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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그릇인가?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7-13 10:44
조회
821
1. 시작하는 말

유능하다고 인정받은 직원들이 각각 몇 억, 몇 십억, 몇 백억 원을 빼돌려 죄악의 낙을 즐겼다거나, 경영진이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가 날렸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 실력은 뛰어난데 믿을 만한 인격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믿을 만한 인격자이나 실력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급 기술을 갖춘 기능인이 모자라서 기업 경영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는 안타까운 호소가 들립니다. 험하고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사람이 없다는 탄식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
가정이나 교회, 기업이나 나라에 인물다운 인물, 일꾼다운 일꾼, 그릇다운 그릇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2. 그릇의 종류

이단을 경계하면서 선한 일꾼과 악한 일꾼을 대조한 바울 사도는,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큰 집”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귀히 쓰는 금 그릇과 은 그릇은 하나님의 일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는,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 등이 아무것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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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귀한 그릇입니다.
큰 집이나 금 그릇과 은 그릇은 가정과 직장과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참된 교인인 교회의 귀한 그릇이었던 인물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국가에도 귀한 그릇이었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국가적으로 금 그릇과 은 그릇 같은 존귀한 자리에 앉았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귀한 자리에 앉았던 그 교인들 중에는 금 그릇이나 은 그릇 같은 인물이라는 평을 듣기는커녕, 부정부패와 부정축재의 대명사라는 평을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목사인 저 역시 높은 자리에 앉았던 그 교인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쓰신 금 그릇이요 은 그릇이라고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남다른 그들의 신분이나 지위는 분명히 금 그릇이나 은 그릇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직무 수행은 결코 금 그릇도 아니고, 은 그릇도 아니었습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비천하기 이를 데 없는 죄악의 그릇이었습니다.
존귀한 자리에 앉은 것을 기화로 뇌물수수나 공금 횡령, 표절이나 음욕 추구 등 온갖 죄악과 비리를 담는 그릇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편 49:20을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신분이나 지위보다는 가정이나 교회, 직장이나 국가의 직무 수행이나 일처리에 있어서 금 그릇, 은 그릇이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귀중히 쓰이는 금 그릇이나 은 그릇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에디슨(T. A. Edison)에게 “당신이야말로 진짜 천재입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칭찬을 들은 에디슨은 “나는 천재가 아니라, 내 일에 대해 종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귀중하게 쓰이는 금 그릇이나 은 그릇이 되는 길은,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교회 안팎의 일에 대해 종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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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어느 정도로 일의 종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하는 일이 즐거워질 때까지 일에 미쳐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나 일의 종이 되려고 하는 사람보다 높은 감투의 종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탈입니다.
우리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가,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재능이나 실력이 얼마나 탁월한가, 얼마나 많은 은사를 받았는가, 그 모든 게 금 그릇에 해당하는가 은 그릇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지혜, 재능과 재주, 재물과 권세, 은사와 영력 등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 귀하게 쓰이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귀하게 쓰이는 금 그릇, 은 그릇이라는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작사자요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프란세스 리들리 하버갈은 1836년 12월 14일에 영국 아스틀레이에서 워세스터의 성 니콜라스 수도원장이었던 윌렴 하버갈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7살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여러 종교 잡지에 발표하곤 했습니다. 병약한 몸을 치료하느라고 정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쳐 버렸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를 자습하여 통달했고, 뒤셀도르프 문하에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14살에 깊은 영적 체험을 하고 43세에 죽기까지 금 간 유리그릇 같은 병약한 몸으로 열정적으로 많은 시를 썼고, 작곡을 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내 너를 위하여’와 ‘나의 생명 드리니’와 ‘주 없이 살 수 없네’ 등 10편 이상의 그녀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에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서 금 그릇, 은 그릇처럼 귀히 쓰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큰 집인 하나님의 교회에는 천히 쓰는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다고 했습니다.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은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이단 사설이나 기이한 영적 현상을 보여 영원한 멸망으로 끌고 가는 거짓 교사들인 이단자들과 나쁜 일꾼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나무 그릇과 질그릇을 가리켜, 허드렛일 같은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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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에 적합한, 교회 일꾼들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천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21절의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보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천하게, 혹은 불명예스럽게 쓰이는 나무 그릇, 질그릇 같은 이단자들과 나쁜 일꾼들은 현대 교회 안에서도 암약하고 있습니다. 은밀하게만 암약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도 활동하기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미혹당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교인들을 선동하여 교역자를 대적하기도 하고, 교인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전도의 문을 막기도 합니다. 근래에 어느 이단자들은 교회에 침투해서 목사와 교인들의 신임을 얻은 다음에, 교인더러 전도하자고 하여 사전에 약속된 같은 이단자들을 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인사이동에 관한 법을 악용하여 목사를 내쫓고, 자파로 넘어간 해당 교단의 목사를 세워 교회를 통째로 탈취하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실수나 비리를 저지른 목사를 보면, 마치 목사들이 다 그런 것처럼 떠벌려서 전도의 문을 막고, 교회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리는 질그릇 같은 교회 직분자들도 있습니다.
어느 분야, 어느 기업, 어느 나라에나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 같은 이단자들이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분이나 지위는 금 그릇이나 은 그릇인데, 천한 죄악을 일삼는 이단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나쁜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천히 쓰는 나무 그릇, 질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고 통치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금 그릇, 은 그릇 같은 존귀한 자리에 앉아서 마귀의 그릇으로 쓰인 하수인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남의 나라를 침략하느라 수백만, 수천만 명을 살상하고, 대량 약탈과 대량 납치를 하고, 대량 성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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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성폭행을 하는 등의 온갖 죄악을 저지르게 한 전범자들이 있습니다. 정책이 실패하자 권좌를 빼앗길 것이 두려워서, 청소년들을 선동하여 권력자나 지성인들을 비롯한 자국민들 수천 만 명을 반동분자라는 낙인을 찍어 살해한 살인마도 있었습니다.
통치권 유지를 위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 수백 만 명을 살상한 독재자들도 있었습니다.
종교 전파라는 미명 아래 외국을 침략하여 인명 살상과 겁탈, 약탈과 방화 등 만행을 저지른 교권자들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끔찍한 살인마들을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영웅시하고,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위선을 드러낸 미련하기 짝이 없는 판‧검사와 대학자와 도덕가들도 있습니다. 신분은 금 그릇, 은 그릇 같이 존귀한데, 하는 짓은 나무 그릇, 질그릇 같이 천한 위선자요 이중인격자의 전형이며 표본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3. 맺음말

모든 사람은 가정과 교회, 직장과 국가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귀히 쓰이는 금 그릇, 은 그릇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천히 쓰이는 나무 그릇, 질그릇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중요한 문제는 신분이나 지위나 소유와는 상관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이단 사설을 가르치거나, 복음과 무관한 영적 운동을 벌이고 다니는 거짓 지도자들을 떠나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귀하고 거룩한 일에 더러운 그릇을 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될 것입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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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3 10:46

    무슨 그릇인가

    <디모데후서 2:20-21>
    20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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