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주의청년단 “6·25 전쟁은 남침 아닌 내전”

작성자
김정효
작성일
2020-10-26 09:26
조회
169
세계역사를 조작하려는 시진핑 그런다고 유엔이? 참 어리석다 홍위병을 동원하려는가?

시진핑 주석이 23일 중국의 6·25 참전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평화 수호, 침략 반대의 기치를 들고 압록강을 건넜다”며 “북한과 손잡고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켰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지켰다”고도 했다. 북한의 남침을 지원해 한반도를 피로 물들여 놓고 ‘평화 수호’라는 것이다. 중국은 70년 전 한국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날(10월 25일)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 기념일’이라고 한다.

시진핑은 6·25를 내전(內戰), 10·25를 항미원조로 구별했다. 6·25는 중국과는 무관한 일이고 항미원조는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6·25는 김일성이 마오쩌둥의 군사 지원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발발했다. 6·25 직전 중국이 북에 넘긴 조선인 사단 2개는 남침의 주력 부대였다. 중국의 6·25 책임이 분명한데도 모른 척했다. ‘항미’라고 하지만 유엔군 병력이 중국 땅을 밟은 적은 없다. 6·25 때 전사한 국군이 14만이다. 당시 마오쩌둥은 “위군(僞軍·국군)부터 타격하라”고 했다. 국군을 ‘약한 고리’로 봤다.
6.25전쟁 전후 이승만과 김일성의 전쟁지도를 평가한다;펌

<6.25전쟁 전후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의 전쟁지도를 평가한다>

(장순휘;국방문화예술협회 회장)

​​*화랑대 VOL96,26쪽에 실린 본 글은 Fact(사실)에 근거한 논리정연한 내용으로 그동안 일부편향된 동문들의 행위로 화랑대의 정신이 훼손된상태에서 의미있는 글이기에 우리 모두가 색여 읽기를 바라며 여기에 올린다.

​​* 6.25전쟁의 민족사적 재정의와 국제법상 전쟁범죄적 재론(再論)

올해는 6.25전쟁 발발 제70주년이 되는 해로서 남다른 감회가 드는 것은 최근 구국의 영웅 백선엽(白善燁) 대장이 향년 100세로 서거(逝去)하셨기 때문이다. 고인은 북한공산군의 불법남침에 맞서 셀 수도 없는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군인이었다는 것은 이제 영원한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정치모리배들에 의하여 친일 프레임에 시달린 점은 구국의 영웅에 대한 감히 있을 수 없는 결례(缺禮)라는 점을 역사의 진실은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 6.25전쟁에서 싸워야했던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76세)과 북한 김일성(39세) 당시 모습

6.25전쟁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으로 정의되어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책임소재에 관한 진실이 벗어난 정의이기 때문에 ‘잘못 되었다’고 할 것이다. 민족사적 의미로 정확한 정의는 “김일성이라는 희대의 공산주의자가 해방 후 북조선을 해방구로 전쟁을 준비하여 ‘민족해방’이라는 명분의 권력욕을 숨긴 채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겠다는 망상에서 저지른 민족사 최악의 동족상잔이었다.”라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해방 후에 누구도 전쟁을 꿈꾼 지도자는 없었다는 점과 김일성(당시 38세)의 6.25전쟁 전후 전쟁지도(戰爭指導)의 행적을 추적하여 숨겨진 전쟁범죄적 진실을 밝혀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6.25전쟁이 김일성에 의하여 발생한 민족사회와 국제사회에 대한 참혹한 비극이었으며, 수백 만 인명의 살상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전쟁범죄(war crimes)’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범재판 조차없이 전범 김일성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것은 유감스럽다. 평화통일 후 그자의 범죄를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더라도 재론할 과제일 수도 있다.
추가적으로 6.25전쟁의 유념해야 할 관점은 국제법상 종전(cease fire)이 아니라 정전(armistice)이라는 현 상황이 언제라도 선전포고(declaration of war)없이 북한의 기습으로 개전(open war)이 가능한 전쟁 중(on war)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북한이 다시는 전쟁을 안할 것이고 평화를 줄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나 국가안보의 긴장을 스스로 해체하는 것은 자멸(自滅)의 길이니 항재전장(恒在戰場)과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자세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한다.

