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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와 임마누엘: 가나안 땅을 탐지한 후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1-05 09:10
조회
2331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을 체험한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믿음이 심화되는 사람도 있고, 일단 감사하며 하나님을 믿지만 도로 자기 위주가 되는 사람도 있고, 우연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탐지하기 위해 각 지파의 두령인 족장 한 사람씩 뽑아 보냈습니다. 사십 일 동안 탐지한 후에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 보고했습니다. 그 땅의 실과를 보여 주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는 하나, 그 거주민인 족속들이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이길 수 있으니 쳐들어가자고 했지만 열 첩자는 극구 반대했습니다. 그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인데다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하고, 대장부라는 것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다는 겁니다. 보나마나 패한다는 겁니다.

2. 백성들의 통곡과 영적 지도자들

온 회중이 공황상태가 되어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얼마나 웃깁니까? 적들과 대치한 것도 아니고, 단 한 사람도 적의 칼에 죽거나 다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문제나 불행을 과장하는 나쁜 습성 때문에 좌절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열 두령인 족장들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균형 있는 보고를 하지 않고, 과장한 편견을 가지고 편파적인 보고를 함으로써 온 회중을 공황병에 감염시켜 밤새도록 소리 높여 슬피 울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탐지한 사실대로 보고한 것이므로 아무 잘못이 없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과 온 백성은 가나안 땅 앞에까지 인도해 온 모세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때그때 애굽의 바로에게 계시의 말씀을 주시고, 그 통치자의 거역 때문에 애굽의 대표적 신들과 직결된 열 가지 재앙을 내림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은혜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점점 더 심해진 재앙들은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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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 신들을 믿는 부국강병인 애굽을 깨우쳐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는커녕,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는 공포에 떨며 밤새도록 통곡한 것입니다.
그 당연한 결과가 뭔지 압니까?
첫째,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원망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지도자인 모세와 그의 형인 아론 제사장을 원망했습니다.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걸 말이라고 합니까? 정말 그렇다면 이제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싸우다 죽으면 되지 않습니까? 죽었더라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뭐가 걱정이고, 뭐가 두려운 겁니까? 마음에 없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못 됩니다.
정말 웃기는 것은, 적의 칼에 상해를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온 백성이 통곡하며 원망하느라 심령이 상하고, 몸이 상한 것입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는 경쟁이 대단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한 원망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하나님의 엄청난 복인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거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은 감사하지 않고, 자기들의 오해와 오판으로 인한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칼에 망하게 하실 것이라면 애굽에서 건져 내실 리가 없었을 것이고, 광야 여행길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살리실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열 지도자의 보고와 원망하는 백성들의 소리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이요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에 따른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이란, 제각각 다른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입장이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시무하던 교회에 직분을 가진 여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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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헤쳐 나갈 수가 없게 되어 부부가 마주앉았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 보아도 길이 없자 학교 교사인 남편이 아주 심각한 표정을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보, 우리 죽읍시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하나님을 믿는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여보, 우리 죽을힘으로 살아 봐요.”
결국 남편까지 하나님을 믿었고, 물론 재기했습니다.
셋째, 자기들 나름의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너무나 기막힌 생각이고 망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과 머릿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 그리고 기도가 자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절실한 때에, 믿음이 사라져 버리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머리를 쥐어짜서 궁리한 끝에 얻은 묘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역의 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달라고 울부짖어 기도했으면서 말입니다.
그 애굽의 종살이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에는 이스라엘이 교육이나 군사 훈련은커녕, 벽돌이나 굽고 쌓는 수준밖에 안 됐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하나님의 지시를 좇아 미흡하긴 하나 국가 형태도 갖췄고, 레위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의 20세 이상 된 사람들로 조직된 군대도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순종해 보지도 않고, 다시 노예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들은 필요 없고, 마음이 통하는 한 지도자를 세워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은 열 첩자와 백성들의 합리적이라고 여긴 생각과 판단과 대책에 기가 막혔습니다. 회중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회중의 죄와 불신앙과 위기를 만든 것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과 백성들에게는 불통의 지도자이나, 하나님과 소통되는 지도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고 그들과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첫째, 심히 아름다운 땅이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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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땅 전체가 그런지 아닌지는 별 문제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이기에 아름답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을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약속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땅의 여러 종족들의 신장이 크다거나, 성읍이 튼튼하다거나, 군세가 막강하다거나 하는 것은 별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고, 그들이 각종 종교를 믿고 섬기면서 성취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다고 한 약속에 포함되는 복입니다.
셋째,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 땅의 거민들은 이스라엘의 밥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선언이자 결정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지도자 중 지도자인 영적 지도자다웠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영안이 열려 보니까 이미 그들의 보호자인 신들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이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상반된 보고에 대해 열 지도자는 부정적 사고와 소극적 사고를 한 것이고, 두 지도자는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 사고를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긍적적이며 적극적인 사고를 반복하면 되고, 성취된 모습을 마음속에 강렬히 새기면 된다고 하는 이성적 사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영적 사고요 신앙적 사고를 한 것입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가나안 족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미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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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가 결정됐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3 이하에, 오늘 혹은 내일 아무 도시에 가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고를 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3. 맺음말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들을 심판하시고, 약속대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시려고 첩자를 보내 탐지하게 하셨습니다. 열 지도자는 그 땅을 악평하고, 거민들은 얼마나 신장이 장대한지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통곡하며 원망하고, 한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대로 그 땅을 호평하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약속된 복을 받을 테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회중은 돌로 치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나타났습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전체 5

  • 2016-01-05 09:11

    (설교의 성경 본문: 민수기 14:1-10)
    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0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 2016-01-05 10:09

      1. 왜 하나님은 가나안인들을 심판하려 하셨을까요?
      2.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다 하였는데 그 보호자란 누구(무엇)일까요?


  • 2016-01-06 09:10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여 감사합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설교 안에 있습니다.


    • 2016-01-06 13:40

      난독증이 있는 제 질문에 답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 2016-01-06 09:27

    # 거듭 강조하지만 종교다원주의(신학)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 종교다원주의(신학)는 유일한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과 상치되는 것이다.
    # 종교다원화 현상은 종교다원주의(신학)에서 언급하기 훨씬 전인 원시 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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