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8강 1:1c-3 복음의 일꾼인 사도의 반열인 목사, 교회, 은혜, 평강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2-11-05 15:52
조회
78

# 연재되는 주석서 「갈라디아서」


[사도]는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로서 글자 그대로 ‘임무 또는 사명을 띠고 파송되는 사람’ 곧 전권 대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신약의 사도들이란 ⑴ 지상의 예수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자(마 10:5, 28:29. 비교: 갈 1:1), ⑵ 부활하신 주를 목격하고 이 사실을 증거한 자(행 1:21, 22), ⑶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요 14:26, 16:13, 고전 2:10), ⑷ 그러므로 그들의 권세는 지상에 있고(마 18:18, 20, 요 22:22-23), ⑸ 표적을 행하는 권능을 받았으며(행 2:43, 5:15), ⑹ 그들의 복음 전파의 범위는 우주적이었고 무제한이었다(고후 11:28).

[사도]란 칭호를 들은 이들은 12제자 외에도 바울과 바나바(행 14:4, 14), 실루아노와 디모데(살전 2:6) 등이 있다. 또, {70제자들(눅 10:1)도 사도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이레니우스, 터틀리안).

사도직은 초대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이었다(엡 4:11, 고전 12:28). 본질적으로 사도의 직분은 그를 보내신 분의 위엄을 떠나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Ellicott)}(살전 2:6의 주석).

{킬케골은 천재와 사도를 잘 구별하였다. 천재가 되는 것은 그의 내재적 목적 때문인데, 그는 민중과 구별되며 천재임을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도는 전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초월적인 근거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입고 존재하며, 자기에게 배치되는 역리적 목적 때문에 사도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롬 1:1의 주석).

자기소개를 마친 바울은 【2】[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 기도를 해 준다.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란, 바울이 쓰고 있는 본서의 내용이 독선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확증시키기 위함이었다.❶

바울은 서신의 서두에 조력자 한두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고전 1:1, 고후 1:1, 빌 1:1, 골 1:1, 살전 1:1, 살후 1:1). 그러나 본서에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함께 있는 형제들이 누구인지 문제가 된다. 이 점에 대해 (1) 바울의 제자들이라는 설(M. Luther), (2) 전교인이라는 설(J. Calvin, “Bousset, Zahn”❷), (3)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행한 조수들이라는 설,❸ (4) 바울을 동조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설(J. Wesley) 등이 있다.

바울의 제자들 또는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역한 조수들이라는 견해는, 본서의 내용이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을 확증시키기 위해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전교인이라는 견해는 복음과 율법에 관한 문제로 혼란을 겪었던 당시의 교회들의 사정으로 보아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바울을 동조하는 모든 형제들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서신의 대상인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 대해서는 제1부 총론, Ⅱ. 대상을 보라.

[교회]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이며 바울의 서신 안에 60회 정도 나온다(W. Barclay).❹ 이 낱말의 히브리어적 배경으로 카아할(창 49:6, 출 12:6, 민 14:5, 신 5:22, 겔 23:24 등) 및 에에다(레 8:4, 민 8:9, 10:2, 잠 5:14 등)가 있다. 전자는 ‘부름을 받은 모임’, 후자는 ‘지명된 모임’의 뜻으로 다 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 또는 선민 자체를 가리켰다.
신약 성경에서 그 말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소환된 사람들의 모임, 특수 지역의 거주민들로부터 모집된 믿는 자들의 공동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소집된 공동체,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P. S. Minear).❺

바울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3】[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축도를 해 주고 있다.

[주]는 퀴리우(κυρίου)로서, 구약 성경에서는 노예에 대한 주인 을 뜻하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명예와 존엄 그리고 하나님을 표현하거나 특수한 이름인 야웨(Yahweh)를 대신하는 칭호이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다(고전 12:3, 고후 1:2, 빌 2:11).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바울의 고백은, {당시의 헬라적 동방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처럼, 예배자들이 주의 ‘노예’라는 생각을 보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며, 따라서 주란 칭호를 기독교 예배에 적용시키는 일이 광대하게 조장되었다(Deissman)}(고후 1:3의 주석).

3절은 바울이 흔히 사용하는 인사 형식으로서(J. Calvin)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헬라의 인사말인 [은혜](카리스, χάρις)와 히브리의 인사말인 [평강](에이레네, εἰρήνη)이 바울에 의해 사용될 때, “그 두 낱말은 그리스도교 전체를 포함한다”(M. Luther).

‘카리스’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일(M. Henry),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R. T. Stamm), 그리고 죄된 피조물이 필요로 하는 모든 영적 축복을 쏟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E. Huxtable) 등의 뜻이다. 한 마디로 말해,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만으로는 아직 카리스(은혜)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카리스(은혜)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의미란 곧 ‘죄의 용서’(M. Luther, R. C. H. Lenski)이다. 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현된 속죄의 사랑이며(롬 5:7), 그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 특수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할 때, 일반적인 은혜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혜라고 할 수 없다. 만일 누가복음 15:11 이하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많은 선물(은혜)를 받았으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그 선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음과 멸망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죄악의 사슬에서 구속받는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은혜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이 구속의 은혜야말로 모든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것이다.

‘에이레네’는 고전 헬라어에서는 적대적인 무리 사이의 휴전 혹은 적의의 해소라는 뜻이다. 신약 성경에서 그 낱말은 전쟁과 다툼에 반대되는 것,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회복된 올바른 관계, 마음의 평안 또는 고요 등을 의미한다(C. L. Mitton).❻

평강(에이레네)이 내적인 의미의 것이든 외적인 의미의 것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먼저 죄를 용서받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 까닭은 율법이 죄 때문에 양심을 비난하고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M. Luther). 그러므로 인간이 참된 평화(내적, 외적)를 얻으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강이란 은혜의 결과이다”(R. C. H. Lenski, M. Henry, R. T. Stamm). 따라서 은혜의 결과로서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화이다(요14:27).

그래서 바울은 세상이 주는 은혜와 평강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오는 은혜와 평강이] 갈라디아 교회들 위에 넘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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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M. Luther, J. Calvin, R. T. Stamm, 윤성범.
2) in 이상근.
3) J. B. Lightfoot, E. D. Burton, W. Sanday, A. Clarke, “Vincent, Beet”(in 이상근). 黑崎幸吉, 이상근.
4) W. Barclay, 바울의 인간과 사상. 서기산 역(서울: 기됵교문사, 1973), p. 262.
5) P. S. Minear, pp. 608-609.
6) C. L. Miton, “Peace In The NT” in IDB, Vol. 2(New York: Abingdon Press, 1962), p.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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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47-51.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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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5 17:58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예: 고딕으로 된 '인자'는 [인자]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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