* 6.25전쟁의 요건과 원인으로 본 전쟁의 성격

‘전쟁의 요건’에 관하여 서상문 박사는 ①개전의 의지를 가진 국가지도자의 전쟁개시 명령의 유무, ②동원된 무장병력의 수가 정규군 연대급 이상의 유무, ③상대방의 무장행위가 2주 이상 충돌이 지속되고, 1명이상 사상자의 발생유무라고 주장하는 논점에서는 6.25전쟁은 전쟁의 요건이 된다. Melvin Small, David Singer의 주장은 ①전투의 지속성(sustained combat), ②조직화된 무장세력(국가)의 개입, ③12개월 기간 중 전투와 관련하여 최소 1,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전투가 있어야 전쟁으로 인정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전쟁의 원인’측면에서 ①국가지도자의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에 따른 상관성, ②대외무력행위를 국가 위세의 지도력 장악으로 보는 관점, ③사회적으로 국가사회가 처한 실정에 따른 ‘식민지 상태에서의 민족해방전선, 노예해방에 대한 남북전쟁, 분단극복을 위한 국가통일 전쟁 등’ 다양한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④국제사회측면에서는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의 글로벌 이니셔티브〔主導權〕 쟁탈전이 원인이 된다. 따라서 6.25전쟁은 이 모든 전쟁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동시 작용한 내전〔civil war〕과 국제전〔world war〕의 ‘복합형전쟁’이었다.

* 6.25전쟁과 전쟁지도자의 비교평가

‘전쟁지도(戰爭指導)’라는 용어는 부재적인 개념이나 전쟁리더십(war leadership), 작전지휘(operational commanding), 작전통제(operational control)을 함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쟁지도’라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 의미로써 통합된 전쟁수행역량과 기술을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으로서 전략(strategy)의 입안-실행-수정-새로운 계획입안-실행-수정의 지속적 반복되는 전쟁행위와 구상(thoughts and concept of action in war)인 것이다.
따라서 6.25전쟁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접근 방법은 전쟁지도자의 언행(의지, 구상, 발언, 정책, 전략, 결정, 지시, 조치, 수행 등)과 그 모든 것을 망라한 전쟁지도(conduct of war)를 분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진영의 전쟁지도자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과 민주진영의 전쟁지도자 이승만, 트루먼, 맥아더의 전쟁지도를 비교평가는 것 자체가 매우 유의미하다.

* 김일성의 무력통일 지상주의적 관념

김일성은 해방 후 소련군의 후원으로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34세)로 정치지도자로서 정권(政權)을 잡았고, 1948년 조선인민군 창설 최고통수권자(37세)에 취임하여 군사지도자로서 군권(軍權)을 장악하였다. 그후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37세)에 등극하여 정치군사지도자로서 전쟁지도의 주체가 되었다.
김일성은 해방이전에 통일 조국에 대한 개인적인 구상을 했으며, 평화통일을 결코 믿지 않았고 시종일관 무력수단을 통한 ‘조국통일구상’을 주장했다고 유성철(전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참가자/ 1992.4.12)의 회고가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은 민족진영출신이 아닌 소련군에 편승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세력이 취약하여 ‘무력’에 의존했으며 남한에 대한 정치적 통일도 ‘무력지상주의적 관념’을 소유했다는 박갑동(『한국전쟁과 김일성』,1990)의 증언이 있다. 또한 김일성은 1946년 6월 전후로 지도급 인민군 군간부들에게 군사력 증강에 힘을 쏟겠다는 군사력 건설사업에 관하여 중점적인 발언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중앙일보 특별취재반, 비록 『조선민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러한 김일성의 ‘무력통일 지상주의적 관념’은 해방후 남북분단의 현실을 ‘자주적 민족해방’이라는 민족통일국가에 대한 망상(妄想)으로 형성되면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공을 염두에 둔 통일구상이었다.

*6.25전쟁을 공모했던 전범 김일성, 공범 마오쩌둥, 교사범 스탈린



전체 2

  • 2020-10-27 07:41

    시진핑의 6.25관련하여 말도 안되는 넋두리를 들었다면 직접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오히려 미국보다 더 반발하며 시진핑의
    막말을 비판해야 하는데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가만히 있고 미국이 나서서 6.25전쟁에
    대한 팩트를 정리해 주네요.
    일본에 대해선 날카롭고 날선 비판을 잘 하면서 왜 우리의 주적인 북괴 정권과 중국에 대해선 부당한 소리를 듣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찍소리도 못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당하고만 있는지 참으로 이해가 안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그저 자괴감이 앞섭니다
    6.25사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들 보기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 2020-10-26 05:41

    처절하게 전쟁을 겪은 세대 시퍼렇게 살아있는 내 세대다 후손들이 걱정이다
    美 국무부 대변인 “6·25 마오쩌둥 지지받은 북한의 남침”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2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25 전쟁은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으로 규정한 ‘항미원조’ 70주년 연설내용을 논박했다. 사진은 주한미대사관이 오테이거스 대변인 트윗을 한국어로 번역해 올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미국을 겨냥해 6·25 전쟁을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자, 미 국무부 대변인이 나서 시 주석의 연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따르면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70년 전 한국전쟁이 단순히 ‘발발’했다고 주장한다”며 “사실은 1950년 6월25일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은 북한의 남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자유국가들이 맞서 싸우자 중국 공산당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만의 병사들을 보내 한반도에 참화를 불러왔다”고 강조했다.

    주한 미대사관은 전날 오테이거스 대변인의 게시물을 대사관 공식 트위터 계정에 리트윗하면서 한국어로 번역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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