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2강: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 자<9:38-40>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2-04-19 11:48
조회
929
나.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 자<9:38-40>

<비교: 눅 9:49-50>

불트만(R. Bultmann)은 “이 아포프테그마1)는 확실히 교회의 작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을 쫓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교회에서 비로소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닐카(J.Gnilka, 하권, p. 83)는 베이어(Beyer)의 “이 단락은 팔레스틴 교회 공동체의 산물로 보이며 아주 고대적인 것 같다. 내용과 구조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39절은 셈어의 언어 구조로 된 조건문이다.”라고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한 후, 계속해서 “38-40절의 단화는 양식상으로 아포프테그마이며, 40절의 어구는 지혜의 말씀이고, 41절의 어구는 괄호에 의해 첨가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때문에 장중한 말이 된 약속의 말씀이다.”라고 하였다. 슈바이쳐(E. Schweizer)도 이 모든 것에 대해 “예수님의 때가 아니라 교회의 뜨거운 논점이었던 때를 지시하는 것이다. 아마 이 간략한 이야기는 교회에서 일어난 질문이었다.”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이런 학자들의 견해는 이 전승을 초대 교회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을 쫓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초대 교회에서 비로소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예수님 당시의 12제자들 속에 속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행해졌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또, 언어 구조상의 문제는 이 전승이 초대 교회의 산물이라는 주장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초대 교회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매우 관용적인 태도를 보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山口 昇).

마가는 이 이야기를【38】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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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 Bultmann, op, cit., p. 9. 사화로 취급될 수도 있는 전승 부분, 즉 어떤 간단한 장면에서 파악되는 예수님의 말이 핵심이 되고 있는 그런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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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물론 세례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요한이다(3:17의 주석을 보라). 이 요한이 이번에는 제자들의 대변자로 등장하고 있다.

선생님은 디다스칼레(διδδάσκαλε)이며, 제자에 대한 스승을 가리키는 칭호인데, 방금 겸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이 끝났으므로 그 칭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행 19:13-16)1)처럼 귀신 쫓는 자인 체하는 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기꾼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 7:22의 책망을 받은 것과 같은 그러한 귀신 쫓는 자도 아니었다. 아니, 이 사람은 틀림없이 진짜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주의 말씀을 듣고 주께 마음을 드리기는 하였으나, 아직 주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과는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이었을는지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로 빅켈스테트(E. Bickersteth), 레인(W. L. Lane), 웨셀(W. W. Wessel), 黑崎幸吉, 이상근 님, 마경일 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클라케(A. Clarke)와 반즈(A. Barnes)는 “세례 요한의 명령으로 예수님을 믿은 세례 요한의 제자이거나2), 또는 그리스도가 파송한 70문도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눅 10:1-7).”라는 흥미 있는 추측을 하였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얼마 전에 제자들이 귀신을 쫓는 일에 실패했는데(9:14-18), 그들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귀신을 내쫓았다는 점이다.

주의 이름으로는 ‘주와 관련하여’ 또는 ‘주를 믿음으로’를 의미한다.

귀신을 내어쫓는 것은 1:25-26의 주석과 3:15의 주석을 보라.

그란트(F. C. Grant)는 “그런 일이 예수님의 생애에만 가능했다는 것은 사도행전 19:13의 경우를 보아 분명해진다.”라고 하지만, 주님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한 그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클레이(W. Barclay)는 “이미 여러 번 본 바와 같이, 예수님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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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의 사도행전 19:13-16의 주석을 보라.
2) 참조: J. We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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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모든 사람이 악령을 믿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정신적‧육체적 질병은 모두 악령의 악의에 기인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 악령을 쫓아내는 하나의 일반적인 방법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 악령보다 더 유력한 영의 이름을 알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이름으로 악령을 향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한다면, 악령은 무력하게 되어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악령은 보다 유력한 이름의 힘을 대항할 수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닐카(J. Gnilka, 하권, p. 83)는 “예수는 귀신을 축출하고 병을 고칠 때, 이름을 부른 일이 없는데 반하여 사도행전(3:6, 9:34, 16:18)과 라삐 문헌에서는 제자들 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적을 행했다는 보도가 나온다.1) 치병의 관습에서는 기적의 힘이 있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예사였다.”2)라고 하였다.

