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소식

레즈비언’ 크리스 목사, 게이에서 전향한’ 이요나 목사(펌)

작성자
이근석
작성일
2013-04-13 13:04
조회
1705
‘레즈비언’ 크리스 목사
하나님 부름 받고 신학교 갔듯
성 정체성도 내가 고른 게 아냐
폭력적인 몇몇 성경 구절 가지고
동성애자 부정하게 몰아선 안돼
무조건 안된다는 한국 교회가
청소년들 절망에 빠뜨려

‘게이에서 전향한’ 이요나 목사
“남자를 좋아합니다” 고백 뒤
어머니 자살, 그리고 성경공부
‘동성애 죄’ 거듭나 목사 되고
차별금지법도 반대하지만
예수도 정죄하지 않는데
교회가 왜 죄인 다루듯 하나

두 목사가 있다.

한 목사는 크리스(47)씨다. 10일 서울 서대문의 한 카페. 그는 매우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나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동성애자이고 더욱이 목사라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모순적인’ 정체성을 세상에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모종의 소명 의식을 가지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목회자로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는 딸 셋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여자아이들과 잘 놀지 못했다. 여자들의 놀이는 격렬함이 없고 승리감이 덜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여자들과 있으면 편했고 안전함을 느꼈다.

“내가 다르다는 건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꾹 눌렀지요.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성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자살행위였으니까요.”

독실한 보수 기독교단의 신자였던 그는 10년 가까이 목회자의 외길을 걸었다. 1991년 국내의 유명 신학대를 다니며 교육전도사로 일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교단과 미국 내 한국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는 괴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는 외면했다. 남자도 여자도 사귀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린 한 동성애 기독교인이 병을 딛고 일어서면서 “예수께서 에이즈를 고쳐주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커밍아웃’의 계기는 미국의 한 병원에서 원목(병원 목사)을 하던 중 찾아왔다. 환자들과 교우하고, 죽음을 앞둔 이들과 기도하고, 그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그는 다른 목회자들과 병원 목회교육의 일종인 ‘임상목회교육’(CPE)을 받았다. 교육과정의 첫 단계는 ‘자기 개방’ 훈련이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었다.

“이 숙제를 풀지 않고서는 온전한 크리스천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대대적으로 나의 성적 지향에 대해 ‘커밍아웃’ 했습니다.”

미국 교회도 보수주의가 우세해 동성애를 금기시한다. 그가 속한 교단에서도 ‘동성애 목회자 허용 건’이 총회에 올라오자, ‘차라리 내가 목사직을 버리겠다’며 일부 목사가 반발해 부결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당장 파장은 크지 않았다. 교육을 마치고 한 어린이병원의 목사로 부임했다. 커밍아웃을 하니 평안해졌다. 하나님과의 불일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차츰 알아갈 교단의 목사들을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1년 반 동안 고민했다. 15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접었다.

어쩌면 목사로서 그의 인생은 끝난 건지 몰랐다. “한국에서 목사 되는 것도 무모한 일”인 줄 알고 비행기를 탔지만, 예배를 인도하고 심방하고 기도하는 목사가 되고 싶은 바람이 그의 가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귀국 1년 만에 한 대형병원에서 원목으로 와달라는 제안이 왔다. 신부와 목사 등이 모여 병원 환자들을 상담하고 돌보는 일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과거와 달리 나에겐 성적 취향을 숨기지 않는 원칙이 있었어요. 이 일을 책임진 신부님께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은 ‘개인적인 성향이니 괜찮다. 그걸 전제로 일하지만 않는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던 중 신부님께 ‘미안하다. 경영진이 결격사유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지요. 정말 힘들구나, 과연 목회자로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목회의 꿈을 깨끗이 포기한 걸까. 여러 번 물었다. “목회를 완전히 접은 건가요?”

“목회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학교를 간 거고, 뭔지는 모르지만 (성 정체성도) 내가 고른 게 아니에요.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목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나를 찾고 싶었던 거예요.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요.”

크리스 목사는 그 뒤 한 시민단체에서 일한다. 현재 자신의 일도 목사의 소명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하나의 목사는 이요나(65) 목사다. 9일 오전 서울 한남동의 한 상가건물 3층의 작은 예배당에 그가 앉아 있었다. 서울갈보리채플교회의 담임목사인 그는 동성애자를 상담하고 치유하는 전문 상담사다.

