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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혁의 깃발을 내릴수 없다(2)

작성자
차흥도
작성일
2016-10-08 10:14
조회
1794
1. 감리교개혁을 위해 조직화된 중심세력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는 감리교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그동안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롭게 나갈 수 있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감리교사태를 겪은 후 전용재체제도 역시 소송에 시달렸다.
한번 물러선 이후 개혁특위를 구성하면서 힘차게 다시 출발하였지만 그래서 안정을 찾아 갔지만 역시 소송의 덫에 걸려 무너지고 말았다.

장정개정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위원장의 역할은 막강하다.
가히 감독회장에 비견 할만하다.
그러므로 위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장개위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김모목사가 위원장이라는 이 중요한 자리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역시 소송 때문이었고 이것은 바로 감리교개혁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결국 ‘감리교개혁’이라는 주제를 내건 ‘전용재호’은 이때부터 계속 흔들려 끝내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 흔들리는 ‘전용재호’가 감리교개혁이라는 목표지점까지 무사히 갈수 있는 길은 없었는가?

배가 흔들렸다는 것은 선장이 흔들렸다는 말이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선장이 중심을 잘 잡고 조타수 이하 선원들을 독려하며 나갈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비바람은 능히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선장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이끌어 주기도 하고 때론 견제도 해야 하는 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감리교개혁은 몇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감리호‘라는 커다란 배가 개혁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선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구성원들의 뜻과 힘이 모아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이 세력이 없었다.
이 배의 중심세력이 되고자 하는 일에 감리교 개혁그룹이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장도 흔들렸고 이를 잡아줄 중심세력이 형성되지 않은 고로 우리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개혁특위의 실패는 감리교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고 불행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감리교개혁을 주도해 나갈 중심세력이 있어야 하며 이를 이끌어갈 지도구심이 필요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이번 선거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실패를 하였다.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2. 우리 안에 있는 패배주의를 넘어서야

우리 안에 있는 패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팽배했다.
‘감리교개혁’이라는 아젠다엔 다들 동의하지만 그 실현방법에서 생각이 달랐다.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 들였다.
감리교개혁이라는 커다란 주제에 뜻을 같이 하였고 다만 그 실현방법이 다르므로 일단 서로의 영역에서 실천해 나가자는데 동의가 되었다.

이번 선거는 지독한 학연선거였다.
출발부터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선관위원장은 위원장을 맡기 이전부터 학연선거를 하기로 동의를 한 사람이었고, 학교설립 40년에 감독회장을 내자고 이 학교출신 전현직 감독들이 변칙적 추대행위를 하였고, 이를 공공연히 외치고 다녀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과정 속에서 행해진 여러 불법행위들이 신고되어도, 다 묵살되어도 어느 누구도 이래서는 안된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들 학연선거를 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불법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정책이 아니라 학연에 의존한 선거를 기획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런 작태에 힘 있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였다.

누가 힘 있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는가?
누가 이 불공정한 게임을 공정한 게임으로 바꿀 수 있었는가?
누가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상적인 운동장으로 만들 수 있었는가?
감리교회엔 이를 잡아줄, 시정시킬 사람도 세력도 없단 말인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불공정한 게임을 시정시켜 공정하게 만들 사람은 바로 개혁세력이었다.
이들만이 이일을 할 수 있었다.
서로 개혁의 실현방법은 달랐어도 이일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여 이일은 어느 캠프의 일로만 전락되었고 결과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3. 감리교회는 정화능력이 있는가?

사회법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한다.
사회법으로 나가면 출교를 시키자고 까지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전제를 망각하고 있다.
전제는 우리 감리교회가 자정과 정화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교회가 이런 자정능력이 있다면 누가 사회법으로 나간단 말인가?
감리교회에 이런 정화능력이 있다면 어느 누가 사회법으로 송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만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며 어불성설이다.

스스로가 자정하지 않으면서, 스스로가 정화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있으라고만 한다.
이렇듯 자정능력이 없다면 사회법으로 나가야 한다.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당연히 사회법으로 가야 한다.

