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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을 바로 알자!

작성자
유은식
작성일
2015-10-24 23:05
조회
1314
감리교협성신학교 학교법인 삼일학원 설립약사

감리교협성신학교설립

기독교대한감리회에는 감신, 목원, 협성이란 세 개의 신학대학이 있다. 이 세 학교의 초기 이름을 보자. 각각의 그 이름은 감리교신학교(서울), 감리교대전신학교(대전), 감리교협성신학교(수원)이다. 왜 한국감리교회의 선배들은 이렇게 학교명을 지었을까? 마치 서울 감리교신학교의 분교로 목원과 협성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모두가 감리교신학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협성이 삼일학원에 위탁해 신학교육을 세웠다느니 협성은 삼일학원의 학교라느니 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협성신학교의 설립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한 자료는 박근수 감독 회고록, 상동교회 111년사, 협성신학교 요람, 기독교세계,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록, 삼일학원사 등을 참고하였다.



I. 6개신학교 탄생

1974.10.24 12차 총회/ 고교졸업 이상의 학력자들을 위해 양신학교(감신과 목원)에 특별학과 두자고 결의. (제12회 총회록 p. 89) 그러나 정규신학교 안에 특별학과 둠이 위배된다는 문교부의 통고(기독교세계 1977년 3월호 p. 79)

1976.12.16 총리원 각 국장 및 연회총무의 선교행정협의회/ 교단직속 신학교건립하기로 결의로

1977. 2. 7 총회 실행위 결의 감리교 서울신학교 설립
1977. 3. 5 갱신총회에서 총회신학교 설립
1977. 3.14 동부연회결의로 원주동부신학교 설립
1977. ? 1973. 4. 2에 설립된 한국성서신학교를 연회신학교로 인준
1978. 3.14 총회실행부결의로 남부신학교 설립
1978. 3.14 총회실행부결의 동부신학교 설립


II. 무인가신학교 정비 및 육성 공고

1980.10 전두환 제5공화국 이규호문교부장관 무인가신학교 정비 및 육성방안 공고



III. 6개신학교 통합결의

1980.11. 박대선, 이계준 이규호장관 면담 6개 신학교 통합하여 1개신학교 인가 약속
1980.12. 4 6개신학교교장회의/ 수도권 신학교 1개로 통합, 남부 원주동부 한국성서 분교로 결의


IV. 학교명칭 감리교협성신학교(가칭) 결의

1980.12.16 총실위/ 기독교대한감리회 협성신학교(가칭)명칭결의 중부 남부 동부는 분교로
1980.12.16 총실위/ 단일 학교법인 대한감리회 신학원 구성결의
1980.12.16 총실위/ 1981년 내에 학교법인 구성키로 하고 협성신학교 추진위원회 조직


학교법인 설립과 단일학교로 협성신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6개 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은 이에 동의함.

1980.12.23 서울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이 단일법인 단일학교 체제로 통합에 동의서 제출
1980.12.23 동부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이 단일법인 단일학교 체제로 통합에 동의서 제출
1980.12.23 총회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이 단일법인 단일학교 체제로 통합에 동의서 제출
1980.12.26 원주동부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이 단일법인 단일학교 체제로 통합에 동의서 제출
1980.12.26 남부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이 단일법인 단일학교 체제로 통합에 동의서 제출

이에 1980.12에 감리교협성신학교설립을 문교부에 인가신청을 1차로 했으나 반려 됨(박설봉감독회고록 p 130)



V.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감리교협성신학교 인가 준비

제대로 신청하기 위해
1981. 3. 학교법인 삼일학원 설립자금으로 무상출연 재산출연증서 발부 함.

각 서

금번 설립코자하는 학교법인 삼일학원(가칭)에 기독교 대한감리회 본부 교육위원회 소유(매입 중)의 재산을 무상으로 출연하여 협성신학교(가칭) 설립을 위한 시설 설비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기 이에 각서 합니다.

