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내 삶의 선한 네비게이션입니다.
작성자
노재신
작성일
2016-01-15 10:56
조회
2733
어젯 저녁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전주를 향했습니다.
내가 올린 꿈의 이야기가 또 다시 울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울림, 성령의 감동이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울림을 만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진정 내가 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면 좋은 울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이었지만 이 또한 나의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나려 하는 분은 좀 처럼 만날 수가 없었고 많이 시간이 흘러 다시 집으로 발길을 되돌리려 하였을 때,
목사님의 사모님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사모님에겐 왠지 모를 한 없는 미안함이 있었기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모님을 만났고 그저 죄송하다 할 뿐이었습니다.
이 사모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의 사모님 가운데 두번째로 좋으신 분 같습니다.
그 첫째는 제 아내이고 둘째가 바로 그 사모님이십니다.
물론 다른 사모님들도 다 좋으신거 압니다.
그러니 이것은 극히 개인적인 생각일뿐입니다. ㅎㅎ
사모님의 말씀을 듣고 사모님을 생각하면 자꾸 울컥하려 했습니다.
한번은 울뻔도 했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인가 요즘 들어 자주 울컥울컥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울림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사모님을 만난 후 일이 잘 되어 만나려는 목사님도 만났고 그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던 무지개도 보여드렸습니다.
나 나름대로는 그 분에게도 무지개가 될까 싶었지만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내가 바라는 데로의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네비게이션을 켰습니다.
전에도 여러번 와봤던 길이지만 밤이어서 그런지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큰 길쯤에 다다랐을때 네비게이션은 좌측으로 가라 하였으나 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우측으로 돌아 나갔습니다.
네비게이션은 몇번 더 유턴하라고 하였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그길로 나가자
네비게이션이 포기를 한것인지 아니면 더 가까운 길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직진 안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뭐 이리로 가면 분명 내 집으로 가는 길이 나오겠지?'하며 직진하여 갔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시골길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의 말을 들을껄..... 후회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뭐 하나님이 이리로 가게 하신 이유도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계속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길에 큰 회전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엔 남원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보여 편한 마음으로 회전길을 따라 도로를 갈아 탔는데
네비게이션은 길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지 깜빡 깜빡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순간 오늘 전주에 왔던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것과 같이 어두움 속으로 침잠되어 가고 있었던 내 모습이 길을 찾지 못해 헤메이는 그 네비게이션의 깜빡임과 같게 느껴 졌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네비게이션의 처음 안내를 무시하고 내 고집데로 왔더니 이렇게 네비게이션도 갈팡질팡하는구나! ㅎㅎ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를걸...'
그러자 내 신앙생활의 갈등과 방황이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며 그 뜻을 좇아 살았다면 지금처럼 먼길을 돌아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리 했던가.....'
좀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두운 방황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 기도하였습니다.
좀 더 달리니 네비게이션이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네비게이션은 나를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 그렇지. 어쨌든 좀 돌아 어딘지 모르는 시골길을 지나 왔지만 어쨌든 집으로 나를 이 네비게이션이 안내를 해줄거야!'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ㅎㅎ 목사가 하나님은 잘 믿지 못하고 이리 의심하고 저리 의심하고 이리 재보기도 하고 저리 제보기도 하는데
어찌 네비게이션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네비게인션은 내가 잠시 착각을 하여 안내하지 않은 길을 갈지라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좀 더 멀리 돌아갈진 모르지만 반드시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인도해 줄 것이란 믿음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길을 달려오는 중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울림이 왔습니다.
그 울림이란 매우 단순하고도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늘 잊기 쉬운 울림임을 압니다.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주님은 내 삶의 선한 네비게이션입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거나 내 고집을 부려 갈등하게 되고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 선하신 네비게인션임을 압니다.
