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3강 1:11-17의 계시에 의한 복음과 사도됨(1:11-14a)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2-11-28 12:51
조회
92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B. 계시에 의한 복음과 사도됨[1:11-17]

바울은 앞에서 거짓 교사들이 가르친 복음은 전혀 복음이 아니며, 오직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이 가르친 복음만이 절대적인 권위가 있는 참된 복음이라는 것과 그 자신도 열두 사도와 동등한 사도임을 주장하였다.

이제 그는 자기가 전하고 가르친 복음의 참됨을 입증하기 위해,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라고 말한다.

거짓된 복음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형제들아](아델포이, ἀδελφοί)라고 부르는 것은 “중요한 대목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상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울의 마음이 좀 가라앉았기 때문이며”(黑崎幸吉), 또한 “여태까지의 냉정한 표현을 좀더 융화해 보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다”(윤성범).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갈라디아 형제들에게 자기가 전한 복음이 거짓 교사들의 말대로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뜻을 따라](κατὰ ἄνθρωπον)는 바울의 서신에만 나타나는 말인데, 원문의 뜻은 ‘사람을 따라’이다. 벵겔(J. A. Bengel)과 黑崎幸吉은 [따라](카타, κατὰ)에는 1절의 “에게서”(아포, ἀπὸ), “말미암아”(디아, διὰ), 그리고 12절의 “에게서”(파라, παρὰ) 등의 전치사의 뜻이 모두 포함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면, 바울의 말은 자기가 전하고 가르친 복음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수단으로 만들어진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❶

바울은 11절의 이유에 대해,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가르, γὰρ)은 앞 절의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즉,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이 인간과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복음이라면, 유대인들에게 거리낌을 주고 세상 지혜(종교, 철학 등)의 조롱을 초래하는 십자가가 없었을 것이다(고전 1:18, 30). 물론, 바울은 회심 직후 아나니아를 만났을 때(행 9:10-19)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을 때(1:18), 그리고 전도 여행 때에 어떤 교훈을 받거나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에 관한 것이지, 복음 그 자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복음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계시]는 아포칼룹세오스(ἀποκαλύψεως)로서,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주체인지, 아니면 대상인지가 문제된다. 렌스키(R. C. H. Lenski)와 라이투후트(J. B. Lightfoot) 그리고 이상근 님은 계시의 주체라고 하지만, 16절의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라는 말을 미루어 보아 계시의 대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롬 2:5, 8:19, 16:25, 고전 1:7, 살후1:7, 벧전 1:7, 13, 4:13 등).❷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계시된 것은, 팔레스틴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제자들에게 출현하신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사건이다(고전 15:8-9).

바울은 자기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 이전까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으로 알고 핍박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1:1의 주석을 보라). 이것이 바로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복음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바울은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복음을 직접 받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회개하기 이전의 자신의 행동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먼저, 그는 【13】[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라고 고백하였다.

회심 이전에 바울이 행한 일이란, 곧 유대교를 믿었을 때에 행한 일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 자신이나 바울의 대적자들을 통해 이미 들은 내용이었다(13절 상반).

[유대교]는 유다이스모스(Ἰουδαισμός)인데, 이 구절과 14절 이외에 신약 성경 어느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다.❸

훅스타블(E. Huxtable)은 “유대교는 명백하게 모세주의였던 유대인의 종교적 생활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정신이 왜곡되었고”(박윤선), 바울 자신이 바리새인이었던 점을 미루어, “모세나 예언자들의 문서 안에서 유대인들에게 계시된 종교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압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전승과 랍비적인 해석자들의 하찮은 사견들과 그들을 좇는 종교 생활을 의미하는 것”(E. H. Perowne)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유대교의 중심 문제에 대해 윤성범 박사가 잘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고, 나를 의롭다 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행해야 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이렇듯 그들 자신의 행위에로 집중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려는 것보다는 ‘자기의 의’(ἴδια δικαιοσύνη)를 구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들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ύ)란 그들의 ‘자신의 의’의 주변을 도는 하나의 ‘위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기 위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우리는 ‘행함의 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교에 있을 때에],❹ 바울은 ‘믿음의 의’를 주장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있었던 것이다(참조: 행 8-9장).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에클레시안, ἐκκλησίαν: 1:2의 주석을 보라.)라고 말한 것은, 그가 회심한 뒤에 깨달은 대로 유대교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고, 그리스도교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이었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레이다누스(Greijdanus)는 “하나님의 교회란 말은 교회의 높음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런 교회를 핍박함이 무서운 죄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교회를 격렬하게 박해한 사실은, [심히 핍박하여]라는 말과 특히 [잔해하고]라는 말을 보아 알 수 있다.

