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종려주일 설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3-17 13:11
조회
1460
1. 시작하는 말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의 가치는 만든 목적에 맞는 것입니다.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과 관련지어 보면, 인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에 맞는 삶과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에 어긋나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26:24을 보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인자 곧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속죄 제물이 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든지 핍박을 당하든지 상관없이, 각종 종교인을 비롯한 인류 구원을 위한 사랑의 길을 가셨습니다.

2.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대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하신 일은 ‘승리의 입성’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진 다음날인 유월절 닷새 전인 주일에, 유월절을 지키러 온 큰 무리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국내외에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키러 온 큰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갔습니다. 성경에서 종려나무 가지는 존경과 기쁨 그리고 승리의 상징이며, 주로 환영할 때나 축제의 때에 사용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는 그 큰 무리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환호를 올렸습니다. 시편 118:25 이하를 인용한 이 환호성은 원래 제사장들이 축제 때에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관습적으로 사용한 종교적인 인사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외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인 큰 무리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 대해 이 말씀으로 환영한 것입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메시아를 찬양하며 이제 구원해 달라고 환호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아관은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유대교인들과 각종 종교인들은 물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러 오신 고난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죄와 불신앙으로 멸망의 길을 가는 인류에게, 죄 사함과 영생 구원을 얻게 하려고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셔야만 하는 평화의 왕이요, 사랑의 정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복자이신 예수님의 메시아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지배하는 메시아 왕국의 통치자인 왕으로서의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유대교인들의 더 큰 관심은 어떤 메시아인가가 아니라, 메시아인 왕이 온 세계를 통치하는 다윗 왕국의 재건이었습니다. 그 때에 만민을 지배하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마가복음 11:10의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는 환호성에서도 나타납니다.
유대교인들과 같은 제자들의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오해는, 며칠 뒤에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재판을 받으실 때에 낙심과 배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큰 무리의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오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아우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메시아로 믿고 따릅니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또한 예수님을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유머입니다. 어느 집사가 집안의 경사스런 일 때문에 속회 때 집에서 저녁을 대접했습니다. 음식은 부페식으로 멋지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식사기도를 마치자, 초청한 여 집사가 속회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음식 드시기 전에 한 말씀 드릴게요. 오늘 시간이 충분하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세요.” 속장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차린 음식을 다 먹으려면 급하게 먹어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그러자 여 집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사실 요리를 마치고 보니 제 반지에 있던 다이아가 빠져버렸거든요. 조심해서 드시다가 혹시 찾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가 주 예수님을 환호하며 영접하는 것이 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우리의 필요와 이익을 위한 것입니까?
제자들을 데리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역시 스가랴 9:9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왕인 메시아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니까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군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 죄를 지기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겸손과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다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환호하는 유대교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는 적이 당황스러운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군마도 아닌 어린 나귀, 용맹한 친위대도 없고, 난다 긴다 하는 비서진도 없는 초라한 행차에 제자들조차도 처음에는 이 일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예수님의 이 초라한 행차야말로 겸손과 사랑과 평화의 왕인 고난의 메시아에 걸맞은 모습입니다.
겸손이란 무지한 사람이 제 몸을 낮추는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이 제 몸을 낮추는 것도 아닙니다. 실력 없는 사람이 제 몸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낮추는 것도 아니고, 속이 빈 사람이 초라하게 구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겸손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겸손이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성육하신 것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익지 않은 벼가 머리를 숙이면 부러졌거나 병든 겁니다. 제대로 갖추면 갖출수록 그 만큼 더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동정심이 아니라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관심과 이기적 욕심을 이길 힘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미움과 증오를 이길 힘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불의하고 악한 자들의 조롱이나 방해나 유혹을 이길 힘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인정과 분별없는 동정심을 통제할 힘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인간을 죄와 불신앙과 명예욕과 물욕과 권력욕으로 멸망케 하는 사단을 능히 제압하는 신적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평화는 원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할 힘과 누릴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마음속의 근심 걱정, 불안과 초조를 이길 힘이 없으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기와 시기와 탐욕, 미움과 원한과 원망을 통제할 힘이 없는 사람의 삶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불의하고 악한 자를 이길 힘이 없으면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집단 이기와 침략을 막을 힘이 없으면 평화는 유지되지도 않고, 평화를 누릴 수도 없습니다. 평화를 원하면서 괴롭힘을 당하는 개인이나, 침략을 당한 나라는 평화를 누리기는커녕, 생지옥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우리 주 예수님은, 화려하고 교만하나 온갖 죄와 불신앙의 종노릇을 하면서 시험과 환난, 근심과 걱정, 죽음의 공포와 사후의 심판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사는 인류를 구원할 신적 능력을 지닌 메시아이십니다. 구경만 하지 말고, 듣기만 하지 말고, 심령에 영접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5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못했고, 그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일인 예루살렘 입성과 큰 무리의 환호가 예언의 성취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깨닫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속죄 제물이 되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에야 생각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정확히 안 것은 아니나, 큰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을 보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며 맞이한 것은,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소생시키신 표적을 보고 믿은 유대인들의 증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바리새인들은 맥 빠진 소리를 주고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적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과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계획이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과장해서 온 세상이 예수님을 좇는 것을 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일 계획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3. 맺음말

하나님을 떠나 멸망의 길을 가는 피조물이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국내외에서 몰려온 큰 무리인 유대교인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구원해 달라고 외치면서 따랐습니다.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지배하는 메시아 왕국의 왕이 되시고, 유대로 하여금 만민 위에 군림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오해요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메시아로 믿고 따릅니까? 고난의 메시아로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9:23입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전체 1

  • 2016-03-17 13:12

    (설교의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2:12-19, 시편 118:25-26)
    12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13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15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17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 18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25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26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7997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6173
3291 최범순 2016.03.27 1633
3290 강형식 2016.03.27 849
3289 함창석 2016.03.27 732
3288 최세창 2016.03.25 942
3287 김성기 2016.03.24 1275
3286 이충섭 2016.03.24 1274
3285 유삼봉 2016.03.24 1350
3284 이수기 2016.03.23 2720
3283 함창석 2016.03.23 1500
3282 안현숙 2016.03.23 1902
3281 최세창 2016.03.22 702
3280 함창석 2016.03.22 1718
3279 강형식 2016.03.22 1415
3278 장병선 2016.03.21 1858
임춘희 2016.03.22 1339
3277 김원경 2016.03.21 1512
3276 관리자 2016.03.21 1732
3275 김연기 2016.03.18 1452
3274 주병환 2016.03.18 1862
3273 정택은 2016.03.18 1222
3272 함창석 2016.03.18 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