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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중요 성구 13회(마 5:3-5)…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애통하는 자는…온유한 자는…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7-06 11:42
조회
945
예수님이 가르치신 순서에 따른 첫 번째 복에 대해. 마태는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이사야 61:1의 메시아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다.
[심령]은 프뉴마티(πνεύματι)이며, 여기서는 성령이 아니라 인간의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영은 인간의 내적 생명을 의미하며(롬 8:9, 고전 2:11),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사는 구속받은 인간을 지시한다. “바울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고전 6:17)이라 하여, 신자의 내적 인간의 존재 형식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존재 형식과 같음을 보여 주고 있다”(C. H. Dodd).① 이러한 존재 형식을 갖는 인간은 영으로 성령과 관계하여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며(롬 8:16),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고(고전 14:2), 영으로 기도하며(고전 14:14), 영으로 찬미한다(고전 14:15). 또한, 영이란 사고하고(롬 8:6), 인식하며(롬 8:16, 고전 2:11), 의지하고(롬 8:4-5), 판단하는 기능이 있다(고전 5:3). {영의 지배를 받는 영의 도구가 곧 마음이다(C. R. Erdman, 이상근).}(롬 1:9의 주석).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가복음에는 그냥 “가난한 자”(눅 6:20)로 되어 있다. {가난한 자는 프토코이(πτωχοί)이며, “헬라어 용법에서 이 낱말은 ‘너무 가난해서 구걸해야 하는’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사람을 가리킨다…특별히 시편에서는 하느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건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난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이 말은 경건하고 겸손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②…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동시에 주어졌다”(I. H. Marshall).}(눅 6:20의 주석). 여기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 모두를 포함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복이 있나니](마카리오이, μακάριοι)는 {하나님께로부터 복받은 자 또는 행복한 자라고 선언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인들이 지복의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한 지고한 용어였다.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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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C. H. Dodd, The Meaning of Paul for Today(London: Collins Clear Type Press, 1971), p. 60.
2) Ps. sol. 10, 7, 4QpPs. 371, 8-9, 1QH 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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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텔레스(Aristotle)로부터 제공된 인용에서 그 말은 신들의 상태와 신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상태에 적용되었다”(W. Sanday & A. C. Headlam).}(롬 4:6의 주석).
반즈(A. Barnes)는 그러한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에 대해 (1) 교만과 자만심으로 가득한 데서 오는 기쁨보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데에 더욱 실제적인 기쁨이 있기 때문이고, (2)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택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고, (3) 천국은 이후부터 그러한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ών οὐρανών)이 저희 것임이요]의 [천국]은 3:2의 주석을 보라.
이 교훈의 요지는 단순히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된다거나, 심령이 가난한 자가 심령이 부한 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가난 그 자체나 심령의 가난 그 자체가 복 또는 하나님의 나라의 조건은 아니다. 그러한 상태가 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쉽다는 뜻이다.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 참조: 고전 1:26-27)라고 하였다.
반즈(A. Barnes)는 “다른 스승들은 행복이 명예나 부나 영광이나 관능적인 쾌락에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모든 것들을 외면하시고, 자신의 눈을 가난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에게 고정시키시고, 행복은 화려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는 가난의 낮은 골짜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복에 대해, 마태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이사야 61:1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애통하는 자]가 누가복음에는 “우는 자”(눅 6:21)로 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슬픔과 고통을 표명하는 [애통하는 자] 역시 육체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의 [애통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불트만(R. Bultmann)은 “물론, 일반적 의미로 이 말이 쓰여졌다 해도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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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모습이나 그 죄에 대하여 슬퍼한다는 의미가 있다.”③라고 하였다.