1981년 3월 일
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 교육국
위원장 이상호(직인)
문교부장관 귀하


1981. 3. 교육국위원장 학교법인 삼일학원과 협성신학교 설립위해 재산무상출연과 시설 각서
1981. 3.27 교육국 태화기독교사회관 입석캠프장을 매각 협성신학교 기본재산 양도 확인서 발급
1981. 3.27 오경린감독회장 명의로 학교법인 인가신청 추천서 문교부에 제출
1981. 2차로 학교설립인가신청을 했으나 반려됨.
1981. 7.10 감독회의 무인가신학교 대책위 신학정책협의회/ 6개신학교 통합 단일신학교 설립결의

1981. 7.21 각 신학대학장 성명서/ 군소교단 신학교육을 위한 위탁교육(박설봉감독회고록 p 125)

각 신학대학장 성명서
-무인가 신학교 정비에 관하여-
1981.7.21

1. 금번 문교부가 시행한 무인가신학교 정비정책은 원칙적인 면에서 교회의 장래와 신학교육의 자질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2.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야기된 군소교단의 교역자 양성문제가 대두된데 대해서는 그 실정을 감안하여 우리 신학대학들이 군소교단의 목회자 지망생을 적극 받아들여 위탁교육에 응할 것을 제안한다.
3. 문교부는 차제에 신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그 본래의 의도대로 신학교육 육성에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기 바란다.
4. 이 문제의 완결을 위해서는 문교부는 교계지도자, 당사자 그리고 신학대학협의회 사이에 격의 없는 협의를 거쳐 원만히 해결되기 바란다.

감리교신학대학장 박봉배
강남사회복지학교 교장 선우남
그리스도 신학대학장 이지호
목원대학 학장 남기철
삼육대학 학장 김종화
서울신학대학 학장대리 이상훈
성미가엘신학원 원장 윤 환
장로회신학대학 학장 이종성
한국신학대학 학장 박근원
한국침례신학대학 학장 정진황

여기서 위탁이라 함은 무인가 신학교가 인가받기까지 신학교육을 위탁하면 위탁을 받아 교육을 시켜주겠다고 정규신학교 학교장들이 무인가 신학교에 제안한 것임. 만일 이것으로 감리교협성신학교의 신학교육을 삼일학원에 위탁한 것이라면 삼일학원 신학대학교도 아닌 일반 삼일중고등학교 재단이므로 신학교육을 시킬 자격이 없는 단체임‘


태화 캠프장 재산을 증자하여 서울신학교에 양도하여 31학원 명의로 세번째 신청함

1981.11. 7 태화캠프장 125,000,000원에 구입 서울신학교에 양도(제15회 총회록 p 118)
1981.12.24. 학교법인 협성신학교 구성이 어려워지자 재단법인 31학원 명의로 3차로 재신청.


1982. 3.17(2시) 신학교육 정책위 및 6개신학교 합석회의(박설봉감독회고록 p 126)

신학교육 정책위원회 및 6개 신학교장 합석 회의록
1982.3.17
<1982년 3월 16일 신학교육 정책위원회의 건의로 3월 17일 14시에 긴급회의를 소집하다.>


사회: 오경린 감독회장
출석: 신학교육정책위원 – 박설봉, 오경린, 라사행, 박봉배, 박대선, 남기철, 서성옥
6개 신학교 교장 – 박대선, 마경일, 김진수(김규태 대리)

오경린 감독회장의 사회로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의 의견을 교환하다.

1. 약정서를 수정하여 가인가 받은 후 정식인가를 받을 때에 학교법인 협성신학원 재단으로 정식인가를 제출하자.
2. 이미 문교부에 제출한 서류의 명의를 변경할 수는 없을까?
3. 선 인가 후에 보완하는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여러 가지 의견을 가지고 토의 하다가 신학교육 정책위원회에서 작성한 약정서를 수정하여서 6개 신학교장과 최종적으로 별지 약정서와 같이 합의를 학교법인 삼일학원 재단명의로 신청한 것을 동의하여 3월 23일에 가칭 협성신학교 인가 추진위원과 6개 신학교 교장회의는 중지키로 했다.