“(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요? 그런 걸 생각할 만한 시대도 아니었죠. 언어, 복장의 자유도 없었잖아요. 어렸을 적부터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1970~80년대를 그는 동성애자로 살았다. 서울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했다. 그는 공중화장실을 엿보고 어두운 극장에서 남의 몸을 더듬는 등 당시 동성애자들이 ‘음지’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했다. “인텔리들은 신세계백화점 부근의 동아극장이나 화랑에 왔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파고다극장에 몰렸고요. 서로 눈이 맞으면 한잔 사겠다고 하고 어울렸죠.”

이 목사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 또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중 사업이 실패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절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때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남자를 좋아합니다.”

그 뒤 딸을 만나러 간다던 어머니에게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는 고향 선산 주변에서 농약을 마시고 숨졌다. ‘네 업보는 내가 가져간다’는 유서가 남겨졌다. ‘어미를 잡은 놈’이어서 상복도 못 입고 통곡도 못 했다. 이 목사가 말했다.

“어머니께서 아들인 저를 얻으려고 100일 불공을 드렸답니다. 원래 아들이 아닌데도 아들을 (무리하게) 얻으려다가 자식이 이렇게 됐다고 느끼셨나 봐요. 어머니 스스로 ‘업보’를 내려놓으셔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 목사는 친구들이 걷어준 돈으로 서울 이태원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만든 것이 이태원 최초의 ‘트랜스젠더 클럽’이라는 ‘열애’였다. 여장남자를 동원해 쇼를 해 인기를 끌었다. 사업이 잘될 때에는 이태원에 네 개의 클럽을 굴렸다.

“친하게 지내던 누나의 전도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은 있었지만, ‘타고났는데 무슨 죄냐?’라는 생각도 있었지요.”

화려한 날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이태원 게이바’를 다룬 신문 방송의 보도로 그의 클럽은 철퇴를 맞았다. 그때 일본인 친구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신주쿠에 ‘열애’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클럽을 차렸다. 하지만 어머니가 남긴 무거운 짐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도쿄에서 성경강해 과정을 듣기 시작했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도 다녔다. 동성애는 죄이니 멀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2년 동안 동성애를 참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보고 갑자기 무너졌습니다.”

목사 되기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교회에 찾아갔을 때, “큰 돌이 머리를 친 듯한” ‘영적 체험’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마흔다섯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뒤 이성애자가 되었고 일본인 여성과 교제했다.


교회 안의 동생애자 생각보다 많다

두 목사는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요나 목사는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고, 크리스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크리스 목사는 목회자의 길에서 쫓겨났지만, 이요나 목사는 ‘동성애의 죄’에서 ‘거듭나’ 목사가 되었다.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보수 기독교계가 반대운동을 벌이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둘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크리스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이요나 목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문란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목사의 차이는 성경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 성경은 대략 6번 동성애를 언급한다. 다른 죄에 비하면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다. 이를테면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 사형에 처해야 한다’(레위기 20장 13절)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월경 중의 여인과 동침하는 일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일 등 금지 규정과 함께 등장한다. 성경 구절로만 보면 동성애는 죄다.

하지만 크리스 목사는 ‘성경 무오설’에 갇힌 보수 기독교계가 성경을 열린 시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성경 무오설은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인간에 의해 써졌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는 이론이다. 크리스 목사는 오히려 여성, 민중, 동성애자 등 주체에 따라 성경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시대적 한계에 처한) 사람이 썼습니다. 사람이 썼지만 또 (주류의) 남성이 썼고요. 성경의 역사·문화적 배경은 그 시대의 것을 내포합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몇몇 구절을 가지고 동성애자를 부정하게 모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이요나 목사는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믿는다. “성경은 그대로 봐야 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게 아니듯 동성애도 말씀에 순종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동성애를 극복하는 게 동성애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내 성소수자 문제는 세계 기독교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죄로 보고 종교적 해결을 시도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반면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성경을 새롭게 읽어내는 성소수자 교회도 있다.

국내에서는 2003년 청소년 동성애자인 육우당씨가 ‘난 천주교를 사랑합니다’라고 유서에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이를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국내에서도 기독교 내 성소수자 문제가 부각된 것이다. 2007년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가 설립돼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교회도 생겼다.

