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받을 영적 지도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6-15 09:56
조회
709
1. 시작하는 말

성장해야만 할 인간의 성장에 중요한 것은 본이 되는 부모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와 스승을 만나도 그들의 인격과 생활을 본받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각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장하고,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은 본이 되는 교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교역자를 만나도 그의 신앙 인격과 신앙생활을 본받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님을 핍박하다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 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을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했습니다. 그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라고 했습니다.

2. 본이 되어야 할 교역자

바울 사도는 제자 교역자인 디모데에게, 교인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교역자를 세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첫째, 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역자를 군인으로 비유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주 예수님의 ‘훌륭하고도 멋지고 매력적이며 아름다운’(칼로스, καλὸς) 군사로 자기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이해관계나 집단 이기를 좇아 싸우는 것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니라, 영원한 구원과 멸망까지 걸린,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마귀와 그 졸개들인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에베소서 6:11을 보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뜨리려고 온갖 궤계를 쓰고 있습니다. 사단은 각 사람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헛된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고, 혹은 핍박하기도 하고, 혹은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혹은 아주 그럴 듯한 교리나 사상을 주입시키기도 합니다. 그러한 교리나 사상의 주입은, 사단의 수법 중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한마디로, 마귀의 궤계는 행복의 조건을 갖춘 낙원에서 반려자까지 만나 복을 누리던 아담과 하와에게, 그것도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담과 하와에게 따 먹게 할 정도로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누구라도 이길 수 없는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대장 되시는 주 예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군사의 특징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생활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조차도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기 위한 영적 싸움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는 전쟁터가 있고 시기가 있지만, 영적 전쟁에는 전쟁터와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사는 자기 자신에게 얽매여도 안 됩니다. 항상 지휘관의 명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이유 여하를 묻는 것’은 군사로서의 의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진리라 하겠다. 특히, 전투 중에 있는 병사로서는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결단은 전투 지역의 전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지휘관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최우선적인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또한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일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군사가 자신과 자신의 일상 업무에 얽매이지 않고, 지휘관에게 충성하는 것은 군사로 모집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원수이며, 1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포슈(Foch)는 어떤 장교에게, “귀관은 후퇴해서는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라고 장교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그럼, 그렇고 말고.”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차피 잠시 후에 죽을 수도 있는 인생인데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천국 시민이 되게 하시려고 대속 제물이 되신 주 예수님을 위해 죽어야 할 때, 순교하는 것은 영광이 아닙니까?
둘째, 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역자를 운동선수로 비유했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바울 서신들의 특징의 하나는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즐겨 묘사하는 것입니다. 헬라 시대에 고린도에서는 이즈미안(Isthmian) 대 경기가, 에베소에서는 판이오니안(Pan-Ionian) 대 경기가 행해졌는데, 그 중 최대의 것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Olympic) 경기였습니다. 헬라의 대부분의 도시는 때때로 반목하고, 어떤 때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전쟁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 때가 돌아오면, 아무리 싸움이 심한 경우에도 1개월의 휴전이 선포되고, 서로의 우정 속에서 경기가 행해졌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나 에베소에서 행해진 경기에 관객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군중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모든 경기의 공통점은 경기자가 전력을 다 쏟아야 한다는 것과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법(규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기자가 4년 동안 훈련하고, 죽을힘을 다해 우승을 했다 하더라도, 규칙을 위반했다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경기에서 법 또는 규칙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2012년 12월 2일, 스페인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스페인의 아나야(I. F. Anaya)와 케냐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무타이(A. Mutai)가 1, 2위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스페인의 아냐야가 케냐의 무타이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결승점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케냐의 무타이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한 것으로 착각한 겁니다. 스페인의 아나야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무타이를 재빨리 따라잡은 아나야는, 결승점을 통과한 것으로 착각하고 서 있는 무타이를 앞지르지 않았습니다. 무타이에게 결승점이 저 앞에 있다는 몸짓을 해 주어 결승점을 향해 달리게 했습니다. 결국 케냐의 무타이는 일 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의 아나야는 인터뷰에서 “무타이 선수야말로 진정한 우승자입니다. 그는 이미 제가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가 착각하여 멈추어 선 것을 본 순간, 제가 그를 앞지를 수 없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역자와 교역자를 본받아야 할 교인들의 경기의 규칙이란 사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경기자의 최고의 목표이자 최고의 영예가 승리의 면류관인 것처럼, 우리의 최고의 목표이자 최고의 영예는 그 날에 생명의 면류관, 또는 의의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 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역자를 농부로 비유했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수고하는”의 헬라어 코피온타(κοπιώντα)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함축하는 말입니다.
교역자란 자기가 있되 없는 자처럼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종이자 교인들의 목자입니다.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지도하고, 양육하고 보호하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을 가장 값진 일로 알고, 온 영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교역자가 교회에서 존경과 보수를 받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교인들이나 교역자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교역자의 신령한 일을 세상 직업 중의 하나로 취급하거나, 소득을 얻는 노동으로 취급하는 것은 믿음의 생각이 아닙니다. 교역자에게 소득을 주기로 계약한 고용주가 누굽니까, 어느 장로입니까, 어느 교인입니까? 교인들 모두가 헌금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역자에게 사례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예레미야 3:15을 보면,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장하고,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은 본이 되는 교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모집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군사요, 하나님의 법과 규칙대로 경기하는 운동선수요, 엄청나게 다양한 노력과 힘을 다해 농사하여 그 결실을 받는 농부입니다. 이런 교역자를 만나도 그의 신앙 인격과 신앙생활을 본받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교역자의 임무 중 임무인 설교를 온 영을 기울여 듣고 숙고하면, 주님이 잘 순종할 수 있도록 범사에 이해력과 분별력을 주십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전체 3

  • 2016-06-15 09:57

    (설교의 성경 본문: 디모데후서 2:3-7, 예레미야 3:15)
    3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4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15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 2016-06-15 10:39

    최목사님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6-15 11:01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이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7959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6120
3471 장병선 2016.06.16 1308
3470 유은식 2016.06.15 1270
3469 이종선 2016.06.15 974
3468 현종서 2016.06.15 917
3467 성모 2016.06.15 1142
3466 함창석 2016.06.15 634
3464 함창석 2016.06.14 807
3463 김성기 2016.06.14 793
3462 고영기 2016.06.14 1582
3461 유삼봉 2016.06.14 765
3460 함창석 2016.06.13 644
3459 장병선 2016.06.13 1144
3458 이주익 2016.06.11 1929
3457 이주익 2016.06.11 1845
3456 함창석 2016.06.10 671
3455 오은석 2016.06.10 1006
3454 박영규 2016.06.10 1291
3453 관리자 2016.06.09 1386
3452 홍일기 2016.06.08 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