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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또는 양심의 의의와 복음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6-01 09:52
조회
1144
1. 시작하는 말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믿어 영생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 외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는 주장은 종교나 도덕 규범, 교육이나 법 등등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그 모든 것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영생 구원의 길이 아니고, 시대와 장소, 종족과 나라에 따라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시대와 장소, 종족과 나라에 따라 선과 악이 뒤바뀌기도 하고, 합법과 범법이 뒤바뀌기도 하고,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이 상반되기도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율법 전문가들에 따라 율법 해석과 적용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바 하나님의 아들인 주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그릇된 주장을 했습니다.

2. 율법의 의의와 복음

유대교 지도자였던 바울은 최상급의 지성인이자 율법의 대가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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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문화의 2대 조류를 형성하는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에 능통했습니다. 그 해박한 지식, 특히 율법 지식과 율법 신앙에 의거해서 주 예수님을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겨 핍박하다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율법에 대한 견해는 삶과 구원과 멸망에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을 논박한 바울 사도는, 율법의 필요성 및 가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율법의 세 가지 원칙은 생명의 신성과 부모의 권위와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지닌 율법은 이방인에게도 주어졌습니다. 보른캄(G. Bornkamm)은 “이방인의 양심에 새겨진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양심이 선악을 판단하기는 하나 선악의 절대적 법정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양심의 법과 하나님의 의지가 동일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의의를 세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천사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둘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그와 같이 율법은 임시적이며 한계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믿고 구원받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율법은 죄를 인식하게 하고,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인간이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으나, 율법이 모든 인간에게 죄가 있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으로 인간에게 죄를 가르침으로써 대속의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양심도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하여 대속의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정말 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양심적인 언행으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양심상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율법은 율법의 참 정신에 맞게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 구원의 길은 아닙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인간을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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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부장 판사 출신인 변호사는 빚을 지고, 우울증을 앓다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변호사들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나라에나 불법을 저지르면서 떼돈을 마구 먹어 대느라 자신을 부패시킨 미련한 법조인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율법 종교에 철저하게 헌신했었습니다. 스트와트(J. S. Stewart)는 “율법 종교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구원의 교리를 가르친다. 인간은 마지막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한 소망을 가지고 끊임없는 도덕적 삶을 사는 노고를 쌓는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육과 악마와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바벨탑을 쌓는 결과에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누구도 무엇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율법 또는 양심이란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말해 줄 수는 있지만, 행할 힘을 주거나 금할 힘을 주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만 가지를 다 지키고, 한 가지만 어겨도 의인이 아닌 죄인인 것입니다. 나서 죽을 때까지 완전무결한 언행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로마서 3:10을 보면,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율법에 집중하며 강렬한 민족적 자만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율법 성취의 불가능성은 그들에게 내적인 갈등과 투쟁을 야기했습니다. 율법을 성취할 수 없는 원인은 육 곧 자아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힘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준행할 수 없고, 또한 죄로 말미암은 자아의 분리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여 내적 갈등과 분쟁으로 무력해지며, 죄로 말미암은 인간 상호간의 분리는 관계 존재인 인간의 관계성의 파괴로 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바울 사도의 고백에서 분명해집니다. 로마서 7:23 이하를 보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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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목적에 대해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옳은 사람”이란 법 없이도 살 사람인 의인이 아니라, 대속의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 근거로, 원죄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로마서 3:10을 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라는 칭찬에 헤벌쭉하면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 사는 사람답게, “저 사람은 이 세상사람 같지 않아!”라고 하면, 조금 헤벌쭉해도 됩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목적에 대해 온갖 죄악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목록은 성장하던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믿기 전에 행했거나, 믿은 후에 행한 죄악들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복음의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세대에 물들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복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이시며, 또한 하나님 자신이 복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것은 참된 의미의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흔히 복으로 여기는 모든 것들은 인간 자체를 파괴하고, 믿음의 길을 막아 급기야는 영원한 멸망을 초래하게 만드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3년 어느 때, 권력과 재물과 출세가 보장되는, 어렵고 힘든 사법고시를 합격한 30대 초반인 남자 사법 연수원생과 20대 후반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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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사법 연수원생이 결혼을 전제로 깊이 사귀었습니다. 누가 봐도 복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아내가 만남의 복인 줄 알았던 남편인 사법 연수원생의 불륜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남자 사법 연수원생은 파면되어 변호사도 될 수 없게 되었고, 20대 후반의 여자 사법 연수원생은 몇 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믿고 의지할 소유가 많고, 아쉬운 게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6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잘 보고 듣고 아는 것처럼, 즐거움 혹은 죄악의 낙을 누릴 것이 많아지거나, 믿고 의지할 것이 많아지면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적어지게 마련입니다. 교인 수와 교회 재정이 많아져서 누릴 것이나 즐길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만큼 더 주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지 않고, 교회가 병드는 것입니다. 그 만큼 더 교회가 쇠퇴해 가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율법이나 양심, 종교나 도덕 규범, 교육이나 법 등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요소이나 영생 구원의 길은 아닙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죄악을 가르쳐 주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자각하게 함으로써 영생의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자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의 은혜와 각종 복을 받아 살고 있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며 복음에 더욱더 착념하고, 그 교훈을 좇는 언행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나타나고, 축복과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받게 되고, 영혼이 소성되고, 영적 생명에 활력과 생기가 넘치고, 영원한 천국 인생길에 빛을 받게 되고,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2016. 5. 29.>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전체 1

  • 2016-06-01 09:53

    <디모데전서 1:8-11, 이사야 43:11>
    8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9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10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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