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랑할 걸 자랑해야지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6-02 08:43
조회
479
<야고보서 1:9-11>

1. 시작하는 말

답답하고 힘들지 않습니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내가 아닙니다. 현재의 내 가난은 미래의 내 가난이 아닙니다. 언제 인생 처지가 변할지 모릅니다. 사람은 빈곤에서 풍부로 변하거나, 풍부에서 빈곤으로 변하는 데 따르는 시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자신이나 삶이 변할 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행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간에, 낮은 사람은 열등감과 자괴심과 좌절감에 사로잡혀서 다른 좋은 가능성마저 사장시키고, 부유한 사람은 우월감과 교만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망치고 남의 인생을 망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야고보서 1:9 이하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2. 낮은 형제의 자랑

야고보서 1:9울 보면,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라고 했습니다.

“낮은 형제”는 ‘가난한 형제’, ‘병든 형제’, ‘환난을 당하는 형제’, ‘신분이 낮은 형제’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기독교인으로서 가난하거나 병들었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낮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멸시와 천대와 구박을 받는 것도 문제이고, 자괴지심으로 자학하며 살아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심어 줍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성서신학자요 저술가요 교수요 목사인 바클레이(W. Barclay)는,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심어 준다.”라고 했습니다. 또, “무레투스(Muretus)가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죽은 한, 어떤 사람도 무가치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는 귀중한 존재이다.”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낮은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8:16 이하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지옥의 멸망을 면할 수 없었던 우리가 믿음으로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비할 데 없는 엄청난 은혜요 영광입니다. 바로 이것이 높음의 의미입니다. 아무리 낮은 사람이라도, 이 높음을 자랑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그 어떤 교훈이나 사상도,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미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시고,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기까지 하셨을 정도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셨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더 인간의 가치를 높이 평할 수 있겠습니까?

높은 사람만이 그리스도께 소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아무리 쓸모없는 사람이라도, 저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도, 그리스도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경이로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을 무가치하게 취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정과 불의, 거짓과 위선, 자만과 교만, 아부와 아첨, 간음과 음행, 권력형 범죄와 부정축재 등으로 자신을 부패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토록 값진 자신을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 등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높음”의 또 하나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좇아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생활입니다.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값지게 사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남들 위에 군림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겸손히 사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높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사는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주실 것에 대한 보증입니다. 베드로전서 5:6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산다는 사실과 장차 천국으로 높이 들림 받을 것이 우리의 높음입니다. 이보다 더 큰 자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3. 부한 형제의 자랑

다음으로, 야고보 사도는,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라고 경계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의 욕망 중 욕망은 물욕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물만 많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소원들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얻기 위해서 우정이나 사랑을 저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팔거나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공직자라고, 지도자라고, 도덕가라고, 종교가라고 점잖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돈 앞에서는 인격도 자존심도 없어지고 마는 것을 숱하게 보아 왔고, 또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므로,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 돈의 노예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욕심은, 절대로 재물로 만족될 수 없습니다. 전도서 5:10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재물이면 안 될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고 확신하여 자신도 모르게 재물의 노예가 되기까지 하지만, 인생의 값진 것들인 사랑과 우정, 의와 진리, 자유와 신령한 기쁨, 특히 영생을 얻는 데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얻는 데, 커다란 장해 요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영적인 것들에 무관심해지고, 또한 영생을 얻으려는 열정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로,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관원이며 부자인 청년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청년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가진 재물이 많아서 심히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이 마가복음 10:23입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디모데전서 6:10을 보면 바울 사도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한 형제들은 가진 부를 자랑하는 대신에, 낮아짐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경고는 지위나 출생 혹은 다른 외적인 것들에 있어서 이웃보다 더 나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한 사람은 그 부가 아니라, 낮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 “낮아짐”이란 겸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재물로 인한 자만과 많은 갖가지 소유를 영광으로 알던 교만한 마음이 모든 소유의 헛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겸손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만 한다는 겸손만이 부자들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한 형제가 낮아짐을 자랑해야 할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는, 모든 부란 풀의 꽃과 같이 없어져 버리는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11에,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 부의 영광은, 태울 듯이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사랑스러운 꽃같이 덧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서, 전 생애를 투자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부는 결국 그 사람의 손에서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 23:5을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보화들뿐입니다.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낮을 때는 열등감과 좌절감과 자괴지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높음, 곧 주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성령을 좇아 성결한 생활을 하는 것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의 영생으로 높여 주실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갖가지 면에서 부할 때는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교만을 부리거나, 우월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여러 면에서 남들보다 부하면 부할수록, 그만큼 더 자기 관리와 감독에 힘써서 더욱더 겸손히 자기를 부인하고, 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전체 1

  • 2023-06-02 08:43

    (설교의 성경 본문 : 야고보서 1:9-11>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8466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6692
13356 함창석 2023.06.10 441
13355 장병선 2023.06.09 551
13354 최세창 2023.06.08 587
13353 함창석 2023.06.08 409
13352 이현석 2023.06.08 1204
13351 이현석 2023.06.06 943
13350 함창석 2023.06.06 417
13349 민관기 2023.06.05 475
13348 오재영 2023.06.05 454
13347 함창석 2023.06.05 378
13346 김연기 2023.06.04 399
13345 이현석 2023.06.04 883
13344 조묘희 2023.06.03 1232
13343 박영규 2023.06.03 352
13342 함창석 2023.06.03 433
13341 이현석 2023.06.03 838
13340 김성기 2023.06.02 375
13339 함창석 2023.06.02 336
13337 함창석 2023.06.02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