감리교회에 좋은 전통이 있었다.
서로들 간에 분쟁과 다툼이 있었어도 ‘법이요’하면은 다들 물러섰다.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이 좋은 전통이 무너졌다.
‘힘으로, 숫자로’ 밀어붙이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위원회의 숫자만 확보하면 다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감리교 사태가 일어났고, 우리 감리교회는 엄청난 수모와 창피를 당했다.
법으로 안되는 일을 ‘힘으로, 숫자로‘ 밀어붙이는 일이 사회법으론 통용이 되지 않아서 결국엔 장로교 장로가 우리 감리교회의 대표가 되지 않았던가?

이런 엄청난 수모와 창피를 당하고서도 감리교를 이끌어왔던 주류세력은 변하지 않았다.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단과 같았다.
법으로 안되는 줄 알면서도, 불법인줄 알면서도 서로 모른체 해줬다.
그러면서 사회법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소리만 높였다.

송아지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자는 미련한 자란다.
그런데 송아지를 잃고서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자를 뭐라 하는가?
우리는 외양간이 다 무너졌어도 이를 못본척 하는 참으로 무지한 집단 아닌가?

이렇듯 스스로가 정화하지 않고 울타리를 고치지 않는다면 외부의 힘을 빌어서라도 고치고 정화되어야 한다.
다시한번 창피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
또 다시 엄청난 수모를 받더라도 말이다.



전체 16

  • 2016-10-09 19:11

    하물며 정춘수 감독님도 교단 이름을 혁신교단이라고 햇다지요.


  • 2016-10-12 23:05

    제 가명이 기수입니다.


  • 2016-10-08 10:16

    두번째 글이에요.
    한두번을 더 쓸 예정이고요.
    그런데 오해가 생겼군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우리\'란 그동안 감리교의 점진적인 변화와 혁신을 바랬던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2016-10-08 12:13

    <감리교회의 정체성 > 게시글-표기의 일관성 결여
    1. 감리교개혁, 감리교사태,감리교역사
    3. 감리교회는 자정능력이 있는가
    * 그래서 감리교 사태는 일어 났고 우리 감리교회는 ...
    * 댓글: ...그동안 감리교의 ...

    <감리교> = 통일교-안식교-원불교-천주교-유교-불교 등 반렬이 결코 아닙니다
    공식명칭은 \'기독교대한감리회\'로 하돠 \'감리회\'만 별도로 사용할 때는 \'감리교회\'로 표기한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예문1] 9면 예배용어 사용의 통일 준칙 7)
    @ KMC은퇴 11년차, 은퇴목사인 \'노년의 푸념\'\'( an old man\'s repeated grumbling)입니다


    • 2016-10-09 14:20

      세세하게 집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소제목은 필자의 의도가 있어서 그리하지 않았을까요?


  • 2016-10-08 12:49

    잘 읽엇어요.
    평은 나중. 두 줄 정도가 거슬리긴 해요.


  • 2016-10-08 13:29

    차흥도 목사님!
    지난번 덧 글 표현대로 목사님의 지나온 과정을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18세기 미국교회를 구한이로 인정받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당시를 그리 평했다 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커다란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배우는 자신이 외운 대사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자신의 대사로 살아야할 의무는 더더욱 없다.
    그의 대사는 무대의 막이 내리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배우가 아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만 하는 이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성모, 박종우 목사를 비롯한 일부사람들의 엽기적인 행동에 대하여 두둔하는 것으로 오해될 표현을 하심은 염려가 됩니다.
    저들의 행위는 책망과 함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일이지 권장할 일은 아닙니다. 거론한 두 사람은 우연인지, 섭리인지 모르나 제게도 보여주신 바가 있습니다. 자신의 분수들을 알아 엎드릴 일이지 함부로 부화뇌동할일이 아닙니다.
    어제도 “명예훼손”운운 하는 글에 덧 글단 대가로 가엾은 분의 진면목을 그대로 경험했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겁니다.
    진정우리가 대속 받은 죄인임이 분명하다면 행할 일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그 다음은 모든 것 자신의 심은 대로 책임 질뿐, 목소리높일 일이 아닙니다.
    - 긴 글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덧 글 쓸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승리하십시오. -


    • 2016-10-09 14:18

      당당뉴스에도 같은 댓글을 올리셨군요.
      저도 그곳에 올린 댓글을 이곳에도 올리겠습니다.

