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변선생님 20주기 추모하며 떠 오르는 생각

작성자
현종서
작성일
2015-10-10 20:41
조회
990
그분을 추모하는 후학들의 여러 글들과 관련 연구 논문들을 보면서, 그를 지붕으로하고 학문에 열중했던 후학들의 그분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다시금 엿보게 되고, 멍애인 동시에 명예라는 제하에 글을 쓰고 자기를 키워준 스승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꾸준히 노력해 온 이교수의 노력을 이해하며 치하한다.
자기자식 사랑하듯 거두며 사랑한 모성애를 변선생의 학문적 열정과 제자챙기기는 대단했다고 보여진다. (그의 자식이라 보지 않은 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는 아쉬워하지만). 그의 파토스적인 정앞에 제자들은 그의 이론이 무엇이든 따져볼 생각도 버린다. 어느 후배는 그의 마지막 제자라 자칭하는 데, 그의 하늘밑에선 다른 길이 잘 안 보였을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본인은 직업적 스콜라의 반열에 들지 못한 재야 학도로서 윤성범 박사의 마지막 제자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끊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관계속에서 자기 스승을 해치는 자라 보여지는 자에게 는 자연히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 스승을 돕는 자로 행동하는 자에게는 정이 가고 동지의식도 가지게 되는 것은 인지 상정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조시대의 사색당쟁을 보면 학풍에 대한 연대감은 대단하다. 거기에 한번 빠지면 나라의 운명도 잊어버린다. (임진왜란을 자초할 정도로, 자기 계파에 충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더 큰 틀에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변선생은 홍현설 선생이나 윤성범 선생 같은 신앙과 경험과 학문의 깊이가 있는 분들의 브레이크가 필요한 분이었다. 그의 시류에 따라 계속 변화해간 학문의 여정을 보면서 그분이 살아 있었더면, 이시점에서는 더 진화된 학문의 화두를 던졌을 가능성이 많다. 그의 종교해방의 신학이라는 것도 김경재 교수의 해설을 들으니 감신의 종교연구신학과 한신의 민중해방신학을 종합하려는 신학이었단다.(이미 과거형)
현금 타종교세력과 이단들이 창궐하여 그들의 세계관을 확산해 가고 있는것을 보신다면 변화하는 사회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신학자로서 다시 웨슬리와 칼 발트 정신으로 돌아와 복음에 충실함으로서 기독교를 변증하는 일을 하실 수도 있었을는지도 모른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런데 후학들중엔 그의 신학이 기존 기독교신학에서 해방하는 신학인듯 오해를 하여, 성령행전의 초대교회의 전통,성경중심, 은혜중심, 믿음중심의 종교개혁신학과 그 종교개혁정신의 완성이라 볼 수 있는 웨슬리의 성서 이성,전통,체험위에 세워진 감리교회의 신학으로부터도 (서구신학이므로) 해방시켜 동양 종교이해의 바탕위에서 새로운 종교신학을 세워야 하는 듯 이해 한 것은 그 선생을 감리교회의 일원으로 계속인정할 수 없도록 만드는 허황된 불신 이성의 자유주의적 철학의 발상으로 20년간 그의 신학을 출교된 상태에 정체시켜 놓고 출교한 이들을 무식한 교권주의자들이라 하며 개혁의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와 그분의 신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분의 학문은 감신인 전체의 것일 수 없고 불교와의 대화를 위한 실험신학의 자리에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후학들은 기성지도충을 부패한 권력이라 늘 설정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순종대신 저항함으로 자기들의 소견에 옳다하는 바를 관철하기 시위 행동을 하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성경과 교회의 전통이란 최근 스승들이 말하기 시작한 토착화 신학보다 더 우선시 해야 할 것으로 성경을 교리와 신앙생활에 최고의 규범으로 두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경건및 복음주의적 전통을 지켜내어야 하였다. 그리고 교역자양성을 위해 세운 교단신학교로 출발한 학교임으로 감리교회 교역자로서 모범적인 경건 학문 실천의 일군으로 기르고자했어야 했다.
심각하게 신학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목회자나 부흥사 못지 않게 상아탑속의 학문과 명상만이 아닌 말씀에 근거한 영적 체험들일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인류의 대속주로서로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분으로 우리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분으로 믿으며 교회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되게 하는 신학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후학들의 기독교의 전통을 부정하는 말과 글들은 점입가경이다. 감리교회 교리와 전통뿐 아니라 기독교전통에서 용납할 수 없는 신학을 말함으로 정말 어렵게 ( 학설의 재고와 신앙고백과 결단할 기회를 주며 권면하노라 오래 시간을 기다린후에 ) 출교조치를 하였는데, 이는 변,홍 개인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과 가르침이 토착화라는 이름하에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 설교자의 한 사람일뿐, 하나님의 아들로 성육하신 분이라든가 동정녀 탄생이나 대속의 죽음이나 부활을 부인하고 있으니 아무리 자유로운 신학이라 하지만 반성경적 반기독교적, 반종교개혁적인 가르침으로 그대로는 교단신학자로 후학을 지도하도록 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적 자유주의를 지나 이미 버린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다시 찾아다가 신학에 안방에 모실 뿐 아니라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는 것을 넘어 그분의 유일한 구속주 되심을 부인하고 절대 타자 되신 창조자 주관자 인격하나님까지도 자기들의 관념속에 가두어 둘 수 있는 철학자의 관념적 하나님으로 전락시키고 무신론자들의 "공" 사상에 비견되는 분으로 말하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지난날 끈끈한 인정에 끌려 자기들의 신앙의 근거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그들에게 동조하여 그들과 그들의 사상을 다시 받아들이고 그들을 출교시킨 세력을 교권주의자, 진짜 이단,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설정하며, 불교철학이 말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이 발전하여 기독교의 타력구원과 다를바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그 학문의 결론이라는 것인가?
아니다. 지금도 살아계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신 그리스도 예수를 신학자들은 제대로 만나야 한다. 타 종교속에 성령이 이미 와 계시니 그들에게 개종 전도할 필요가 없고 너희가 믿는 종교를 보다 더 잘 믿으면 너희도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
우리 모두 다시 내가 가는 이 길이 저 회개와 믿음의 문을 거쳐 구원받은 증서를 소지하고 가는 길인지 담넘어 들어와서 구원의 증표같은 것은 없고 타종교인들처럼 열심히 선행하다 보면 자연 천국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천국 가는 길을 가르침으로,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할 때이다.



