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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 뿐이라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3-08-13 18:52
조회
364
강복 뿐이라

함창석

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지요
축복 기복 도복
복을 빌고 있습니다
만복 대복 다복 오복 행복
많은 복이랍니다
아주나 커다란 복이랍니다
여러 가지 복이랍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맡는 것
먹는 것 느끼는 것이지요
든든한 치아도 복이랍니다
행복의 진정한 의미란
한 생명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 의식주생활과
필요한 자기성장 비용이라
강복은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복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내려 주시는 복입니다
중보적인 기도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구원의 중보자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드립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내려 주시는 복이 있으라
빌고 빌고 빕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축기도는 축도 축원이지요



전체 2

  • 2023-08-14 01:41

    성경: 시편 3장 1-8절
    설교: 복에 관하여
    찬송: 79, 92, 93, 234, 478, 620, 621장

    여호와여, 나의 원수가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나를 대적하는 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나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가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는구나. 내가 잘 자고 다시 깨었으니 밤새도록 여호와께서 지켜 주셨음이라. 수천만의 대적이 나를 포위할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구하소서! ...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에게 주의 복을 내리소서.(시 3:1-8)

    복福

    福자는 示 + 一 + 口 + 田이다/ 내릴시 한일 입구 밭전이다/ 하늘에서 한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내려 준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일용할 양식이 아닐 런지/ 최소한 의식주에다가/ 자기 성장을 위한 비용까지 더한 것이다/ 이러한 정도로 충족이 된다면/ 높은 행복지수일 것이다/ 祝이나 祈 그리고 禱는 빈다는 의미이다/ 축복 기복 도복 복을 비는 것이다/ 축도나 기도는 모두 복을 비는 것이다/ 그 대상은 자기가 믿는 절대자가 아닐까/ 신앙 언어생활에서 예를 든다면 / 하나님이 복을 내리거나 주는 것이지/ 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이/ 그리스도 예수는 중보자이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나/ 중보적인 기도나 축도는 가능하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복이며/ 성도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게 큰 복이다/ 위로는 하나님 사랑과/ 가까이는 이웃 사랑을 위하여/ 지도적인 위치에서는 축도라 하고/ 일반적인 위치에서는 기도라 하며/ 서로 중보 기도나 축도 관계적일 것이다/ 존재적인 의미를 찾는/ 생리적인 욕구와 안전 욕구이고/ 사회관계적인 의미를 찾는/ 애정 소속 욕구와 존중 욕구이며/ 성장적인 의미를 찾는/ 자아실현 욕구와 초월 이타 욕구이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이 될 때/ 만족을 하게 되고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사랑관계 속에서/ 복을 빌고 복을 내리시는 신앙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이 아닐까/ 이 새벽에도 복을 내리시니 감사하다

    복은 행복이다

    복은 행복이라고도 하니/ 운수가 좋은 날/ 하루 만족한 삶이 아닐까/ 한 사람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의식주와 자기성장의 비용/ 일용할 양식이 아닐까/ 존재욕구가 있으니/ 생리적인 만족과 안전이고/ 관계욕구가 있으니/ 소속이 되어 존중받는 것이고/ 성장욕구가 있으니/ 자아발전과 남을 위한 삶/ 초월 이타를 추구하게 되지요/ 창조주를 신앙하며/ 축복도 복을 비는 것이고/ 기복도 복을 비는 것이며/ 도복도 복을 비는 것이라/ 만유 만물을 첫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 선지자의 대강령이 아니냐/ 인류구원을 위하여/ 재 창조하시니/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라/ 기념비적 새 창조를 위하여/ 다시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며/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기름을 예비하는 삶이/ 복 중 행복이 아니라 더냐/ 주 예수 회개하라 하시니/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

