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2강 G. 심는 대로 거둠[6:6-10] Ⓐ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8-29 18:52
조회
98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앞(1-5절)에서 범죄한 형제의 짐을 정신적으로 나누어 지라고 가르친 바울은, 이제는 주로 물질적인 복을 서로 나누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먼저 교역자와 평신도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스탐(R. T. Stamm)은 “[말씀](로곤, λόγον)이란 참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의지, 예수님의 선교 활동과 예수님의 메시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의 의미,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 회개와 믿음으로 인한 천국 시민의 자격 부여, 그리고 성령 안에서 살며 행하는 것 등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복음에 관한 모든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➊

복음을 가르치는 자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교사(롬 12:7, 고전 12:28, 29, 약 3:1)가 아니라, 전문적인 의미에서의 영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이다.➋ 이 점에 대해 헨리(M. Henry)는 “교역의 직분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다. 이 직분은 모든 사람에게 다 개방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그 직분을 맡을 자질을 얻고,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교역자들은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해야 하며(딤전 4:13),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딤후 2:4).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활동한 것을 보면, 그 교회의 교역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즉, “말씀 자체가 경시되었다는 것”(J. Calvin)과 의식주의 생활에 얽매였다는 것이다. 전자는 교역자 자신이 하나님의 앞에서 책임을 질 문제이고, 후자는 교인들이 책임을 질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교역자는 물질에 초연해야 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궁핍 때문에 영적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와 말씀에 전념해야 할 교역자가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업을 갖는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역이란 생 전체를 투자해도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교역자의 물질생활의 문제는 하나님께 바친 교인들의 헌금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고전 9:13-14. 참조: 눅 10:7). 이 점에 대해, 헨리(M. Henry)는 “교역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영적인 것들을 심고, 한편 그들에게서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이 합당한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다.”라고 하였다. 칼빈(J. Calvin), 데이크(F. J. Dake), 라이트후트(J. B. Lightfoot), 바클레이(W. Barclay), 黑崎幸吉도 그와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교역자와 교인들과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란, 교역자는 자기 위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주로 교인들을 양육하고(요 21:15, 16, 17), 교인들은 교역자가 물질생활에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물질적으로 충분한 대접을 하는 것으로 선교의 한 몫을 감당하는 것이다(딤전 5:17-18).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함께 하라]는 코이노네이토(κοινωνείτω로서, ‘고난을 함께 나누다’(벧전 4:13), ‘도덕적 및 영적 교제를 하다’(롬 15:27, 딤전 5:22), ‘물질을 주고받다’(롬 12:13, 빌 4:15) 등의 뜻이다.

그 명사형은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로서, {“파피루스에 쓴 고문서에는 ‘동업자’, ‘생의 동반자’, ‘결혼 계약’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A. T. Robertson). 또한, 이 말은 “공통적인 목적에 있어서 공통적인 관심과 참여가 내포된 개인들 사이의 관계, 노동 또는 고통에 동정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것, 복음의 확장에 있어서의 밀접한 연합”(M. R. Vincent)}(빌 1:5의 주석), ‘헌금 또는 동정’(롬 15:26), ‘기독교인간의 교제’(행 2:42, 갈 2:9, 빌 1:5), ‘그리스도 또는 성령과의 교통’(고후 13:13), ‘주님이나 성령과의 교제’(고전 1:9, 빌 2:1), ‘소유의 나눔 또는 공유’(롬 12:13), ‘협력’(고전 10:16), ‘동참’(빌 3:10)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교역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생의 말씀을 비롯한 영적인 은사와 능력을 교인들과 나누는 것처럼, 교인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물질적인 모든 것을 교역자와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갈라디아 교인들은 교역자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인 물질적인 후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黑崎幸吉은 “선을 행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선을 행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는 자기를 속이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헨리(M. Henry)는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자신들의 교역자들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죄를 그들에게 확신케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강한 특권 의식을 갖는 법이다.

그와 같이 심지 않고 거두려는 인생 태도란 곧 자신을 속이는 짓이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짓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만홀히 여김을 받지]란 뮈크테리제타이(μυκτηρίζεται)로서 ‘코를 치켜 올리다’, ‘경멸하는 마음으로 대하다’, ‘우롱하다’ 등의 뜻이다. 인간은 자신과 남에게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에게 우롱 당하시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속이면서 하나님을 우롱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간으로 하여금 심은 대로 거두도록 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흔히 쓰이는 헬라식 표현이다”(E. D. Burton). 한국의 속담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인생이란 밭에 심은 그대로 거둘 수밖에 없다(마 7:16). 또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이다”(고후 9:6). 이 법칙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은 현실 생활에서의 수확뿐만 아니라, 최후의 심판 때에 받는 상급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엡 6:8, 골 3:25, 고후 5:10).
바울은 더욱 구체적으로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εἰς τὴν σάρκα ἑαυτού)와 [성령을 위하여](εἰς τὸ πνεύμα)를 “자기의 육체의 밭에, 그리고 성령의 밭에”로 이해하는 학자들➌이 있으나, 현재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더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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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E. D. Burton, S. J. Mikolaski, W. Barclay, W. T. Dayton.
2) J. Calvin, M. Henry, C. R. Erdman, R. C. H. Lenski, W. Hendriksen.
3) J. B. Lightfoot, J. A. Bengel, W. T. Dayton, “Meyer, Zahn”(in 이상근), 黑崎幸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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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60-263. .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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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9 18:53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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