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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기사 소녀상을 지키는 목사

작성자
신원철
작성일
2017-03-11 19:57
조회
1192

매주 수요일 ‘위안부 소녀상’ 옆을 지키는 목사

 1일 수요일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특별히 이날은 제98주년 삼일절이었던 만큼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제1272차 집회를 찾았고, 여러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등도 동참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시간을 되돌려 집회 준비가 한창이던 오전 11시, 위안부 소녀상 옆에는 한 명의 목사가 팻말을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서 예배를 인도했다.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행인들이 관심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지나쳐 갔다. 팻말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라고 적혀있다.
서울남연회 영등포지방 소속 서울제자교회 박영규 목사는 지난 2015년 1월 옛 동대문교회 터 천막교회에서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첫 준비예배를 드린 이후, 이날로 모두 111차례 예배를 이어오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위안부의 흔적
서울제자교회 담임인 박 목사가 자신의 교회를 두고 동대문교회를 찾아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예배를 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동대문교회는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만천하에 고발한 故 김학순 할머니께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곳이에요. 당시 동대문교회 집사이셨던 할머니는 담임목사 故 장기천 감독님의 권면에 힘입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고백하셨고, 이는 일제의 만행이 처음으로 세상에 폭로된 계기가 됐죠.”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동대문교회가 가진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품고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을 추진한 박 목사는 당초 대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려고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당시 서울시 성곽복원 계획에 따라 예배당이 헐려 천막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대문교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장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문세광 원로목사에게 연락을 취했다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
“통화 중에 故 김학순 할머니께서 다니시던 교회가 바로 동대문교회였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순간 머리가 쭈뼛 섰어요. 이 모든 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끌어 가시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이후 서울제자교회 당회는 위안부 소녀를 기리고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기념교회를 설립하기로 만장일치 결의하고, 곧바로 매 주일 동대문교회 오후 예배 시간을 빌려 천막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교인들 역시 본 교회 예배를 마친 이후 다함께 대중교통으로 동대문까지 이동해 함께 예배드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천막 예배 1년, 거리로 나서다
이렇게 정확히 1년 간 예배를 이어가던 박 목사는 지난해 1월 또 하나의 예배를 시작했다.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의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그는 제1213회 수요집회가 열리던 날 집회 시작에 앞서 ‘제1차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를 드렸다. 그의 앞에는 낮은 강대상과 팻말 하나, 성도 서너 명이 전부였다.
“목사로서 오랜 기간 사역을 감당해왔지만, 모르는 이들을 앞에 두고 거리에서 예배를 인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더군다나 당시 아무도 제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자신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럼에도 매주 빠지지 않고 나와 예배를 드리다 보니 이제는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요.”

관심 없는 예배, 그럼에도 예배합니다
그렇다면 박 목사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외로운 일을 왜 이토록 끈질기게 혹은 미련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매주 서너 명이 드리는 예배 임에도 꾸준히 제작·배포되는 일본군 종국 위안부소녀 기림예배 주보에서 찾을 수 있다. 주보에 적혀 있는 한국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 취지문에는 ‘한국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를 세워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에 길이 남겨 다시는 일제의 침략과 같은 나라와 국권과 주권을 빼앗기는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교훈으로 삼기 위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위안부라는 미명 하에 10~20대 조선의 소녀들 30만 명이 전쟁터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갖은 수모와 고통을 당하고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귀향한 이들조차 아무도 반기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대부분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죽어갔죠. 유관순 열사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해 기념교회를 세워 기억하듯, 그분들이 겪었을 한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고 함께 아파하며 그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녀상 철거… 기념교회 더욱 필요”
한편 그는 최근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두고 한일 양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곧이어 이 같은 문제 때문에라도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결 1년이 넘도록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위안부 협상에서 보듯 아픔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점점 잊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소녀상을 설치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철거를 우려하는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반복될 거예요. 그렇지만 그러한 일본이라고 해도 교회는 함부로 대할 수 없죠.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가 세워진다면 교회와 함께 그들의 희생도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박 목사는 끝으로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을 위해 한국교회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요청했다. 그는 “본 교회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 예배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무리한 홍보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껏 해온 대로 인도하심을 따라 간다면 정말 뜻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뤄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8일 수요일에도 어김없이 박 목사는 같은 자리를 지키며 △할머니들의 영혼구원과 건강을 위해 △위안부 소녀의 참상이 한일 양국 교과서에 수록이 되도록 △일본 정부와 아베 일본수상이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께 직접사죄와 배상을 하도록 등 20가지 제목을 놓고 뜨겁게 기도와 예배를 이어갔다.
정원희 기자  whjung@kmctimes.com



전체 3

  • 2017-03-12 07:21

    박목사님 훌륭한 사업을 하십니다
    목사님의 소망이 이루어 지시기를 기원 함니다


    • 2017-03-12 22:41

      존경하는 김장로님의 격려의 말씀에 부족한 종이 새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7-03-12 14:49

    신원철장로님, 장로님께서 부족한 종을 대신해서 기독교 타임즈 기사를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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