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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 김영학

작성자
민관기
작성일
2015-10-11 19:44
조회
801
황해 금천(金川) 사람이다. 그는 3·1독립운동 당시 양양(襄陽)의 기독교회 목사로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으며, 동년 10월초 일찍부터 친분을 가져왔던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조종대(趙鍾大)로부터 동단의 설립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하여 그 지부(支部)로서 양양군단(襄陽郡團)을 결성하고 군단장(郡團長)으로 활약했다.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주도·결성한 대한독립애국단은 본부를 서울에 두고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지단(支團)을 설치했는데, 양양군단은 이러한 강원도단(江原道團)의 산하조직이었다. 동단에서는 주로 임시정부의 선전 및 재정자금의 모집, 그리고 국내의 조직망을 통해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던 임시정부 지원단체였다. 양양군단 결성 직후 그는 김형석(金亨錫)을 비롯해 이근옥(李根玉)·이석규(李錫圭)·김연수(金延洙) 등을 동단에 가입케 하며 조직확대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1920년 1월 강원도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동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그는 국외로 나아가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22년 9월에 노령(露領) 해삼위(海蔘威) 방면의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그리하여 노령 지역에서 선교사업 및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가 1929년 소련 공산당에 피체되어 10년의 중노동형을 언도받고 시베리아에 복역 중 1933년 옥중에서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20. 12. 23 경성지방법원)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18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6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5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7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91면



한편, 감리교(회) 인물사전을 보자.

1929년이 아닌 1930년 피체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이듬해 3월 10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엿다. 1932년 음력 12월 신한촌인근 노역장에서 일하던중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면서 수십명이 빠저 죽엇는대 김목사도 이때 순교햇고 시베리아 선교도 막을 내렷다. 1933년 12월 7일 간도 용정에서 개최된 제3회 만주선교연회를 시작하면서 배형식 감리사 사회로 추도식을 가졋다.

또한, 수표교교회사를 보자

러시아의 정세는 점차 악화되어 공산당이 극동지역을 장악한 이 후 한국인 선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고 잇엇다. 목회자의 신변이 위협받게 되자 남감리회 선교부는 선교의 어려움을 감지하고 시베라아에서 목회하던 대부분의 교역자를 만주로 이동시켯다. 그러나, 김목사는 양떼를 버릴 수 없어서 공산당과 싸우면서 순교할때까지 그 곳을 지켯다. 공산당은 여러가지 형태로 김목사를 협박 회유하며 배교를 강요햇으나 그는 끝까지 목사로서 신앙을 잃지 않앗다.
결국 그는 1930년 소위 반동이란 죄목으로 구금되어 10년의 중노동형을 받고 복역중 갑자기 얼음이 갈라저 순교하엿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킨 감리교회의 위대한 신앙지도자요 순교자이다.

아내에게 남긴 옥중서신이 잇는데, 나중 실기로하고 여기건 약한다.


국가보훈처와 감리교(회)인물사전 그리고 수표교 교회사에서 약간의 차이가 잇음을 알수 잇다.


평가는 야중한다.



전체 3

  • 2015-10-12 05:19

    역사학자 민목사님, 김영학 목사님의 애국애족 사상을 본 받아야 겠습니다.


  • 2015-10-12 15:31

    민목사님 고맙습니다.
    옥중서신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2015-10-12 17:56

    감동적인 실화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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