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1강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바울(2:11-14)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1-26 19:48
조회
91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지금까지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사도들과는 관계없는 것임을 말하고, 이어서 예외나 반대 없이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고귀한 지위를 가진 열두 사도들에 의해 공인된 사실을 말하였다. 이제 그는 자신이 열두 사도들의 수뇌 격인 베드로(게바)를 책망한 사건을 내세워, 자신의 사도권이 베드로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교를 유대교화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속임수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완전하게 수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 사건에 대해,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라고 하였다.

[안디옥](Ἀντιόχειαν)은 비시디아 안디옥이 아니라 수리아 안디옥(E. D. Burton)으로, 당시 이방인 성도들의 중심지(黑崎幸吉)이며, 이곳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책망할 일이 있기로](ὅτι κατεγνωσμένος)는 ‘정죄받아야 하겠기로’(AV, RSV)라는 뜻이고, 면책하였노라(κατὰ πρόσωπον αὐτῷ ἀντέστην)는 ‘면전에서 책망하다’(J. Calvin, E. D. Burton, R. T. Stamm), ‘공개적으로 책망하다’(M. Luther, J. B. Lightfoot, E. Huxtable)라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예루살렘 총회 후,① 안디옥에 와 있던 베드로가 책망 받을 짓(M. Luther, J. B. Lightfoot, “Vincent”②)을 했으므로, 바울이 대담하게 공개적으로 책망했다는 것이다. 바울의 책망이 적의를 품은 것은 아니지만(E. D. Burton), 그러나 공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베드로가 저지른 실수의 중대성 때문었다.

베드로의 중대한 실수에 대해, 바울은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라고 설명하고 있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자들(J. B. Lightfoot, R. C. H. Lenski)이나 야고보의 동료들(W. T. Dayton)이라기보다는, 야고보가 보낸 대표들(E. H. Perowne, E. D. Burton H. Alford)로 보는 것이 좋다.

야고보가 그들을 보낸 목적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 준수가 면제된 것을(행 15:1, 5, 28, 29) 계기로, 유대인 교인들까지 율법을 준수하지 않을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 곧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었다. [함께 먹다가]는 쉬네스티엔(συνήσθεν)인데, 이 말은 미완료 과거형으로 단 한 번 먹은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먹은 것을 뜻한다(E. D. Burton, S. J. Mikolaski). 즉, 베드로는 믿음의 진리에 따라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이방인 신자들과 자유롭게 접촉하며 지냈다”(E. H. Perowne, J. Dow). 그는 율법에 금지된 음식들을 먹는 이방인들의 식탁에 자유롭게 동참하였다.③

“이와 같은 공동 식사가 초대 교회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공동 식사를 애찬이라고 불렀다. 이 애찬에는 온 교우가 함께 모여 각자의 음식을 내어놓고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즐겼다.······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의 교제와 일치를 특징지어 주었다”(W. Barclay).

이 애찬을 곧잘 즐겨 오던 베드로는, 야고보가 보낸 대표들이 오자 [그 할례자]들이 두려워서 떠나 물러갔던 것이다.

야고보가 대표로 보낸 [할례자들]은 “먼저 유대인이 되지 않고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을 가리키고”(R. T. Stamm), [떠나 물러]갔다의 두 동사는 미완료 과거형(ὑπέστελλεν καὶ ἀφώριζεν)으로, ‘서서히 물러가 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야고보의 대표들인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방인들과의 애찬의 자리(자유로운 교제)에서 서서히 떠나 버린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중대한 실수였다. 그는 “신학적 모순과 윤리적 위선 가운데 빠졌다”(S. J. Mikolaski).

