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55강 <2>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2-03-03 16:43
조회
815
<8:34-9:1>중 8:36-9:1의 주석

예수님은 35절의 교훈을 강조하셔서【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셨다.
요는, 사람이 추구하는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의 총체로서의 온 세상을 얻는다 할지라도, 자기 목숨(35절의 주석을 보라.)을 상실한다면 유익할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제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비교: 시 49:7, 8).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자연적 생명의 가치가 그렇다고 하면, 영원한 생명의 가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예수님은 35절 전반을 보강하여【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라고 하셨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의 음란하고는 모이칼리디(μοιχαλίδι)이며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부정 행위’를 의미한다. 또한, 이 말은 우상 숭배를 의미하기도 하였다(사 1:4, 21, 50:1-, 렘 3:8, 13, 31:32, 겔 16:32, 35-, 호 2:1-).
죄 많은 세대의 죄(하마르톨로, ἁμαρτωλώ)는 1:4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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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유대의 진정한 영적 남편인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했고, 음란하였다(마 12:39, 16:4). 또,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하는 목표에서 완전히 빗나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실상이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은 ‘예수와 그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따르지 않으면’이라는 뜻이다. 웨슬리(J. Wesley)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지 않으면”이라고 해석하였다. 이 말에 대해, 그란트(F. C. Grant)는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에서 초대 교회의 반대자들의 치명적 무기의 하나가 조롱이었음을 반영해 준다.”라고 하였다. 벵겔(J. A. Bengel)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도, 그의 말씀 중에서 혹은 이것을, 혹은 저것을 부끄러워하는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인자(2:10의 주석을 보라.)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는, “인자의 용법 중에서 소위 미래적 용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山口 昇).
이 구가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라는 것은 불트만(R. Bultmann)을 위시한 금일의 비평적인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제삼자적인 인자라고 하는 호칭이 대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적인 학자들은 예수님은 자기 자신과 인자를 구별하셨고, 자기 자신이 인자라는 의식은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불트만, 데트).1)
그란트(F. C. Grant)는 “어떤 학자들은 예수께서 인자와 자신을 구별하여 세 번째 인격으로 오시는 심판자에 관해 말씀하신다고 논했고, 다른 학자들은 예수께서 자신과 이 초자연적 존재를 넌지시 일치시킨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인자는 예수님의 불충한 추종자들에 대해 예수님 자신이 취하려고 하신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라고 하여 상반된 두 견해를 절충하고 있다.
그러나 슈바이처(E. Schweizer), 웨셀(W. W. Wessel), 레인(W. L. 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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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山口 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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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슨(W. Hendriksen), 어드만(C. R. Erdman), 이상근, 마경일, 黑崎幸吉, 그리고 山口 昇 등은 인자란 예수께서 장차 심판하러 올 재림주임을 은밀하게 표현하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레인(W. L. Lane)은 “예수님의 자신의 미래의 역할에 관한 은폐된 언급은 군중들이 있기 때문에 적절하다.······예수께서 인자를 그 자신과는 다른 인격으로 말했다고 비평하는 견해는, 이 진술에서 종말론적이며 문자적인 병행을 지각하지 못한 것을 반영한다. 이 진술의 첫 절의 요소는 두 번째 절에서 다른 양식으로 소개된다. 38절 전반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일인칭으로 언급하고, 후반에서는 자신을 심판하러 올 재림의 영광에 가장 적절한 호칭에 의해 언급한다.”라고 잘 설명하였다.
인자는 위로부터 오셨으므로 본래 영광스런 분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영광을 누리시는 대신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수치와 고난으로 점철된 선교적 삶을 사셨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셔야 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에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1:13의 주석을 보라.)과 함께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그 때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한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이것은 곧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지금 여기서의 예수께 대한 태도는 최후 심판에서의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끝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가는【1】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이 예수님 자신의 말씀인지, 아니면 초대 교회의 창작인지가 문제되고, 또 앞의 사건에 대한 결론적 구실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뒤이어 나오는 변형의 사건(9:2-8)의 서론적 역할을 하는 것인지가 문제되며, 또한 해석상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콘첼만(‘때의 중심’)1)과 슈바이처(E. Schweizer)는 초대 교회의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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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山口 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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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해하지만, 많은 학자들1)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다.
버딕(D. W. Burdick), 스테벤즈(J. D. Stevens), 바클레이(W. Barclay), 그리고 黑崎幸吉 등은 마태와 누가를 따라 앞의 사건에 대한 결론적 역할로 이해하는 반면에, 레인(W. L. Lane), 모울(C. F. D. Moule), 그리고 그란트(F. C. Grant) 등은 9:2-8의 서론적 역할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더 적합하다. 이 점은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가 “마가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말로서, 이제까지 한 말과 뒤이어 할 말을 연결하기 위해 사용된다”(W. W. Wessel)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1) 재림,2) (2) 변화산의 영광을 세 제자가 본 것,3) (3) 부활(J. Calvin, “Beza, Grotius”4)), (4) 오순절의 성령 강림(Godet),5) (5) 예루살렘 멸망(H. Alford, “Wetstein”6)) 등의 견해가 있으나, 헨드릭슨(W. Hendriksen)의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다.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부활과 오순절의 성령 강림과 그 사건과 관련하여 위대한 권능과 권세를 가지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심을 가리키는 말씀일 것이다. 그 때에는 지상에 너무도 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어떤 이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천하가 어지럽게 될 것이다(행 17:6). 또한, 중대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다. 즉, 교회 시대가 도래하고, 이방 가운데 교회가 확장되고, 사람들이 수천 명씩 회심하고, 많은 권능의 은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들이 지금 그의 말씀을 듣고 있는 무리 중 몇몇 사람들의 생전에도 일어나기 시작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말씀 역시 그대로 이루어졌다.”7) 이런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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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 E. Sanner, E. P. Gould, W. W. Wessel, C. R. Erdman, W. Hendriksen, 山口 昇, 마경일.
2) “Meyer, Weiss, Michaelis, Allen”(in 이상근).
3) “Chrysostom, Farrar, Cranfield”(in 이상근), J. A. Bengel, 이상근.
4) in 이상근.
5) 상동.
6) 상동.
7) F. C. Grant, A. E. Sanner, W. Barclay, R. A. Cole 등도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절기 설교집 외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 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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