이제 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놓고 내 인생의 선한 네비게이션이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로 걸어가기를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의 울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실수 가운데도 함께 하시는 울림이 되셨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네비게이션이 계심을 참 어리석은 목사인 나도 이젠 압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내가 올린 꿈의 이야기가 또 다시 울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울림, 성령의 감동이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울림을 만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진정 내가 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면 좋은 울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이었지만 이 또한 나의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나려 하는 분은 좀 처럼 만날 수가 없었고 많이 시간이 흘러 다시 집으로 발길을 되돌리려 하였을 때,
목사님의 사모님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사모님에겐 왠지 모를 한 없는 미안함이 있었기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모님을 만났고 그저 죄송하다 할 뿐이었습니다.
이 사모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의 사모님 가운데 두번째로 좋으신 분 같습니다.
그 첫째는 제 아내이고 둘째가 바로 그 사모님이십니다.
물론 다른 사모님들도 다 좋으신거 압니다.
그러니 이것은 극히 개인적인 생각일뿐입니다. ㅎㅎ
사모님의 말씀을 듣고 사모님을 생각하면 자꾸 울컥하려 했습니다.
한번은 울뻔도 했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인가 요즘 들어 자주 울컥울컥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울림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사모님을 만난 후 일이 잘 되어 만나려는 목사님도 만났고 그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던 무지개도 보여드렸습니다.
나 나름대로는 그 분에게도 무지개가 될까 싶었지만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내가 바라는 데로의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네비게이션을 켰습니다.
전에도 여러번 와봤던 길이지만 밤이어서 그런지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큰 길쯤에 다다랐을때 네비게이션은 좌측으로 가라 하였으나 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우측으로 돌아 나갔습니다.
네비게이션은 몇번 더 유턴하라고 하였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그길로 나가자
네비게이션이 포기를 한것인지 아니면 더 가까운 길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직진 안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뭐 이리로 가면 분명 내 집으로 가는 길이 나오겠지?'하며 직진하여 갔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시골길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의 말을 들을껄..... 후회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뭐 하나님이 이리로 가게 하신 이유도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계속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길에 큰 회전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엔 남원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보여 편한 마음으로 회전길을 따라 도로를 갈아 탔는데
네비게이션은 길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지 깜빡 깜빡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순간 오늘 전주에 왔던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것과 같이 어두움 속으로 침잠되어 가고 있었던 내 모습이 길을 찾지 못해 헤메이는 그 네비게이션의 깜빡임과 같게 느껴 졌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네비게이션의 처음 안내를 무시하고 내 고집데로 왔더니 이렇게 네비게이션도 갈팡질팡하는구나! ㅎㅎ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를걸...'
그러자 내 신앙생활의 갈등과 방황이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며 그 뜻을 좇아 살았다면 지금처럼 먼길을 돌아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리 했던가.....'
좀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두운 방황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 기도하였습니다.
좀 더 달리니 네비게이션이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네비게이션은 나를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 그렇지. 어쨌든 좀 돌아 어딘지 모르는 시골길을 지나 왔지만 어쨌든 집으로 나를 이 네비게이션이 안내를 해줄거야!'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ㅎㅎ 목사가 하나님은 잘 믿지 못하고 이리 의심하고 저리 의심하고 이리 재보기도 하고 저리 제보기도 하는데
어찌 네비게이션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네비게인션은 내가 잠시 착각을 하여 안내하지 않은 길을 갈지라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좀 더 멀리 돌아갈진 모르지만 반드시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인도해 줄 것이란 믿음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길을 달려오는 중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울림이 왔습니다.
그 울림이란 매우 단순하고도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늘 잊기 쉬운 울림임을 압니다.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주님은 내 삶의 선한 네비게이션입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거나 내 고집을 부려 갈등하게 되고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 선하신 네비게인션임을 압니다.
이제 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놓고 내 인생의 선한 네비게이션이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로 걸어가기를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의 울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실수 가운데도 함께 하시는 울림이 되셨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네비게이션이 계심을 참 어리석은 목사인 나도 이젠 압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