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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인간들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6-10-21 07:32
조회
1425
로마서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로마서 1:24-32절 사이에는,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하는 말씀이 3번이나 나옵니다(24, 26, 28절).
24절에서는, 하나님을 배척한데 대한 신의 형벌을, 세 가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신의 심판의 세 단위를, “더러움” “수치스러움” “욕정” “상실한 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어버렸다”는 뜻의 헬라어 파레토겐(παρἑδωκεν)은 “넘겨주다” “양보하다” “포기하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 축복, 응답, 은총 같은 내용들로 설교를 하면, 설교하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되는데, 하나님의 저주, 심판, 형벌, 책망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하자고 하면, 성도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 같고 마음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또 설교를 듣는 성도들도 유쾌하거나 은혜 되기에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결코 우리가 지나쳐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한번은 깊숙이 말씀을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마른 땅에 소나기라도 떨어지면 먼지들을 모두 잠재우듯이, 입맛이 없는 사람이 씀바귀나 임모초로 입맛을 돋우듯이, 듣기에 거북하고 어려운 말씀이라 할지라도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하는 교훈들이기에 신앙의 도움이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구원받은 성도들은 은혜가 더 임하게 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는 소름끼치는 무서운 말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과 하나님을 떠나서 정욕대로 더러움에 빠진 사람의 차이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참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사람들, 불경건함에 처하여 극악한 죄악으로 달려가는 이 세상의 인간들은,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규정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저들을 내어버려 두 사” 그들을 포기했다고 하는 말로 표현함으로서, 계속적인 동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처우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더러움에 떨어지게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요, 이 떨어짐을 유발하는 것보다는 덜할 것입니다.
죄를 인하여 하나님이 노를 발하시는 일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는 인간들의 악행을 그대로 내어버려 두심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내어버림을 당하여 모든 부도덕한 일들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관심한 밖으로 내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죄악에 빠지도록 내어버린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능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동물보다 못한 무서운 타락이 나타납니다.
동물은 자연적으로 본능을 제제하게 되었으나 사람은 의지적인 제제를 안 하면 안 되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기에 본능대로 내버려 둔다면 무서운 결과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한 것은 본능보다 인간의 욕심대로 내 버려뒀다는 말입니다.

욕심은 본능보다 더 무서운 죄를 창조합니다.
욕심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한 끼를 배불리 먹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서지만, 사람들은 백년 천년을 살 것처럼 쌓아두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약한 자나 가난한자의 것까지도 더 빼앗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므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악마 사탄 마귀의 지배 속에 농락당하겠으니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악마 사탄 마귀가 인간을 지배하면, 참혹한 비극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6,25사변, 광주 사태, 오대양 사건, 그리고 이교도들의 폭력사건들은, 모두 악마의 본능적인 학살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거나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아니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여도 슬픈 일입니다.

부모의 관심밖에 있게 된 자녀는 가문과는 무관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포기하시는 사람이라고 하면, 교회도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의 관심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를 거역하고 세상에 빠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크로솨이데(F. W. Grosheid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악이 죄악을 낳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 없는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의 결과이다.
그것이, 이교의 가져오는 표본이니, 곧 우상주의가 무서운 죄악들을 동반함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심판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고대시대에, 이 지구에는 몸뚱이들이 창고들만큼이나 큰 공룡들이 살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그러한 공룡들을 찾아볼 수가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사람들보다 힘이 세고 키도 크고 몸이 큰 공룡들이 사라졌을까요?
그것은 몸에 비하여 머리가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몸에 비하여 생각이 모자랐고 미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의로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망하게 됩니다.

밀림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길을 찾았을 때,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 찾아야 삽니다.
죽을 위기에 빠져있는 사람이 그 위기를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늪지대에서, 생명의 위기를 당한 사람이 생명의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보다는 죽음의 길을, 빛 보다는 어두움을, 의보다는 불의를, 진리보다는 비 진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들의 나아가는 길은 잘못된 길이고, 사망을 향해 나가므로 하나님을 찾으라고 권해도, 고집을 부리고 다른 길로 나가고 있으니 어느 누가 그들을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많은 오류에 빠지고 있습니다.
가인은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겨루어 보려고 거역하였습니다.
애급에서 구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게도 자유를 누리는 생활보다는 애급의 노예로 사는 것을 더 사모하였습니다.

오늘 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영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육을 위하여 살려하고, 정욕을 위해서 살려하고 있습니다.
참 생명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배로 하나님을 삼으며 살려하고 배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령한 영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동물적인 본능과 정욕에 치우쳐서, 육체의 쾌락으로 살아가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 정욕가운데서 발견하시고 이들을 더러움에서 내어버려두십니다.
그 결과는 저주와 멸망을 받을 뿐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정욕에 치우쳐서 죄를 범하다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주후 6-7C 이탈리아의 남쪽 캄파니아 해안지방에 번영하였던 고대도시 폼페이가,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멸망당할 때에도, 정욕으로 치우친 향락과 쾌락을 일삼는 범죄의 온상이었던 것입니다.
육체의 쾌락과 향락의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와 폼페이가, 멸망을 당하여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은 결코 우연한일이 아닌 것입니다.
정욕에 치우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생명을 외쳐도,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겪이고, 개에게 금덩어리를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짓일 뿐입니다(마 7:8).
더러운 것만을 찾는 그 짐승들이 진주와 금덩어리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 더러움으로 나아가다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의 정욕대로”란 말은, 이러한 인간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몸을 정욕대로 욕되게 더러움에 내버려두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당시의 이방인의 문란한 성적타락상을 가리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소돔성이나 폼페이에 못지않게 로마에서도 성적문란의 상태는 공공연한 타락으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우상의 신전에는, 신녀라고 불리는 여자들이 있어서 성적으로 타락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미신종교와 이교와 이단들은 거의가 성적타락의 본산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므로, 성적정결은 종교의 바른 표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이비종교단체들이 성적문란을 일으켰다가 타락하여 망하고 말았음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생활, 하나님을 모르는 종교, 하나님과 상관없는 도덕,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식들은, 다 헛된 것들이요 비 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도덕과 타락의 성적문란에 빠진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이요, 육적으로는 자기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셔서가 아니라, 스스로 버림을 받을 길로 나아가다가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성적으로 타락하여 죄를 범함으로 병이 걸려 아기죽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말했고(사 3:16),
계시록에서는 타락한 여인을 침상에 던져서 환란을 당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계 2:22).

현대의 만연된 AIDS병은 무엇이겠습니까? 더러움에 던져버려진 삶을 살아온, 타락과 음란함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욕되게 하는 저주가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의 육체를 음란한 부정의 오물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만천하 앞에서 수치스럽게 하고 있지를 아니합니까?
마음은 정욕에 흠뻑 적셔져서, 육체는 무절제로 인해 불결하게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자들이 바로 지혜 있다고 하는 바보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잊어버리고 돌아서있는 삶은 이런 모습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잊지 마십시다.
그것이 성도들의 바르게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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