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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신비주의자

작성자
노재신
작성일
2016-01-22 08:10
조회
2566
하늘로부터 이 땅에 임하는 징표를 말하면 사람들은 신비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으려 합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란 말이 마치 비 이성적인 행동을 하며 비 현실적인 일에만 집착하는 그 어떤 광신자의 모습으로 생각을 할 것인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신비주의자이어야 합니다.
자연의 신비주의자도 좋고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주의도 좋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비주의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비주의자들의 이야기가 성경이며 성경은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
그 신비로움을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적, 이것은 비현실적인 신비주의자가 아닌 극히 현실적인 신비주의자이며,
비이성적인 신비주의자도 아니며 극히 이성적인 이해와 해석을 따르는 이성적 신비주의자입니다.

------ 겨울, 점심, 경찰서, 커피숍, 그리고 중재자와 나그네 --------

1. 겨울 - 겨울은 4계절 가운데 한 계절입니다. 추운 계절이며 자신을 꽁꽁 감싸는 게절이기도 하여 뭔가 자신의 진심을 감추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겨울은 사람이 모사를 꾸미기에 좋은 계절이며 속이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2. 점심 - 하루 낮시간의 중심입니다. 가장 바쁜 일상의 중심이기도 하고 삶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점심은 가장 간단히 음식을 먹는 때이기도 하여 세상의 일에 분주함과 자신의 일에 쫓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3. 경찰서 - 법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며 국가의 권력을 드러내기도 함과 동시에 공권력은 사회의 양심이기도 합니다.

4. 커피숍 -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바삐움직이는 사람들의 잠깐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까페는 사람의 후각을 통하여 미혹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5. 중재자와 나그네 - 익명성입니다. 중재자란 사람과 사람의 다리를 놓아 주는 가교가 되어주며 그 어떤 일에 있어서 모사자들의 대표가 되기도 합니다. 나그네란 역시 익명성입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가 아닌 여행자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잠시 왔다 가는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있어 잠시 볼일을 보려 들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그 특성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제 이 다섯가지의 표적은 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어떤 하나님의 신비로움이 있을까요?

나그네가 중재자를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중재자의 그 어떤 행동에 매우 화가 나 있었습니다.
중재자는 자신을 찾아 온 나그네를 만나기로 합니다.
그래서 약속을 정하였는데 그 곳은 경찰서 앞이었습니다.

- 세상의 양심을 상징하는 경찰서 앞에서 선 중재자, 그들의 양심은 거대한 세상의 양심을 뛰어넘는 참으로 진실한 양심가일까? 아니면 세상의 양심으로부터 정죄는 받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양심가일까? 그도 아니면 세상의 커다란 경찰서 앞에 서 있는 작고 초라해 보일정도의 한 사람으로써의 비 양심적인 사람일까?

나그네는 중재자를 만났습니다. 중재자는 황급히 나그네를 경찰서 옆 커피숍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커피숍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잠시 동안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중재자는 점심 때임에도 불구하고 왜 커피숍으로 나그네를 데려간 것일까? 자신은 이미 점심을 먹은 후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그네에게 점심을 먹었는 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중재자는 상대방을 배려 할줄 아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일까요? 그도 아니면 나그네는 점심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지 않고 중재자를 찾아온 예의가 없는 자였을까요?

나그네는 점심을 먹지 않았지만 커피숍에 갔습니다. 그리곤 중재자를 만나자 마자 자신의 품에 품고 있었던 칼을 보여 주었습니다. 칼은 양날의 검일수가 있습니다. 좋게 쓰면 요리사의 훌륭한 도구가 될수 있지만 나쁘게 쓴다면 강도의 흉악한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칼은 중재자가 나그네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중재자는 결단코 그것은 칼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그것을 칼이라 말하지 말고 나그네를 위한 최후의 통첩이라 여기라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그러면 나를 협박한 것이 아니냐? 물으니 그 또한 협박이라 생각하지 말고 나그네를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노라 하였습니다.

- 중재자는 전적으로 나그네를 위해 중재에 나선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그 말의 진위는 오직 그 중재자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그네는 중재자의 중재를 따를 것을 동의하고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커피숍에서 나왔습니다.

커피숍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스펠링은 달랐지만 '트리스타'(turistars)였습니다. 즉 세개의 별이었던 것입니다.
별은 하늘에 떠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의 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천사를 뜻하기도 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뜻하기도 하며 사람의 생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별이라면 그 의미는 정반대의 의미로 바뀝니다.
땅에 떨어진 별은 사탄입니다. 더더욱 세개의 별이니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거짓의 영을 뜻하는 것이 됩니다.

중재자의 뒤에 두개의 별이 있었는지 아니면 세개의 별이 있었는 지는 모릅니다. 중재자가 세 별 가운데 하나일지 아니면 세 별 가운데 속한 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별은 뭔가 모사를 꾸미며 하나님처럼 행사하려는 존재들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세별이 되었으니 자원하서 거짓의 별이 되었는 지도 모릅니다. 그 진실은 하나님과 그 세별이 지칭하려는 그 사람들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리 좋은 표적은 아닙니다.

또 Turistas의 뜻은 '외국인 나그네(여행자)의 설사병'입니다. 아마도 물갈이병과 같은 것이리라 생각을 합니다. 또 turistas는 은유적으로 여행자(나그네)들이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에게 탈탈 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나그네에겐 모든 것을 탈탈 털린 장소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turistas(2006)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삼류 영화였지만 동명의 영화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 포스터를 본다면 나그네는 섬뜻함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영화 포스터엔 'GO HOME'이라고 씌여 있었기 때문입니다.(검색하여 찾아 보십시요)
나그네가 이 영화의 내용과 포스터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 커피숍에 들어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나그네는 중재자와 헤어지면서 그 커피숍의 이름이 turistars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억측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할지도 모르고 너무도 절묘하게 끼어 맞춘것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그 커피숍의 이름이 정확히 turistars가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며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무식함에서 기인한 오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며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표적을 보여주고 계셨지만 사람들은 그 표적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쁜 일상의 중간(점심)에서 하나하나 그 모든 것을 확인하며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교통 도로표지판을 못보았다고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에 대해선 핑계치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turistars란 커피숍의 정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커피숍이 있는 건물을 다시 둘러보며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건물의 이름은 이화였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배꽃, 배신의 꽃이 활짝피어 있음을 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일까? 중재자가 나그네를 배신한 것일까? 아니면 나그네가 중재자를 배신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중재자와 나그네가 동시에 하나님을 배신한 것일까? 배신의 꽃은 활짝 피었지만 그 진위는 역시 감춰져 있었습니다.
겨울은 진실과 진심을 감추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ㅎㅎ

이화의 또 다른 의미는 '가르쳐 깨닫게 하다.'입니다. 아마도 이화여대가 그런의미로 이름을 지은 듯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화란 이름을 갖고 있는 건물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하나님은 그 누군가를 가르쳐 깨닫게 하려 하신 것 같습니다.
중재자를 가르쳐 깨닫게 하려 하셨던지 아니면 나그네를 가르쳐 깨다게 하려 하셨던지, 그도 아니면 중재자와 나그네, 두 사람 모두를 가르쳐 깨닫게 하려하심이었을지도 더 나아가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 깨닫게 하려 하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건물의 이름은 이화였고 이화는 가르쳐 깨닫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가르쳐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극현실적 율법주의자의 삶과 하나님을 향한 신비주의자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할까를 말입니다.

만약 제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하나님을 향한 신비주의자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내 삶의 선한 네비게이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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