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생혈욕정(生血慾情)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1-04-30 10:10
조회
194
생혈욕정
生血慾情

함창석

여보시게나 사람아
한 씨라면
두 밭에 뿌려도
아주 비스무리 하려나
한 밭에
두 씨를 뿌리면
조금 비스무리 하려나
한 씨와 한 밭이라
이는 비스무리하리라
똑 같을 수 없지만
유전자는 일치 하느냐
이 땅에 온 생명
돌아가기도 천차요
만별이라 하니
당신만이 알고 계신지
한번 묻고 싶었으나
그만 묻어두고 가야지
한 씨가 두 밭에
마냥 뿌려졌다고 한들
두 씨가 한 밭에
그냥 뿌려졌다고 한들
손쓰기 어려운 날
내 가슴만 두근거려
잠 설치는 밤이다
세 살배기 이야기에
사람이란 게 부끄럽다
내 속에 흐르는
욕정이라 그렇다고



전체 2

  • 2021-05-01 21:55

    요한 볼프강 괴테

    함창석

    바다 풍경과 어울리며
    괴테의 노래로
    낭송이 되는 시어 속에
    날 푸른 시인처럼
    축복이 넘치는 루터교회 가정 이었지만
    리스본 대지진 후
    칠년전쟁 후
    신앙에 회의가 왔기로
    반 그리스도인이나
    말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비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희곡 파우스트보다
    시 프로메테우스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히트가 되면서
    근현대 독일의
    가장 위대한 문인으로 여겨지며
    이름을 날리었다
    수백 수십 여인과 염문 속에
    좀 더 빛을
    조금 더 빛을
    창문을 열어달라며
    안락의자에 앉아 운명을 맞으니
    인류의 모델을 찾기 위해
    이슬람 역사를 살폈다고 외치던 탕자로
    시 바다의 고요와 더불어
    다재다능함도 이 바다에 묻히었다


  • 2021-04-29 18:48

    압살롬과 사울/ 다윗과 요나단

    함창석

    다윗은 ‘사랑받은 자’란 뜻이다. 유다 지파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의 증손이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다. 그에게는 7명의 형들과 2명의 자매가 있었다. 사울의 뒤를 이어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2대 왕위에 올랐다(B.C.1010-970년경). 8명의 아내(미갈, 아히노암, 아비가일,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밧세바)와 그 사이에 태어난 10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외에 또 다른 아내들을 통해 9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그리고 첩들을 통해서 더 많은 자녀를 두었을 것이다. 한편, 다윗은 목자요, 군인이며, 왕이자,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는 시적 감각과 음악성이 뛰어났다. 악기 연주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시편 150편중에 73편의 시를 지었다. 또 그는 하나님과의 언약(다윗 언약)을 통해 영원한 메시야의 모형이 되기도 하였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소년 시절 아버지의 양을 쳤다.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악기 연주 실력이 뛰어나 사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왕의 부름을 받았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물맷돌로 거인 골리앗을 죽였다. 그 후 백성의 존경과 신망이 두터워지자 사울 왕에게 시기를 받고 점점 살해 위협을 느꼈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과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였다. 사울의 딸 미갈과 혼인하였다. 미갈의 도움으로 왕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다윗은 정처 없는 도피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의 도피처를 보면 놉→ 가드→ 아둘람 굴→ 모압→ 헤렛 수풀→ 그일라→ 십 황무지→ 마온 황무지→ 엔게디 황무지→ 바란 평야→ 유다의 갈멜→ 십 황무지이었다. 도피 생활 중 두 번에 걸쳐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라 하여 살려주었다. 더 이상 도피할 수 없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함으로써 다윗은 도피 생활을 마치고 헤브론으로 돌아왔다.

    왕이 된 후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이때 11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모시고 다윗과 2년 반 동안 전쟁을 하였다. 이스보셋이 부하에게 살해당한 후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고 도읍을 옮겼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 주변 이방 나라들을 정복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었다. 그의 죄로 압살롬의 반란, 세바의 난과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들의 분란 등 안팎으로 끊임없는 시련을 겪었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40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71세에 죽었다.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통해 다윗의 혈통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게 될 메시야의 도래라는 이상을 나타내 보이셨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성경에서는 다윗과 메시야의 상호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고 히브리인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대망했다. 특히, 예언서에서는 다윗과 메시야의 일체성을 시사하고 있고, 또 회복될 이스라엘의 영광을 다윗 왕국의 재건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 외에도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의 전형으로서 다윗과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들이 여러 차례 소개된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예수는 다윗의 상속자요 다윗의 뿌리이며, 예수에게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가르친다.
    사울은 ‘여호와께 구하다’는 뜻이다. 동명이인으로 유브라데 강가 르호봇 출신으로 에돔을 통치했던 왕들 중 하나였다. 레위 지파 그핫의 자손이다.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히브리 이름이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이다. 이 글에서는 사사 시대를 마무리하고 왕정 시대를 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유력한 가정 출신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다니다가 하나님의 섭리로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 왕으로 선택된 표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미스바에서 제비뽑기를 통해 공식적으로 왕으로 등극한 후, 사울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암몬 족속, 블레셋 족속, 모압 족속, 아말렉 족속들을 쳐부숨으로써 왕권을 확립하고 군대 조직을 완비하여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다급한 나머지 자신이 친히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써 제사장의 직분을 침범하는 불경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좋은 것들을 전리품으로 취하였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 후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는데, 다윗의 인기가 상승하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 후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 데 국력을 소모하였고, 마침내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최후 일전을 벌이다 중상을 입자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의 시신은 블레셋 군사들에 의해 목이 잘린 채 벧산 성벽에 걸렸으나 길르앗 야베스 용사들이 시체를 거두어 화장하고 유골은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아래 장사되었다.