1982.3. 17

신학교육 정책위원회 감독 회장 오경린
교육국 총무 라사행


오경린감독은 박근수감독과 감리교협성신학교설립을 삼일학원이름으로 문교부에 신청하나 협성신학교 운영은 삼일학원과 무관하다 약정하다.

1982. 3.17 오경린감독회장과 박근수삼일학원 이사장 약정서 체결(박설봉감독회고록 p 127)

약정서
1982년 3월 17일

협성신학교의 “학교법인 협성신학원”의 재단이 독립하여 학교법인으로 조직될 때까지 학교법인 수원삼일학원 재단과의 관계를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약정하고 약정서 2통을 작성하여 교환한다.

1. 3.1학원이 증재로 출연한 자산인 협성신학원의 부동산은 협성신학원 독립재단을 구성할 시는 협성신학원의 무조건 상환한다.
2. 3.1학원은 협성 신학원 자산과 신학교 운영에 일체 간여치 않고 재단 및 기타 관계되는 행정 처리는 무조건 승인하여 준다.
3. 협성신학교 운영은 별도로 협성신학원 이사회를 조직하여 정관, 학칙의 제정, 교장, 교수임면, 기타 모든 사항을 주관하고 처리한다.
4. 정신인가 신청 시에는 협성신학원 독립재단을 단독으로 형성하여 이를 신청한다. 단, 독립재단이 불가능할 시는 협성신학교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그 거취를 정한다.
5. 이상의 약정서는 협성신학원의 독립재단을 구성할 때까지 유효하다.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 64=8 경기도 수원시 매향동
감독회장 오경린 이사장 박근수

1982. 3.18 오경린감독회장 이름으로 약정서 문교부 보고
1982. 3.23 가칭 협성신학교 인가 추진위원과 6개 신학교 교장회의는 중지하기로 함.



VI. 학교법인 삼일학원 및 감리교협성신학교 인가받다.

학교법인 삼일학원 감리교협성신학교 가인가를 받다. 조건은 아래와 같다.
1982. 4.30 학교법인 삼일학원 설립 승인 감리교협성신학교 가승인.(박설봉감독회고록 p 128)

협성신학교 문교부 승인서
수신 : 기독교대한감리회 협성신학교 설립대표 박근수 귀하
제목 : 학교계획 설립승인

1. 무인가신학교 정비 및 육성방안에 따라 귀하께서 제출한 학교시설 확보계획을 검토하여 별첨과 같이 학교설립계획을 승인하니 교육관계법령에 의거 학교설립에 필요한 제반조건을 이행하시길 바라며
2. 본 학교 설립준비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승 인 서
수신 : 기독교대한감리회 협성신학교 설립대표 : 박근수
귀하가 81.12.24자로 제출한 학교시설 확보계획에 대하여 교육법 제85조 및 학교설립인가 사무처리 규칙 제3조 규정에 의거 다음과 같이 설립계획을 승인함.

1982년 4월 30일
문교부장관

1. 학교의 명칭 : 기독교대한감리회 협성신학교
2. 학교의 종별 : 대학에 준하는 갑종학교
3. 학교의 위치 : 경기도 남양주군 수동면 운수리 산 1-4
4. 설치학과 및 정원 : 목회학과 40명
5. 개교예정 년원일 : 1983년 3월 1일
6. 승인조건 :
가. 설치학과 및 정원을 3개학과 120명으로 신청하였으나 목회학학과 40명으로 할 것.
나. 본 승인서외 학교의 위치에 대학설치 기준령이 정하는 교지, 체육 및 교사 등 교육시설, 설비를 조성 확보할 것.
다. 교육법 시행령과 대학설치 기준령에 정하는 교원과 사무직원을 확보할 것.
라. 사립학교법과 동법 시행령 및 학교법인의 학교경영 재산기준령에의한 수익용 기본재산을 기준액 이상 확보할 것.
마. 확실한 재원조달 확보내역을 학교법인(삼일학원) 설립허가 신청서에 제출할 것
바. 사립학교 법 제10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법인 설립허가를 1982.5.31.까지 신청할 것.
사. 이상의 조건을 이행하고 교육법 시행령 제55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설립인가를 1982.9.30.까지 신청할 것
아. 학교시설확보 계획 내용에 허위사실이 발견 되거나 학교법인 설립허가와 1983 학년도 개교를 위한 학교설립인가를 받지 못할 때에는 이 승인은 효력을 상실함.


