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보배』너른 고을 廣州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1-02-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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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옥토보배』너른 고을 廣州

함창석

너른 고을 광주지역은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을 중심으로 5천년전경에도 벼농사를 하였다는 증거자료가 나오고 있고 7천년전경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 등 김포, 연천 전곡리, 곤지암 궁평 구석기 등 유구한 선사시대유물을 자랑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시대마다 서해지역 염전에서 천일염이 생산되어 한양을 거쳐 광주 팔당에서 남한강으로 이천 여주 충주 단양 영월 정선까지와 북한강으로 양평 춘천 양구 인제까지 내륙지역으로 운송되는 수로 역할도 하였다. 그리고 상류지역에서 하류지역으로 임산물, 특산물 등도 운송이 되었다. 특히 뗏목은 마포나루에 이르러 한양지역에 공급을 하였다.

소금은 조미, 염장 등의 일상생활과 공업 방면에서 사용된다. 동물에서는 체내 삼투압의 유지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천일제염은 식염이라고도 한다. 천연으로는 암염이 다량 산출되며, 함호·염정 등에는 용해하여 존재한다. 또 바닷물에는 3% 가까운 염분이 함유되어 있다. 일부 식물에는 염분이 있어 내륙지역에서는 붕나무, 소금나무 등에서 소금을 얻기도 한다.
염분이 결핍되면 단기적으로는 소화액의 분비가 부족하게 되어 식욕감퇴가 일어나고, 장기적으로는 전신 무력·권태·피로나 정신불안 등이 일어난다. 또 땀을 다량으로 흘려 급격히 소금을 상실하면 현기증·무욕·의식혼탁·탈력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뚜렷한 기능상실이 일어난다.
인류가 소금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정된다. 동물들도 소금을 먹기 위해 암벽을 오르기도 한다. 유목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에는 우유나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 속에 들어있는 소금 성분을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식생활이 곡류나 채소를 위주로 하게 되어 따로 소금을 섭취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선사시대에 소금이 산출되는 해안 · 염호나 암염이 있는 장소는 교역의 중심이 되고, 산간에 사는 수렵민이나 내륙의 농경민은 그들이 잡은 짐승이나 농산물을 소금과 교환하기 위하여 소금 산지에 모이게 되었다. 또, 고대 그리스 사람은 소금을 주고 노예를 샀으며, 옛날에는 소금을 얻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딸을 판 예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소금의 생산지인 해안이나 암염, 염호 등이 있던 장소는 수렵민이나 농경민이 소금을 교환하기 위해 모여들면서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점차 소금을 얻기 위한 국가 간의 교역로가 발달하게 되었다. 6, 7세기까지 작은 어촌이었던 베네치아가 10세기 이후에 풍족한 해항도시로서 번영한 원인은 가까운 해안에서 산출되는 소금을 유럽에 팔아 큰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BC 2,000년 전경에 지중해연안 가나안지역에서 활동하던 아브라함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절대적인 인물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어진다. 성경기록에 의하면 갈대아우르 지역에서 하란지역으로 이동을 하였다가 이집트를 경유하여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였다. 당시 하란지역은 오늘날 레바논 지역으로 해양도시의 성격을 띠고 무역이 활발하였으며 가나안 지역은 지중해 연안에 해양민, 고원지역으로 유목민, 갈릴리 강가지역으로는 농경민이 정주하였던 당시 셈족계통의 주민들이 살기에 최고의 지역이었다고 본다. 특히 사해를 중심으로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꾼 것을 볼 때 아브라함 족속들은 소금광산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유는 한자어 함(咸)은 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유목민이 아니라 당대에 소금을 취급하여 부를 축적한 세력인 것으로 보여 진다. 당시 소금은 지중해를 거쳐 영국에 까지 무역이 되었으며 주석광산이 있었던 영국에서 주석을 가져와 구리와 합금기술로 청동기시대를 열게 된다. 영국은 기후와 지형관계로 소금을 생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 학계나 일부 연구가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무 대륙이라고 하는 태평양, 인도양에 걸쳐 있던 사라진 대륙을 주장한다. 