국내 기독교인 성소수자의 규모를 추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요나 목사는 “생각보다 많다. 한 유명 교회의 목사가 자기 교회에는 동성애자가 없다고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의 교인들도 나한테 상담을 받았다. 심지어 목사, 전도사, 집사들도 상담을 받는다”고 말했다.

크리스 목사는 교회 내에 동성애 담론 자체가 토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안에 성적 지향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도, 한국 교회는 동성애 담론이 나올 때마다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문을 닫아버립니다. 청소년들은 절망에 빠지고 때론 자살에 이르지요.”


교회가 뿌리는 ‘동성애’ 소책자의 위험성

문제는 차별금지법 논란이 기독교인 성소수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지만, 국내 보수교단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률로 받아들인다. 보수교단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이 확산되면서, 교회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500원짜리 소책자가 나돈다. 동성애 비판을 ‘전쟁’이라고 묘사하는가 하면, 성행위 장면을 혐오스럽게 묘사한 ‘동성애자의 양심고백’ 수기 등을 담고 있다. 이요나 목사가 말했다. “이 책을 본 동성애자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더군요. 성경이 ‘동성애는 죄’라고 정해놓았지만, 교회는 그들을 먼저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예수도 정죄하지 않았는데, (일부 교회는) 동성애자를 너무 죄인 다루듯 합니다. 이렇게 하면 기독교 동성애자는 자괴감만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 목사는 이 책을 펴낸 기독교계 단체인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의 실행위원을 그만뒀다. 차별금지법 반대운동 관련 직책을 맡아달라는 한기총의 요청도 거절했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신앙 속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기도하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은 보수 기독교단과 같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효과가 있다. 법이 제정되면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동성애는 윤리와 도덕에서 다뤄야 하지, 법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동성애자들의 주례를 못 선다고 하면, 차별금지법의 적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리스 목사는 이 목사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그들에게만 종교의 자유가 있나요? 그럼 (성소수자인) 나의 종교의 자유는 무엇인가요? 예수께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보호하고 있을 때, 한 마리 양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가셨습니다. 한 마리 양은 동성애자가 아닐까요?”

2009년 기독교 성소수자들이 모인 모임에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가 레즈비언으로 나고 성장하는 것을 아시고 이제껏 함께하셨습니다.”

크리스 목사에게는 지금 파트너가 있다. 몇 년 전 언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언니는 “어머니한테만 말하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와 파트너가 ‘죽고 못 사는 친구’로 안다.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도 얼마 전 좋은 일이 생겼다. 10년 뒤 시골에 집을 지어 셋이 함께 살기로 어머니와 약속했다는 것이다. 크리스 목사가 활짝 웃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관리자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4-15 09:29)



전체 6

  • 2013-04-13 13:09

    참으로 혼란 스럽습니다.
    주님이시라면,
    아마도 정죄하지 않으시고 고쳐주셨으리라..


  • 2013-04-14 11:28

    지금 이쪽 미국 일반사회나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품어주고 인정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즉 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호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어떠한 이유에서건 게이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거고, 양쪽 성 다하고 싶으면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 어떻구 저떻구하는 말은 이제 옛날 말입니다.
    정말 세상 망조죠? 그런데도 누구하나 대놓고 말 못하는 분위기,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어요??


  • 2013-04-14 13:38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무언의 박해가 진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머지 않아 이제 먹거리로 압박하는 날이 오겠지요.
    한 목사님, 은혜로운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 2013-04-13 13:09

    참으로 혼란 스럽습니다.
    주님이시라면,
    아마도 정죄하지 않으시고 고쳐주셨으리라..


  • 2013-04-14 11:28

    지금 이쪽 미국 일반사회나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품어주고 인정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즉 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호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어떠한 이유에서건 게이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거고, 양쪽 성 다하고 싶으면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 어떻구 저떻구하는 말은 이제 옛날 말입니다.
    정말 세상 망조죠? 그런데도 누구하나 대놓고 말 못하는 분위기,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어요??


  • 2013-04-14 13:38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무언의 박해가 진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머지 않아 이제 먹거리로 압박하는 날이 오겠지요.
    한 목사님, 은혜로운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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