1982. 5.13 관계신학교 교장회의(박설봉감독회고록 p 131)(기독교세계 6월호)
학교법인은 3.1학원 재단에 증자하여 계속한다.
별도 기본재산이 준비되면 학교법인 협성학원재단을 구성과 동시 1982.9.30.까지 신청한다.
또 상동교회의 재산
상동교회 후면 103.1평,
시흥군 군자면 신부리 산1-4 임야 14,400평,
같은 곳 309번지 전 193평을
유지재단 이사회에 요청하여 3.1학원에 증자 출연하기로 동의했다.
(단 31학원이 증자한 자산 중에서 앞으로 독립자산을 구성할 시에는 상동교회 자산을 제외키로 했다.)


1982. 5.25 협성신학교 설립추진위원회(박설봉감독회고록 p 131)
오경린감독회장과 박근수이사장과의 약정한 약정서대로 진행한다는 재확인.


1982. 9.14 기독교대한감리회 연회신학교 교장 협의회(박설봉감독회고록 p 132)


대한감리회 연회신학교 교장협의회 보고서
1982.9.14
1982년 9월 14일 14시에 감독회의실에서 오경린감독회장 사회로 당면문제를 다음과 같이 토의한 결과 신학교육정책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하다.
때 : 1982.9.14. 14시
곳 : 감독회위실
참석자: 서울신학교장 - 박설봉
총회신학교장 - 마경일
교육국 총무 - 라사행
남부신학교장 - 김규태
감독회장 - 오경린
동부신학교장 - 박대선(불참)
협의안 : 협성신학교의 가인가 및 정식인가를 받기위하여서는 약정서에 의하여 9월 30일까지 독립재단구성, 정식인가, 기존 신학교의 운영문제 등을 진지하게 토의하다.


독립재단 구성 건
현재 출연하는 자산이 없으므로 학교법인 3.1학원 재단으로 9월 30일 이전에 정식인가서를 제출하기로 하다.
(참고 : 전 태화캠프장 약 5만여 평 약 200,000,000
31학원 재단 중재의 잉여자산 약 250,000,000
수원시의 대지 320평 약 250,000,000
상동교회의 대지 103평 약 1,100,000,000
1) 독립재단 구성은 1985년까지 연장하여 적극 교단적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한다.
2) 기존 연회신학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에서 새로운 정책이 수립시 까지 현상을 유지키로 하다.
3) 감신 및 목원대학 신학입학생은 대학졸업생을 받도록 연구할 것을 건의키로 하다.
4) 감신 및 목원대학신학과에 특수선교의 교역자를 양성하는 정책수립을 건의키로 하다.
5) 양 신학대학의 대학원 입학자격
각 연회신학교 졸업생도 타 대학 졸업생과 동등자격을 진정하여 줄 것을 건의키로 하다.(학위는 제외)

1982.9.14.

기독교대한감리회 연회신학교 교장협의회
위원장 : 오경린(감독회장)/ 서기 라사행(교육국 총무)


1982. 9.17 기독교대한감리회 협성신학교 운영이사 정관 제정
제5조(자산의 구분)
②협성신학교의 재산은 독립재단을 구성할 때까지 학교법인 삼일학원에 위탁한다.

