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0강 E. 율법의 효용성[3:19-22] Ⓑ 3:20-22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3-27 08:51
조회
110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율법이 약속보다 못한 이유를 말한 바울은, 이어서 율법과 약속의 근본적인 차이를 논하고 있다.【20】[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이 구절은 매우 난해한 구절로 그 해석이 무려 수백 종류나 된다고 한다.❶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대개 두 가지로 대별되고 있다. 즉, 율법과 약속을 대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와 모세와 그리스도를 대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전자에 속하는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1) 율법은 본질적으로 두 편 사이의 계약이었으므로, 두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즉 율법을 지켜야 할 인간과 그에 대해 보상해 주어야 할 하나님의 의무의 관계를 조절할 중보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약속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말씀하셨고 지키신다. 따라서 중보자가 필요 없다❷.

(2) 율법은 중보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약속은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주셨다(S. J. Mikolaski, E. D. Burton).

(3) 중보자와 하나님, 또 하나가 아닌 것과 하나를 대조시켜 율법과 약속의 성격을 밝힌다(H. Alford).

(4) 율법은 아브라함의 혈통인 많은 가족들에게 주신 것이지만, 약속은 아브라함 한 가족에게 주셨고, 계속적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선택된 백성에게 전달되었다. 이와 같이 받은 자의 차이는 내용 자체에도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오므로 약속은 받은 자에게 믿음과 사랑을 일으켜 준다(F. Rendall).

(5) 율법은 천사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협상으로 되었고 그 대표는 모세이었지만,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개인적으로 주셨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교통하게 하셨다(R. T. Stamm)등이다.

다음으로 후자, 즉 모세와 그리스도를 대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1) 모세는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양편을 위한 중보자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특수한 중보자로서 하나님 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 편을 위한 것이다(M. Luther).

(2) 모세의 중보역은 많은 사람의 요구에 의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요구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사람들을 당신에게 이끄시는 것이다(Beet)❸.

(3)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히 8:6, 9:15, 12:24) 한 분이신 하나님의 의사 표시이었다(Vincent).❹

(4) 모세는 양 편을 위한 중보자가 되었으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신 분으로서 우리를 속량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중보자이시다(E. Huxtable, 윤성범).

(5) 앞 절의 중보를 그리스도로 보고, 또 이것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조로 보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전에는 하나님과 유대인 사이의 중보자이셨으나, 이제는 이방인들에게도 중보자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전에나 지금이나 같은 한 분이시다(J. Calvin) 등이다.

이상의 논의를 미루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앞(19절)에서 율법보다 월등한 약속의 권위 및 지위를 주장한 바울은, 이제 율법과 약속의 본질적인 차이를 주장하기 위해 중보자로서의 모세와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중보자인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모세는 율법을 지켜야 할 인간과 그에 대해 보상해 주어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필요한 중보자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과 그가 받은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모세의 율법은 인간에게 저주가 되고 말았다(3:10).

이와는 달리, 약속은 절대자요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 성취하셨고, 또 성취하신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여기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다만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은혜로운 약속은 영원한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모세는 다만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중재자일 뿐이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 사이의 중재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여 주어진 율법이 영적 자손에게 주어진 약속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더욱이 율법이 약속을 폐기할 수 없는 것이다”(M. Henry).

바울은 지금까지 율법과 약속의 결정적인 차이점들을 부각시켜 왔으며, 또한 율법이 약속을 변경 내지는 폐기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해 왔다. 이러한 주장에는 당연히 하나의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르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배치되는 것인가?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서 또한 율법도 주셨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순된 일을 하셨는가? 물론 바울의 대답은 결코 그럴 리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은 “율법과 약속은 명백히 그로부터 생겼다. 그러므로 그 둘 사이의 어떤 모순을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든 간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의 의도는 약속과 율법은 둘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서로 상반될 리가 없으며, 다만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죄 값인 죽음, 즉 영적으로 죽은 상태임(롬 7:25, 계 3:1)을 전제하고 있다. 만일 율법이 이러한 영적 죽음의 상태에 있는 인간을 살릴 수 있다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따라서 약속되신 그리스도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데이톤(W. T. Dayton)은 “만일 율법이 충분한 구원의 방도라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의 아들 안에서 최대로 값비싼 구원의 방도를 취하는 대신에 율법을 취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도 없고(3:11), 또한 살릴 수도 없으며, 오히려 저주(3:10)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롬 7:10, 고후 3:6).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바울은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헤 그라페, ἡ γραφη)은 대부분의 경우에 복수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단수가 사용되었다. 단수가 사용될 때는 성경 중의 특정한 어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J. B. Lightfoot). 의인법으로 표현된바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는 구체적으로 시편 143:2의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와 신명기 27:26의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J. B. Lightfoot, E. D. Burton, W. Hendriksen).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3:10-18에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❺

[모든 것]은 중성 복수인 타 판타(τὰ πάντα)로서 만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 중심인 것은 물론이지만, 사람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참조: 롬 8:20. 黑崎幸吉). 칼빈(J. Calvin)도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이나 혹은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결국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율법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상, 종교, 윤리 체계 및 행위 등을 죄 아래 가두었다는 것이다” (M. Luther, J. Calvin, 黑崎幸吉).

율법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는 이유에 대해, 바울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이란 절대자요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아브라함과 그 자손 그리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 성취하셨고, 또한 성취하신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여기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나 인간적인 요소는 전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약속되었고, 또한 성취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율법, 죄, 죽음, 악마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은총의 선물인 의와 영생 등이다”(M. Luther).

이러한 약속을 받을 대상에 대해,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되었고, 또한 성취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로 미루어, 우리는 율법의 위대한 가치 및 그 중요한 역할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율법을 만족시킬 수 없는 무력함을 깨닫게 함으로써 은혜로운 약속을 향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19-22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을 대치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죄를 인식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율법을 주신 방법은 천사와 중보자로서의 모세를 거쳐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며,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인식하여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게끔 해 주는 기능을 갖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 성취하셨고, 또한 성취하신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개입할 여지나 인간적인 요소는 전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은 약속을 변경시키거나 폐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약속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율법은 약속과는 달리, 의나 영생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을 비롯한 그의 모든 사상, 종교, 윤리 체계 및 행위 등을 죄 아래 가둠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의, 구원, 영생 등)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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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B. Lightfoot: 300 종류. C. R. Erdman: 250 종류. “Jowett: 430 종류”(in 이상근).
2) J. Wesley, M. Henry, J. B. Lightfoot, J. Dow, W. T. Dayton, 黑崎幸吉, 이상근.
3) in 이상근.
4) 상동.
5) 최세창, 로마서, 3:10-1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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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55-161.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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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7 08:52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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