 막도록 경계하는 것이라는 설❸이 있다.

바울이 가정법을 사용한 것을 보아 후자가 적합하다. 이 점에 대해, 黑崎幸吉은 “거짓 교사의 침입으로 갈라디아 교회에는 분리와 반목이 일어나려고 했다. 만일 이 상태가 악화된다면 마침내는 사나운 짐승들처럼 서로 물고 뜯다가 다 망하고 말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상태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사랑으로써 서로 섬길 것을 가르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개인과 가정, 교회와 국가 그리고 국제적으로 모든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얻은 자유로 서로 종노릇하는 일밖에는 없다.

5:13-15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전적으로 자유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자유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자유를 범죄할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하며,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종노릇이란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셔서 모든 인간을 섬기시고, 또한 대속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모방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위대성의 척도란 사랑의 종노릇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자유로 사랑의 종노릇을 함으로써만 모든 율법을 성취할 수 있으며, 나아가 개인이나 모든 공동체의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Calvin, J. Wesley, R. T. Stamm, R. C. H. Lenski, W. Hendriksen, 黑崎幸吉, 윤성범.
2) J. Calvin, “Findlay, Greijdanus, Ramsay”(in W. Hendriksen), M. Henry, W. Hendriksen, G. S. Duncan, R. T. Stamm, E. D. Burton.
3) J. Wesley, R. C. H. Lenski, F. Rendall, “Ridderbos”(in W. Hendriksen), 黑崎幸吉.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32-237.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갈-엡.JPG



첨부파일 : 갈-엡.JPG
전체 1

  • 2023-07-11 16:17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2.05.23 3745
172 백남신 2024.04.13 29
171 백남신 2024.03.27 36
170 최세창 2023.10.03 126
169 최세창 2023.09.25 91
168 최세창 2023.09.11 99
167 최세창 2023.08.29 98
166 최세창 2023.08.19 107
165 최세창 2023.08.11 117
164 최세창 2023.08.02 98
163 최세창 2023.07.25 94
162 최세창 2023.07.19 104
160 최세창 2023.07.01 98
159 최세창 2023.06.21 112
158 최세창 2023.06.12 101
157 최세창 2023.05.31 102
156 최세창 2023.05.24 103
155 최세창 2023.05.17 114
154 최세창 2023.05.12 112
153 최세창 2023.05.05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