여기서의 위탁이란 감리교협성신학교의 재산을 독립재단 형성 시 까지 삼일학원에 위탁한다는 것이다. 신학교육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잠시 협성신학교 설립을 위해 삼일학원 재산을 협성신학교에 빌려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드디어 협성신학교가 설립인가가 되었다.


1983. 3. 4 학교법인 삼일학원 및 감리교 협성신학교 설립 정식인가

이렇게 감리교협성신학교 설립인가가 되었다. 위 과정을 보면 기독교대한감리회가 학교법인 삼일학원에 신학교육을 위탁한 사실이 없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주체로 감리교협성신학교를 설립했다. 다만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중고등학교 령에 준한 재단법인 삼일학원에 의지해 감리교회 재산을 증자하여 대학령의 학교법인 삼일학원을 인가받아 협성신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VII. 감리교협성신학교 운영(상동교회 111년사 p. 402-405, 협성신학교요람 p. 15-17)
1983. 3. 4 감리교 협성신학교 개교
1985. 1.15 4년제 대학 학력인정교로 지정 획득
1985. 9.12 입석캠퍼스 준공
1987.11. 9 수원 봉담면 상리에 대지 67,681㎡ 매입
1988.12.31 봉담 캠퍼스로 이전
1991.11.15. 협성신학대학으로 개편인가
1993. 2.22 협성신학대학교로 명칭변경
1994. 9. 1 협성대학교로 명칭변경
2002. 2002년도 부담금 협성대학교 발전기금 40억 사용




학교법인 삼일학원 설립


감리교협성신학교 설립인가의 조건이 된 학교법인 삼일학원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그 재산이 상동교회 재산인지 감리교회의 재산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위에서 참고 했던 삼일학원 55년사, 80년사, 상동교회 111년사(p. 392-401) 를 참조하였다


I. 삼일학교 설립인가

1903. 미북감리회 소속 보시동교회(수원종로교회) 애국유지 이하영 등 7명이 학교를 세움
1906. 2. 목조, 함석건물 신축(55년사 p. 52)
1906. 5. 강석호 운동장90평 기부(55년사 p. 71)
1906. 9. 고등과 설치
1908. 8. 사립학교 인정 규정 공포.
1908. 9. 1 경영난이 어려워 경영권을 미 북감리회 선교부로 이양.
삼일학원은 모든 경영권을 감리교 유지재단에 이양하다.
1909. 4. 3 삼일학교 설립인가


II. 사립 삼일학교 인가

1909. 7. 고등학교 1회 졸업식(55년사 p. 74)
1911 1.22 한일합방으로 교사들 흩어지고 고등학교폐지와 보통학교유지
1911. 8. 일제 신 교육령 공포
1915. 4.13 사립 삼일학교 인가
1923. 노블선교사 / 미 미국 아담스교회에서 2만불 원조 본관 세움(55년사 p. 108)
1925. 9. 4 4년제에서 6년으로 학칙변경 인가(55년사 p. 111)
1934. 3.20 고등과 2학급 인가(55년사 p. 122)
1935. 보통과 10학급 고등과 2학급 부설
1938. 미일전쟁으로 삼일학원 관련 선교사들 철수(55년사 p. 142)
1938.3. 교육법개정에 따라 팔달심상고증 소학교로 개칭(55년사 p. 147)
1940 이후 정규학교로 인가를 받으려면 교사를 신국하고 경상비 5천만원 비축하라는 당국의 지시
삼일학교교장은 서울 선교부(감리교 유지재단)에 가서 사용 승낙을 받아 신축 함.


III. 중학교설립을 위한 재단법인 삼일학원 설립

1945.12.12 초급중학교 승격인가신청 (55년사 p. 166)
1946. 9. 1 삼일학교 교명 되찾음. 삼일초급중학교 (55년사 p. 165)
1946. 5.17 삼일학교 고등과를 삼일초급중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기독교조선(대한)감리회 선교부로부터 교사와 운동장 사용 승낙을 받음(55년사 p. 160)


승 락 서

“본 재단에 속한 수원시 매향동 110번지 소재인 대 2,269평 및 교사 4동 건평 180평과 주택 2동 건평 77평을 수원 삼일중학교에 사용함을 승낙함.

