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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 늑약에 대한 고종황제의 투쟁과 헐버트의 한국사랑

작성자
현종서
작성일
2015-11-18 00:23
조회
1053
이번 종로 2가 YMCA 강당에서 열린 헐버트 국제 세미나 에 참석하고, 미 센트럴 미시건 대 여교수의 강연에 눈물이 났다. 헐버트는 고종황제의 특사로서 한국은 일본지배의 위협을 당하고 있으므로 조미수호조약의 약속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글을 미대통령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그런 이야기와 더불어 비슷한 노력을 한 한사람이 떠올랐다. 현순 목사이다. 1905 을사늑약, 1910 한일합방, 그후 9년이 나 지난뒤 이야기이지만 그는 최병헌 다음, 손정도의 전임 정동교회 담임목사였다. 그가 정동교회를 그만두고 전국 주일학교 총장 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교회학교를 조직 하였는 데 그리하던중 삼일 만세운동의 기독교 대표인사들중 한사람으로 해외에 이 운동을 알리는 일과 상해에 임정을 세우는 일을 위해 거사 일주전에 전국에 주일학교를 세우거나 부흥회를 하던 그 모습으로 독립선언문을 간직하고 상해로 미리 잠입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조계지에 사무실을 임대하고 중, 러, 한, 일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인사들이 각개 약진하여 상해로 들어올 때 그들을 맞아 설득하여 임정을 구성하고 이승만씨는 미국에 있지만 그 임정의 수장으로 회원들의 동의를 얻었다. 당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해외나 국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던 있었다. 그는 모여든 독립운동인사들모임을 사회하면서 다 이들을 다 국무위원으로 세우고 자기는 실제적인 일을 처리하기위해 내,외무 차장의 일을 맡아 보았다. 그들은 그의 직위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을 보고 모두들 따라 주었다. 이승만 이 임정 대통령이므로 상해로 오게 하고 자기는 이승만의 부탁으로 그가 맡아 있던 미국내 구미위원회에 임정의 전권공사 자리를 맡았다.

현순은 삼일운동의 피값을 허사로 돌리지 않으려고 그 민족의 염원을 바탕으로 해서 미국에 대해 1882년 조미 수호 조약의 1조 약속(상대국이 위기에 처하면 서로돕겠다고 하는)을 지키라는 외교를 벌리고 어느 의원을 통해 미 국회에 상정하게 되는 직전에 가 있었다. 삼일만세 운동의 무저항 독립운동은 미국인의 양심을 충분히 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은 상해에서 독립운동인사들(여러 위원들)을 상대하여 회의를 이끄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늘 싸우다 끝났다. 이 일을 두고 공산측은 이승만은 고집스럽고 리더쉽이 없다고 비난하였지만( 실상은 그가 배운 민주주의 사상에 배후 공산국가지원받은 이들이 쉽게 따르지 않고 투쟁적으로 나왔을 것이다.)현순은 모금하여 임정에 계속 자금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날 이승만이 갑자기 상해를 포기하고 다시 미국으로 귀국하여 현순을 해고시킨다. (서재필도 거든다) 현 순의 그동안 외교노력은 무산되었다.현순은 그 길로 정치를 떠나 다시 목회를 나갔지만 상처가 컸다. 그리고 이승만은 삼일운동을 통한 국민의 독립염원을 자기 일신의 안일을 위해 무시한 것이라 보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 의문이 어제 있었던 국제 세미나의 내용을 통해 어느정도 풀리게 되었다. 이승만은 자기 의 비서(하바드 출신)를 통해 미국의 일제와의 관계가 그리 쉽게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후 이승만은 현실적인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 대통령이 고종의 정부도 인정않는 데 임정을 인정할 까? 일단 상해임정 운영도 어려웠고, 미국에 거주하기위해 미국의 현실 정치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에 유화적인 다른 독립운동을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정에 는 모금한 돈이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임정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 속에 스스로 사는 방법을 택했다. 이때 김구의 노력이 (한국 의열단? 을 조직하고 일본에 테러함으로 존재감 알리고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는등) 컸던 것이고 이들은 모두 감리교회 젊은 지도자들이었다.

미국의 브래들리라는 작가가 최근에 일제의 늑약을 전후한 미대통령과, 일제의 외교, 고종황제의 내밀한 사정을 잘 알고 소설을 집필하였다. 그는 이번 국제세미나의 강사이기도 했는 데 사정으로 한국에 못 왔지만 영상으로 강연을 했다.

