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4강 Ⅴ 맺음말 A. 참 자랑거리[6:11-17]Ⓐ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9-25 18:33
조회
91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이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속셈을 드러내어 일격을 가한 다음에 복음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인생 태도를 밝혀 주고 있다.

서신을 보낼 때에는 대개 제자들에게 대필을 시키는 바울(롬 16:22)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이 서신에서는 【11】[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을 근거 삼아 바울이 서신 전체를 직접 썼다고 주장하는 학자들➊이 있지만, 그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1:2)라고 한 말과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은 대필한 것이거나, 또는 대필하게 한 다음에 “그가 받아쓰게 한 편지임을 밝히기 위해”(R. T. Stamm, J. Dow, W. T. Dayton) 친필로 문안 인사를 하는 형식을 취한 것(롬 16:22, 고전 16:21, 골 4:18, 살후 3:17 등)이라는 점을 미루어, 11절 이하만을 바울이 직접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➋

[이렇게 큰 글자](πηλίκοις······γράμμασιν)에 대해 (1) 긴 내용의 편지라는 설(AV, M. Luther, J. Calvin), (2) 추한 글자라는 설(Chrysostom, Winer),➌ (3) 크게 쓴 글자라는 설➍ 등이 있다.

(1)설은, 바울 서신 중에는 이 서신보다 더 긴 내용의 서신들이 있다는 사실(로마서, 고린도전·후서)을 보아 받아들이기 어렵고; (2)설은, 바울의 학적 수준(행 2:3)을 보아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3)설을 취하는 것이다.

바울이 큰 글자로 쓴 이유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시력이 나빴거나, 쓰는 손이 불편했거나, 글씨 쓰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바클레이(W. Barclay)는 “서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과 펜으로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과 시력이 약해졌거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두통이 있었다는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들은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확실하지 않으며, 따라서 서신의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이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이 그때까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교리를 논박하고,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서도록 책망하거나 권면한 모든 내용을 다시금 강조하기 위하여 직접 큰 글자로 쓴 것이다.

[쓴 것](에그라파, ἔγραψα)은 서신체 부정 과거형으로 수신자의 손에 들어갈 때에서 본 과거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고후 9:3, 엡 6:22, 빌 2:8, 골 4:8, 몬 19:21, 벧전 5:12, 요일 2:14, 5:21 등), 그 뜻은 ‘지금 쓰고 있는 것’(RSV)이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속셈에 대해, 【12】[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라고 하였다.

[육체](2:16의 주석을 보라.) 곧 육적이며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 외양을 보기 좋게 만들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고 외형적인 것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며, 또한 종교적인 내용인 영적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외적인 의식과 규례, 특히 할례 의식에 얽매여 있다. 사실상, 그들의 실제적인 바람은 인간들의 인기와 호의를 얻는 것이며(J. Calvin), ‘육체의 욕심’(5:16의 주석을 보라)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는 속셈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을 전함으로 받게 될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5:11의 주석을 보라). 이 점에 대해, 어드만(C. R. Erdman)은 “어느 시대든지 도당으로서 가장 심하고 열렬한 사람들은 자주 진리에 몸을 바치도록 열심을 내게 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동기와 남보다 뛰어나려는 욕망과 핍박에 대한 공포와 사람들의 호의를 사려는 열심에서 열을 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 받게 하려는 또 다른 속셈에 대해, 【13】[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라고 설명하였다.

[할례 받은 저희]란 “이미 할례를 받은 거짓 교사들과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M. Luther).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할례(2:3의 주석을 보라.)를 받았지만, 실상 그 외의 율법은 준행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구원의 방도로써 할례를 받게 하려는 근본 목적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할례 받은 육체의 상태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헨리(M. Henry)는 “거짓 교사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다음에, 할례 받은 그들의 육체로 자신들의 영광을 취하고, 또 그들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었고, 유대교로 개종하게 하였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였다.”라고 설명하였다.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 하신 말씀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4)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은 짊어지지 않는 무거운 율법이나 교리나 사상의 짐을 남의 머리 위에 얹어 놓고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있다.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비열한 속셈을 공표한 바울은, 이제 복음의 사도로서의 그 자신의 인생 태도를 밝히고 있다. 특히, “그는 육체로 자랑하며 사는 거짓 교사들과 대조하여”(E. D. Burton),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하였다.

그는 당당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라고 공언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속죄의 교리 또는 십자가의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E. Huxtable).

바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고전 1:23),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육적이며 세상적인 것을 자랑하기 때문에, 죄의 짐을 지고 죄인의 모습으로 참혹하게 사형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자랑하려면 자기를 부인케 하시고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순응해야 한다(참조: 요 3:3, 5, 6, 행 9:1-9, 22:6-16, 26:12-18, 고전 9:1, 15:8, 갈 1:15-16, 빌 3:12). 이와 같은 성령의 체험이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하늘의 일에 눈을 뜨게 되고, 세상일을 육안으로가 아니라 영안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살게 되면, 바울과 같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의 믿음을 갖추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오의를 깨닫게 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포하고 있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과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죄와 율법과 죽음의 종인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정도로 타락한 인간의 잔악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오하고도 원대한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바울 자신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설명하였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성취되었으므로,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고전 1:24. 참조: 골 2:15).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믿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까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 8:32)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분을 믿는 자에게 가장 큰 위로(고후 1:5)와 기쁨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골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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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Chrysostom, Zahn”(in 黑崎幸吉), J. Calvin, W. Sanday, J. A. Bengel, H. Alford, M. Henry, R. C. H. Lenski, 윤성범, 박윤선.
2) M. Luther, J. B. Lightfoot, W. Hendriksen, E. D. Burton, R. T. Stamm, O. F. Blackwelder, C. R. Erdman, W. Barclay, W. T. Dayton, F. Rendall, 이상근.
3) in 黑崎幸吉.
4) “Jerome”(in M. Luther), W. Hendriksen, C. R. Erdman, R. C. H. Lenski, W. Barclay,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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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68-273.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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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5 18:35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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