1946년 5월 17일
재단법인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
이사장 강태희


1946.12.12 삼일초급중학교 인가(55년사 p. 166)
1950. 2.10 재단법인 삼일학원 설립인가 문교부에 신청(55년사 p. 170)
1950. 3.30 중학교 복원을 위한 재단법인 삼일학원 설립
1951. 3.31 삼일중학교로 개칭 (55년사 p. 190)


IV. 고등학교설립을 위한 재단법인 삼일학원 설립

1955. 2.11 삼일상업고등학교설립을 위한 재산증자로 재단법인 신청 (55년사 p. 207-8)
1955. 3.17 문교부로부터 증자인가 및 삼일상업고등학교 설립인가 받음
1957. 3. 8 고등학교야간부 인가 (55년사 p. 217)
1958. 1.26 중학교야간부 인가
1962. 4. 9 학교명 변경
삼일중학교/ 동중학교. 삼일상업고등학교/ 수원상업고등학교 (55년사 p. 224)
1968. 수원상업고등학교 화공과 1학급 설치인가로 삼일실업고등학교 개칭 시작.
1969. 삼일 중 종합 고등학교로 개편 (55년사 p. 266)
1973. ? 경영에 어려움으로 지원받음
서독에서 112만달라(4억4천만원), 문교부 4천만원, 상동교회 3천만원 지원
1988. 2.29 삼일실업고등학교는 삼일상업고등학교와 삼일공업고등학교 분리


V. 감리교협성신학교 설립을 위한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삼일학원의 공동 학교법인 삼일학원설립

위에 정리한바와 같이 감리교협성신학교를 설립하고자 재단법인 삼일학원 재산에 감리교회에서 출자한 재산을 합쳐 새로 학교법인 삼일학원을 인가받았다. 지금 학교법인 삼일학원은 협성대학(감리교협성신학교)를 수용한 재단이지만 상동에서 말하는 신학교육을 위탁받았다는 재단법인 삼일학원은 1982년 이전의 재단으로 삼일중학교, 삼일수원상업고등학교의 재단 법인이므로 중 고등학교에 신학교육을 위탁했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재단법인 삼일학원은 1940년 1946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에 재산 사용승낙을 받은 것은 삼일학원 재산이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 재산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재단법인 삼일학원이 독립재산화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삼일학원이 독립재산으로서 상동에 속한 것이라면 이 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어떤 절차로 상동으로 이양했는지가 나타나야 한다.

앞서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감리교신학대학과 목원대학 협성대학은 감리교 유지재단에 속한 재산임이 분명하고 감리교회 안에 존재하는 신학대학이다. 그러기에 지난 2002년 부담금으로 학교발전 기금을 받았던 것인데 금번에 학교발전기금을 받겠다고 위탁받은 협성신학교라는 접근은 잘못된 발상이며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신학대학 위치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제 학교법인 삼일학원과 협성대학 그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분명한 관계정리가 되어야 한다.

1. 삼일학원과 협성대학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안에 있어야 한다. 위자료는 박설봉감독회고록과 상동교회11년사 협성대학교 요람은 상동의 자료들이다.

2. 약정서에 기록된바 이제는 학교법인 삼일학원과 감리교 협성신학교로 출범한 협성대학은 분리해 학교법인협성(가칭) 이라는 독립재단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 때 상동교회에서 출자한 재산은 환원해야 할 것이다. 6개신학교로부터 시작된 협성은 6개신학교 그자체가 협성이다.