주님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내쫓는 일이 초대 교회 시대에 국한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또한, 아예 그러한 기적을 부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므로(마 28:20), 주님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일은 일어나고 있다.3)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권능이 지상에서 존재하시던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더 약해졌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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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빙 구절들이 나와 있는 Billerbeck I. 36, 38과 P. Fiebig, Ju\"dische Wundergeschichten des ntl. Zeitalters, Tu\"bingen 1911, 35f를 보라. 유다교측은 그리스도인들이 제시한 치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2세기에는 회당에서 예수의 이름 사용이 금지되었다.
2) R. Bultmann, Geschichte, 238의 증빙 구절, 유다교의 기적 행위자들은 솔로몬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3) 필자도 1975년경 이래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기도하여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오고 있다. 대개 필자가 안수기도하면, 환자의 아픈 곳과 아픈 정도, 아픈 내용이 잠시 아내에게 그대로 나타나서 알게 된다. 안수기도 후에 아내의 몸을 통해 알게 된 환자의 아픈 곳에 주님의 이름으로 필자의 손이나 손가락을 대거나 약하게 누르고 있으면, 더 심한 통증이 있다가 사라지면서 치유되거나 깨끗해진다. 한 번의 안수기도로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차례 안수기도함으로써 치유되거나 깨끗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그와 같이 치유되거나 깨끗해진 교인들이나 불신자들 중에 현재도 살아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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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는,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쫓는 어떤 사람을 보고, 자기들을 따르지 않으므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 조치에 대해 (1) 시기심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E. Bickersteth), (2) 이기적 태도(D. W. Burdick, R. A. Cole), (3) 주께 대한 잘못된 사랑(W. Hendriksen), (4) 편협한 당파심(W. L. Lane, C. R. Erdman, 이상근), (5) 독선주의요 분파주의(山口 昇), (6) 종파심(R. Earle, 黑崎幸吉) 등의 견해가 있다.

우리라는 말이 세 번씩이나 반복된 것을 보아 (1)설은 적합하지 않고, 나머지 견해들은 복합적인 원인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주된 이유는 편협한 당파심 내지 종파심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과 의논할 생각도 않고, 우선 금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권능이란 어느 교파, 어느 교회, 어느 신학자, 어느 목사, 어느 교인의 전유물일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와 권능이란 모든 인간이 온 힘을 합쳐 파악한다 해도 다 파악될 수 없고, 사용한다 해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다. 종교적 독선이나 편협만큼 사랑에 장해가 되는 것은 없다. 기독교에서 자파의 교리나 자신의 성경 해석 또는 자신의 신앙이나 신학만이 옳다고 하는 독선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사악한 귀신을 내쫓을 수 없었던 제자들(9:40)에게 있어서, 누군가가 귀신을 내쫓아 그의 포로가 되었던 사람을 건져 준 사랑은 시기 거리가 아니라 감사 거리인 것이다. 우리가 못한 사랑을 남이 할 때는 시기할 기회가 아니라, 감사하며 기뻐해야 할 기회이다(참조: 빌 1:18).

제자들을 대표한 요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서, 마가는【39】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확 트이고 관대한 정신으로 열두 제자의 편협한 배타주의를 반대하신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식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 있는 일을 행하고 이내 예수님을 비방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의 졸개들과 싸우는 이들을 그 자신에 속한 자들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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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한다면, 그것이 곧 그가 옳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며” (A. Barnes), 또한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위와 비슷한 이야기는 민수기 11:26-29에도 있다. 즉, 엘닷과 메닷에게 신이 임하여 예언하는 것을 전해들은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금하도록 부탁했지만, 오히려 모세는 모든 백성이 다 신을 받아 선지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웨슬리(J. Wesley)는 “사단의 권세로부터 하나님께로 죄인을 인도하는 사람이면, 그가 견해에 있어서나, 예배의 형태에 있어서나, 그 외 종교의 본질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어떤 것에서 ‘우리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좌절시키거나 방해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 마가는【40】“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하였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는 호칭 대신에 우리라는 호칭을 써서 그들과 자기 자신을 관련시키신다.”라고 하였다.

구원의 진리에 있어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반대하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는 자는 예수님을 위하는 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마태복음 12:30의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니라”라는 말씀도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닐카(J. Gnilka, 하권, p. 84)의 “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동조자로 간주한다.”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아무튼, 이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교파, 자기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또 다른 형제들에게 배타적 내지 적대적 감정을 갖는 모든 기독교인들에 대한 경고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은 같아야 하지만, 그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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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19 12:17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한다면,

    그것이 곧 그가 옳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며” (A. Barnes),

    또한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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