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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를 쌓아 가는자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6-10-18 06:01
조회
1424
로마서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귀족인 부자가 화관을 쓰고 연회석에 앉아서 환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온 몸에 헌데를 앓고 있는 나사로라고 하는 이름의 거지가 개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연회석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누구에게 더욱 친절함과 관심을 보였겠습니까?
부자 귀족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을까요? 아니면 초라한 거지 나사로였을까요?

아마 인간적으로 보면 부자귀족에게 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우애의 인사를 나눴겠지요.
그렇지만 거지 나사로에게는 본체만체하고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속마음을 보시지, 겉모양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려하시는 것은, 인격이지 명성이나 평판이 아닙니다.
인간의 눈으로 본다고 하면 외형적인 차이가 있을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눈으로 보실 때에는 외형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속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관심이 인간 외형에 많으시다면, 모든 사람들을 다 아름답고 건강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지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자나 정신박약자나 허약한자들은 억울한 피조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외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동물들 가운데서도 못생기고 둔하고 우습게 생긴 동물들은 창조하시지 않으셨을 것이고, 천대 받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편견은, 아름답고 귀엽고 예쁜 동물들만 창조하셨을 것이고,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만의 천국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외모보다는 우리의 마음중심 속에 있는, 인격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열정과 소망에 관심이 더 많으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눈으로 보면 사람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눈으로 보신다면 다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무엇인가 차이를 둠으로 좀 경한 심판을 원하고 남보다 나은 지위를 얻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에, 그 누구도 자기의 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허지만 인간들은 너무도 큰 오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오산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에 대하여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끼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인자를 자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과 인자를 가지고 대하시는 하나님을,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인자를 자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과 인자를 가지고 대하시는 하나님을,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자란 애정이 넘치는 친절을 말합니다.
길이 참는 것은, 어떤 미움보다도 사랑이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어떤 범죄와 무자비한 행동에도 하나님은 사랑과 친절로써 인자와 용납과 인내를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친절과 사랑은, 인간들에게 진노를 내리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형편에서의 인간들의 모습을 날카로운 성령의 검으로 해부하여 드러냄으로써 깨우쳐 주려고 합니다.

