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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중요 성구 5회(마 3:6): 자복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아야 할 우리 감리교회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3-22 17:19
조회
702
마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죄를 자복하고]는 세례가 단순히 종교 의식이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죄의 고백을 필수 조건으로 하는 회개를 전제하는 실제적인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죄의 고백이 없는 회개가 무의미한 것처럼, 회개 없는 세례도 무의미한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회개가 죄 사함을 받는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회개가 요구된다”(마경일)는 것이다.
회개에 필요한 죄의 고백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해야 한다고 하는 번(J. H. Burn, pp. 12-13)은 그 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하나님께 대한 고백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① 죄의식과 그 죄로 인한 비탄을 느끼는 마음에서 해야만 한다. ② 사울이나 바로처럼 단순히 형벌의 두려움이 아니라, 고백한 죄들에 대한 증오나 염오에서 해야만 한다. ③ 자비의 소망에서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다와 같이 우리 자신을 거역하여 증언할 것이다. ④ 억지가 아니라, 자유롭고 자발적인 고백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⑤ 일반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여 알 수 있는 특별한 죄들을 공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2) 사람들에 대한 고백은 항상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경우에 따라 하는 것이다. 즉, ① 우리의 죄가 교회 또는 특정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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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감정을 상하게 했거나 분개하게 했을 때이다. ② 죄가 우리의 양심을 무겁게 하기 때문에 안정과 위로를 찾지 못할 때이다.
그 외에도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 회복과 화해가 필요할 때에 죄를 고백해야 한다.
[세례]는 밥티스마(βάπτισμα)인데, {“원래 ‘물속에 담근다’든가 ‘물속에 가라앉힌다’든가 하는 의미의 밥티조(βαπτίζω)에서 유래한 것이다”(山口 昇).
그 의식은 요한이 맨 먼저 행한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의식적 씻음에 익숙하였다(레 11-15장. 참조: 출 29:4, 사 1:16). “상징적인 씻음과 정화는 유대 의식의 실제 구조로 짜여졌다”(W. Barclay).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문할 때에는 세 가지 일이 수반되었다. 즉, 제사와 할례와 세례이다. 이방인은 세례로 유대교에 입교하는데 그 의식은 다음과 같다. 세례받을 사람은 손톱과 머리를 깎고 옷을 완전히 벗는다. 세례수는 적어도 40세아, 즉 두 드럼통 정도의 물이 있어야 한다. 그의 몸 전체가 물에 닿아야 한다. 그가 물 물속에 있을 때, 세 명의 세례 집례자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하면, 이어서 권면과 축복이 그에게 주어진다. 이 세례의 효과는 완전히 중생으로 생각되었다. 그 사람은 새사람이다. 그는 새로 출생하였다. 그는 하루밖에 안 된 갓난아기라고 일컬어졌다. 그의 모든 죄는 다 용서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낳기 전에 지은 죄를 하나님은 벌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완벽은 어떤 랍비들이 세례받기 전에 아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받은 후에 낳은 아이가 그의 첫아기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이론상으로는 사람이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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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누이나 어머니와도 결혼할 수 있다고 주장되었다. 그는 변화된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며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 세례는 형식이 다르기는 하나 의미에 있어서는 이방 세계의 신비 종교에 입문하는 입신식과 비슷한 점이 있다. 입신식은 항상 인간이 영생을 위해 재생하는 새 출생이 뒤따르는 죽음이라고 생각되었다. 입신식을 받은 사람은 신과 일체가 되기 위하여 ‘자발적인 죽음’을 체험했다고 믿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세례의 핵심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롬 6:3, 4, 골 2:12).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매우 독특하다. 요한의 세례는 요한이 직접 베풀었다. 그 대상은 이방인만이 아니라 유대인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의 세례는 메시아의 오심을 위한 준비라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세례는 회개를 전제로 한 외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죄 사함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세례받으면 사함받는다고 하는, 소위 ‘세례로 인한 신생’의 의미는 아니다”(山口 昇).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세례는 죄를 속해 주러 오실 구세주를 영접하도록 인생의 방향을 돌리는 윤리적 및 종교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세례는 세상 끝과 심판의 빛에서 이해되는 것이다”(G. Bornkamm).}(저자의 막 1:4의 주석).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년), pp. 121-123.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전체 3

  • 2016-03-23 16:10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세례 요한은 각종 종교를 가진 이방인들과 특히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도록 선포하고,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 2016-03-24 09:26

    세례는 회개를 전제로 한 외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죄 사함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세례받으면 사함받는다고 하는 ,
    소위 \'세례로 인한 신생\'의 의미는 아니다\" (山口昇)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3-24 11:56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주석에 관심을 보이시고, 특히 더 공감되는 부분을 적시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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