대략 연도는 7만년전경에서 3만년전경으로 이야기하며 그 흔적으로 폴리네시안 섬을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미 해양기술이 발달하여 인도양, 지중해, 대서양연안, 북미, 남미 등과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주장하며 화산, 지진, 지구자전축의 이동 등 자연재해로 인하여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 때 미리 피신을 한 무리들이 애굽, 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등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천재지변을 피하여 대륙으로 이동한 이들은 한반도의 공주 석장리 2만년전경 구석기, 신석기 동시 출토를 비롯하여 마고신화의 히말라야 파미르고원 이야기, 이족(동이, 서이, 남이, 북이)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 1만 4천년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을 말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흑피옥, 크리스탈 문명을 말하기도 한다. 이미 이 시대에는 청동, 유리, 삼베, 비단 등의 개발과 직조, 염색기술이 개발되며 상거래가 물물교환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침탈하기도 하며 합병형태의 정복전쟁(황제헌원과 치우천황 등)이 빈발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천재지변을 극복할 수 없을 경우에는 오랜 동안 쌓아왔던 바벨탑 같은 도시가 황폐화되기도 하여 19세기에 와서 발견됨으로 고고학의 세계를 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에는 70만년전경 단양 구석기유물이 있으며 35만년전경의 연천 유물(아슐리안형 도끼)과 10만년전경, 5만년전경은 강가에 거의 발견이 되고 있다. 1만년전경에는 간빙기의 절대적인 영향으로 해수면이 100m이상 상승하며 영산강, 금강, 한강, 대동강, 압록강, 황허강, 요하, 난하 등이 합류되어 흐르던 평원대강 주위가 수몰되어 오늘날 서해, 남해, 동지나해 등 그리고 캄차카반도, 대마도 지역이 수몰되며 동해와 태평양이 연결되어 고래 떼가 영일만으로 이동하게 되고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 58종이나 그려지는 지구촌의 유래가 없는 유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 빗살무늬 토기, 창녕의 소나무 배, 울진의 녹나무 배 등 유물과 연결하여 볼 때 6-8천년전경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섬진강, 낙동강은 대마도, 제주도 쪽으로 흘러 태평양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도 지구촌의 60% 이상 한반도에 산재하고 있다.
5천년전경 제주도, 백두산, 후진산 등 동아시아의 화산, 지진은 역사에 큰 영양을 준 것으로 보이며 그 후 한반도와 수메르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무역(육상로, 해상로) 길은 세력의 흥망성쇠와 함께 역사의 기록에도 커다란 변천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종교도 원시자연종교에서 2-3천년전경에는 아브라함계통의 유일신 종교의 정착과 함께 정복전쟁은 계속되었으며 족속들의 혼 교잡으로 인구의 팽창의 가속화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계통의 성전 중심의 종교도 학교, 병원, 사업장 등 다변화 양상을 띠게 된다. 특히 유대교는 바빌로니아 포로 이후 성전의식이 약화되었으나 아직도 이슬람교, 일부기독교에서는 메카 등 성지순례가 의무화되기도 하였다. 종교도 이 시대에는 인터넷 등 정보매체가 발달하며 전 세계가 교류하고 있기에 새로운 형태로 변천될 것으로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한반도가 선사, 역사적으로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갠지스 황하 문명 등에 앞선 홍산문명 등을 거론하며 옥토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으나 1만년전경 수메르지역을 비롯한 가나안 지역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였다. 왜냐하면 동아시아는 1만년전경 이후 빙하기에 최대변화지역이었기에 무리가 이동도 하고 정착을 할 수 없는 시기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금, 주석, 규석 등에서 상업이나 무역거래 등을 하면서 문명의 단초를 열게 되었다.
그들은 모세가 축복한 모래에서 얻어진 결과로 철기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유리, 거울, 렌즈 등의 개발과 함께 현미경, 망원경 등으로 발전하여 실리콘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우주산업을 주도하며 금융, 학문분야, 항공등 군수산업 등에 탁월한 유대인 무리를 보게 된다.
한민족과 유대민족의 공통점은 많이 있다. 부여의 해부루, 이스라엘의 히브리, 헤브라이 등 언어적으로도 유사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알렉산더대왕과 진시황, 순임금과 니므롯 등을 동일인으로 보기도 하고 마한을 수메르지역으로 말하기도 한다. 다만 성경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생육과 번성 복은 유효한 것이라 믿게 된다.