      오목사님의 충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검은 것을 검다 하고 흰것을 흰다고 주장하는데 유독 우리 감리교회에서는 검은 것도 희다고 하니 사회법으로 나가라고 떠미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일 검은 것은 검다하고 흰것은 흰다 한다면 누가 사회법으로 송사할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잠시는 아프겠지만 진정으로 감리교회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우리가 좀더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 2016-10-08 15:50

    \'전제는 우리 감리교회가 자정과 정화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란 면역력에 대한 믿음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을 합니다.
    감리교회도 면역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기에 자정과 정화능력을 상실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리며, 믿음이 우리를 회복시키며, 믿음이 우리를 구원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인 위대한 감리교인들입니다.
    그러니 그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 믿음을 싸구려로 취급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없는 것 같으나 있으며, 잃은 것 같으나 늘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리교회엔 아직도 어느 교단보다 더욱 강하고 선명한 자정능력과 정화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금번 당선된 신임 감독회장님도 나름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하나님의 뜻과 감리교인들의 성원으로 당선되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개혁을 할 것입니다.

    개혁이 개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감리교회, 우리들의 믿음이 진정한 개혁의 첫걸음(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2016-10-09 14:16

      믿음이 중요하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으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분별해야겠지요!


      • 2016-10-09 19:07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겠다 하셨지요?
        그러면 묻겠습니다.

        1. 감리교회의 개혁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2.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개혁의 내용들이 하나님의 계시이던가요?
        3. 만약 그 개혁이 하나님의 뜻이라 한다면 어찌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이 실패를 하였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실패하시는 분이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이라 만든 우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아니하시며 실수조차 하시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4.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개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목사님의 뜻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목사님의 개혁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지 말고 내려 놓으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는 개혁이십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십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목사님이 행하실 믿음의 행함은 목사님의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목사님이 지적하심과 같이 죽은 믿음입니다.


        • 2016-10-11 00:00

          감리교회의 개혁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지요?
          예, 감리교회만이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한국교회 전체의 회개와 개혁이 하나님의 뜻이지요.
          개혁의 내용이 하나님의 계시냐고 물으셨지요?
          저는 다시 \'노목사님은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받냐?\'고 묻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할께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실패했냐고 하셨지요?
          하나님의 뜻은 실패하지 않지요. 선거후에도 계속되고요.
          실패한 것은 그것을 이루려는 사람의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막으려는 세력들의 힘이 더 쎄서 현 단계에서 실패했지요.
          현단계에서 실패한 것이지 영원한 실패는 아니지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저보고 내려 놓으라 하셨지요?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은 주어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내려 놓을수 있지요.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이가 무엇을 내려 놓을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부족한 자들을 들어 쓰신다는 믿음을, 돌들이라도 소리치게 하신다는 믿음을 어찌 내려 놓을수 있을까요?
          노목사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이렇게 관심을 표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때리는 시어미보다는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처럼 당사자들 간의 토론이 될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2016-10-11 20:22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섬리와 경륜 가운데 이루어지는 세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의 이치 가운데 드러나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개혁이라 표현한다면 주 안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며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 진정 하나님의 뜻인 개혁을 주장하시려거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자고 외치십시요. 하나님의 뜻은 심판과 정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고자 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덥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뜻이며 감동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선거의 결과가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금번 선거의 결과 또한 하나님의 뜻이자 하나님의 승리이십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전명구 신임 감독회장님 되심이 하나님의 승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명구 목사님을 감독회장으로 선출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승리라는 것입니다.