    사울은 생전에 모두 여섯 차례의 전투를 수행했다. 사울이 수행한 전투를 통해 그의 일대기를 조명해 보자. 길르앗 야베스 전투- 사울이 암몬 족속과 벌인 전투다.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땅으로서 인근에 있는 암몬 족속 나하스 군대의 침략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요단 서편 기브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즉각 베섹에 군대를 소집하였다. 소집된 33만 명의 군사는 곧장 요단 강을 건너 길르앗 야베스로 향하였고 단숨에 암몬을 전멸시켜 길르앗 야베스를 위기에서 구원해 주었다. 이것이 길르앗 야베스 전투다. 믹마스 전투- 사울 이전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전사하고 법궤까지 빼앗긴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끊임없는 위협과 지배하에 있었다. 이에 빼앗긴 영토 회복과 선민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벌인 전투가 믹마스 전투다. 이 전투에서 사울은 2천 명의 군사로 기브아에서 믹마스로 향하였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1천 명의 군대로 게바에 있는 블레셋 주둔군과 총독부를 기습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듣고 블레셋 군대가 믹마스에 집결하여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요나단이 이끄는 부대의 전공에 힘입어 큰 승리를 거두었다. 모압, 암몬 등 주변 족속과의 전투-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회복한 사울은 주변에 있던 모압, 암몬, 에돔, 소바 등 주변 족속들을 정복하고 국가의 기틀을 굳건히 하였다. 아말렉 전투-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 대열의 후미를 공격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부족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철저하게 진멸하도록 명령하셨다. 이에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아말렉을 정복하였다. 하지만 아말렉 족속의 우량 소와 가축들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결국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버림받는 계기가 된 전투다. 엘라 전투- 이스라엘 군대가 다시 블레셋 군대와 접전을 벌이게 된 곳은 기브아 남서쪽 32㎞ 지점에 위치한 엘라 골짜기였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배경이 된 전투가 바로 엘라 전투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으로 인해 전전긍긍하여 연전연패했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블레셋은 국경 근처 에그론과 가드까지 격퇴 당한다. 길보아 전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중북부를 가로지르는 대부분 영토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블레셋은 에스드렐론 골짜기로 이어지는 교역로까지 차단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블레셋은 사론 평지에 있는 아벡으로 군대를 집결시킨 뒤 해안 도로를 따라 모레 산 기슭의 수넴에 당도했다. 이에 사울은 수넴 맞은 편 길보아 산에 부대를 주둔시켰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을 건 이 전투에서 사울과 세 아들은 장렬하게 전사했고, 그들의 시신은 벧스안 성벽에 걸렸다. 이로써 사울의 40년 통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사울이 다윗을 처음 만난 것은 엘라 전투에서다. 부친의 심부름으로 형을 만나러 온 다윗은 골리앗의 신성 모독적이고 거만한 언사에 격분하여 사울을 찾고 사울의 허락 하에 전투에 임한다. 이 전투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부각된다. 다윗은 즉각 사울의 무기 잡는 자로 신분이 격상된다. 그리고 사울 가까이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악신 들려 괴로워하는 사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온 이스라엘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존경하자 사울은 큰 질투심을 느끼고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 행적을 정리해 보자. 사울은 악신을 달래기 위해 연주하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고, 실패하자 딸 미갈과의 혼인을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이도록 요구한다. 요나단과 신하들을 시켜 다윗을 살해하도록 지시했으나 요나단의 거부로 실패한다. 오히려 요나단은 사울의 다윗 살해 음모를 누설하고 자신은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사울이 병사들을 시켜 다윗의 거처를 급습하게 하나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으로 도피한다. 더 이상 사울 곁에 있을 수 없게 된 다윗은 요나단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며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사울은 그일라, 십 황무지, 마온 황무지, 엔게디, 십 황무지를 전전하는 다윗과 일행을 끈질기게 추격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반면 다윗은 두 차례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땅에서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게 된 다윗은 결국 블레셋으로 도주할 결심을 하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 후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은 슬퍼하며 헤브론으로 돌아온다.

    압살롬은 ‘평화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다윗과 마아가(그술 왕 달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다윗의 셋째 아들로 헤브론에서 출생했다. 그는 용모가 출중하고 어느 한곳 흠잡을 데 없어 외모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일명 ‘아비살롬’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이복 형 암논이 압살롬의 친누이 다말을 겁탈했을 때, 다윗은 분노하기만 했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압살롬은 2년 간 마음속으로 증오해오다가 마침내 암논을 살해하고, 외조부 그술 왕 달매에게로 피신하여 3년 동안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요압의 중재로 부친 다윗과 화해했지만, 그는 끝내 다윗에게 반기를 들어 반역하여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게 된다.

    압살롬의 거사는 성공하는 듯했지만 다윗의 충성스런 신하 후새의 지략으로, 압살롬 군대는 패배하게 된다. 압살롬은 에브라임 숲속에서 다윗의 군대에 쫓겨 도망하던 중 자신의 무성한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과 그 부하들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된다. 다윗은 압살롬과의 전투에 앞서 결코 압살롬을 해치지 말라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한 바 있었다.
    시편 3장은 한편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는 제목, 배경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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