전체 11

  • 2015-10-10 22:54

    나는 변선환교수를 한 번도 본적아 없소. 다만 서적을 통해서 그의 신학의 방향을 가늠하고 있을 뿐이오.
    그분은 결코 기독교를 버리고, 혼합주의 종교에 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여, 선교적 관점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한 것으로서 그 방향성을 옳게 보고 있소. 다만 김홍도류의 무지막지한 목회자들이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개망나니짓을 한 것이오. 뱁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한 것이지요.
    님자 또한 그 논리를 보면 성경학교 수준에서 그 신학적 지평이 머물러 있소.


  • 2015-10-11 06:02

    신학을 잘 모르는 장목사, 그대는 현금의 신학자들이 아무리 창조적인 신학을 합노라 해도 바울의 신학을 넘을 수 없다는 말씀의 뜻을 알기나 하는가?
    신학에 대해서는 신학으로 말해야 하지, 정치 의식이나 윤리의식이나 인신 공격으로 할일이 아니라네
    그대의 신학적 지평이 궁굼한데, 그대의 용어로 변박사와 그 후학들의 신학을 간명히 설명해 보게나.- 내 신학 지평 도 좀 넒어지게?


  • 2015-10-11 07:53

    간장종지에 한강물을 어찌 담을 수 있을까,


  • 2015-10-11 08:38

    바울신학이 깊은 것은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만나는 체험을 한 까닭이지. 학문으로만 알지 않았다는 말이고, 그는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력도 대단하여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지.
    성경, 이성,전통,체험의 의미는 아는 가? 하나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일세. 성경을 모르고는 신학을 할 수 없는 것이지.
    간장종지에 담긴 것만 말해보게- 변박사나 그의 제자들의 이론에 대해 그대가 깨달은 것만 말해 보라는 말
    최병헌의 한문실력은 한국의 전통종교에 대해 깊이 연구할 수 있었고 그러한 분이 성경만 7년 ? 연구한 후에 개종하였지.
    도상의 신학자로서 변박사의 생은 그 자체로서 후학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바 있으나 역사적인 기독교에 도전하는 격이 되어
    가던 길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며 깊은 숙고와 반성이 요구되기도 하였지 동료와 선후배된 그를 죽이고자 한 것은 아니라 보네만


  • 2015-10-13 10:15

    재미난 얘기들하시네.


  • 2015-10-13 22:27

    바울이 서양인인가? 성경은 희랍사상의영향을 받아 쓴것인가? 불트만의 비신화화 신학방법은 서구철학(과학)사상의 열매, 그 서구철학사상인 실존주의 사상의 더 깊은 형태가 인본주의적 불교철학, 그 불교 철학으로 기독교를 해석하는 것은 그야 말로 인본주의적 서구철학의 열매. 변선생은 바로 거기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 불교를 예리하게 분석한 유태교도 말틴부버의 비판을 거쳐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 그는 하나님의 아들 인류의 구주로 결론되어지는 데 까지 더 나아가야 한다. 때로 불합리하고 무식해 보이나 그 흐름을 넘어서는,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초합리적인 사건도 믿어지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 눈이 열려 성경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책으로 믿어진다. 계시진리는 종교학처럼 인간의 깨달음의 힘으로 이론을 만들고 덧붙여가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진리로 성령의 감동하에 쓰여진글로,신학으로는 개혁자들의 신학같은 것이 아니겠는 가? 여기에선 동서양 구별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것이다.