            성모 목사님이 \'선거무효소송\'을 총특재에 냈으니 기다리십시요.
            악한세력이 강해서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력이 제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은 악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실 것이기에 악한 자가 승리한 것처럼 보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써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을 부러워 하거나 그들과 함께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명구 신임 감독회장님이 악하다는 것도 아니며 측근들이 악한 세력이라고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렇단 뜻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현 단계에서 실패는 실패입니다.
            스스로도 실패라 하시면서 왜 실패가 아닙니까?
            내일이 있으니깐 실패가 아니라 하실 건가요? 미래가 있으니 현재의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구요? 그것은 괴변입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현 실패가 감자기 성공이 될 순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승리했고, 오늘도 승리하시고, 내일도 승리하실 것이며, 미래에도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약 목사님이 현재의 승리가 있었다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실패가 있었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목사님의 뜻이기에 실패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실패를 내려 놓으시란 말씀입니다.
            내려놓음이 진정 기득권자의 전유물이라면 어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네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하셨을까요?
            기득권자만이 내려놓을 것이 있음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도 내려 놓을 것이 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부자임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며 가난한 자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승리했다 여기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승리를 내려놓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찬양입니다.
            실패했다 여기는 사람도 겸손하게 자신의 실패를 내려놓고 주님의 역사와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목사님이 진정 돌이라고 여기십니까? 그런데 어찌 돌이 소리를 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목사님이 돌과 같이 보잘 것이 없는 분이라 여기십니까? 그런데 어찌 한국교회의 개혁을 논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부르짖게 하시던가요?
            그런데 어찌 목사님은 현재의 실패를 말하고 계심입니까?

            예수님은 비록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보이는 십자가 상에서 도리어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하여 침을 뱉고 모욕하며 저주를 퍼붙는 자들에게 현재의 실패를 말하심이 아니라 현재의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이다.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내가 다이루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욕심을 좇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에 실패의 눈물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지난번 공청회 때 목사님은 저를 몰라 제 얼굴을 보고도 모르셨겠지만 저는 목사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일면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엔 누구신가 몰랐지만 엘리베이터도 같이 탔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목사님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누구신지 몰라 인사를 드리진 못했습니다.

            제가 말리는 시누이가 되었는가 봅니다.
            시어머니가 때리는 데 시누이라도 말리는 것을 고마와 해야하지 않겠는지요.
            그것은 시누이의 마음을 오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시누이처럼 제가 밉게 보이셨다면 용서하십시요.
            제가 목사님을 챙피를 주거나 모욕을 하려고 댓글을 단 것은 아님을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 2016-10-12 00:17

              무엇이 괴변인가요?
              노목사님의 이야기대로라면 종교개혁도,예언자들의 행위도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군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림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실패가 아닌가요?
              우린 다른 눈으로 봐야지요, 그토록 이야기 하시는 믿음의 눈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는 감독과 위원장들 처럼 권력과 지위를 가진 힘있는 자들에게 하세요.


              • 2016-10-12 00:41

                그리고 앞의 댓글에도 이야기 했지만 노목사님과는 더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네요.
                당사자는 사라지고 갯꾼이 나온 격이 되고 말았잖아요?
                게다가 제가 노목사님의 신앙의 지도를 받을 만큼은 아닌 것 같군요.
                그런 가르침은 목사님을 따르는 교인들에게 잘 전해주시지요.
                더 이상 댓글을 사양하겠으니 이해해 주세요.


              • 2016-10-12 22:25

                제가 언제 종교개혁도 예언자들의 행위도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했던가요?
                어쩌면 종교개혁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언자 요나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도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당사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 하고만 얘기하고 싶으시다면 직접 찾아가 말씀을 나누십시요.

                제가 신앙지도를 했다 하셨는데 그리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개혁을 논하시는 분이 누군가가 신앙지도를 했다고 나는 당신의 신앙지도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함이 진정한 개혁자의 모습이던가요?

                어쩌면 칼빈은 그리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루터도 그리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단자라 불리는 모라비안교도들에게 귀를 열었고 마음을 열었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읽으려 했으니 말입니다.

                웨슬리가 모라비안교도보다 학력이 부족했을까요?
                웨슬리가 모라비안교도보다 성경에 무식했던 것일까요?
                웨슬리가 모라비안교도들보다 덜 헌신적이었던가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로부터 지금껏 듣지 못한 것을 들으려 했고
                지금껏 지도받지 못한 신앙의 지도를 받으려 했습니다.

                칼빈의 개혁자가 되려 하지 마시고, 웨슬리의 회심의 뒤를 따르는 감리교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신앙의 지도라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이것을 보잘 것 없는 목사의 주제넘는 가르침이라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웨슬리의 회심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면 진정한 감리교도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개혁을 하기 전에 먼저 진정한 감리교도가 되는 것이 우선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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