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상옥의사의 항일독립운동

작성자
백영찬
작성일
2016-01-20 21:02
조회
2539
김상옥의사의 항일독립운동
김상옥의사는 감리교회의 보배이다 그 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감리교회의 전도와부흥에 큰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2년전 모 설문조사에서 천주교인에게 당신은 왜? 천주교를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천주교린 36%가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인 이니까”라고 답한 데에 김상옥의사가 다닌 감리교회의 전도효과를 였볼 수 있다.

“김상옥의사독립운동93주년기념식”을 거행하오니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일시) 2016년 1월 22일(금) 오전 11시
(장소) 김상옥체육관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내)
(찾아 오시는 길) 지하철1호선 종로5가역 3번 출구에서 직진 50m
※ 주차는 교내 운동장.

김상옥 의사의 독립항쟁 내역(요약)

1889년,1월5일,효제동에서 출생, 16세에 동대문감리교회에 다니신 후 34세 순국 하실 때 까지 교회를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하시었고, 동대문교회의 헐버트목사,손정도목사,이하영목사,정희종장로 등의 지도로 독립의지를 키웠으며,의병, 애국계몽운동, 3.1운동, 임시정부, 의열투쟁, 독립군, 국내항일, 학생운동, 자금조달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거의 전부 실천한 분

1. 학생운동
- YMCA 청년부장 직분과 동대문교회에 동흥야학교 설립 등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 애국계몽운동을 전개

2. 사회계몽 - 백영사 조직과 애국계몽운동
- 백영사 조직(손정도(감리교 목사, 상해 임정 의정원의장), 이종소, 임용호, 김동계 등과), 일본어 사용금지, 금주(禁酒), 금연(禁煙)운동 사회계몽과 독립의식 고취, 이종소, 임용호를 미국에 유학시켜, 사회개진당(社會改進黨) 창립

3. 일제상품 배척 및 물산장려운동
- 1917. 4. 일화배척(日貨排斥) 목적으로 ‘말총모자’를 자신이 창안 생산, 제철 농기구, 양말, 장갑 등 자사 제품과 함께 보급 판매, 일제(日帝)의 경제수탈에 맞선 국산품 장려운동 전개,

4. 3.1운동 참여
- 1919.3.1. 태극기 제작 배포(독립기념관에 보존), 독립 선언과 만세시위에 직공들을 대동 참가하고, 귀가하는 여학생을 장검으로 위협하는 일경을 가격, 장검 탈취 (독립기념관에 보존)

5. ‘혁신단’ 조직,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행
- 1919. 4. 동대문교회 안의 영국인 피어슨여사 댁에서 청년학도들(박로영, 윤익중, 신화수, 서대순, 정설교, 전우진, 이혜수 등)과 함께 항일비밀 결사인 ‘혁신단’ 조직,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행, 민족의식과 독립사상 고취 중 종로경찰서에 피검 40여 일간 고문/고초를 당함. (혁신공보 일부-독립기념관에 보존)

6. 광복단 결성 활동
- 김의사는 삼남지방을 뛰면서, 1913년 경북 풍기에서 만난 채기중을 중심으로, 한 훈, 유장렬 등 의병출신과 ‘광복단'을 결성, 1916년 5월 전남 보성의 조성헌병대 기습, 친일파 처단 하는 등 비밀활동을 시작함

7. 암살단 조직(만주 길림군정서 김좌진 장군과 연계) - 종로 시가전 추진
- 1920. 8. 미국 의원단 방한 환영행사 계기, 총독 처단-총독부 폭파 작전계획, 무기, 트럭 2대 등 준비,
- 종로 시가전 태세를 갖추었으나 일제의 예비검속으로 ‘암살단’-‘결사대’ (연합) 동 지 20명 전원 피검으로 거사계획 미수, 홀로 상해망명.

8. 상해 임시정부
- 1920. 11월 이후 임시정부 요인(김구, 이시영, 조소앙, 신익희, 조완구 등)과 교제, 협력, 신문물 연수, 권총사격술 연마, 진과부(장개석총통 비서관) 등 중국인 동지들과 교제, 조소앙선생 중심 조직된 「한당(韓黨) 혁명사령부장」 피임 활동

9. 군자금 모금활동
- 1920년 김좌진 장군의 만주 길림군정서 군자금 지원, 김동순, 유득신 등과 군자금 지원 및 상해망명 자금조달 - 1921년 7월 본국 잠입 임시정부 군자금 조달하여 다시 상해 망명

10. 의열단 조직 및 참여
- 1920년 11월 의열단원 이종암, 배중세, 고인덕과 함께 밀양 한봉인 집에서 폭탄 제조, 같은 해 12월 최경학이 밀양서에 투탄 - 1921년 1월 의열단 재조직 참여,

11. 총독처단·총독부 폭파 계획, 임시정부와 협의,
1923년 1월 3차례 서울시가전 전개

임시정부(김 구, 이시영, 조소앙, 신익희 선생 등) 수뇌부 및 김원봉(의열단)과 협의
총독 처단, 총독부 폭파 등을 위해 무기를 지원 받고, 동지 안홍한을 대동, 1922년
12월 초 서울 잠입, 1923년 1월 3 차례 서울 한복판 시가전 결행
① 종로경찰서 폭파 (1.12. - 10여 명 중상)
총독부 폭파를 위한 폭탄 성능 확인을 겸한 의거결행, 종로서는 독립운동 탄압
전담서로 ‘고문의 명소’였고, 본인, 독립투사들 및 가족들이 ‘혁신공보’(지하신문)
사건으로 이미 모진 고문을 당한 곳이었다.