따라서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도 육체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어느 의미이든지 애통하는 자가 진정한 의미의 복을 받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은 심지어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기뻐하며 웃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마 5:1-12, 행 5:41, 약 1:2).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는 파라클레테손타이(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로서 {“위로에 의해 힘을 얻다”(E. E. Ellis, C. R. Erdman), “힘을 얻다”,④ “위안을 얻다”,⑤ “용기를 얻다”⑥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위로뿐만 아니라 용기와 힘을 얻는 것까지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골 2:2의 주석).
반즈(A. Barnes)는 “자비의 하나님 안에서만, 구주 안에서만, 보다 좋은 세상에 대한 소망에서만 위로가 있다(고후 3:17, 18, 5:1). 이처럼 애통하는 자들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더욱이,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죄를 범한 것을 슬퍼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한 것을 마음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은 복음에서 위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비로우신 구주를 통해 그러한 죄들이 용서될 것이다. 구주 안에서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 영혼이 평안을 찾게 될 것이고(마 11:28-30), 임재하신 보혜사 성령이 여기서 우리를 격려하실 것이고(요 14:26, 27), 하늘에서 모든 눈물이 씻겨질 것이다(계 21:4).”라고 하였다.
세 번째 복에 대해, 마태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시편 37:11을 인용한 것이다.
[온유]는 프라에이스(πραείς)이며, {고전 헬라어에서는 본래 순한 말(馬)을 표현하였고, 나아가서 사람을 대하는 부드러운 태도를 가리켰다(이상근). 아리스토틀(Aristotle)은 “지나치게 노여워하는 것과 지나치게 노여워하지 않는 것 사이의 중용이며, 반드시 노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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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만 노하고, 노해서는 안 될 때 노하지 않는 사람의 자질”⑦이라고 정의하였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성품(마 11:29), 성령의 열매(갈 5:23),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순종(본절, 마 11:29, 21:5), 겸손하게 잘 배우는 태도(약 1:21), 사려 깊음(고전 4:21, 고후 10:1, 엡 4:2) 등을 의미하였다}(갈 5:23의 주석).
트렌츠 대감독(Archbishop Trench)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대우를 좋게 받아들이고, 논쟁이나 반항하지 않는 기질을 말한다.”⑧라고 하였고, 피츠(Fitch)는 “온유함은 하나님께 굴복하여 그의 뜻에 복종하며, 그가 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고자 하는 것이며, 낮은 자리에도 앉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⑨라고 하였다.
온유한 인간이란 연약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한 자이다(참조: 마 11:29). 강한 힘이 없는 사람은 억압과 박해 아래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하고, 또한 온화하고 친절할 수 없는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는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을 연상케 한다. 그들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단순한 토지나 영토만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들이 갈고 닦고 세운 길과 농토와 우물과 집과 성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큰 복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이란 모든 복들의 총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에게 이뤄지는 그 약속의 성취(신 1:36, 16:20)란 메시아와 관련되어 약속된 모든 복들을 받을 것에 대한 보증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반즈(A. Barnes)는 “우리 구주께서는 그것을 온유한 자가 많은 재산을 소유하거나 많은 땅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복들을 소유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하신 것이다. 유대인들 또한 가나안 땅을 하늘의 모형과 메시아 아래서의 복들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땅을 받는다는 것은 메시아와 관련된 복들을 지시하는 표현이 되었다. 우리 구주께서 여기서 그것을 약속하실 때, 그분은 온유한 자가 자신의 왕국을 받게 될 것이고, 여기서 그 왕국의 복들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장래에 하늘의 가나안 땅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을 의미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상근 님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은 데서 온 말로서 결국 성도들이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슈바이처(E. Schweizer)는 “온유한 자가 언젠가 얻게 될 땅은 하늘나라와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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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n W. Barclay.
8) in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9) 상동.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년), pp. 175-179.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2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전체 4

  • 2016-07-06 13:38

    팔복의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법적 자격 유무와 상관없이 감독회장이나 감독이나 감리사나 신학대학 총장이 안 되었으면 싶습니다


    • 2016-07-08 22:39

      목사님의 말씀은 현직에 있는 모든 분들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 2016-07-09 07:12

    난해‧중요 성구 13회(마 5:3-5)…
    평신도인 저로서는 주신말씀을 읽게 되는 것이 행운 입니다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7-11 13:52

    \"목사님의 말씀은 현직에 있는 모든 분들 다 내려 놓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했는데, 필자에게는 그럴 권한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지요. 그 동안 선거로 인해 교계 안팎으로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에 필자의 바람을 표한 것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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