인간들은 고집으로 회개치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그 본성이 온유하시고 은혜로우시며 관대하시고 긍휼이 여기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보복적인 행위에 있어서, 더디시고 인내하시며 종종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과 정죄함을 보류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산보다 더 높고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하나님의 인자와 인내와 용납을, 대수롭지 않게 너무나 쉽게 생각을 하는데서, 결국 하나의 습관적으로 고집에 사로잡혀 자기의 잘못은 뒤에 두고, 남의 잘못만 가지고 떠들게 됩니다.
자신의 도덕주의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는 바쁘면서도, 자신에게는 적절한 판단을 잊어버리고, 내리지 못한 이 심판관에게 하나님 자신의 판결을, 바울은 바로 여기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판결이, 지금 사람에게 발설된 것은 그를 철저하게 부수어 마침내 실제로 회개에 이르러 이제와 그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율법적인 경고의 외침은, 결코 사람을 그의 멸망가운데 내어 던져선 안 된다는 사명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못 오해하여 바울이 사람을 멸망가운데 내어 던져 끝장내게 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인간들은 구원받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인데, 스스로 지옥으로 향하여 달려가는 상태에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희랍어에서 고집이라는 말은, 스클레로 레이스라는 말인데, 의학의 용어로써 동맥경화라고 하는 질병에서 쓰이는 단어입니다.
동맥경화에 걸리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더욱이 마음의 경화에 걸리면 더한데, 영적경화에 걸리면 이미 죽은 상태요, 지옥의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죄로 완전히 굳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죄로 이미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도 녹이기가 어렵고 외부의 어떤 영향으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침략군들 앞에서 성을 수비하는 사람들이, 성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지키기만 하듯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요새화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본문에서 고집이라고 하는 단어를, 회개의 반대로 하나님의 인자와 용납과 인내를 오해하고 무시해 버리는 습성이, 고집 화 되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고집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은 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쏠립니다.
어떤 예언자의 경고도, 성경의 말씀도, 자기들에게 임하게 될 진노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더욱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안도감과 고집스러움 때문에, 하나님을 도외시하다가 징계를 받을 때가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진리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하게 자기의 고집을 꺾어야 될 터인데, 자기의 고집만 주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말은, 고집과 반대되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군대의 용어로 “뒤로 돌아 가”라고 하는 말이 곧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믿고 나아가던 그 길을, 180도로 회전하여 생명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영생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모든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 넓으신 사랑의 품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거역하고 떠나갔던 탕자가, 다시 아버지를 향하여 돌아가서 그 넓은 아버지의 품에 깊숙이 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참 안식과 위로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고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고집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길이지만,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지은 죄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됩니다.
변명이나 핑계는 통하지 아니하고, 실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죄의 분량이 많고 적음에 문제가 아니고,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회개하지 아니함에 멸망과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다윗이 간음과 살인의 죄를 회개할 때, 용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한쪽 강도가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을, 의인보다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진노의 날은 반드시 임하게 됩니다.
진노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공정한 진노가 부과해야만 할 형편을 함축적으로 의미합니다.
세상에 어느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 저축하겠습니까?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큰 보화를 축적하듯이, 자신에게 이롭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를 갈수록 더욱 쌓아올리고 있다는 말인데, 결국은 이 진노가 남김없이 자기 머리위로 떨어지도록 모아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 진노하는 보화를 할 수 있는 대로 더 쌓아올리며 분량을 늘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노의 분량은 “고집과 회개치 않는 마음”과 비례함으로, 지독한 풍자지만 그는 더없이 고집불통으로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갈수록 더욱더 스스로 받을 진노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의 고집스러운 열광에 의해서 쌓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더욱더 많이 판단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하나님께서 그 공로 때문에 자기를 어떠한 진노의 심판에서든지 피하게 하실, 크나큰 도덕적 공로의 보화를 축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사람의 완악하고 패려한 마음을 뉘우치고 마음을 깨뜨려 회개시키므로 녹여버리려고 그런 망상을 부수고 허망한 사람을 혼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을 무시한 결과 하나님의 진노의 부요함을 쌓았으니,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을 악용하여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을 다 소모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범죄행위, 고집, 회개하지 아니한 것들은, 저수지에 저수량을 점점 불어나게 하는 일이며. 드디어 언젠가는 위험 수위에 이르게 되는 때가 오고야말 것입니다.
언젠가 저수지의 땜이 터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정해놓으신 진노의 날인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행해지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본성이 온유하시고 은혜로우시며 관대하시고 긍휼이 여기기를 좋아 하시는 분이신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것을 악용하여 스스로 형벌을 자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진노와 의로우신 보응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원 자이신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사실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인애하신 분이라고해서, 이러한 사실이 중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어떠한 타협도 하실 수 없으며, 반역과 충성된 순종과의 차별을 그저 보아 넘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보편적이고 공평하시기에, 모든 인류에게 다 같이 적용하십니다.

유대인에게 대한 교회가 따로 있고, 이방인을 위한 규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특권이 있고 다 같이 특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견책과 정죄를 피할 수 있으리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인한 진노가, 불원한 장래에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움직이는 현상과 징조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그 날짜와 시간은 알지 못했으나, 반드시 임하여 심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의 예언에도 무시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계속 범죄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갔습니다.
드디어 홍수가 임하였을 때, 노아의 8식구만 구원을 받았고 온 인류는 멸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앞에서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도, 시대적인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임박한 진노가 가까웠음을 증거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외치고 증거 하는 것을 그들이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요,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진노를 받는다면, 우리가 사명을 감당치 아니한 책임을 추궁 받게 될 것입니다.
무한정 하나님의 자비와 관용과 인내를 바랄 수 없습니다.
바울의 비유가운데 “돼지를 잡아먹기 위해 살찌운다.”는 비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그냥 넘길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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