② 삼판통(현 후암동) 총격전 (1.17. - 4명 처단)
도쿄 의회 참석차 서울역을 떠나는 ‘사이토’ 총독을 처단코자 준비 완료후,
가까운 후암동 은신 중, 당일 새벽 5시 기습한 일경 17명 중 4명 처단, 맨발로
큰눈 쌓인 남산을 가로질러 왕십리 안장사에서 / 승복에 집신 거꾸로 신고 눈길
을 내려와 수유리로 피신(일본 군경 500 명이 남산 포위했으나 추적실패) / 당일
저녁 다시 일경의 겹겹 검색을 뚫고 효제동 자신의 생가 이웃 동지 댁에 잠입,

③ 효제동 최후 대격전 (1.22. - 16 여 명 처단 )
동상 치료 중, 채소밭으로 둘러 쌓인 외딴 마을 이혜수 동지 댁(효제동 73번지)을 탐지한 일본 군경 1000 여 명 경계/ 근접 500 명 4중 포위 속 주변 민가 5동을 넘나들며/ 쌍권총으로 일기당천 3 시간여 격전/ 적 16 여명 처단하고/ 최후 1탄으로 생가(72번지)와 옆집(76-2번지) 사이에서 자결 순국하심.

김상옥의사의 서울시가전은 3.1운동 직후란 시기, 한국 심장부라는 장소의
특성상 대내외적으로 통쾌한 의거 이었다. 일제의 3.1운동 왜곡 선전
등을 전세계에 폭로하는 ‘승리한 의거’였다

⚖ 신출귀몰 - ‘동대문 철물점 홍길동’으로 전국에 구전
“사격, 변장, 잠적 명수로서, 일제 군경의 추격을 여러 차례 따돌려 ‘동대문 철물점의 홍길동’이라 는 별칭이 전국에 퍼짐. 많은 청년들을 항일 독립투쟁에 참여시키는 결과를 낳은 바도 있습니다.“
(증인 : 충남 홍성 출신 방경한 애국지사)



전체 4

  • 2016-01-21 12:59

    저는 이 분을 어떻게 평가해야하나 할 때 종종 난감합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그. 그게 모가 중요해하는 양의 투. 이준 김구도 우리와 거리가 너무 멀어졋고 헐버트는 감신대의 교수엿는지도 모르고, 유관순은 류근찬이란 의원과 요즘엔 정체불명 이혜훈 전의원이란 이가 회장을 하고(감리회와 민족과 인류 의 여성을 조그만 곳에 가둠) 우리는 잊거나 잃어버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아버지도 할배나 할미도 잃어버린 것들이 이스라엘 선조들이나 가지고 떠들고 잔소리하고 사니 한심하다.

    왜그럴까? 왜 그럴까? 왜왜왜~~~. 이유 많다. 하나만 지적한다. 장로교회의 자료는 종교 자료이다. 하니, 보존해도 된다. 왜경도 모라 안한다. 다만, 그로인해 북 정권 탄압의 집중 표적이 되엇고 숫자도 많고.. 어떠튼 자료 보존이 비교적 잘 되어 잇다(이유는 따로 잇고) 감리교회는 자료 자체가 독립운동 사료이다. 들킬까하여 대부분 없앤다. 그런거 가지고 잇어야 모 자랑할일도 아니고..

    참고로 이러다보니 해방후 감리회의 망실재산이 수다히 생긴건 우연일까?

    첨가하자면 안중근의사의 사후 천주교는 그를 살인자로 제명하여 가족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동대문교회 담임자 엿던 손정도 목사가 안의사의 아내와 아들들을 거두어 같이 살앗다.

    안의사는 말햇다. 헐버트는 우리민족의 은인이라고? 언제 봣다고 이런 말을 햇을까? 그는 천주교인이고 헐버트는 감리회 목사인데..
    안의사는 사실상 감리교인이엇던 것이다. (헐버트는 1907년 대한을 떠낫고 안의사는 1910년 사망햇는데)

    여기서 뭐 느껴지시는거 없나요?


  • 2016-01-22 16:44

    김상옥 의사께서 감리교인 이란 것이 감리회의 큰 자산이지요.
    장로님 이일에 앞장 서시니 귀한 사역입니다.


  • 2016-01-22 17:19

    조금전 김의사 기념식에서 집으로 왓은데요. 어떻게들 아셧는지 감리교회 목회자들 장로님들 여권사들 포함 50 여명이 오셧어요.


  • 2016-01-23 12:19

    아! 나도 참석해야 되는데, 못갔어요!
    김상옥 의사에대해 알면 알수록 매력 만점이더군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8337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6512
3076 황건구 2016.01.19 2634
3075 주병환 2016.01.19 3057
3074 함창석 2016.01.18 2420
3073 김성기 2016.01.18 2919
3072 유삼봉 2016.01.18 2662
3071 홍일기 2016.01.16 2934
3070 황광민 2016.01.16 2904
3069 박영규 2016.01.15 2651
3068 박노승 2016.01.15 3027
3067 최범순 2016.01.15 2743
3066 노재신 2016.01.15 2736
3065 함창석 2016.01.15 2580
3064 김성기 2016.01.14 2761
3063 서의영 2016.01.14 2694
3062 함창석 2016.01.14 2229
3061 유삼봉 2016.01.13 2480
3060 함창석 2016.01.13 2555
3059 노재신 2016.01.13 2552
3058 김성기 2016.01.13 2435
3057 박영규 2016.01.12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