그 내용에서 밝혀진 것은 일본은 이미 한국보다 28년전에 일찍 미국에 개항한 나라이다. 그들은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열심히 미국풍속을 배웠다. 그래서 미국의 아시아 첫 고객이 되었다. 미국은 유럽제국들이 남 아메리카에 통상외교를 하려 할 때, 먼로주의를 통해 유럽제국의 남아메리카 진출을 막았다. 이제 자기의 첫 고객이며 자기를 열심히 배우려는 일본을 대리로 미국은 아시아 먼로주의를 실행코자하는 꿈을 가졌다는 것. 일본을 아시아 대표로 삼아 전아시아 에 미국문물을 전하며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막고자 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자치하기 어려운 나라로 보았기에 자기를 열심히 배우려는 야심차고 강한 일본을 파트너 삼고 한국은 이들의 지배하에 문명화 되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882년 조미 수호조약을 한 것은 한국의 무력한 국력을 오해 하고 한 실수한 조약정도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이는 이미 일본은 어느 고위층 자녀(하바드대 출신) 를 일본의 한국 훨씬 전에 미국에 파견하여 마침 도시어스 루즈벨트가 하바드 선배 관계임을 이용, 미대통령의 개인별장에 몇주 머물며 우의를 다졌고 동양문제를 다루는 대화를 많이 하고 설득을 한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츠라 테프트 밀약도 이 일 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일본의 이런 전방위 외교와 더불어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이런 뜻을 가지고 있었고 있었기에 헤이그 밀사들이 고종황제의 친서 전달이 좌절되었고 그후 헐버트를 통한 미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도 미리 차단되어 전달 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을사늑약 이틀전에 이미 전달되었어도 안 읽어보고 두었다가 일사늑약소식을 들은 후에 읽으며 황제 의 뜻인지 인정하기 어렵다는 식의 말과 더불어 물리쳤다는 것이다.

헐버트는 이런 일을 뉴욕타임즈등 언론에 발표하며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국제조약 (신의) 배반을 비난했기 때문에 브래들리 같은 작가가 이런 자료들을 읽고 당시 한국을 둘러산 주변국들의 정황들을 연구하여 소설을 썼던 것이다.

조미수호조약을 바탕으로 한국의 일본의 위협으로부터지켜주기바란 염원이 당시 미대통령의 비도덕적이며 편의적 장사꾼적,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한 비겁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일본편을 들었다가 후일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하도록 한 것이 되었고 나중에는 하와이 진주만 침략도 당하고 한국에 6.25전쟁, 분단 ,지금 까지 냉전 구도의 원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세계경찰로써의 역활을 미국이 제대로 못하고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빌라도가 군중이 두려워 예수를 죽음에 넘기듯 한국을 일제에 넘긴듯한 행동을 당시 미 대통령이라는 자가 저지른 것이다.(미국 시민이 아니고)

이런 것을 생각하면 미국 정부는 우리 대한 민국의 전쟁과 분단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이승만이 하바드대 (대학원) 졸업증을 얻고자 했고 미국에서 한국 상류층 귀족인양 행세를 했고 또 상해에서 갑자기 도망치듯 미국으로 돌아와 처음엔 간청하듯 미국으로 부른 현순을 무리하게 해고시켰는 가하는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게 되었다. 약소국으로써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승만은 국제정세, 미국 조야의 정세를 현순이나 김구보다 더 잘 알았었다.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저마다 다른 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때로 협력하고 때로 서로 싸우면서 대한독립을 위해 수고해 왔다. 그 선열들의 노고를 어느한편에 서서 비난하는 대신에 그들의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한국 독립을 위해 애써 온 노력들에 가슴을 여미게 된다. 그리고 당시 한국의 선각자 신앙인들이 선교사들의 음 양의 도움과 더불어 대한 독립을 추구해온 사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이었다.

고난과 역경은 겪지만 결코 망하지 않듯이 한국은 그 시련을 딛고 일어나서 마침내 세계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해 내고야 말 민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의 나라가 한국이 가야할 미래상인 것을 바라보게 된다.

오늘(을사 늑양 당한 날, 11월17일) 국회 회관에서 가진 아리랑에 대한 해설 모임--- 거기에는 한민족의 특유한 윤리 -효를 강조하는 사상과 더불어 한국인의 특별한 사명인식은 세계인들을 생명과 평화의 길로 안내할 "하나님과 함께하는 아리랑 국민으로서의 민족통일과(진정한 광복) 민족 복음화를 이루고 세계민들을 생명과 구원의 길을 이끌어내야 할 국민이라는 자각이다.

한국교회는 W.C.C.의 종교다원주의 경향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속(신학)없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체험을 통해 희랍철학의 세례를 받은 서양인들과 인본주의 종교철학영향권에 있는 동양인들을 그리스도를 앞세운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로 이끌어 내는 선교의 마지막 주자 선민의 역활을 제대로 수행해 내야 할 것이다.



전체 4

  • 2015-11-19 09:24

    현종서 목사님, 종종 올리는 글과 본 글 잘 읽고 감사합니다.


  • 2015-11-19 09:36

    대한인은 테러 안해요. 명확하게 저격사살해야하는 상대에게만 합니다.
    실수로 상해에서 무고한 미국인 여성이 죽자 도산안창호가 조위금을 주어 위로를 합니다.
    사실 을사늑약이란 말도 기분이 안 조아요. 을사늑결수준이면 좋고 실은 을사왜란.


  • 2015-11-19 11:17

    공산측은 이승만은 고집스럽고 리더쉽이 없다고 비난하였지만( 실상은 그가 배운 민주주의 사상에 배후 공산국가지원받은 이들이 쉽게 따르지 않고 투쟁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고난과 역경은 겪지만 결코 망하지 않듯이 한국은 그 시련을 딛고 일어나서 마침내 세계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해 내고야 말 민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의 나라가 한국이 가야할 미래상인 것을 바라보게 된다.
    현목사님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5-11-21 08:57

    약간의 오류 수정이 잇엇네요.
    한인 애국단= 김구 조직. 조직원 윤봉길 이봉창 등 = 재원 미주의 안창호 목사와 교인들이 폭탄 제조 비용 마련. 안창호는 도산 안창호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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