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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회: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 II (2:14-17) 발람, 니골라당, 흰 돌, 입의 검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09-20 16:56
조회
335
그런 버가모 교회에도 심각한 문제는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
버가모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으로 믿음을 지키는 교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대중적인 유대 정신에서는 [발람]은 가짜 예언자들의 전형이었다. 발람의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 기록되어 있다. 견고하여 저지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전진에 놀란 모압 왕 발락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발람에게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막대한 보상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도록 사자를 보냈다. 발람은 그 날이 다 가도록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거절하였지만, 그의 탐심은 발락이 주겠다고 제안한 풍부한 보상을 바랐다. 발락의 반복되는 요청을 들은 발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만나기로 동의하였다. 나귀를 타고 발락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발람을 책망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본 나귀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발람은 나귀를 두 번 채찍질하고, 한 번 지팡이로 때리면서 앞으로 가도록 시도했으나, 그 때마다 나귀는 갈 길을 막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또 발람의 눈을 밝히셨을 때에야 비로소 발람이 사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발람이 발락의 뇌물에 굴복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일에 어떻게든 뇌물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발람이었다. 그는 두려워서 불의의 삯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불의한 삯을 사랑한 것만은 분명하였다.
민수기 25장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 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바알에게 예배하게 되었고, 또 모압 여인들과 성적으로 결합하게 되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잘못 인도한 책임이 발람에게 있다고 믿었고,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에 발람을 칼로 죽여 버렸다(민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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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발람은 불의한 재물을 사랑했다는 점과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여 이방 신인 바알에게 예배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점과 이방인들과 [행음하게] 했다는 점에서 거짓 선지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초대 교회의 가짜 교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발람의 행로를 답습하고 있었다(벧후 2:15, 유 11).
이어서 그리스도께서는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라고 하셨다.
[니골라 당의 교훈]은 발람의 교훈과 같은 것이다(2:6의 주석을 보라).
그러한 버가모 교인들을 책망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해결의 길에 대해,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라고 하셨다.
[회개하라](메타노에손, μετανόησον)와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는 2:5의 주석을 보라.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는 회개하지 않는 버가모 교인들을 심판의 말씀으로 처단하시겠다는 뜻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셨던 것처럼(민 31:8), 발람 곧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시리라는 것이다(참조: 1:16, 엡 6:17, 히 4:12).
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인들에게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라고 하셨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2:7의 주석을 보라.
[내가 감추었던 만나]는 “감추어 둔 만나라는 말이 아니고 감추어져 있는 만나라는 말이다(고전 2:9 참조)”(김철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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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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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사실은 출애굽기 16:4-18에 기록되어 있고, 그 밖에 민수기 11:6-7, 신명기 8:3, 여호수아 5:12, 느헤미야 9:20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광야 여행을 할 때,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양식을 내려 주셨는데,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라고 이름지었다. 만나는 깟씨 같으면서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 백성들과 함께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모세가 금 항아리에 만나를 넣어 언약궤 속에 넣어 두게 하였다(출 16:33-34, 히 9:4).
랍비의 전설에 의하면, 바벨론의 침략 때에 예레미야가 어느 동굴 속에 감추어 둔 만나를 담은 언약궤(법궤)가 메시아 시대에 공개될 것이라고 한다(마카비하 2:4-8. “바룩 2서 29:8, 시빌의 신탁서 7:149”,② “Mechilta Ex 16:25”③). {랍비 베레키야(340년경)는 랍비 이삭(300년경)의 이름으로 말했다. “첫 번째 구원자가 그랬듯이 나중의 구원자도 마찬가지이다······첫 번째 구원자가 만나를 가져다주었듯이 나중의 구원자도······만나를 가져다 준다.”④}(요 6:31의 주석).
물론, 그리스도께서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먹었던 만나가 아니라, “천계에서 먹는 양식”(Meyer)⑤으로 “신령하고 놀랍고 영화롭고 참된 양식”(Greijdanus)⑥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철손 님은 “영적인 하늘의 영원한 양식”⑦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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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n A. Johnson.
3) in 박윤선.
4) in C. K. Barrett.
5) in 박윤선.
6) 상동.
7)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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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의 “[흰 돌](ψήφον λευκὴν)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a. 조약돌(Pebble-ψήφος) b. 돌, 석재(Stone-λίθος) c. 바위, 반석(Rock/πέτρα). 여기서는 둥글고 반질반질한 작은 조약돌을 말한다”(김철손)⑧.
[흰] 색은 1:14의 주석을 보라.