    【Main Faith】

    복은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그에 따른 기쁨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일컫는 말이다. 즉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시 3:8; 사 65:16; 애 3:38), 가장 큰 복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시 16:2; 33:12). 한편, 구약성경에서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 즉 실존적인 행복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신 6:24; 30:15; 시 32:1-2; 65:4). 그에 비해 신약성경에서는 대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하늘의 신령한 복, 즉 영적인 복(사죄의 은총을 덧입고, 의롭게 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심령의 평안을 누리며, 영생을 얻는 복 등)을 강조하고 있다(마 11:6; 13:16; 요 20:29). 그 대표적 실례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팔복(八福)을 들 수 있다(마 5:3-12; 눅 6:20-23).(가스펠서브, 복,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죄인들을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밤낮 묵상하는 자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 날에 무사하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로운 자들 가운데 서지 못할 것이다. 의로운 사람의 길은 여호와께서 지키시나 악인의 길은 파멸에 이를 것이다.(시 1:1-6)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군중 가운데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기른 분은 참 행복합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더욱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눅 11:27-28)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에게 나아왔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유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것이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화평을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할 때에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전의 예언자들도 이런 핍박을 받았다.(마 5:1-12)


  • 2023-08-14 02:31

    방패, 영광, 머리

    함창석

    방패는 총기류가 소개되기 이전, 전쟁에서 사용되던 가장 기본적인 방어용 무기이다. 방패는 이스라엘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사용되었다. 방패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였다. 곧 몸 전체를 가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것(이런 경우에는 방패만을 운반하는 자가 같이 동행하였다), 얼굴이나 몸통만 가릴 수 있는 작은 것들이 있었다. 몸에 갑옷을 착용했을 경우에는 빠른 몸놀림을 위하여 작은 방패를 사용하였다. 흔히 방패는 나무 위에 짐승의 가죽을 씌워서 만들었으나 간혹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금속류를 부착하기도 했다. 특별히 얼굴을 가리는 부분은 금속판을 씌워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구약에서 방패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히. '마겐' 은 둥근 모형의 방패였는데, 주로 궁사나 검사들이 사용하였다(대상 5:18; 대하 14:8; 17:17). 히. '친나'는 커다랗고 직사각형 모형인데 주로 창을 막기 위해 사용하였다(대하 14:8). 그리고 가장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된 단어는 히. '쉘레트' 였던 것 같다. 금속으로 만든 크고 작은 방패들은 왕궁이나(왕상 10:16-17) 예루살렘 성전에서(대하 23:9; 참조. 삼하 8:7)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간혹 하나님을 방패로 상징하여 부른 적도 있으며( 창 15:1; 시 84:11), 엡 6:16에서는 믿음의 방패(헬. '뒤레오스')로 불리웠다.

    영광은 찬송, 존귀, 존경할 만 한 것이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있는 측면을 말한다. 가끔 신의 현현(顯現)에서 빛남 또는 광채와 관련된다.

    Ⅰ. 용어

    여러 히브리어 단어가 '영광'으로 번역된다.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단어는 '카보드' 이다 70인역은 '카보드'와 관련되는 단어들을 헬. '독사' 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영광을 그것의 나타남과 동일시하고, 그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과 장엄함을 포괄할 정도로 신학적 탁월성을 명확히 한다. 중간기 시대에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은 아람어 '이카라'(“영광”)와 '쉐키나' (“하나님의 성막 임재”) 대신에 독사를 사용하였다. 신약은 이런 복합적 의미들을 그대로 물려받아 '독사'를 사용하여 고전 헬라어의 '명성'(참조. 눅 4:10)이라는 의미, 히브리어의 '중한 것'(고후 4:17)이라는 의미, 하나님의 현현(Shekinah, 약 2:1 .벧전 4:14)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렇다 할지라도 신약은 '독사'에 대한 70인역의 폭넓은 이해를 그대로 따른다.

    Ⅱ. 용법

    A. 세속적 용법 : 사람이나 창조에 쓰이게 되면, 영광은 사람들이 대체로 중 시 여기는 것 곧 지혜(잠 25:2), 힘(왕하 14:10), 부(시 49:16-17; 에 1:4; 마 5:29)를 뜻한다. 영광은 땅(사 35:2) 또는 사람의 성질을 가리킬 수 있다. 즉 나이(잠 16:31), 힘(20:29), 또는 외모(욥 19:9;참조. '풍채', 사 53:2; 히. '하다르' ) 등이다.

