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46강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2-01-03 15:45
조회
979
다. 부정(不淨)에 대한 예수의 견해<7:14-23>

지금까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일반 대중을 불러모아 말씀하신다. 이 점에 대해, 마가는【14】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라고 하였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아마도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인 대적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무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런 뒤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 몇몇 대표가 예수께 질문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오자, 무리는 아마도 그들에 대한 존경심에서 조금 뒤로 물러섰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 대적들이 떠나가니까 예수께서 다시 무리를 가까이 불러들이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고울드(E. P. Gould)의 “그것은 개인적 언급이나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참 종교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위해 극도의 중요성을 지닌 문제이다.”라고 한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복음서들은 거듭거듭 그를 자비로운 구주, 즉 일반 백성들이 그릇된 지도자들에 의해서 잘못 인도되기 때문에 매우 안타까워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6:34, 마 9:36, 11:28-30).”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이상해 보이지만, 당시의 동방의 교사들, 특히 팔레스틴의 분위기 속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마가는【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16】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다.
A, D, K, W, X, Δc, Θ, Π, ƒ1 사본 등에는 두 구절(15, 16절)이 한 구절(15절)로 되어 있고, 16절은 “누구든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א, B, L, Δ* 사본 등에는 16절(누구든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이 생략되었다.1) 일반적으로 후자를 유력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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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K. Aland, et al.,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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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무리에게 밝히고자 하시는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경멸적인 질문(5절)에 대한 것이다. 그 요지는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 즉 온갖 음식물은 손을 씻고 먹든지 손을 씻지 않고 먹든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 즉 온갖 나쁜 말과 행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더러운 것은 물질적‧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도덕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답변은 사실상 레위적인 정결 예법의 핵심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 정결 예법은 위생적인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것을 들은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해, 마가는【17】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그 비유(3:23의 주석을 보라.)를 깨닫지 못하고 질문한 것은 그들에게 신령한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라고 한 바울의 기도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자들의 질문을 들으신 예수님에 대해, 마가는【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다.
제자들의 몰이해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한 마음에서 비롯된 말씀이다. 요지는, 다른 사람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19】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라고 설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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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은 마음(카르디안, καρδίαν: 2:6의 주석을 보라.)에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가는 것이므로(마 15:16)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거나 타락케 할 수 없다.
뒤로 나감이니라의 원문(εἰς τὸν ἀφεδρώνα ἐκπορεύεται)을 직역하면, ‘뒷간에 떨어지다’이다. 예수님의 자연스러움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黑崎幸吉은 “예수에게 있어서 더러움의 문제는 외부적‧의식적 더러움이 아니라 마음만의 문제였다. 마음만 더럽지 않다면, 외부적‧의식적 더러움은 문제삼을 게 못 된다. 손을 씻거나, 씻지 않고 빵을 먹어도 그것은 결국 배를 지나 측간에 떨어질 뿐, 마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결국 더러운 측간에 떨어질 것이 아닌가’ 하는 신랄한 풍자다.”라고 하였다.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의 원문(καθαρίζον πάντα τὰ βρώματα)의 문자적 의미는 ‘모든 음식물을 깨끗이 하면서’이다. 그래서 렌스키(R. C. H. Lenski)는 깨끗하게 하는 것을 뒷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1)의 견해인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마가의 해석적 기술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레위적 정결 예법(특히 레 11장)을 폐기하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함은 바클레이(W. Barclay)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카비 시대의 시리아 왕인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유대교 신앙을 뿌리뽑으려고 하였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요구한 것들 중 하나는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는데, 그 수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
마카비 4서 7장에는 한 과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어야만 한다는 명령을 듣고 거절하였다. 그 벌로 첫아들은 혀를 잘렸고, 게다가 사지 끝을 잘렸다. 그리고 산 채로 커다란 냄비에 구워지고 말았다. 둘째 아들은 머리카락이 뽑히고, 두개골의 피부가 벗겨졌다. 이와 같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은 고통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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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 P. Gould, C. R. Erdman, W. Hendriksen, “Cranfield”(in 이상근), A. E. Sanner, J. Gnilka, p. 362, 黑崎幸吉, 이상근, 마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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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갔다. 반면에, 늙은 어머니는 그렇게 죽어 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격려하였다. 그들은 불결한 돼지고기를 먹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20】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15절 후반(개역 한글판 성서에는 16절)의 반복이다.
예수님은 더욱 구체적으로,【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라고 하셨다.
마음(카르디아스, καρδίας)은 2:6의 주석을 보라. 특히, 여기서는 인간의 감정, 의욕, 생각, 행위 등의 근원으로 묘사되고, 또한 영적‧도덕적 부정의 근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악한 생각의 생각은 디아로기스모이(διαλογισμοὶ)이며 ‘숙고하여 얻은 생각’, ‘사색’(7:21, 눅 2:35), ‘추리’, ‘추론’, ‘견해’(롬 1:21), ‘다툼’, ‘논쟁’(빌 2:14, 딤전 2:8), ‘의심’, ‘망설임’, ‘주저’(롬 14:1) 등을 의미한다.