3. 명실공이 감신과 목원과 같이 감리교 3대 신학대학이며 감리교회 미래를 위해 인재양성하며 협성의 협은 協(화합하다. 따르다. 맞다.)으로서 俠(호방한 의협심) 浹(두루 미치다) 勰(생각이 같다.) 등 협이 가진 많은 의미를 포함하는 協이다. 그런데 嗋(입을 다물다. 협박하다.) 拹(꺾다.) 䛟(지껄이다.) 등 경망스럽고 비협조적이며 하나가 되지못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그런 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협이면서 이렇게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협이라면 순간의 선택이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름은 協을 이루는 학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 자기 역할을 하며 協을 이뤄야 한다.

4. 그렇게 까지 할 이유도 없었는데 총장과 이사장은 무리수를 두면서 까지 학교발전기금을 얻고자 했다. 이미 받은 바 있는 학교발전기금은 협성에게만이 아니라 감신 목원과 함께 공동으로 협력을 구해야 할 일임에도 협성의 정체성을 망각한 채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나 이 일이 우리 동문들에게는 협성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했고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우리의 협성을 잘 간직하며 한국감리교회의 위상을 드높이며 스스로 그 위치를 지켜가는 협성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여기 수록된 글이 협성의 발자취에 완성 본은 아니다. 누구든지 협성의 발자취를 아는 이들은 댓글로 소개해 서로가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서로 協하며 이뤄가는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전체 2

  • 2015-10-25 13:48

    이런저런자료를 일일이뒤져서 새롭게 요런 창조적 사료를 만드시는 달란트 놀랍고 부럽습니다.
    근데...엣날의 감리교신학교를 협성신학교라했는데...여기의 이 협성은 어인 이유로 협성이라했는지 헤깔려요.
    그리고 박근수=박설봉인데...어떤때는 박근수 어떤곳에선 박설봉이라했어요. 왜 그런지..아마 호적이름은 박근수일거예요.


    • 2015-10-25 20:29

      좋은 질무해주셨네요.
      1932년 이전의 협성신학교와 1977년 이후의 협성신학교의 협성은 같은 의미입니다.
      1. 1932년 이전의 협성신학교
      아펜젤러의 1885년 입국 후 이뤄진 미북감리회가 사경회 혹은 이동신학교라고 신학교육을 시작했지요.
      1895년부터 시작된 남감리회는 신학교육을 북감리회에 위탁하여 했구요. 그러나 1905년에 두 학교를 협성이라 이름을 짓고 협성신학교라고 했지요.
      협성신학교엔 북감리회 소속 신학생과 남감리회 소속 신학생이 들어가 협성신학교에서 함께 수학을 해 졸업 후 각각 남북감리회에서 사역을 했지요.
      그러나 남북감리교회 사역은 서로 협력을 해 결국 1930년 기독교조선감리회를 탄생시켰고 단일교단이 된 감리회는 협성신학교를 폐지하고 1932년 감리교신학교를 탄생시켰죠.

      2. 1977년 이후의 협성신학교
      이후의 협성신학교는 본 글에서 설명했든 6개 신학교의 연합이라고 협성신학교하고 했지요.
      나도 왜 1932년 이전의 협성과 같이 명칭을 정했나 입니다.
      옛 협성에서 새로 시작하는 협성으로 그 협성의 정신을 이으라는 멧시지라고 봅니다.
      그 협성의 정신이란 우선 이렇게 설명합니다.
      명실공이 감신과 목원과 같이 감리교 3대 신학대학이며 감리교회 미래를 위해 인재양성하며 협성의 협은 協(화합하다. 따르다. 맞다.)으로서 俠(호방한 의협심) 浹(두루 미치다) 勰(생각이 같다.) 등 협이 가진 많은 의미를 포함하는 協이다. 그런데 嗋(입을 다물다. 협박하다.) 拹(꺾다.) 䛟(지껄이다.) 등 경망스럽고 비협조적이며 하나가 되지못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그런 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협이면서 이렇게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협이라면 순간의 선택이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름은 協을 이루는 학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 자기 역할을 하며 協을 이뤄야 한다.

      본연의 협성정신은 나중에 다시 올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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