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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와 바울의 베뢰아 선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5-08-06 13:15
조회
1277
1. 시작하는 말

종교다원주의는, 한마디로, 산의 정상은 하나이나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다양한 것처럼, 모든 종교는 다 절대자에 이르는 길이라거나, 혹은 모든 종교는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 지성인이자 탁월한 유대교 지도자였던 바울은 헬라의 철학과 종교들에 관한 지식과 율법과 유대교 종파들에 관한 지식이 풍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겼고,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교회를 혹세무민하는 단체로 여겨 철저히 핍박했습니다. 다메섹에까지 교인들을 체포하러 가다가 도상에서,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변화됐습니다. 갖춘 모든 지식으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문서로 밝혔습니다.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각 종교인들에게 구원받았다고 일러준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면서 예수님만이 구주이심을 전파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공인되게 하는 획기적인 공헌을 했고, 기독교가 세계로 확산되는 데 획기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베뢰아에서도 선교했습니다.

2. 바울의 베뢰아 선교

바울 사도는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한 명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환상의 계시에 순종해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에 이어 베뢰아에서 선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심한 박해를 당하던 어느 날 밤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은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고, 두 사람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동족인 유대인들의 집요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동족 사랑으로 먼저 유대교인인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회당에 들어간 것입니다.
실라(Σίλαν)의 로마식 이름은 실루아노(Σιλουανού)입니다. 실라는 유대인 선지자이며, 복음을 공인한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과 권장 사항을 이방 교회에 전하는 데 요긴한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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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2차 이방 선교 여행에 바울 사도와 동행한 좋은 조력자이었고, 나중에는 베드로와 같이 일하기도 했습니다.
베뢰아(Βέροιαν)는 데살로니가처럼 상업 도시로 번창하지는 못했지만, 장색 세공업과 농업과 석공업의 중심지로 유명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고 고매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 설교를 받아들였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구약성경을 상세히 검토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느 교회에나 똑같은 목사에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졸거나 자는 사람, 책 펴 들고 공부하는 사람, 아이를 어르는 사람, 잡담하는 사람, 열심히 염려하느라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는 말씀을 못 듣는 사람,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따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머지는 배척하는 사람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은 믿음이 성장하지도 않고, 인격과 생활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천국행입니다.
온 영을 기울여 복음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되새기고, 그런가 하여 성경을 탐구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과는 설교 중의 예화로 되새기면 좋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심령에 받은 말씀이 심령을 성결케 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고, 평안케 하고, 영력과 영적 지혜를 심화시키고, 또 성결한 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이웃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유와 축귀의 능력이고, 신령한 지혜이고, 문제 해결과 복의 열쇠이고, 영적 싸움의 검이고, 영의 양식이고, 천국행 등불입니다.
이토록 중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온 영을 기울여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자기만 옳을 수 없으므로 많은 주석가들의 견해를 섭렵하여 종합하고, 듣는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도록 선포해야 합니다. 실상, 설교자는 먼저 듣는 사람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고매한 신사답게 복음 설교를 받아들이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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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가 하여 구약성경을 탐구했으므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과 적지 않은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때에 주 예수님을 믿은 것으로 짐작되는 베뢰아 사람인 소바더가 나중에 아시아까지 가는 바울의 여행 동료 중 한 사람으로 언급된 것을 보면, 베뢰아에 교회가 설립되었고, 또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베뢰아에서의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의 성공적인 선교 결과를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리가 약 35㎞라고 하는 학자도 있고, 약 75㎞라고 하는 학자도 있는데, 그 먼 거리를 다니면서 죄 사함과 거룩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핍박하는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하는 것입니다.
핍박하려고 베뢰아까지 쫓아간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케 했습니다. 유대교에 구원이 있다고 했으면 안 그랬을 겁니다. 1차 선교 여행 때에도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에 서둘러 가서 무리를 선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 내친 적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영생을 얻도록 주 예수님을 전파하는 바울의 집념과 못하게 하려는 유대인들의 집념이 극히 대조적입니다.
공산 정권들이 그런 것처럼, 중국 공산 정권도 모든 교회를 폐쇄했고, 선교사들을 추방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교역자와 교인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성경책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수십 년 동안 예배 소리는커녕 찬송과 기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뿌리뽑히고, 기독교가 말살된 것 같았습니다.
등소평이 개방정책을 펴면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아직도 기독교인이 남아 있을까?’ 드디어 예배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교회들마다 차고 넘쳤습니다. 창밖 마당에까지 예배드리는 사람들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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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넘쳤습니다.
저와 우리 교회도 인편을 통해 제가 쓴 15권의 신약 전체 주석서를 수시로 중국에 보내곤 했습니다.
교역자와 선교사와 교인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일 수는 있지만, 복음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빌립보서 1:12을 보면, 바울 사도가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 의하면 복음 전파에 크나큰 장해가 되는 상태, 즉 복음 전도자인 자신은 갇혀 있지만 복음은 갇혀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멀리 떨어진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무리를 선동하며 핍박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베뢰아의 교인들이 우선적으로 바울 사도를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했습니다. 렌스키(R. C. H. Lenski)는 “이 일은 섭리의 손이 또다시 바울을 새 일터로 신속하게 옮기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바울의 적들의 증오를 신적 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해 사용하셨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울만 바다까지 가게 한 것은 박해의 주 대상이 바울이었기 때문이고,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그대로 머물게 한 것은 어린 베뢰아 교회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를 인도하는 교인들이 아덴까지 이르렀을 때, 그들은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오게 하라는 바울 사도의 명을 받고 떠났습니다. 그 교인들은 베뢰아에서 아덴까지 육로로 320㎞나 되는 머나먼 거리를 왕복하는 충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인들은 자가용이 있어도 주일 예배조차 안 지키는데 심각한 문제입니다.

3. 맺음말

심령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성결케 하고, 편안케 하고, 강하게 하고, 온유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또한 성결한 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이웃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신유와 축귀의 능력이고, 신령한 지혜이고, 문제 해결과 복의 열쇠이고, 영적 싸움의 검이고, 영의 양식이고, 천국행의 등불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 설교를 심령에 받아들이고, 우리의 지식과 정보를 비롯한 모든 소유를 활용하여 입으로, 혹은 문서로 유일한 구주 예수님을 담대히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저작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전체 5

  • 2015-08-06 13:15

    (설교의 성경 본문: 사도행전 17:10-15)
    10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15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 2015-08-06 13:18

    독자분들께: 앞서 등록을 했는데, 제 컴퓨터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로그인을 하면 다른 화면이 보이기도 해서 다시 등록했습니다. 미안합니다.


  • 2015-08-06 13:38

    주신 말씀 다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무덥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2015-08-06 14:00

    가끔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저도 경험을 했습니다.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늘 은혜로운 말씀들 감사합니다.


  • 2015-08-06 15:12

    김정효 장로님, 늘 필자의 글들을 애독하시고, 공감하셔서 감사합니다. 종교다원주의신학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유병기 목사님, 필자의 설교들을 은혜로운 말씀들로 받아들이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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