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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사도(使徒)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6-07-05 14:40
조회
935
요한사도

10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다(마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저어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뙤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 빛으로 만들었다.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요한이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깜짝 놀란 낯선 사람에게 큰 소리로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소.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여쭈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눅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예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곤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아마도 이 사람은 사도들과 동등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똑같지 않다고 하여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교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성급한 청년 요한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하였다. 요한의 야망은 줄어들었다. 편협한 외곬수적 성격도 사라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마음 착한 성인이 된 것이다.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 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라 해서 반드시 그렇게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적인 성장법칙에 따라서 떫고 시퍼런 과일이 달콤하고 맛좋은 과일로 익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뿐이었다.

우뢰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 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워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다.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않고 경고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요삼 9:10).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메시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 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 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한은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그것을 한 마디로 논한다면 "사랑의 훈련"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는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의 주님과 깊이 교제를 하며, 사랑은 실천할수록 증가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선교하는 공동체, 교육하는 공동체, 봉사하는 공동체로 우리가 요한사도처럼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위하여 사랑을 실천할 때에 주의 뜻이 이루어진 인류사회가 천국이 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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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5 14:44

    사도의 기본 임무는 그리스도 부활의 실재를 증거하는 것이었다(사도 1,8; 2,22; 10,39-41). 이 증거의 행위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목격 증언(사도 10,32)과 느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실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증거가 그것이다. 사도의 이 기본 임무는 후계자에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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