    B. 구약의 용법 : 모세 오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신현현(神顯現), 구원의 행동, 심판의 행동과 연관시킨다. 이 영광은 시내산을 구름으로 가리운 맹렬한 불을 뜻한다(출 24: 16-17). 구름과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에 머물렀고(참조. 13:21), 성막(40:34-38)과 완공된 성전(참조. 왕상 8:10-11,대하 7:1-3)을 가득 채웠고, 제사의 시작을 거룩하게 하였다(레 9:23).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이스라엘에게 가리시는 한편, 그의 광채를 잠시 모세에게 보게 하셨다(출 33:18이하).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구원, 곧 홍해에서 바로를 이긴 승리(144)와 만나를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실(16:7)에서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반역을 하면(예컨대, 고라의 거짓 선지자직을 추종하고 므리바에서 애굽을 사모함으로써) 영광 또한 여호와의 후속 심판을 가져온다(민 16:42이하, 20:2이하). 선지자 이사야와 에스겔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신현현에서 다시 대하게 되며(사 6:6), 우상 승배하는 이스라엘(2:10,겔 10: 18)과 열방(사 10:16)에 내리는 심판에서 선포된다. 인간의 영광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신실한 남은 자들과 더불어 연약 관계를 견고히 유지하신다 (42:8).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에 주시는 구원의 영광을 볼 것이다(40:5; 46:13). 이 영광은 순종하는 자를 지켜 주시는 보호이며(55:5-8)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61:6)하나님의 영광을 열방에 선포하면(66:18-19) 충만케 된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순종하는 백성의 새 성전을 가득 채우기 위해 돌아온다는 약속으로서 그 백성을 위로한다(44:2-8). 시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에 분명히 나타난 그의 위대한 행사에서 볼 수 없다(예. 시 19, 29, 104편). 이스라엘은 역사상에 일어난 위대한 구원의 역사로 인해 여호와를 경배한다(66편; 145:4-12; 참조. 29:2; 105편). 그는 영광과 승리의 왕이시며 (시 24.7-10) 그의 임재는 이제 시온에 거한다(26:8; 63:2). 그는 구원 역사에서 영광을 보이신다(85:9). 하나님의 영광은 신실한 자에게 하신 약속된 측복이다(73:24). 구약 또한 온 나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시 66:2-4. 138:4-5), 온 땅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민 14:21; 참조. 사 6:3)라는 종말론적 소망을 선포한다. 메시야의 나라는 열방이 메시야의 영광과 평강을 알려고 할 때 완전히 열리게 될 것이다(사60:1-3; 참조. 11:6-9. 합 2:14).