음란은 포르네이아이(πορνείαι)이며, 여기서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일반적인 성적 범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도적질은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것뿐만 아니라, 남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주지 않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십일조 등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것도 도적질이다. 직접적인 도적질은 아니나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둑 심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은 직접 남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다(요일 3:15). 또한, 인격 살인과 영적 살인도 있다. 우리는 다른 교인으로 하여금 믿음을 버리게 함으로써 그의 영적 생명을 살해하는 일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해서 예수님은【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라고 하셨다.
간음은 모이케이아이(μοιχείαι)이며, 부도덕하며 비합법적인 성행위를 의미한다. 간음죄는 아담 이래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파괴 행위라 할 수 있다. 특히,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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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범하느니라”(고전 6:18)1)라고 경고하고 있다.
육체적 간음은 물론, 마음의 간음(마 5:28), 그리고 영적 간음인 우상 숭배(호 5:4, 사 57:9, 겔 16:15, 계 2:21, 9:21 등)도 해서는 안 된다.
탐욕은 플레오넥시아이(πλεονεξίαι)이며 ‘오만한 탐심’, ‘저주받은 소유욕’, ‘남의 것을 갖고 싶어하는 불법적인 욕망’,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웃 사람을 언제라도 희생시킬 수 있는 정신’ 등을 의한다. 한 마디로 말해, 가질 권리가 없는 것을 갖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다(롬 1:29, 살전 2:5, 골 3:5, 벧후 2:3, 눅 12:15).
악독은 포네리아이(πονηρίαι)이며, 재난의 의미를 지닌 악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윤리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추악하고, 사악하며, 야비한 것을 의미한다. 이 낱말은 마귀를 악한 자(마 13:18)라고 부를 때에 사용한 것이다. 특히, 이 말은 해를 끼치고자 하는 악한 마음(마 22:18), 즉 {남을 부패케 하고, 상해를 입히려는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의지이다(W. Barclay). 한 마디로 말해, 능동적인 해악이라는 관념을 포함하는 것이다(Hatch, Trench)}(롬 1:29의 주석).
속임은 돌로스(δόλος)이며 ‘교활’, ‘술책’, ‘간지’ 등을 의미한다. 특히, 이 말은 거짓 중에서도 남을 속여 손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유익을 꾀하는 사악하고 간교한 짓을 의미한다. 이 말은 ‘사기’(롬 1:29), ‘속이기 위한 기교’, ‘계교’(마 26:24, 행 13:10, 살전 2:3)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음탕은 아셀게이아(ἀσέλγεια)이며 ‘음탕’(7:22), ‘방탕’(엡 4:19), ‘음란’(벧후 2:7, 18), ‘색욕’(유 4), ‘호색’(롬 13:13, 고후 12:21, 벧후 2:2)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 말은 ‘굴레 벗은 육욕’, ‘외설’, ‘부도덕’이라는 의미도 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이 말은 성적인 불결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순전히 방자한 거만을 뜻한다. 바실(Basil)이 정의한 바와 같이, 이 말은 훈련의 고통을 참을 수 없으며, 또 참으려고도 하지 않는 영혼의 태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자제를 모르고, 체면도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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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의 고린도전서 6:1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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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한 여론과 명예를 아랑곳하지 않는바 감히 제멋대로 변덕을 부리는 방자한 거만이다. 요세푸스(Josephus)는 ‘하나님의 도성 안에 바알의 신전을 지은 이세벨이 그 말에 꼭 맞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이 말은 명예심도 수치심도 없이, 염치없게도 하나님과 인간을 완전히 무시한 채,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제 손에 넣고자 하는 오만한 이기심을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고후 12:21의 주석).
흘기는 눈(ὀφθαλμὸς πονηρός)은 “시기 혹은 마술을 거는 것 같은 눈초리로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보는 것이라는 뜻이다”(山口 昇). 일반적으로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질투와 시기가 구별될 수 있는 경우에는, 질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할까 보아 두려워하는 것이며, 시기는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를 갖게 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훼방(블라스페미아, βλασφημία)은 3:28의 주석을 보라.
교만은 휘페레파니아(ὑπερηφανία)이며 ‘지나치게’ 또는 ‘넘치게’를 뜻하는 휘페르(ὑπέρ)와 ‘나타냄’, 또는 ‘드러냄’을 뜻하는 파이네스타이(φαίνεσθαι)가 결합된 복합어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 ‘지나치게 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한 사람과 달리, 교만한 사람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지도 못하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이 절대자인 것처럼, 또는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자기 본위의 생을 살아간다. 교만한 자들의 비극은 자기기만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항상 경멸적인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인간은 받아들이시고, 교만한 인간은 물리치시는 것이다(약 4:6, 벧전 5:5, 잠 3:24). 잠언 저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18:12)라고 하였다.
광패는 아프로쉬네(ἀφροσύνη)이며 ‘우둔’,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특히 도덕적 가치 판단에 있어서 어리석어 적합한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山口 昇).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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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하기도 한다”(마경일).
끝으로, 예수님은【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20절을 반복하면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마태의 병행구에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20)가 첨가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문제나 앞의 장로들의 유전의 문제에서, 외적이며 형식적이며 의식적인 규례를 준수하는 것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중시하고, 규례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여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예수님은 종교의 본질과 의미를 왜곡하거나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그 종교적 의식 및 형식을 과감하게 폐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를 정확하게 이해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1)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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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의 갈라디아서 5:6의 주석을 보라.

저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 난해 성구 사전 I, II/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형통의 기도/ 절기 설교집/ 설교집 19권/ 영성의 나눔 I, II. Ⅲ/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T. 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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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1-03 15:52

    오래 전에 마가복음 특강 제45강까지 연재하다 말았는데, 별 문제가 없으면 다시 마가복음 끝까지 연재할 생각입니다. 필자는 물론, 많은 교역자들이 해당 본문의 의미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예화나 실화를 첨가하여 설교나 연속 성경 강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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