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0강 J. 육체의 자손과 약속의 자손[4:21-31]Ⓑ[4:27-31]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5-17 15:35
조회
114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이어서 바울은 사라의 자손인 그리스도인들이, 하갈의 자손인 율법주의자들보다 더 많이 번성된다는 것을 이사야 54:1(LXX)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27】[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 구절의 본래의 내용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와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아 황폐했던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하여 이전 하나님의 신부였던 시대보다 훨씬 더 크게 번영케 할 것을 예언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 예언을 사라와 하갈,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과 율법의 종노릇하는 유대교인들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고 하는 말은, 90세가 될 때까지 잉태한 경험도, 해산의 고통도 없었던 사라에게(창 17:17) 즐겁게 소리질러 외치라는 뜻이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라고 말한다.

[홀로 사는](에레모스, ἔρημος)은 ‘남편에게 버림받은’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자녀가 없는 사라를 연상시키고, 약속의 자녀를 낳을 어머니에 해당된다(黑崎幸吉). 바로 이 사라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 즉 종으로서 아브라함의 아내가 된 하갈의 자녀보다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의 현실을 볼 때에, 사라의 자녀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율법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까지 사라와 하갈의 비유를 말한 바울은, 이제 그들의 아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을 비교하고 있다.

먼저, 그는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라고 한다.

[형제들아]라는 말은 매우 의미 깊은 표현이다. 한동안 임신하지 못했던 사라의 모든 후손들이 다 한 가족이고, 한 형제이며, 또한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도 형제들이라는 것이다(R. C. H. Lenski, W. Hendriksen).

바울은 갈라디아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놀랄 만한 선언을 하고 있다.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즉,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스마엘처럼 육정에 의해서 난 자가 아니라, 이삭처럼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할 때에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의 약속을 따라 얻어진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좇아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 즉 “아브라함이 예상에 의해 모세의 율법을 복종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으므로, 이삭의 자손들은 그들이 율법을 복종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본을 따랐을 경우에만 약속의 자녀들이라고 하는 주장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R. T. Stamm).

약속의 자녀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인 율법주의자들의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은, 【29】[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말한다.

[육체를 따라]는 항상 [성령을 따라]와 대립되고 있다(갈 5:16). [육체를 따라]라는 표현으로, 바울은 이스마엘의 출생과 양육을 특징짓는다. 즉,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이 언급하는 영적 지위가 없는 무익한 인간 존재라는 것이다(R. T. Stamm).

그와 달리, 바울은 [성령을 따라]라는 표현으로 이삭의 출생과 그의 독특한 지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약속의 아들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인간성의 모형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잠시나마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였다. 이 말은 창세기 21:9에서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창세기 21:9에는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로 되어 있어, 본문의 핍박과는 일치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훅스타블(E. Huxtable)은 “이스마엘이 이삭에게 불친절했던 것이 아니라, 사라가 이스마엘이 자신의 아들과 동등한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질투하여 내쫓았다.”라고 말하지만,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버어톤(E. D. Burton), 스탐(R. T. Stamm), 黑崎幸吉 등의 말대로, 바울은 이스마엘이 장난을 하는 척하면서 이삭에게 활을 쏘았다는 전설에 근거하여 핍박하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핍박은 그 때뿐만 아니라,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말함으로써,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핍박을 받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黑崎幸吉) 동시에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하는 것이다(J. Calvin, E. Huxtable).

오늘날에도 이스마엘의 후예인 율법주의자들은 이삭의 후예인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핍박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핍박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가 아니라, 핍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함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누가는 채찍질을 당하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은 사도들에 대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5:41)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값진 교훈을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고난을 피할 길이 없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고난을 동반하며 사는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고난을 당할 바에야 값진 고난을 당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값진 고난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후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어떤 종류의 핍박자이든 결국은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로 시작하는 것은 인용문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본래의 문장은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창 21:10)로 기록되어 있다. 사라에게서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로 인해 깊이 근심하였다(창 21: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잔인하고 질투심이 많은 사라의 요구를 인가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성경 말씀을 이삭과 이스마엘을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취하는 것이다(R. T. Stamm, E. Huxtable).

[계집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쫓겨난다는 것은 “율법주의자들의 핍박이 영원히 계속되지 못한다”(J. Calvin)는 것과, 그들은 결국 신국에서 쫓겨나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➊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인 이삭과 [더불어 유업을 얻]을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뿐이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 라이트후트(J. B. Lightfoot)가 잘 설명하고 있다. “율법과 복음은 공존할 수 없다. 율법은 복음 앞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아직 교회의 절반은 율법을 고수하고, 율법주의는 더 강렬하게 억압해 오던 당시에 감히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었던 바울의 신념과 예언적 통찰의 심오함은 측량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후에, 다시금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에게 율법 곧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가정 이야기를 해석하여 율법과 약속의 차이를 설명해 온(21-30절)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계집종인 하갈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의 자녀이다. 시내산에 근거된 율법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이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으로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참된 자유인이다. 계집종이 낳은 이스마엘의 후예로서 천국에서 쫓겨난 자가 아니라, 이삭의 후예로서 천국 기업을 이을 자녀이다.

결국 바울에 의하면,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만이 참된 자유인이며, 그 밖의 모든 인간은 다 종노릇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인간은 그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무엇 또는 누구인가의 종으로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력으로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인간이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은 자유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뿐이다(요 8:3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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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M. Luther, M. Henry, J. Dow, W. Barclay,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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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07-212.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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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7 15:36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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