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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사람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8-16 21:14
조회
415
<고린도전서 8:1-3>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1. 시작하는 말

디모데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현실적인 당면 문제에 대해 교훈하고는, 관련되는바 훨씬 더 중요한 신령한 것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하면서 신령한 교훈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성경 중 한 권인 고린도전서의 저자인 바울 사도도, 교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하는 이들과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들 사이의 반목에 대해 질문을 들었을 때에 교훈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2. 교만케 하는 지식과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사랑

초대 교회 시대에,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의 각종 우상 숭배는, 모든 생활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회적 교제, 그들의 축연, 공중 오락, 정부의 직무와 의례, 법 집행 등이 각각 많든 적든 간에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어떤 우상 숭배에 연루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당혹스러운 많은 신앙 양심의 문제들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문제들 중의 하나가, 우상들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면, 한 부분은 제단 위에서 불태웠고, 또 한 부분은 사제의 몫이 되었고, 마지막 한 부분은 제물을 바친 사람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제나 제물을 바친 사람들은, 필요한 양 외에는 다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바로 이 제물을 음식물로 여겨서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가 교인들 사이에 심각하게 대두된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은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교인들을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은, 먹는 교인들을 경건치 못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급기야는 우상에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파와 먹지 않는 파가 형성되어, 파벌 싸움으로 비화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하찮은 문제 때문에, 보다 더 중요한 화합과 화평을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현대 교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 6:17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일곱 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 첫째는 교만한 눈이라고 했습니다. 또, 잠언 16:18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을 비롯한 모든 지식은, 교만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지식은 물론, 지식 위에 덕을 세우는 사랑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교만을 초래하는 지식은 소유자와 남들을 무너뜨리고, 사랑은 행하는 자와 남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의 헬라어 아가페(ἀγάπη)는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사랑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받을 자격이 없는 상대에게 상대의 요구대로가 아니라, 참된 의미에서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나 선행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형벌이 마땅한 대가일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화목제로 그 아들을 주신 것이 사랑입니다. 죄인들에게 화목제로 주셨다는 것은, 참된 사랑에는 진리와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또, 상대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사랑에는 스스로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전적 타락자인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5을 보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영적인 면에나, 정신적인 면에나, 육체적인 면에나,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사람들의 결핍을 채워줌으로써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것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은사와 복을 받아야 할 이유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와 복을 주시는 목적입니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을 사랑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또 남을 사랑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오는 대로,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은, 영생의 주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이 최대의 사랑인 영생의 주님을 선물하기 위해서 우리가 받은 모든 소유와 지체들, 그리고 생명은 사랑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소유와는 언젠가는 결별할 것이고, 우리의 생명을 비롯한 모든 지체는 낡아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우리의 소유가, 영생의 주님을 선물하는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을 모르면서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의무는, 구원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이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손해를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을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알아주십니다. 주 예수님은 마가복음 12:3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천신만고 끝에, 백 세나 되어 아들인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들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겠습니까? 아들이 없을 때는 하나님만 찾던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얻은 이제는 아들 사랑에 취한 나머지 하나님께 대해서는 소홀해지는 줄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가혹하게도 그 시험은, 아브라함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인 이삭을 불태우는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2:2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고 했습니다.

십중팔구 아브라함은 아들인 이삭 대신에, 자신이 불태워 바쳐지는 번제물이 되었으면 했을 것입니다. 머리가 돌 것 같고, 가슴이 미어지던 아브라함은, 뼈를 깎는 번민 끝에 그대로 복종했습니다.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들린 하나님의 사자의 음성이 창세기 22:12입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은 상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숫양을 예비해 주셔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창 22:16 이하에는, 큰 복을 주고,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성하게 할 것이고, 그 씨가 대적의 문을 얻을 것이고,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맹세까지 하시면서 약속하신 복입니다. 현세의 복과 현세의 복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아브라함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혈통으로는 이스라엘의 조상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교만은 멸망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재물이나 권세, 지식이나 명예, 부모나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동등하게 여겨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일환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희생만이 아닙니다. 지식이나 지혜나 은사나 능력을 백 사람에게 나눠주는 사랑을 하면, 그 만큼 더 확고해지고, 백 배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우리의 물질 사랑보다, 하나님께서 계속하도록 부어 주시는 재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랑하다가 복받은 사람이 많고, 욕심 부리다가 망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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