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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임원헌신예배 설교문)

작성자
이주익
작성일
2015-12-16 08:53
조회
1791
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14-30

2016년도 교회 임원으로 충성(忠誠)을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기를 축원합니다.

달란트 비유는 마태복음 25:1-13에 기록된 열 처녀의 비유와 유사합니다. 두 비유들은 하나의 중요한 사건, 곧 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 비유 속의 인물들이 동일한 대상, 곧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들의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깨어있음’이 첫 번째 비유의 주제라면, ‘열심히 일해야 함’이 두 번째 비유의 주제입니다. 즉, 열 처녀 비유는 교회로 하여금 늘 깨어 준비하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달란트 비유는 예수 재림을 대비하는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충성과 열심을 다해 일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은사와 축복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이 없을 동안 주인을 위하여 장사하도록 능력과 기회에 따라 일정한 ‘달란트들’(talents)을 주었습니다. 달란트의 헬라어 원형 ‘탈란톤(τάλαντον)’은 중량을 재는 ‘천칭(天秤)’, ‘저울’이란 뜻의 단어였으나 중량의 측정단위와 화폐단위로 발전했습니다. 한 달란트를 구약시대에는 3천 세겔로 34.27㎏의 무게와 같은 중량을 가리켰고, 신약시대에는 돈의 단위로서 약 6천 드라크마와 같은 가치에 해당합니다. 드라크마는 로마의 은전 한 데나리온 곧, 일반 노동자가 받는 하루 품삯과 동일했습니다. 300 데나리온이 노동자 1년 품삯이었음을 감안하면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약 20년 벌어야하는 거금입니다. 한 달란트를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6억 원입니다. 이 금액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달란트는 평범한 사람보다는 특별한 은사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용어를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해 사용하셨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주님이 보시기에 달란트(사명)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은 바로 달란트입니다. 우리의 재능, 재산, 지식, 건강, 기력, 시간, 감정, 기억력, 동정심 등은 모두가 천국도래의 주역이신 주께서 자기 소유를 맡기신 귀중한 달란트입니다. 그러므로 머뭇거림 없이 책임감 있게 자신의 소임을 즉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에게 다양한 책임과 사명을 주신 주인께 보답하는 것이 곧 청지기적 자세입니다.

둘째,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권과 사명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둔 사람, 곧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행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역할과 기회를 포기한 악한 종의 실체입니다. 구체적으로 성경을 멸시하는 자, 기도를 하지 않는 자, 거룩한 예배를 부인하는 자, 믿지 아니하는 자, 세상을 좇는 자, 재물을 탐하는 자, 탐욕으로 가득한 자, 미워하는 자,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자, 이들은 모두 달란트를 땅에 감춘 자입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것을 썩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지만, 그들은 그 분께 돌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을 땅에서 썩게 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땅에 묻어 둔 이유는, 주인이 행한 달란트 분배에 대한 불만에 기인합니다. 종은 자기가 일하지 않고 이윤(利潤)을 전혀 남기지 않은 이유가 인정머리 없고 인색한 주인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24절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굳은’의 뜻은 ‘뻣뻣한’, ‘거친’ 이란 뜻입니다. 단순히 ‘엄한’이란 용어가 아니라 ‘강퍅하고 완강하며 가혹하고 냉정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적게 투자해 주고 많은 소득을 얻어 보려고 종들을 채찍질하는 파렴치한 주인으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을 원망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심다’와 ‘헤치다’, 그리고 ‘거두다’와 ‘모으다’는 유사적 평행대구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속담 투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고 불로소득을 얻어 보려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종은 이처럼 주인에 대해 게으르고 악한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의 판단착오는 주인에게서 적게 받은데 대한 분노와 원망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는 결코 적은 값이 아닙니다. 더욱이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자도 소중히 여기는 선한 주인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고, 주인의 성향을 전혀 몰랐습니다. 30절은 범사에 감사하지 않고, 주인에 대해 악감을 가진 인생에게 내려진 최후판결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무익한 종에 대한 벌은 구원으로부터의 제외됨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한 논점은 그가 이득을 얼마나 남겼느냐, 남기지 못했느냐가 아닙니다. 종이 운명론에 빠져 개발과 향상을 포기한 게으름과 주인을 악한 자로 몰고 간 옳지 못한 판단에 있습니다. 또한 주인에게서 적게 받았다는 불평이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게 했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셋째,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계산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19) 우리 모두 언젠가 심판의 날을 맞이합니다. 종말의 날, 우리는 우리의 삶의 결과물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든지 낮은 지위에 있었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많이 배웠든지 못 배웠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의 영원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심판의 날이 없다면 성경도 거짓이 될 것이고, 우리의 신앙도 거짓이 될 것입니다. 시간은 그 날을 향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날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산하는 날 풍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달란트를 잘 선용했던 종들에게 주인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칭찬했고,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 23)라며 축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대를 초월한 모든 믿는 자에게 소망이 됩니다. 주인은 충성스러운 두 사람 모두에게 보상으로 종의 지위를 격상시켜주실 것이며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주님과 교회를 열심히 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인의 칭찬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은, 주인은 종들을 구별하시되 차별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각각 재능에 맡게 달란트의 양을 할당하기는 했지만, 그 맡긴 분량을 기준으로 해서 계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산하실 때 맡겨준 것에 비추어 정산 하십니다. 적은 것을 맡겼으면 그 부여된 산술에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주어진 직임을 잘 활용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이러한 주인의 의도에 어긋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종이 밖으로 내쫓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끝으로, 충성된 자는 마지막 날 풍성하게 보상을 받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비록 비천하고 무능하며 연약해 보일지라도 그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이익의 기회로 전환시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종말론적 축복이 상상을 초월한 규모로 맡겨질 것이고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달란트는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달란트를 어떻게 성실하게 사용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소유했더라도 달란트를 묻어 둔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명심할 점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자는 그에게 주어졌던 달란트가 회수되어, 그 달란트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장자권 다툼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구체적인 실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장자권의 가치를 팥죽 한 그릇보다도 못한 것으로 여겼던 에서는 장자권을 빼앗겼고, 그 가치를 알고 사모했던 야곱에게 그것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판결이 마지막 심판 날 빈번하게 내려질 것입니다.

25절처럼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라고 말을 해도 하나님은 그의 진술을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산하는 날, 맡긴 달란트를 잘 사용했던 종들에게 그 주인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21) 이렇게 칭찬했고,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3)라며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주실 것이며 새로운 임무를 부여 해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임원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전심전력하여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건설과 교회 진흥을 위한 사명에 충성과 책임을 다하실 때에 영적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칭찬과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이 여러분에게 보상되기를 축원합니다.

서대문교회
이주익 목사



전체 4

  • 2015-12-16 10:29

    설교 말씀을 잘 읽고 감사합니다.


  • 2015-12-16 17:11

    성경주석에 전력하시는 최세창 선배 목사님, 감사합니다.
    1980년대 인천남지방에서의 4년 교역이 저에게는 만남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2015-12-17 12:08

    저희 교회는 27일 당회를 하게 됩니다.
    임원 헌신예배 설교 말씀을 미리 받아 감사합니다. 원로장로는 이제 임원도 아니기에
    임원이었던 시절에 나는 과연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 말씀을 읽으며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2015-12-17 18:03

    건강한 심신을 바탕으로 기여하시는 노고가 김정효 장로님께 더욱 빛나고 있지 않으십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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