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인샌관

작성자
박영길
작성일
2021-05-01 19:53
조회
179
예수님의 인생관
요3:31~36

고려말에 나옹(懶翁和尙)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공민왕에게 글을 가르쳐준 王師 스승입니다. 나옹이 출가하여 사찰에서 지낼 때에 그 누님이 틈만 나면 동생 나옹을 위해서 밑반찬을 만들어 나옹이 칩거하는 암자로 찾아가서 함께 공양을 들며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지극정성으로 동생을 위하는 누님에게 나옹이 이제 누님도 경전도 읽고, 염불도 배워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청했습니다. 누님이 말하기를 “동생인 자네가 이미 득도 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자네의 누나인 나는 공부를 안 해도 저절로 득도한 게 되는데 내가 왜 새삼스럽게 공부를 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한사코 불법 닦기를 게을리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옹화상이 어느 날 누님이 맛깔스런 반찬을 만들어 나옹을 찾아왔는데. 다른 때는 나옹이 누님도 같이 잡수시자고 하여 함께 혈육의 정을 나누며 식사를 했는데 이날은 나옹이 누님보고 같이 먹자고 권하지도 않고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누님을 힐끔힐끔 쳐다만 보면서 혼자서만 먹었다고 합니다. 누님은 평소와 다른 나옹의 태도에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너무 섭섭하여 뽀루퉁 해서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이 누나도 배가 고픈데 어찌하여 자네는 같이 먹자고도 하지 않고 혼자서만 먹는가? 나옹이 대답하기를 누님의 동생인 내가 배가 부르면 누님은 안 잡수어도 저절로 배가 부르는 게 아니오? 이 한마디에 누님은 깨닫고 마음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하여 마침내 득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나옹화상의 누님이 浮雲이라는 시를 지어서 동생 나옹에게 읊어 주었다고 합니다.
空手來 空手去 是人生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也來亦如然 獨有一物常獨露 澹然不隨於生死 이것이 불교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석가무니는 苦集滅道 인간이 왜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 원인은 인간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慾心)을 없애면 도의 경지에 고요한 정적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入寂했다고 합니다. 입적은 호적이 홀리는 것이 아니고 고요한 세계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불교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의 인생관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인생관은 예수님의 인생관이 곧 기독교의 인생관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인생관은 사람이 무엇이냐?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이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인간 속에서 찌그러지고 일그러졌다. 그 형상을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운동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無에서 와서 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생은 하늘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나 구름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인생관은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저 아무 뜻도 없이 보낸 것이 아니라 제각각 사명을 주어서 보낸 것이다. 그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삶이고,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그 시작은 우리의 생명이 잠시 멈추었다가 주님 재림하실 때에 부르심을 받고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새 삶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인생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예수님 자신은 하늘로부터 왔다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불교의 용어 중에 色卽空이요 空卽色이다. 의역하면 없는 것과 있는 것은 같은 것이고 ‘하나’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 기독교식으로 생각해보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물질로서 나눌 수 없는 분자가 원자입니다. 원자 주위는 항상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원자의 핵은 1개의 중성자 2개의 양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빛은 2개의 양자로만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빛에는 중성자가 없습니다. 중성자가 없으니 물질이 아니면서 하나의 물질입니다. 빛도 하나의 입체(알맹이)라고 합니다. 더 작은 입체가 쿼크이고 더 작은 입체가 힉스라고 합니다. 힉스는 불교에서 말하는 空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힉스는 그러니까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계 과학자들이 힉스의 존재만 발견하면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세계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현대과학입니다. 인간의 발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원리를 깨달아서 그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발명입니다. 모든 물질은 빠르게 움직이는 쪽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비행기가 그래서 하늘을 날아갑니다. 우리가 低音에 귀를 기울이지만 특히 고음에 모든 신경이 쏠립니다. 고음은 소리의 진동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력파장은 우리 인간들이 도저히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현대첨단 과학으로도 중력파장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천안함 사건의 그 파장은 어뢰가 군함을 폭파시키는 파장(소리)보다 훨씬 큰 파장으로 지진 기록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천안함이 어뢰에 맞았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 됩니다.
우리는 우주공간을 space라고 합니다. 우주 공간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소아 헬륨3:1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암흑의 물질로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라우주만상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이 지구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타락한 이 지구를 평화와 사랑의 동산으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과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평화 없는 사랑 이루어지지 않고 사랑 없는 평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생활이 바로 사랑과 평화의 삶입니다. 사랑과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행위는 죄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복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평화의 사절과 사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분쟁과 다툼이 전혀 없는 세상입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지 않습니다. 내 것도 하나님의 것이고 네 것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소유주가 될 수 없습니다. 명리학에서도 우리 인간들은 목,화,토,금,수성으로부터 인간이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랑의 원리에 따라서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도 하나님이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인생관입니다.
예수님의 인생관은 간단합니다. 나는 위에서부터 왔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보내셔서 왔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를 영광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인생관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세상에 왔고, 하버지가 내게 맡기신 일을 마치면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생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6:27“썩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살지 않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아담과 가인과 에서와 롯과 솔로몬은 본능적인 欲望과 자기 慾心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늙어서는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자손들을 위해서 후손들을 위해서 잠언을 기록하고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솔로몬이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관은 어쩌다가 부모님들의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3째나 4째로 태어나도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저 보내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제각각 사명을 주어서 보낸 것이다. 그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위해서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후회 없는 사랑과 평화를 위해서 일하다가 육신의 생명이 다하면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의 형으로 조용히 사라지셨습니다. 그리고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조용히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고 죽으면 성공적인 삶이고 사명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죽으면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푸른교회의 구성원으로 보내어주신 것입니다.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 큰 믿음의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큰 믿음생활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고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축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는 칭찬받는 종의 삶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1년 5월 2일
푸른교회 담임목사 박 영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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