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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중요 성구 7회(마 3:16): 왜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나?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4-14 10:14
조회
1076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예수께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세례 요한의 사업을 인정하신 것이다(C. R. Erdman).① 반즈(A. Barnes )는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직접 받으심으로써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의 섭리에 합당한 의로운 행위임을 인정해 주시고자 하셨다.”라고 하였다.
(2) “고백할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자신을 인간의 본성과 약함과 죄에 대해 동일시하신 것이다”(W. W. Wessel).② 알포드(H. Alford)와 어드만(C. R. Erdman)도 죄인의 위치, 또는 죄인의 입장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라고 하였고, 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라고 하였다. 바울 역시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라고 하였고, 또 더 자세하게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예수님의 죄인에 대한 동일시는 그분의 본질인 사랑에서 비롯된 죄인에 대한 구원 의지의 표명이다. 실상, 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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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가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저자의 막 1:9의 주석.
2) 저자의 막 1:9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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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보다 높은 자리를 고수한 채, 보다 낮은 자리에 대한 도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 확인이나 우월 의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 상대에 대한 경멸이며 모독일 뿐이다. 참 사랑은 자신을 상대의 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죄인에 대한 동일시에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진실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3) 예수께서는 단순히 죄인에 대한 동일시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심판을 받으신 것이다. 이는 그분의 사랑의 행위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 :21)라고 하였고, 세례 요한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후반)라고 하였다. 클만(O. Cullmann, Baptism, pp. 18-19)은 예수께서 그 자신의 죽음의 세례를 선취하는 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두를 위한 의 곧 용서를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③
(4) 성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죄인에 대한 사랑을 이루려 하시는 결단의 표시이다. 어드만(C. R. Erdman)은 예수께서 사생활을 끝내고 공생애에 들어가시는 표라고 하였다. 반즈(A. Barnes)는 예수님이 공식적인 메시아직 수행의 출발점으로 이 세례 예식을 이용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였다.
(5) 율법의 백성이요 선민이라 자부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에 따른 인간의 회개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6) 지극한 겸손의 소치이다(참조: 마 2:5-).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를 지극한 겸손으로 시작하신 것이다”(C. F. D. Moule).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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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 D. Hill.
4) 필자의 막 1:9의 주석.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pp. 133-135.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전체 2

  • 2016-04-14 18:32

    참 사랑은 자신을 상대의 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죄인에 대한 동일시에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진실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죄인에 대한 사랑을 이루려 하시는 결단의 표시이다.
    왜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나? 난해 중요 성구 잘 읽었습니다. 최세창 목사님 감사합니다.........


  • 2016-04-15 09:10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난해 성구와 중요 성구 주석을 애독하시고, 특히 더 공감되는 부분을 적시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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