    C. 신약의 용법 : 신약은 영광에 대한 구약의 이해를 수정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도 포함시킨다. 구약에서 영광이 구원을 가리켰듯이 신약에서도 그것은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서 계시된다.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며,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찬양받게 된(갈 1:5) '영광의 아버지'(엡 1:17)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 빛나고 찬란하게 나타나며(눅 2:9), 종말론적 소망이 된다(롬 5:2; 참조. 계 21:11, 23). 공관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아버지 의 영광 안에서' 변호하고 심판하러 오시는 재림 때에 영광에 참여한다(마 16:27; 막 8:38; 참조. 벧전 4:3). 그리스도는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영광을 가지고 계시며(눅 24:26; 참조. 9:26,32), 그 영광은 이미 그의 사역에서 얻으신 바이다(참조. 5:25).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영광은 아버지와 함께 선재하였다(17:24; 참조. 1:1).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1:14) 예수님의 사역(17:4), 믿음을 야기하는 표적(2:11; 11:4, 40)으로 말미암아 계시된다. 십자가는 정점의 표적, 그리스도의 영광의 때이다(12:23).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로 영화롭게 하시며(13:31-32; 참조. 벧전 1:21),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계속 영화롭게 하신다(요 16:14). 바울은 보고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다시 사신(롬 6:4) 그리스도께서 이제 완전한 순종으로 그의 것이 된(3:23 이하) 영광에 들어가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영광의 주'이시다(고전 28).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는 이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베푸신다 (빌 4:19; 참조. 엡 3:16).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보며(고후 4:6), 그로 말미암아 영광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롬 16:7). 신약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신다 (계 5:12-13). 예수님은 그의 대리적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신(히 2: 6-9)시 8:4-6의 그 '사람' 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되신다(벧전 4:11; 유 1:24-25). 그는 영광의 '등'(계 21:23), 영광의 반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보이셨다(히 1:3; 참조. 고후 4:4).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적 사역(눅 15:43), 특히 그의 구속 사역 (계 7:9-12; 참조. 1:5-6)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교회가 드리는 송영은 하나님의 지혜(름 11:33-36), 견고케 하는 능력(16:25-27), 죄로부터의 구원(갈 1:4-5; 딤후 4:18) 때문에 하나님에 영광을 돌린다. 영광은 성령의 사역이며 (요 16:14), 그 사역으로 교회는 은사를 받아 (벧전 4:11)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열매를 맺게 된다(요 15:8).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을 비춘다(참조. 고후 3:18; 4:6). 믿는 자들은 그들의 순종(고후9 :13; 빌 2:11), 거룩함(고전 6:18-20), 순결(빌 1:11), 선행(벧전 2:1-12),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음으로(롬 8:17-18; 벧전 4:13-16)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된다(고전 11:7).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확신에 가득 차서(롬 4:20; 고후 1:20) 기도하고(요 14:13) 후하게 도와주고(고후 9:13), 하나 되어 사랑 안에서 살게 됨으로(요 17:27)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 모든 일에서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전 10:31; 살전 2:21). 영광은 하나님의 택하신 구원에서 절정에 이른다(롬 8:30). 믿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몸을 입고 그 앞에서 살게 될 것이다(고전 15:43; 계 19:7; 21:22-26).
    ※ 참고문헌 I. Abrahams, The Glory of God(1925. repr New York 1973).

    머리는 문자적 용법으로는 사람과 동물 몸의 제일 윗부분을 가리킨다(예. 창 49:26. 마 5:36, 레 3:8. 왕하 6:25). 나아가 이 용어는 또한 무생물의 꼭대기 부분을 표현하기도 한다(예. 삼상 5:4, 시 24:7,9).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는 머리 보다 마음이 지성과 상상의 중추였다(참조. 단 2:28, 4:5,10,13 뇌). 하지만 여러 방식으로 머리는 인간 주체성의 상징 또는 초점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굴복 시에는 머리를 숙이고(요 19:30, 삿 8:28) 우월감을 느낄 때에는 머리를 드는(시 140:9) 것과 같은 동작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사람의 범죄 행위는 그의 머리로 돌아간다(예. 수 2:19, 행 18:6). 바울은 기도나 예언을 할 때에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아야 하며, 여자는 써야 한다는 당시의 관습을 지지하였다(고전 11:2-16). 은유적 용법으로 이 용어는 중요한 인물, 즉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서열이 높고 명예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예. 출 6:14,25, 사 7:8-9). 나아가 이것은 어떤 근원이나 출발점을 나타내는데(예. 겔 16:25; 참조. 출 12:2)이 의미는 특히 헬라와 영지주의 문헌에서 자주 나오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로 표현하고 있다(엡 1:22-23 골 1:18). 골 2:19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교회가 양식을 공급 받고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는 바로 그 근원이다. 하지만 바울이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 순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권위를 암시했는지(고전 11:3) 아니면 단순히 창조의 순서를 묘사(즉, 근원으로서의 머리)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상호 의존적인 것이다. *참고문헌 M. Barth Ephesians4-6, AB(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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