30만년전경의 연천 전곡리 구석기, 10만년전경의 곤지암 구석기 등 중후기구석기와 연결이 되고 암사동 6-7천년전경의 신석기 유물과 관련이 되며 2-3천년전경의 마한 백제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되는 너른 고을 광주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오랜 역사 속에 3가지 옥토보배를 아우르고 있다.
한강을 가운데로 검단산, 남한산, 용마산을 품고 있다. 강변으로는 하남, 송파평지를 품고 있다. 식수, 공업용수, 농업용수 등 풍부한 수자원이 있다. 지금은 서울과 근접한 도농복합도시이지만 수도권의 개발확장으로 인구가 유입되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남한산성을 비롯하여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미래형 교육, 환경, 관광, 역사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젖줄이요, 20c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대한민국 수도권 경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광주, 한반도의 미래를 주도할 광주를 사랑하는 시민들은 광주, 대한민국, 한반도,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시민의 긍지를 갖고 지구촌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감히 주창하게 된다.



전체 2

  • 2021-02-22 16:07

    너른 고을 광주

    함창석

    원삼국시대 초기
    양근 함왕성지를 머리로 하여
    마한 경안을 이루며
    백제 온조 근초고왕
    한강유역을 호령하며
    삼국시대를 여나
    통일을 신라에 내주고
    한 때는 발해주로
    양평양주 암사동 의왕용인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왕건을 도와
    고려개국공신이 된 함규
    한강을 중심으로
    새 시대를 이끌었다 하지
    세월이 흘러
    청나라에 수모를 당하였던 날
    남한산성은 알고 있다
    왕실도자기산실 분원
    본류 두 물머리 아래로는
    팔당호가 자리 잡고
    이십세기 경제개발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온 세계로 뻗어나가는 서울
    수도권 젖줄 같은
    상수원으로 몫을 다하고 있지


  • 2021-03-06 14:10

    선사역사
    先史歷史

    함창석

    00500
    조선시대 중종반정 이후 중앙정치는 혼란기였다. 그 환란 속에서 함씨 문중도 소용돌이 속에 강릉 함씨 정평공파 17세손이 치악산 동편 매화 산자락에 피난을 오며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고향은 고려 말 원천석과 태종 이방원과 얽힌 유적 태종대, 각림사 등이 있다. 500여년 이상을 33세손까지 고향 땅을 지키며 내려오고 있다.

    마르틴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파문 처분을 받는다. 그 당시 성직자에게 파문은 성직이 박탈됨과 동시에 교회에는 출석도 할 수 없고, 장례식도 치를 수 없게 되는 것으로 참으로 치명적인 벌이었다. 이 사건은 훗날 중세를 마감하고 종교개혁을 여는 계기가 된다. 로마 카토릭교회도 자체적으로는 부분적이나마 개혁을 한다.

    01000
    7세기에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하여 200여 년간 국운이 강성하였으나 쇠퇴하게 되었고 발해 역시 자연재해 속에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 속에서 만주를 잃고 미륵 궁예, 견훤, 기훤, 양길 등이 세력을 규합 후 태봉, 후고구려를 세우나 자기아래 신하였던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은 로마 교황이 전권을 휘두르는 제국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으며 중세 암흑기라고 한다. 에스파니아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남아메리카 등 중남미를 공약하여 식민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브라질 등 카톨릭교회가 되었으며 이슬람세력이 아시아 전역을 침공해 세력을 넓혀가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02000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등 중원대륙 세력이 팽창하며 2000년 이상을 강성대국으로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치던 고조선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으로 변천되며 해체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원삼국이 태동되고 해모수 북부여, 주몽 고구려, 혁거세 신라, 온조 백제 등으로 한반도는 영향력약화와 새로운 질서재편으로 이어지게 된다.