위 문장에 대해 (1) 만나가 내릴 때에 같이 하늘에서 내린 흰 돌이라는 설(M. Rist), (2) 당시 유행되었던바 재앙을 막기 위해 사용한 부적(符籍)으로 흰 돌에다 비밀의 이름을 새긴 것이라는 설(Beckwith, Swete, Holtzmann),⑨ (3) 고대의 법정에서 재판관들이 무죄를 표시하기 위해 항아리에 던져 넣는 흰 돌⑩이라는 설,⑪ (4) 아론의 예복의 가슴 부분에 붙인바 열두지파의 이름을 새긴 판결 흉패 안에 넣은 우림과 둠밈이라는 설(“Trench”,⑫ 김철손⑬), (5) 연석의 초대장으로 사용했던 흰 돌이라는 설,⑭ (6) 그들의 믿음에 대한 성령의 증거라는 설(R. C. H. Lenski), (7) 그리스의 경기장에서 승리자의 이름을 새겨 주었던 흰 돌이라는 설(“Zahn”,⑮ 이상근), (8)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축복의 표시, 즉 그의 본질과 인격과 거기에 해당하는 영광과 지위의 선물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설⑯ 등이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핍박을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므로 (1)설부터 (4)설까지는 옳지 않고, (8)설이 옳다. 여기에 (5)설부터 (7)설까지는 보충 설명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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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철손, 요한계시록.
9) in 黑崎幸吉.
10) 비교: 검은 돌은 유죄를 표시함.
11) J. Wesley, J. A. Bengel, M. Henry, A. Clarke.
12) in 이상근.
13) 김철손, 요한계시록.
14) E. H. Plumptre, G. E. Ladd, R. H. Mounce, A. Johnson.
15) in 이상근.
16) A. Barnes, R. H. Charles, “Greijdanus”(in 박윤선), P. E. Hughes, M. C. Tenney, 黑崎幸吉, 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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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페트(Moffatt)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고대인들은 흰 돌에 신의 이름을 써서 사귀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사용하였고, 그 신의 거처에 출입하는 증표로 믿었다. (2) 로마 황제 예배와 관련된 제사장이 “내 이름을 돌 위에 써라. 그리하면 영존하리라.”라고 한 말과 관련된다. (3) 신비 종파의 견습생이 그 종교의 정회원으로 입참(入參)할 때에 흰 돌에 그의 새 이름을 쓰는 풍속에서 유래한 듯하다.⑰
이 설명에 대해, 박윤선 님은 성경 저자들이 미신의 풍습을 미워하고 멀리하였다는 점과 우상 숭배를 미워한 성경 저자들이 그것과 관련된 사상을 채용했을 리 없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다.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의 [그 ‘이름’](2:3의 주석을 보라.)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또는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설⑱과 받는 자의 이름이라는 설⑲이 있는데, 전후 문맥을 보아 후자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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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in 박윤선.
18) W. Hendriksen, R. H. Charles, “Kiddle, Lohmeyer”(in 이상근), M. Rist, M. C. Tenney.
19) J. Wesley, H. Alford, J. A. Bengel, M. Henry, “Greijdanus”(in 박윤선), J. F. Walvoord, P. E. Hughes, R. C. H. Lenski, 黑崎幸吉, 박윤선,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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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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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3 08:56

    1. 발람의 교훈; 발람은 종교인이나 돈을 밝히는 자입니다. 그는 예언과는 별도로 귓속말로 이스라엘의 백성을 멸망시키는 방안을 조언 했는데, 발람의 교훈은 성적 음행과 여자들의 자기 신에 대한 (요즘 말로 문화라고 하는) 제사입니다.
    (민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2. 니골라당의 교훈; 저는 니골라당(계 2:6,15)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위를 구별하는 악한 사상이라는 설을 지지합니다. 니골라당은 "정복하다(conquer)"를 뜻하는 그리스어 "니코(nico)"와 "백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라오스(laos)"에서 유래한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 니골라당 의미는 "백성을 정복하는 자"이다. 관련하여 니골라 집사가 유대인이라는 말에서 혹시 제사장 같은 지위를 신약에서 지지했고 이는 로마 카톨릭의 교황-추기경-주교로 이어지는 계급을 상징할 가능성이 높으나 성경이 스스로 밝히지 않은 부분입니다. 음행과 이단은 발람의 교훈이고, 이와 구별하여 니골라당의 교훈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3. 흰돌은 잘 모르겠으나, 다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만나가 내릴 때에 같이 하늘에서 내린 흰 돌이라는 설(M. Rist), (2) 부적(符籍)으로 흰 돌에다 비밀의 이름을 새긴 것이라는 설 (3) 고대의 법정에서 재판관들이 무죄를 표시하기 위해 항아리에 던져 넣는 흰 돌이라는 설, (4) 아론의 예복의 가슴 부분에 붙인바 열두지파의 이름을 새긴 판결 흉패 안에 넣은 우림과 둠밈이라는 설, (5) 연석의 초대장으로 사용했던 흰 돌이라는 설, (6) 그들의 믿음에 대한 성령의 증거라는 설(R. C. H. Lenski), (7) 그리스의 경기장에서 승리자의 이름을 새겨 주었던 흰 돌이라는 설(“Zahn”, 이상근), ..... 이런 '가설'들은 성경에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8)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축복의 표시, 즉 그의 본질과 인격과 거기에 해당하는 영광과 지위의 선물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설... 본문 내용과 연계되어 이 가설을 저는 지지합니다.


    • 2020-09-25 15:03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에 계속 관심을 보이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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