신학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교회의 일치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칭의의 원리이었다”(L. H. Dewolf). 칼빈(J. Calvin)은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억지로 율법의 노예로 만드는 식으로 유대주의화시켰다. 동시에 마치 그 문제가 이미 정착된 것처럼 바울의 교리를 침식하였다.”고 하였다. 데이톤(W. T. Dayton)도 “베드로의 태도가 복음의 자유를 침식하여 파괴할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것이 되게 하고, 결국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전락시킬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윤리적인 면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취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위선자요 외식자가 되고 말았다”(黑崎幸吉, 米田豊).

실제적인 면에서, 베드로의 죄된 행동은 “적어도 교회를 뒤집어엎을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L. H. Dewolf). 이 점에 대해 바울은 【13】[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고 하였다.

베드로의 외식은 초대 교회에서의 그의 절대적 권위와 지위 때문에 즉시로 유대인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외식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바울과 함께 제1차 선교 여행을 하였으며, 복음의 자유를 가르쳤고, 얼마 전의 예루살렘 총회 때에는 바울과 같이 이방인 신자들의 자유를 위해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을 깨뜨리는 일에 공헌했던 바나바까지도 미혹되게 하였다.

이러한 베드로의 중대한 실수를 가리켜, 칼빈(J. Calvin)은 “이는 로마의 법왕권에 대한 또 하나의 벼락이다.”라고 하였다.

베드로의 중대한 실수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참조: 삼상 15:24)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경고가 된다. 오늘날, 교회 안에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두려워하고, 진리보다 인기나 존경을 잃을까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중대한 실수나 범죄를 저지르는 주님의 종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잠언 기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29:25)라고 하였다.

위에서 본 베드로의 심각한 실수에 대해 누구도 나서지 않았을 때, 유독 바울만이 과감하게 그를 면책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 수호를 위한 바울의 투쟁심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한 이유에 대해, 【14】[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베드로와 바나바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의 진리](2:5의 주석을 보라.)를 알면서도, 그에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M. Luther, S. J. Mikolaski).

베드로의 실수는 이미 안디옥 교회에 파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모든 교회에 파급될 것이므로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베드로를 책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책망은 바울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것이다.

그 책망의 내용은,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라고 하는 것이었다. 즉, “베드로는 어떤 때는 이방인처럼 살고, 어떤 때는 유대인처럼 살았다는 것이다”(M. Henry). 더욱 자세히 말하면, 베드로가 처음에는 율법을 떠나 이방인과 함께 교제하며 고기도 먹으며 이방인처럼 생활하더니, 지금은 번복하여 유대식의 생활을 함으로써 이방인들로 하여금 율법주의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의 선교적 소명과 전망(vision)을 부인하고 모순 없는 율법주의적 유대인이 되든가, 혹은 자신의 율법주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교의 선교사가 되든가 해야만 한다”(W. T. Dayton).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혼합주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국 “여기서의 상황과 후기 역사는 베드로가 후자를 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W. T. Dayton).

루터(M. Luther)는 초대 교회가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바울만이 교회를 지켜 내었다.”라고 하였고, 바클레이(W. Barclay)는 “바울은 곁길로 떨어진 풍조를 사나운 풍랑이 되기 전에 자신의 의지로 막아낸 용기 있는 인간의 생생한 모범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바울에 의하면, 이방인 성도들의 중심지인 안디옥에서 율법과 상관없이 이방인들과 함께 애찬을 나누며, 이방인처럼 지내던 베드로가, 야고보가 보낸 대표들인 할례자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방인 성도들과의 애찬의 자리를 떠남으로써 율법주의적인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실수는 바나바를 위시하여 유대인 성도들에게 파급되어, 초대 교회가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에 바울이 공개적으로 베드로의 실수를 책망하여 교회를 지켜 내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사도권이 베드로 보다 조금도 못할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를 유대교화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간계를 타파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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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B. Lightfoot, W. T. Dayton, C. R. Erdman, E. H. Perowne, J. Dow, 黑崎幸吉, 米田豊.
2) in 이상근.
3) M. Luther, E. D. Burton, R. C. H. Lenski, 內村鑑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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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06-111.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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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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