[핍박하여]는 에디오콘(ἐδίωκον)이며, ‘각박하게 따라가면서 괴롭히고 있었다’, ‘격렬하게 박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사실을 반복하여 고백하고 있다(행 22:2-21, 26:4-23, 고전 15:8-10, 갈 1:13, 23).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유대교를 보호하려는 열의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없애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던 것이다(빌 3:5, 6).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핍박자가 되도록 부추기기도 하였다(행 26:11).

[잔해하고]는 에포르툰(ἐπόρθουν)이며, ‘황폐시키고 있었다’, ‘약탈하고 있었다’, ‘파괴하고 있었다’, ‘멸절시키고 있었다’는 뜻이다.❺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교회를 아주 격렬하게 박해하여 멸절시키려고 한 이유에 대해,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대교를 믿음에 있어서, 자기의 동족 중 동년배들 가운데서도 훨씬 앞서 있었으며(공동 번역 성경), 따라서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

여기서 [조상]은 파트리코스(πατρικός)로서, 파트로스(πατρῷος)나 파트리오스(πάτριος)와 같이 민족적 조상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부친과 조부에 관계되어 있다(R. C. H. Lenski).

[내 조상의 유전]이란 바울이 바리새인이었으므로(행 26:5, 빌 3:5) 모세의 율법(M. Luther)이나, 모세의 율법과 구전되어 온 바리새인의 전승 둘 다(E. Huxtable, R. T. Stamm)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전되어 온 바리새인의 전승을 뜻하는 것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상근 님은 “유전이란 ‘손 건너 준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록된 율법(Written Law)과 더불어 입으로 전하게 한 구전법(Oral Law)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오히려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전자가 물이라면 후자는 포도주와 같다고 주장하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M. Luther, J. Calvin, R. C. H. Lenski, E. F. Harrisom, 黑崎幸吉.
2) J. Calvin, E. Huxtable, R. T. Stamm, L. H. Dewolf, 윤성범.
3) 외경인 마카비 2서 2:21, 14:38, 마카비 4서 4:16에 나타난다.
4) R. T. Stamm: 바울의 이전 종교에 대한 평가와 바리새인으로서의 명성은 고후 11:22, 빌 3:5-6, 롬 3:1-2, 9:1-5, 11:1에 나타난다.
5) 참조: R. C. H. Lenski, E. Huxtable, E. H. Perowne.
6) H. Alford, E. D. Burton, R. C. H. Lenski, E. H. Perowne, 黑崎幸吉, 윤성범, 이상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69-73.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갈-엡.JPG

004-1.jpg



첨부파일 : 갈-엡.JPG
첨부파일 : 004-1.jpg
전체 1

  • 2022-11-28 12:52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히브리어도 표기 안 됨)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2.05.23 3771
132 최세창 2022.12.26 78
131 최세창 2022.12.19 84
130 최세창 2022.12.12 87
129 최세창 2022.12.05 87
127 최세창 2022.11.23 81
126 최세창 2022.11.17 85
125 최세창 2022.11.12 79
124 최세창 2022.11.09 89
123 최세창 2022.11.05 81
122 최세창 2022.11.02 76
121 최세창 2022.10.28 75
120 최세창 2022.10.24 65
119 최세창 2022.10.22 85
118 최세창 2022.10.17 110
117 최세창 2022.10.10 72
116 최세창 2022.10.10 92
115 노성진 2022.09.01 96
114 김희영 2020.02.24 604
113 신승도 2019.08.14 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