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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주익목사님.

작성자
민관기
작성일
2015-06-26 13:08
조회
2261
1. 한반도한 호칭은 누가 지엇는지 전 모릅니다.

2. 아펜젤러의 암살 가능성을 시사하셧습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 아펜은 85년 4월 5일 입제물포하여 한양으로 입경하지 못햇고 다시 왜로 도왜햇다.
*. 란돈 입조선 입경하다. 란돈 입경후 아펜부부와 란돈 모 입제물포 아펜 거주지 없어 입경못하고 란돈 모만 입경하다.

자~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 당시 제물포 노역꾼 조선인 하나도 없엇다. 오로지 대불호텔에만 왜인과 머물럿다. 하니, 내리교회가 아펜 입제물포 자신들 교회 설립일로 삼음은 전혀 아니다. 아펜은 왜주재시 몇 명의 조선인 만낫을 뿐이다.
*. 후에 란돈 준비로 아펜 입경 정동 자리 선교 준비 햇다. 선교 허가가 구체적이지 않아 처음 선교윤허 조건대로 조선에 대한 근대지식 배움 전함으로 사역 시작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다.
*.아펜이 두번째로 내조선시 동행한 왜인. 입경후 86년 수세 3인인 란돈의 딸 마리안 그리고 자신 딸 앨리스와 하야가와 데츠야.
*. 하야가와 데츠야는 왜공사관의 참사 자격입국. 왜에서 내조선시 항시 아펜과 함께. 아펜의 한양 거주지 없어 대불호텔 거주시에도 항시 옆에 잇음 = 이 때 데츠야와 아펜 어떤 관계 설정 되엇을까?
한편 아펜은 조선인은 대면도 못해본 상황.

*. 아펜은 재팬 모라고하는? 잡지 한국 특파원 된다. 정기적 기고 잇엇다.
*. ??? 아펜은 선진화되엇다고 처음 느꼇던 왜 정보원이다. 본국인 미 시절 [은둔의 나라 한국]이란 문서를 통해 조선은 미개햇단 선입견 가졋고 갑신정변으로 왜 망명중이던 박영호, 김옥균, 서재필통해 조선 학습하며 다시금 자신들의 제도나 교육 등이 선진적이다란 생각을 가지게 되기도 햇으나, 신사유람단 일원 왜 유학하던 이수정이 우리말 이두어로 성경 번역해둔 사실에선 놀라움도 금치 못햇다.
*. 이 후 배재 설립후 왜에서 만낫던 서재필을 배재교사로 초빙하고 그가 설립한 독립협회의 요인들을 보호하고 독립신문의 발행인도 맡으며 독립문 건립시 기도도하도 신문에 군주제와 공화제의 차이도 보도한다. 이 글을 수 만명이 읽엇고 배재 주시경이 편집햇다.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정리해보자.
1. 아펜은 조선은 미개하다. 하니, 미식으로 개조 필요하다. 배재 설립, 종합대학 설립과 신학교 설립, 재팬무슨 잡지 조선특파원 = 일본 우위, 독립신문 공화제 보도 = 사실상의 역적 모의일 수 잇다, 광무황제 호위, 춘생문사건 관여, 급격한 조선 사회 변화위한 그의 노력과 함께..

2. 아~ 조선인은 미개는 아니구나 깨달앗다. 다만 늦게..
3. 왜에 도착 왜가 선진인줄 알앗고 내조선시 항시 함께 햇던 왜 참사관 [데츠야]로 부터 근 30 여일간의 친왜 밀봉 교육을 받앗던 아펜. 왜 정보원 취임 허락이나 밀약.

3. 데츠야에 대한 언더우드(보좌)와 공동 세례.

4. 조선인의 종교적 문화적 사상적 우수성 뒤늦게 깨닫다. 왜 정보원에서 친조선으로 전향. 노심초사, 전전긍긍, 안절부절..
조상이 스위스의 장로교 계통에서 미주로 이주해와 감리교로 개종한 후 부친의 원조를 받지 못한 아펜.
내조선 선교사 부임 후 부친에게 절절한 맘으로 서신하나 번번히 거절 = 배재 건설시 부친 도움 전무.

5. 하여, 일찍 그리도 늙엇나? 조선인을 아끼는 마음이 절절해졋나? 아무튼 그는 친왜에서 친한으로 전향을 하엿다.


아마도, 이것이 아펜젤로를 제거해야 겟다는 왜의 결정 아니엇을 까요?
이주익 목사님.

한 나라 왕비도 궁궐 침입 시해하는 왜인들이 무얼 못하겠습니까?

&&. 확인된 건 아니지만 아펜이 조선에서 첨으로 베푼 세례자의 이름과 태평양전쟁시 하와이 섬 꼭대기에 올라 공습해오는 왜공습기에 뚜따~뚜따~치며 선박들의 위치를 날려준 이의 이름도 [하야가와 데츠와]이며 그는 당시 하와이 왜의 영사직이엇답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전체 8

  • 2015-06-26 14:04

    ....큰일났꾼,,,민목사님...
    임금님귀는 당나귀귀이......하고 외치시니.
    확실한 근거 못대시면 감리회에서 잘려요.....ㅋㅋ


  • 2015-06-26 14:10

    민목사님,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 2015-06-26 14:16

    아펜의 첨 왜인 수세자이며 왜 공사관 참사와 1941년 하와이 영사의 이름이 같은건 맞아요.
    근데 그게 같은 인물인지는 확인 못햇구요.
    아펜이 재팬모? 조선주재 특파원인것도 맞구요.
    저에게 어떻게 모를 하든 상관은 없어요.


  • 2015-06-26 14:47

    1963년 9월 24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던 민정당 대선 후보인 윤보선 씨가 투표일(10월 15일)을 20일 앞두고 기자들에게 박정희는 1949년 군내부에있던 빨갱이세포책으로 군재판에서 사형언도 받았다가 백선엽장군 등의 힘과 회개하고 전향하여 남한내의 빨갱이들에 관한 정보를 군당국에 많이 주어에 선처받아 살아났다라는 선포로 당시 수많은 국민들을 놀라게 했었다. 설마 박정희씨가 빨갱이 세포책이었다니....그러나 나중에 사실로 밝혀져 또다시 우리를 허망에 빠지게 되었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사실로....

    한국감리교인들의 영원한 스승이고 은인이신 아펜이 일본의 앞잡이었다가 회개하여 친한국인으로 변하였기에 일본놈들에 의해 암살당했을거라는 추측정보.....는 엄청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문헌적, 신앙적 조사와 역사적근거와 자료를 얻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감리회의역사가 새롭게 씌여져야...


  • 2015-06-26 17:53

    진전을 도모해 주시는 민 목사님의 등장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환상을 품은 한 사람의 실증에 의한 집요함에서 중심의 축은 잡혀가는 법.
    존경이란 단어는 빼시고 \'선배 이주익 목사\'로 해도 흡족합니다.
    많이 일러주세요. 여호와 샬롬.


  • 2015-06-26 22:51

    제가 잘못 알아 1980년대말 웰취감독의 친일행적으로 그의 흔적을 감신에서 지워야 한다는 소요가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에 대해 감게에 고백하고 사과햇던 적이 잇어요.
    한데, 존경하는 이주익 선배목사님은 웰취감독의 기념예배당으로 교회를 봉헌하셧으니 당연히 존경받으실만 합니다.


  • 2015-06-27 12:04

    글 잘 읽고 감사합니다.


  • 2015-07-03 00:22

    간지좔좔 입니다.
    이 글에 댓글 달라고 로그인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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