  • 2015-10-13 22:41

    신학자와 부흥사는 한 주를 모신 한 믿음과 한 성령의 사람일진대 사로 적대적일 수 없다. 한 부류는 이성이 발달한 것이고 한 부류는 정서가 더 발달한 사람일 수가 있다. 같이 믿고 체험한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좋은 동반자,협조자여야 한다. 신학자 같은 부흥사, 부흥사 같은 신학자도 나올 수 있고--- 타종교와 대화이전에 먼저할 일이기도 하다.


  • 2015-10-13 22:45

    신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 타 종교에 대한 접촉이나 대화의 방법도 달라진다. 처음엔 외교수단일 뿐이다 라고 시작했던 것이나 점차 발목이 잡혀 진짜 그쪽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내 생각대로 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물어보고 해야 한다. 타종교는 단순한 철학이 아니다. 믿음좋은 솔로몬도 말년에 이방종교 많이허용하였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내가 보니 무엇이 필요한 것 같더라. 그래서 이런 이론을 덧 붙인다. 뭐 예술작품을 만드는 가? 그런 것은 신학이 아니다.


  • 2015-10-14 06:24

    신학자들의 중요한 사명중 하나는 교회의 교리를 해설해 주는 일이요. 사회문제를 신학적으로 조명하며 신앙의 눈으로 보도록 함이다. 그 종교해방신학으로 우리감리교회의 교리를 해설해 줄 수 있는 가? 자기들만 알 수 있는 새 로운 전문용어 를 도입하여 써서 그들의 말을 이해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암호같은 말을 쓰면서 \"너희들은 잘 모르지? 무식해서 .나는 안다. 내 말을 이해 하려면 한참 공부해야 해.\" ---신학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를,교회를, 성도들을 보다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이다. 어려운 성경을 해설해 주고 세속의 반기독교적인 사상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변증함으로 성도들이 자기가 믿는 도리에 대해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불신자들에게 효과적인 복음 증언자가 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성도들의 윤리 문제도 성경말씀에 입각해서 교훈하고 설득하여 고치도록 해야 하지 타종교의 가르침으로 비난 비판 해서는 안된다. 기독교학교에서 타종교나 철학을 왜 가르칠까? 똑같은 종교이니 취사선택하여 믿으라 가르치는 가? 마치 타종교인이 심어놓은 사람처럼 가르치고 행동해서는 아니될 것이다.-타종교와 대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세우지 않고 타종교 기관에선 초빙하고- 뭔지 잘못된 것이라 느껴지지 않는 가?


  • 2015-10-14 23:05

    변박사의 미완성 신학은 그의 후배된 모든 감신인들에게 해결 과제로 남겨져 있다. 내게도 일정 부분 남겨져 있기에 내속에서 그의 논리와 씨름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새 주인으로 다시 사는 자라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성령의 개입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공\"체험이나 \"자속\"은 타력의 개입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 원효의 화쟁사상이나 엠마의 논리란, 같은 종인,불교의 여러종파안에서나 가능한 일로서 차원이 다른 계시종교( (신의 작품)과 자연종교(인간의 작품) 사이에선 맞지 않는 일로 보인다.


  • 2015-10-16 09:14

    탁사나 정경옥 문제도 해결을 못해서 윤성범이나 홍현설 변선환 신경쓸 겨를이 없네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9791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7979
2801 원학수 2015.10.19 772
2800 김연기 2015.10.19 621
2799 신원철 2015.10.18 1161
2798 이경남 2015.10.18 632
2797 함창석 2015.10.18 487
2796 김봉구 2015.10.17 856
2795 홍일기 2015.10.17 765
2794 박영규 2015.10.16 755
2793 강형식 2015.10.16 580
2792 이경남 2015.10.16 844
2791
(3)
이경남 2015.10.15 768
2790 유삼봉 2015.10.15 793
2789 함창석 2015.10.15 636
2788 장병선 2015.10.14 967
2787 최세창 2015.10.14 737
2786 서정식 2015.10.14 882
2785 이종선 2015.10.14 662
2784 김순태 2015.10.14 540
2783 주병환 2015.10.14 899
2782 함창석 2015.10.14 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