    막강한 로마군단이 유럽과 서아시아를 침략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애굽까지 영향력아래 들어가게 된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충돌이라고나 할까. 종교적 예루살렘은 암흑기에 접어들어 메시아를 대망하게 되며 예수가 등장한다. 초기교회의 박해 속에서 복음전파로 인해 순교를 하게 된다.

    04000
    환웅이후 단군 왕검세력은 고조선을 열고 왕성해지며 진한, 마한, 번한으로 이어지는 대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일설에는 12분국이 아시아전역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로 이어지는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흉노로 인해 중원세력은 만리장성까지 쌓게 되는 상황이었다.

    수메르세력으로 인해 북유럽으로 밀려났던 족속들이 다시 정비를 하며 히타이트 족속들이 청동기를 무기로 수메르지역을 침략하여 점령하며 파란만장한 이동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서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많은 민족들이 밀리고 밀려 이동을 하며 오늘날 민족국가주의를 낳게 되었다.

    08000
    동아시아는 빙하시대 간빙기 자연기후의 급진적인 변화로 해수면이 100m이상이나 상승되어 지금의 서해, 남해, 동지나해 등이 육지에서 바다가 되었고 동해도 대마도 사이로 태평양과 연결이 된다. 5000년경에는 제주도 한라산, 백두산, 일본 후지산 등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농업, 어업, 산림 등이 지대한 영향 받는 상황이 되었다.

    동아시아가 자연재해의 큰 피해 속에 문명을 상실하게 되는 때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등 수메르지역과 라일강 유역에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와 발판을 마련하여 세계 4대문명 중 절반이 이루어진 지역이 되었다. 유목세력, 해양세력, 농경세력이 서로 물물교환을 넘어 지중해를 통한 무역, 상업 활동도 점차 형성되었다.

    16000
    태평양 상이 중심이던 무 대륙이 자연 기상의 큰 변동으로 해체되는 말기에 한 무리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에서 현재 지중해 유럽 방향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또 다른 무리 레무리아는 동아시아, 남아시아 방향으로 이동을 한다. 마고신화는 히말라야를 언급해 이족역사를 기록하였다. 동이, 서이, 남이, 북이로 점차 평지로 이동을 하였다.

    결국에는 유럽의 아틀란티스 무리와 동아시아의 레무리아 무리가 중앙아시아라는 접점을 통하여 대 충돌이 일어나는 선사이야기가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 당시에는 옥문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방과 서방을 나누는 기준점이 둔황지역 옥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옥황상제라는 말이 무속신앙에서 등장하고 있다.

    32000
    구석기 유물들이 한반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석기를 다루는 무리가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강유역에도 그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여 박물관마다 전시되고 있다. 치악산구릉 지대에서도 선사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성감유역에는 이 시기에 구석기인들이 정착을 하여 생활을 한다.

    대서양 상에 규모가 작았던 아틀란티스 무리인 서방 유럽보다는 동방인 동아시아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자연환경의 차이가 아닌가를 추정할 수 있으며 무 대륙이 태평양 아래로 가라앉은 후에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필리핀, 일본, 하와이 등 대륙 가까운 지역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64000
    태평양 상에 있던 무 대륙에서 문명의 꽃이 먼저 핀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는 70만년전경의 단양 수양개 유적이 있고 35만년전경 연천 전곡리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등이 있으며 한강 광주 곤지암 지역에서도 10만전경의 구석기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으니 말이다. 4만년전경 청원군 두루봉 동굴에서 흥수아이 유골이 발견된다.

    무 대륙에서 유럽이나 아프리카 방향으로 이동을 한 무리는 적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왜냐하면 가까운 동아시아나 남아시아보다는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이 아닐까.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자연재해를 지구에서 가장 많이 받은 곳으로 추정이 되며 유럽은 거리가 멀었다. 요즘 유전정보비교학에서는 무리의 이동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