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특강 : 제 40 강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07-04-30 22:16
조회
2331
풍성감리교회. 훼이스신학대학(원) 교수. 426-3051)
(저서:신약 주석 시리즈 완간/ 난해 성구 해설/ 형통의 기도/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Salvation Before Jesus Came/ 설교집 17권)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48권의 마가복음 주석서들을 대조 연구하며 집필한 필자의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을 매주 1회씩(주일저녁 또는 오후예배와 수요저녁예배)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매주 1회 가르칠 분량을 올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예화나 실화를 첨가해서 사용하시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여기에 난하주나 헬라어나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40 강>>

12. 제자들의 보고와 예수의 이적들[6:30-56]

이 부분(6:30-56)은 6:6 후반-13의 열 두 제자의 전도의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6:30-33), 오병이어의 기적(6:34-44), 물 위를 걸으신 기적(6:45-52), 그리고 게네사렛에서의 치유(6:53-56)로 구성되어 있다.

가. 제자들의 전도 보고<6:30-33>
    <비교 : 눅 9:10-11>

마가는 세례 요한의 죽음의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바 예수님의 제자들의 전도 보고에 대해, 【30】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라고 하였다.
사도들은 복수형인 아포스톨로이(ἀπόστολοι)인데 본서에서는 여기에만 나타난다. 이 말(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은 글자 그대로 임무나 사명을 받아 파송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보냄받은 자’, ‘대리자’, ‘파송된 자’, ‘전권 대사’ 등을 의미하고, 또한 특수하게 예수님의 12제자를 가리킨다.
사도란 (1) 지상의 예수님에게서 직접 사명을 받은 자(마 10:5, 28: 29. 비교 : 갈 1:1), (2)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이 사실을 증거한 자(행 1:21, 22), (3)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요 14:26, 16:13, 고전 2:10), (4) 그러므로 그들의 권세는 지상에 있고(마 18:18, 20, 요 22: 22-23), (5) 표적을 행하는 권능을 받았으며(행 2:43, 5:15), (6) 그들의 복음 전파의 범위는 우주적이었고 무제한이었다(고후 11:28).
사도라는 칭호를 들은 이들은 12제자 외에도 바울과 바나바(행 14:4, 14), 실루아노와 디모데(살전 2:6) 등이 있다. 또한, {70제자들(눅 10:1 )도 사도로 일컬어졌다는 기록이 있다(Irenaeus, Tertullian). 사도직은 초대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이었다(엡 4:11, 고전 12:28). 본질적으로 사도의 직분은 그를 보내신 분의 위엄을 떠나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A. J. Mason).}(살전 2:6의 주석).
{킬케골은 천재와 사도를 잘 구별하였다. 천재가 되는 것은 그의 내재적 목적 때문인데, 그는 민중과 구별되며 천재임을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도는 전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초월적인 근거인 하나님의 권위를 입고 존재하며, 자기에게 배치되는 역리적 목적 때문에 사도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롬 1:1의 주석).
여기서는 공적 칭호라기보다는 예수님에 의해 특별한 임무를 띠고 파송된 제자들의 특성을 지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도들은 가버나움에 계신 것으로 짐작되는(A. Barnes, E. P. Gould )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 즉 많은 귀신을 쫓아낸 것과 많은 병자를 고친 것(6:13)과 가르친 것, 즉 회개하라고 한 설교 내용(6:12)을 낱낱이 고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의 선교 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흥미 있는 것은 제자들의 보고 내용에 가르침보다 행위가 앞선다는 점이다.

보고를 들으신 예수께 대해, 마가는 【31】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라고 하였다.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는, 예수님이 열심히 일한 제자들을 알아주셨고, 또한 그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음을 보여 준다. 어떤 사람도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조용한 곳에서의 휴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너무 분주하게 일하다 보면, 하나님과 자신을 잊어버리기 쉽다.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열심을 다한 노동과 충분한 휴식이다. 한적한 곳에서의 휴식이란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하며 자기를 돌아볼 좋은 기회이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으로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광야에서의 충분한 휴식 중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받곤 하였다. 예수님도 자신의 인간적인 본성과 자신에게 부과된 막대한 짐 때문에 한적한 곳에 은신하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하셨다(1:35의 주석을 보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쉬게 하신 이유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동적인 서술은 마르코의 전형적인 서술이다”(J. Gnilka, p. 329).

예수님의 지시를 들은 제자들에 대해, 마가는 【32】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 쌔라고 하였다.
한적한 곳은 벳새다를 가리키는 것이므로(눅 9:10),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로 갈릴리 바다의 북동쪽으로 건너간 것 같다. 마태복음 14:13에는 물러간 이유를 세례 요한의 죽음과 결부시키고 있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마가의 설명인 휴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휴식은 이내 방해를 받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 마가는 【33】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배보다 먼저 그 상륙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이 점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는 “호수를 건너는 뱃길은 약 4마일, 호수 위쪽을 돌아가는 데에는 약 10마일 거리이다. 바람이 없거나, 특히 반대 바람이 불 경우엔 배로 건너가는 시간보다 건강한 사람이 호수 위쪽을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수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달만은 자기의 경험에서 요단강은 갈릴리 바다에 흘러 들어가는 하구 부근에 여울이 있어 도보로 건너는 것도 곤란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山口 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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